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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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or 비정규직



대학교 시간강사와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대리기사에 이르는 비정규직.

저자의 화려하다면 화려한(?) 이력이다.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가 무엇때문에 이런 '비정규직' 에 계속 몸 담고 있어야 할까?


흔히들 이런 말을 한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도둑놈이 많을 뿐이다."

적극 공감한다.

하다못해 마트에서 귤 한 봉지를 사도 중간에서 돈을 나눠갖는 중개인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아파트에서 주최하는 직거래 장터는 사정이 바뀔까?

이번에는 그 중개인이 아파트 부녀회라는 이름으로 불릴 뿐이다.


우리나라는 소수의 대기업이 부를 독식하는 매우 불균형 사회 구조를 이루고 있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부유층과 하루 하루를 아껴써야 하는 서민층, 그리고 빈곤층이 남게 된다.

그리고 사회 대부분에서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인원을 차지하고 있다.

서양에서 비정규직은 퇴직금을 비롯하여 고용안정성이 없기때문에 그만큼 일반사원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게 된다.

물론 나라들마다 천차만별이긴하지만 정규직, 비정규직의 개념이 모두 우리나라와 같은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이란 정규직보다 더 적은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낮은 임금, 無보험, 無성과급 등을 뜻한다.

그들이 초과근무한다고 해서 법에 제시된 대로 수당을 더 주는 고용주는 찾기 힘들고, 

하다못해 명절날 나오는 선물세트도 비정규직은 제외 대상이다.

한마디로 정규직보다 덜 인간 취급하고 덜 대우하며 싼 값으로 더 부려먹고 자르기 쉬운 게 바로 비정규직이다.


저자는 학문의 최정점을 보여주는 대학교라는 곳에 얼마나 비정규직이 많으며, 그 안에 얼마나 모순이 가득한지 지적한다.


얼마 전 함께 밥을 먹던 20대 교직원이 "이 학교에는 20대와 30대 중 아무도 정규직이 없어요. 저도 이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라는 말이, 그대로 대학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그뿐 아니라 학생들의 밥을 퍼주는 이도, 강의동의 환경미화와 경비를 책임지는 이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처럼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으로 대학 행정과 강의의 최전선이 지탱되고 있습니다.


p. 24


몇 년 전에는 모대학에서 교내 환경미화원들의 부당한 처우에 대하여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적이 있다.

그들 모두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인데, 개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 대학에서 배울 게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 사회는 누구를 위한 사회이고 또 누구를 위해 굴러가는 것인가?








시간강사에서 '진짜' 교수로




나의 큰아버지는 대한민국 일류대라고 하는 곳의 교수이다.

그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을 빛낼 100명' 에 뽑혀서 신문 한 켠을 장식한 적도 있으며, 

지도교수를 잘 만나서 40대가 되기도 전에 정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석사와 박사학위를 따야 했고, 미국 대학원에서의 유학 비용은 그의 아버지인 나의 할아버지가 부담하였다.

자식의 유학 생활비를 위해 직업군인 생활을 1년 먼저 접고 때 이른 퇴직금을 받은 할아버지.

그렇게 할아버지의 희생으로 큰아버지는 멋지게 유학 생활을 마무리짓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간강사 일을 하면서 제대로 된 집을 구하지 못해 6개월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큰아버지 식구가 함께 살게 되었다.

방 3개 딸린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버지, 큰아머니, 사촌 두 명, 이렇게 6명이 살았다.

그 안에서 의견 차이로 인해 '말 그대로' 밥상을 엎은 일도 있었으며, 결국 집을 구하기도 전에 큰아버지 식구는 나가 버렸다.



얼마 후 나는 아내에게 논문을 쓸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아내는 지친 표정으로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1년이면 되겠다고 했다. 


p. 135



결국 서울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사정이 이러저러하니 1년 정도 아이 돌보는 것을 도와달라고 여쭈었다. 어머니는 너희가 맞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p. 136


박사에서 정교수가 되는 과정을 직접 곁에서 보고 겪어 온 터라 저자의 입장이 굉장히 잘 이해된다.

