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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언트 -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나, 그리고 영어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초등 3학년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경기도교육청에서 만든 두껍고 말도 안 되는 교재도 없었고, 영어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나마 손녀딸은 영어를 알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할머니께서 시킨 재XXX의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학습지가 전부였다.
영어학원도, 영어유치원도, 영어과외도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것에 대한 취향은 타고 나는 것인가 보다.
그도 아니라면 누군가 말했듯이 음악을 관할하는 뇌의 부분과 언어를 관할하는 뇌의 부분이 같았거나.
나는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했고 영어도 또한 좋아했다.
영어 원어민을 만날 기회가 없었으니 그들을 만났을 때 떨거나 두려워 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저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통한 단어 암기, 문법 암기와 독해가 다였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유행했던 성문 종합영어를 사서 보기도 했으나, 한자 투성이에 너무 구식이라 잘 보지 않았다.
대신 관심을 돌린 건 음악과 영화였다.
좋아하는 영화인 '프린세스 다이어리' 는 영어 원서를 다 읽고, 도서를 녹음한 CD본을 모두 들었으며,
영화 DVD와 사운드트랙을 소장하고 있다.
미드도 좋아해서 '길모어걸즈' , ' That 70's Show', 'The O.C' 등을 보거나 DVD로 구매해서
우리말 자막으로 보기, 영어 자막으로 보기, 무자막으로 보기를 반복하였다.
그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냥 영어가 좋아서 그렇게 했다.
그 때부터 10년 넘게 계속 들은 프로가 KBS FM 라디오의 새벽 방송 '굿모닝팝스' 이다.
중간에 진행자가 2~3번 교체되었지만 나는 바뀌지 않았다.
중3 겨울방학에는 독학으로 토익 시험을 봤으며, 고등학교 내내 전교 5등 안에 들었다.
고등학생 때는 영어와 더불어 프랑스어를 알게 되었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라는 가수를 좋아하여 스페인어까지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어학과 문학 전반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전공인 영어영문학 이외에 프랑스 문학, 러시아 문학, 독일 문학도 교양으로 배웠다.
고3때부터 우연히 푹 빠지게 된 스페인어에 대한 사랑이 커져서 대학 4년 내내 배웠다.
수업 과목으로도 배웠고, 방학 때는 대학 어학원에서 따로 배웠다.
영어를 배우는 것에서 나아가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다는 걸 알게 된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영어교육을 전공하였다.
2년 반의 대학원 생활이 끝난 지금, 나는 초~고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중이다.
때로는 회화를, 때로는 학교 내신을 위해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원어민과도 여러 해 일했지만, 나의 영어 실력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영어회화모임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회화 학원도 다닌 바 있다.
이런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은 말하기가 아닌 영어로 글쓰기이다.
SAT나 A Level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위해선 필수인데 말이다.
저자의 영어, 언어
나는 내게 설명하려고 들거나 '~해라' 라고 지시하는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 '플루언트' 도 그런 과라서 읽지 않으려다가 영어에 관한 책임을 알고 책장을 폈다.
그가 설명하는 언어학적 사실이나 영문학에서의 비유가 내게는 매우 친근하게 다가왔다.
대학교와 대학원에 걸쳐 배웠던 내용이었고 특별할 게 없는 얘기들이었기 때문이다.
1964년 오드리 햅번이라는 여배우를 일약 요정 반열에 올린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리이디 My Fair Lady' 는 대영제국 시대 영어에 대한 영국인의 자부심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p. 33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 는 학부 시절 영어학개론 첫 수업시간에 영상으로 감상했다.
하지만 나처럼 영어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런 내용이나 영어를 언어학적으로 접근한 방식에 생소하기에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저자는 언어학자나 영어 전공자가 아니면 알지 못할 사실들을 영어 학습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링구아 프랑카로서 영어는 이 시대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언어이다.
다만 영어를 대하거나 배우는 방식이 한참 잘못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저자는 커다란 깨우침을 준다.
하지만 프랑스는 오랫동안 명품과 와인 등의 생산으로 '섹시'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인 자신도 외국에 나가 프랑스인으로 인식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을 알고 있어 자신들의 영어 발음을 고치려 들지 않는다.
(중 략)
한류와 아시아 세기의 도래를 계기로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우리가 흔히 '원어민 발음' 이라고 하는 것을 꼭 배울 필요가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p. 47-48
그 나라 말을 너무 잘하면 외국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들과 같은 국적으로 오인하여 문화 차이에 따른 실수를 관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저자의 언급은 충격적이었다.