그나마 나의 큰아버지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 시간강사는 몇 년 안 하고 정교수가 될 수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리 아버지 친구분 중 한 분은 8년간의 시간강사 일을 접고 작년에 드디어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 돈도 잘 못 가져다주고, 눈칫밥 먹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순간 - 8년을 한 순간이라고 말하는데는 무리가 있지만, 일단 -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호칭만 '교수님' 이 아닌 진짜 정규직 '교수님' 이 되었으며, 4대 보험과 정년이 보장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하며 수업하고, 방학 때는 해외로 연수를 떠날 수도 있다.

사회의 '하층민' 에서 가장 존경받는 계층 중 하나로 바뀐 것이다.











내부고발자를 죽이는 사회




저자가 시간강사의 실태를 고발하고, 힘든 현실을 알린 글을 쓴 후 그에게 돌아온 건 따뜻한 시선과 위로였다.

그런데 그 따뜻함은 오로지 대학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뿐이었다.

그와 같이 시간강사 일을 하는 동료들은 오히려 그를 나무라며 질타하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것은 동료들이었다. 같은 연구실의 연구자들이, 같은 교양과목을 강의하던 시간강사들이, 왜 자신들을/대학을 모욕했는지를 물었다. 내 앞을 막아선 것은 갑이 아닌 을이었다. 대학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었다.


p. 182



나 또한 마찬가지 현실에 처해 있다.

내가 속한 집단을 고발하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나의 상사를 고발하고 싶은 적은 정말이지 셀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해가 올 까봐 하는 비겁함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왜 우리 집단을, 우리 상사를 욕해서 우리까지 피해를 보게 만들었느냐?" 라고 물으며 나를 욕할 동료들 때문이다.

그른 건 그르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회, 지금 내가 제대로 된 건강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몇 년 전, 서울 양천구의 모 사립학교의 각종 비리를 알렸다가 재단과 학교로부터 뭇매를 맞고 학교를 떠나야했던 교사가 있다.

그는 그 후에도 계속하여 학교와 재단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고발하였으며, 결국 교육의원으로 당선되어 깔끔한 '복수' 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권선징악' 적 결말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학교건 기업이건 정부건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는 '선한 내부고발자' 에게는 즉시 보복을 가한다.

내가 얼마나 잘못했고, 우리 학교가 우리 회사가 우리 당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는 지독한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앞으로의 대한민국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꼰대' , '고인 물' 이라 불리는 이들과 집단을 모두 개선해야 한다.

비정규직인으로서 무시받고 핍박받는다고 조용히 숨어 살지 말고 '밟혀서 꿈틀한 지렁이' 처럼 계속 일어나 대항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나의 학교를, 나의 직장을, 나의 정부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 언론에서 너나 할 거 없이 신나게 보도하는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대통령 퇴진 요구' 또한 그 중 하나이다.

우리는 비정규직이 불행한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웃음 지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런 세상이 앞으로 1년 후에 올 지, 10년 후일지, 아니면 100년 후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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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언니
윤이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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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는 아이들, 뒤로 가는 학교





현대로 들어서기 전 근대 사회까지만 해도 모든 속도와 변화가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는 정도였고, 

어느 정도의 혼란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잘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IT로 대변되는 21세기에는 모든 게 너무나 빠르고 또한 그런 것들이 전세계에서 동시에, 그것도 순식간에 일어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알아채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때로는 어찌할 수 없음에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한 혼돈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10대들은 그들의 본성에 가장 반대되는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갇혀 살고 있다.


소설『타로 언니』에서는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생들이 대치점에 서서 얼마나 상반된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줄 모르며, 언제나 자신의 입장을 최우선시한다.



문학 선생님은 학습 목표를 쓰는 몇 안 되는 선생님이고 게다가 학습 목표를 오래 쓰기로 유명했다. 아이들은 그 시간을 이용해서 요리조리 뛰어다니거나 물을 마시고 오거나 먹던 음식을 급하게 삼키면서 휴식을 즐겼다.


p. 78



교사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개개의 인격을 지닌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기보다는,

 위계 질서 속에서 교사보다 권위면에서 아래에 있기에 늘 가르치고 지시하고 교육시켜야한다는 시각으로 보고 있다.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 반에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학생이 있었지. 바로 저기에."

아이들이 일제히 일대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엉겁결에 주먹을 쥐었다. 기가 막혔다. 이 상황에서 내 이름이 거론된다는 게 전혀 즐겁지 않았다. 기분 더러웠다. 


p. 172-173



만약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 학생이 아닌 자기 아이였으면 이런 식의 공개적인 처형을 감행했을까?

한 아이의 비밀을 상담에서 끝내지 못하고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는 국어교사는 또 어떠한가?

이런 교사들이 딱히 성격에 문제가 있다거나 교사 자격이 없다기보다는, 

어떤 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을 학생이 아닌 본인으로 두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인데, 

이런 일은 실제로 학교 내에서 일상다반사로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모인 자리에서 말하기 좋아한다.


"얘들아, 너희도 알잖아. 대의원 회의라고는 해도 선생님들 의견이 중요하지, 우리야 머리수만 채우는 거 몰라서 이래?"


p. 187



학교에서 가장 잘하는 일이 있다면 학생들이 뭔가 색다른 일을 하는 것을 말리는 것이다.

(중  략)

선생님들은 이런 걸 굉장히 좋아한다. 무언가를 교육적으로 만드는 것 말이다.


p. 192



그 정도가 덜하다고는 해도 일반 기업체와 마찬가지로 학교 역시 관료주의라는 틀 안에 있으며,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교사는 교감, 교장의 말을, 교장은 교육청의 말을, 교육청은 교육부의 말을 따라야 한다. 

한 편으로는 '혁신학교', '학생중심교육과정', '학생인권' 을 외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학생 스스로, 혁신적인, 새로운' 이런 단어가 학교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작은 국가와 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아가미를 뻐끔대고 있는 국민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일진이 되는데 언제나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다.





주인공 주윤아가 전학 간 고등학교에는 전교에서 유명한 일진 무리인 '라붐' 이 소위 문제아반에 함께 배정되어 있다.

라붐에서도 '짱' 인 지나는 비닐캡을 두르고 담배를 피워서 머리카락에 냄새가 배지 않게 할 정도로 '일진 생활' 이 습관화된 학생으로,

 그녀가 일진의 세계로 빠지게 되고 그 세계를 드넓게 만드는 데 일조한 데는 가정 배경이라는 이름이 있다.

남들과는 무언가 다른 특유의 분위기와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지나의 외모는 그녀가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는 걸 잘 보여준다.

아랍계 출신의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외국인센터에서 힘들게 혼자 살아가고, 그런 어머니를 지나는 몹시도 그리워한다.


한 편, 말보다는 이빨과 주먹이 먼저 나가는 라붐의 행동파 개새는 어릴 적 당한 성폭행의 트라우마로 몹시 공격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성폭행을 당할 정도로 약하기만 했던 자신을 가릴 방어막으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폭력성을 사용한다.


라붐에서 가장 조용하고 한 편으로는 '일진답지않게' 모범적인 학교 생활을 하는 쌍수는 

사춘기의 호르몬 분비로 지나를 동경하고 그녀를 롤모델로 삼아왔다.


주윤아가 들어가기 전 원조 라붐의 멤버들을 보았을 때 일진이 된 데 있어서 특별한 결핍이 없는 아이는 쌍수뿐이다.

나머지 둘은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일진의 길에 빠지고 만 것처럼 합리화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일진이 된 데 가장 큰 원인이 가정환경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모든 일진이 가정환경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진이 되었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아빠가 화를 내는 진짜 이유를 생각하자 더욱 눈물이 났다. 지금쯤 C컬 속눈썹 연장을 한 여자랑 데이트할 시간인데 그걸 못해서일까, 결국 엄마와 나라는 연결고리로 맺어져 다시 지긋지긋한 집구석으로 들어와야 하기 때문일까,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딸에 대한 부모로서의 걱정이 문득 되살아났기 때문일까.

p. 24



주인공 주윤아에 관해선 어떠한가?

그녀가 남들만큼 정상적이거나, 화목하거나, 아니면 특별히 더 좋은 가정에서 자랐다고 볼 수는 없다.

그녀의 아버지는 죽지 못해 혹은 대외적 시선때문에 이혼하지 않은 상태로 늘 바람 피는 사람이다.

바람 피는 아버지를 둔 딸이 학교 상담실에서의 충격 전까지 지극히도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건 앞선 두 경우와는 다르다.


부유한 환경 속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지극히 받고도 어긋난 길을 택한 아이와 

술 마시고 폭행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나 동생과 단둘이 나와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는 각자가 선택한 삶의 방식대로 살 뿐이다.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를 생각해보라.