오히려 적당히 자기 나라권의 억양을 갖고 있어야만 외국인에 대한 관용의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내게는 잘 와닿지 않는 이유가, 소위 '표준영어' - 이런 말이 없다고는 하지만 - 발음을 해야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의 영어 발음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식이어도 안 되고, 동남아식이어도 안 되며, '영어권 화자' 에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
저자는 글에서 영어에 대한 언어학적 접근을 하는 한 편, 어떻게 해야 우리가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이미 알고 실행하는 방법도 있었고,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어 실천하고픈 방법도 있었다.
만약 하루에 1시간 정도 영어 공부를 한다고 치면 미국인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블로그에 게재한 글, 신문기사, 영, 미 영화감상에 30분 정도를 투자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므로 '저 사람이 왜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말을 하지?' 라는 의문을 많이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문법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 56
영화나 동영상은 나도 즐겨서 시청하는 매체로서,
특히나 아시아권 사람들은 visual learner가 많아서 들은 것 보다는 본 것을 더 잘 기억하고 학습할 수 있다는 글을
교육심리학에서 배운 적이 있다.
내가 처음에 영작을 했던 방식을 소개한다. 나는 영어로 글을 쓸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 영미권 문학가가 쓴 시나 간단한 소설 문단을 읽고 마음에 드는 몇 문장을 골라 '힙합 버전', '텍사스 농민 버전', '신문 기사 버전','학교 리포트 버전' 등으로 바꾸어 써보는 연습을 했다.
p. 266
학창 시절 노래 개사를 종종 하였고 친구들에게 큰 웃음을 준 적이 있다. 삼행시나 오행시 쓰는 것도 어렵지 않게 했다.
저자가 한 방법도 다른 버전의 개사가 아니던가.
우리나라의 영어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이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저자는 고종 때 본격적으로 시행된 영어 교육에 대해서 비판하듯 말하지만 그가 간과하는 점이 있다.
고종 때에는 원어민을 불러 '유창하게' 영어를 말하는 법을 위주로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던 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영어를 일본어로 독해하는 아주 나쁜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수십년간 지속되어 이제는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4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0년을 배우고도 외국인 앞에서 제대로 말 할 수 없는 영어는
이미 'communication' 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위치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반면 룩셈부르크에서는 일주일 중 영어 수업에 들이는 시간이 꽤나 많고, 그들 스스로도 인정할 정도로 수학에 대한 비중은 낮춘다.
한 편, 몇 년 전 터키에서는 국가원수가 영어와 그 문화권에 빠져 영어를 반드시 배우도록 국가 정책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잘못된 점은 무엇일까?
현재는 초등학교의 회화식 수업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곤 있지만,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
현행 수업 방식 대신, 영어로 된 도서를 읽고 영어로 토론을 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영어를 도구로 이용한 다른 과목의 수업, 즉 immersion 수업도 좋다.
그렇지 않아도 강남 8학군에서는 10년도 더 전에 유행했던 영어책 읽기를 작년인가부터 교육부에서 공문을 보내 시행하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도 본 수업 시간이 아니라 집에서 '원하는 학생만' 스스로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그 독후감을 온라인 어디서 보고 배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문법 외우고, 단어 외우고, 우리말로 해석.
이 자체가 송두리째 바뀌어야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영어권 화자를 잔뜩 들여왔다가 다 내 보낸 이유 중 하나는 정해진 교과서 때문이다.
나와 같이 일했던 원어민 역시 "틀에 박힌 교과서를 가르치는 앵무새가 된 느낌이다." 라고 자신의 블로그에 쓴 바 있다.
그들을 데려왔으면 그들의 문화권이나 실생활영어를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원어민이 우리나라에 와서 주로 한 건 정해진 책을 읽어서 따라하게 함으로써 소위 '완벽한 발음과 억양' 을 구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체 누가 생각해 낸 방법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영어 학습
국가의 영어 교육 정책이 이만큼이나 잘못되지 않았다면 개인은 힘들여 영어를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이런 '플루언트' 와 같은 도서를 사서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공립교육에서의 영어가 변하지 않는 이상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법은 부모를 잘 만나서 외국에서 산다든가,
역시 부모를 잘 만나서 원어민과 1:1 로 과외를 받는다든가, 또 부모를 잘 만나서 - 합법이든 불법이든 -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길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내가 그런 혜택받은 - privileged - 계층이 아니라면 단 하나밖에 없다.
죽도록 노력하고 고생해서 어떻게든 영어를 언어로서 정복하는 것이다.
'비정상회담' 에 출연하는 타일러도 자신이 한국어를 잘 하게 된 건 그만큼 고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제2언어가 아니라 그저 외국어일 뿐이다.
방송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영어를 생활 언어로 사용하는 곳은 없다.
영어를 배워도 직접 말 할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좌절하든가 아니면 '플루언트' 라도 읽고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