어떤 이유에서건 일진 학생들이 한 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은둔자라고 연애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아, 사춘기만의 특권인 것인가.

2, 30대가 솔로예찬과 모쏠, 혼밥과 혼술을 외치고 있는 동안, 10대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사랑을 한다.

학교에만 가면 말을 못할 정도로 심한 충격을 받아 독서실에서 은둔하고 있는 주윤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썸만 타다 애석하게 막을 내린 풋사랑은 상대방의 죽음으로서 사랑으로 열매를 맺는다.



가끔은 용기를 내어 그를 만져 보기도 했다. 혹시 내가 가짜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오빠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슬픈 얼굴을 하고는 체온 없는 몸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죽어서야 비로소 그를 안을 수 있다는 기쁨과 슬픔에 목청껏 울어 보았다.


p. 160



오빠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종일 내 옆에 붙어 있진 않았다. 화장실을 갈 때나 샤워를 할 때, 수업 시간에 졸 때, 내가 오빠를 보고 싶지 않을 땐 사라졌다.


p. 53-54



기쁠 때나 힘들 때 늘 곁에 가만히 서서 미소지어보이고 심지어는 안아주기까지하는 귀신 남자친구라니.

게다가 알아서 소녀가 곤란해 할 상황은 피해 나타나지 않으니 배려와 매너를 모두 갖춘 남자친구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 속에서 후니오빠라는 귀신이 진짜로 보이는 것이든 아니면 심약한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든 

- 지나의 어머니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귀신을 보았다는 데서 이런 의심을 할 수 있다. - 

질풍노도의 시기인 소녀의 마음에 꽃을 가져다준 건 분명하다.









동화적인 결말, 실제라면...






죽지도 않고 멀쩡히 살아있는 자신의 엄마 귀신을 봤다는 주윤아의 말을 듣고도 일진답게 손 봐주기는 커녕, 

오히려 윤아를 자기 무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전과 달리 잘 웃으며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도 줄이는 지나. 

학교 축제에서 윤아에게 타로카드 점을 보며 자신들의 속마음을 보인 개새와 쌍수.



라붐이 사고를 안 친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요즘 지나는 예전에 비하면 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담배를 줄였다. 검은 여자가 지나가 담배를 피울 때마다 많이 슬퍼한다는 얘길 듣고부터였다. 엄마가 전하는 말이라고 하자 애매한 자세만 취하던 지나가 꽤 진지해진 것이다.


p. 174



"너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싫어하지?"

"내가 날 싫어한다고 했어? 내가 너한테 물은 건 그게 아닌데. 뭐야, 이 잘난 척은?"

쌍수가 인상을 쓰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널 싫어하지 않는데 왜 일부러 스스로를 괴롭혀?"

내가 고집스럽게 파고들자 쌍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렇다고 쳐. 그럴 수 있다고 하자."


p. 215



"도대체뭘어떻게해야하지?"

개새가 마치 속사포를 쏘듯 쏟아 낸 말이었다. 이게 정말 개새가 할 만한 말인가 싶어 어리둥절해진 내가 되물었다.

"뭐라고?"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게 내가 궁금한 거야."


p. 222



어떻게 타로 언니(=주윤아) 의 등장 이후 일진 학생들이 이토록 바뀔 수 있는 건지 놀랍기만 하다.

이들은 윤아의 집에서 파자마파티를 하는가하면 라붐을 해체하고 평범한 학생으로 되돌아가려한다.


그런데 만약 현실 속에서의 일진 아이들이라면 어땠을까?

일단 주윤아는 라붐 내에서 지나의 입김 하에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그들 사이에서 가장 아랫 존재가 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다 해줘야 하고, 언제든지 타로 카드를 꺼내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고달픈 존재말이다.

또한 라붐은 윤아 하나로 인해 절대 해체되지 않을 것이며, 

윤아가 제안하는 파자마 파티에 가서는 흡연과 음주 등 자신들이 원하는 건 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말은 어떠했을까?

일진 학생들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으며, 다만 주윤아가 다시 전학가고 싶을 정로도 힘들어질 거라는 거다.

물론 실제 고등학교 윤리 교사인 작가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고자 해피 엔딩 비슷한 결말을 쓴 거라 생각한다.

다만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꿈과 같은 것일 뿐이라는 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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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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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일본




이 에세이는 작가 사노 요코의 젊었을 적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어린이였던 나날들의 내용도 있고, 성인이 된 후의 날들도 그려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들은 그녀가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그녀에게 독일은 삶의 터전이었다.
가난과 그를 이겨내려는 억척스러운 생활 방식, 진짜 부모가 아닐 거라고 의심할 정도로 그녀에게 소리치고 일 시키고 때리던 부모,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일본인치고는 상당히 활달하고 거침없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독일에서 오랬동안 생활하다보니 일본이 그리워.' 와 같은 말보다는 
'독일에서는 이러이러한 점이 인상깊어. 난 이렇게 살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일본에서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해.'
와 같은 말이 훨씬 잘 어울릴 것이다.

독일과 일본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주로 어떤 대상이었다. 그것은 사물일 수도 있으며 자연일 수도 있었다.


긴 여행에 지친 나는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거의 눈을 뜨지 못했으면서도 처음 보는 외국에서 맞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를 한 장의 그림 같은 정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눈 덮인 길 양쪽으로 정원이 있는 집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집들 뒤에는 거뭇거뭇한 숲이 이어졌다. 어느 집 정원에나 눈이 소복하게 쌓인 전나무에 무수한 알전구가 반짝거렸다. 그 아름다운 그림 속을 달리는 택시 앞으로 커다랗고 하얀 여우가 몸만큼이나 훌륭한 꼬리를 끌며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동안 살게 될지도 모를 도시의 아름다운 광경은 나를 몹시 불안하게 했다. 내가 보아온 일본의 풍경은 아름다워도, 초라해도, 내 속에 내렸다가 녹아버리는데, 처음 본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전경은 언제까지나 한 장의 그림으로 남았다.

p. 25-26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동시에 낯설고 내 것이 아닌 겨울날의 풍경은 어릴 적 굶주린 어느날로 옮겨진다. 


나는 눈 산에 엎드려 눈을 입에 넣었다. 눈은 먼지 냄새가 나고 차갑고 썼다.
그래도 눈 산이 설탕 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p. 34


지독하게 대비되는 눈 오는 날의 풍경을 저자는 아무렇지 않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 상황이야 어쨌든지간에, 글로 전해지는 모습은 담담하고 전혀 아프지 않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돌아가려고 멈춰 섰다. 그러다 잡목이 질서 정연하게 일직선으로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걷다가 또 멈춰 서서 보니, 역시 일직선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걷고 또 걸어도 나무는 병정처럼 같은 간격으로 있었다. 됐어, 그만 됐다고, 알겠어,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p. 28


무엇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완벽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저자는 답답함을 느낀다.
이 부분에서 특히 이해되지 않았던 게, 일본도 독일 못지않게 질서가 잘 잡혀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껏 겨우 3번의 일본여행 -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 - 을 가 보았지만, 단 한 번도 산만한 주변환경을 대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저 제3자일뿐인 나는 발견하지 못한 그 속의 차이를 그녀는 뼈저리게 느끼고 멈추고 싶었던가.


















그림



그녀는 동화책 작가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림 실력으로 칭찬받던 오빠의 죽음 이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위해 떠난 유학길에서 만난 모든 풍경은 그녀에게 그림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림같았다.' 라고 서술하기도 하고, 그림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홍역으로 입원했을 때, 나는 갓 돌이 지났을 때여서 이 기억은 허위일지도 모른다. 나는 불이 켜진 병실에서 하얀 페인트를 칠한 창틀이 있는 창문 안쪽에 있었다. 창밖으로 병원 안뜰이 보이고, 안뜰은 납작한 돌바닥이 卍자 모양으로 이어졌다. 기모노를 입은 엄마와 교복을 입은 오빠가 손을 잡고 그 길을 오며 멀리서부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병원 안뜰은 어두운데 내게는 엄마의 기모노 색도 오빠의 회색 교복도 잘 보였다.

p. 53



1살밖에 안 된 시절의 기억이라는 건, 정말로 기억일까, 아니면 기억이 빚어낸 장난일뿐일까.
무엇이든간에 어머니와 오빠가 입은 옷하며 그들이 하는 행동까지 자세히도 그려내고 있다.



이따금 하숙집 할머리를 떠올린다. 내게 보이는 것은 붉은빛의 네모난 창이다. 그 네모난 창 안에 카바레 무희의 속옷 같은 플로어 스탠드의 붉은빛에 물든 채 혼자 점을 보는 할머니가 보인다. 

그것도 한 장의 그림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


미스터 리는 고급스러운 프록코트를 입고 실크 스카프를 매고 모자를 썼다. 


p. 134


그녀에게는 인물을 기억해낼 때 그들의 의복이나 신체적 특성을 하나의 정지된 장면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이는 마치 모든 장면이 멈췄을 때 한 폭의 그림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를 보는 듯하다.

그저 손녀와 사이가 좋지 않은 하숙집 할머니, 허세스러운 한국인이 우리에게 어떤 '정서' 를 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새하얀 와이셔츠 소매 사이로 금색 털이 삐져나온 성공한 젊은 사장은 내 얼굴을 보며 상냥하게, "당신의 아름다운 눈처럼 귀여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라고 했다. 나는 진땀을 빼며 촌스럽게 웃었다. 


p. 37


금색 털, 새하얀 와이셔츠 각각의 심상들이 모여 '성공한 젊은 사장' 을 이룬다.

그는 말끔하게 차려 입었으며 자신의 신체에 자신감 넘치는 남자로서 이성에게 당당하게 말을 걸 줄 안다.



















어린 시절




사노 요코의 어린 시절은 가난, 양부모같은 친부모와 못생긴 외모로 압축될 수 있다.

자신이 남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남들에게 비웃음을 산 후 

그녀는 '눈치' 라는 걸 배우게 된다.


어째서 다들 그렇게 웃었을까.

백설 공주는 눈처럼 하얀 피부에 장미처럼 빨간 입술이었다고 쓰여 있지 않은가. 아무리 내가 숯덩이 같은 피부에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도 그렇지. 입술 정도 백설 공주 흉내 내는 게 그리 우스웠나.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또 한 번 새빨간 꽃잎을 입술에 붙이고 거울을 보았을 때, 그때 다들 왜 그렇게 웃었는지 깨닫고, 나도 웃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사람에게만 어울린다.


p. 14-15


무덤덤하고 모든 일에 초연할 것만 같은 그녀의 성격은 사실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을 안으로 삭이는 지극히도 '일본인다운' 성격이 내재되어 있기에 겉으로 아무렇지 않아 보일 뿐이다.

남들과 똑같이 느끼고 아파할 수 있지만 한 번 더 생각해서 참는 그런 타입이다.



때려도 울지 않는 여자아이, 때리면 어때, 하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울지 않으니 불쌍하지 않다. 약한 사람 괴롭힌 게 아니지 않은가.

지금도 나는 내가 불쌍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p. 98


그녀는 주변에서 보기엔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는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멀리 있는 별을 보고 우주가 아름답다고 느끼며 사는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랑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에게 무시받을 정도의 외모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여느 청소년못지 않았다.
'사귄다' 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아주 어릴 적부터, 서서히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는 사춘기, 
그리고 그 이후까지 우리가 겪는 사랑의 성장통을 똑같이 겪는다.


"나하고 교제해 줄래?"
나는 듣자마자 소리쳤다.
"으악, 싫어, 싫어!"
기요시가 놀라서 멍하니 있는 사이 버스를 타버렸다. 수습이 되지 않는 혼란 속에 자기혐오만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교제'라는 말에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교제' 라는 단어는 내게는 불결하고 징그럽고 용서가 되지 않았다.

p. 49


나도 그녀와 비슷했던 것 같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사귄다는 생각 자체가 우습고 애들 장난처럼 여겨졌다.
그 생각은 대학생때까지 지속되었고, 어느 순간 내 사고의 유리가 깨지고 난 대학원생이 되어서야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창백하고 철봉도 못하는 문학 소년에게 열을 올렸다.
열을 올린다고 해봐야 혼자 일방적인 것이었지만, 어쩌다 교실 입구에서 마주치는 정도가 가슴 터질 것 같은 대사건이었다.
도서관 책을 하나하나 뒤져서 창백하고 촉 처진 눈의 남자아이 이름이 쓰인 대출 카드를 찾았다. 그리고 그 책을 빌리는 것이 나의 소중한 비밀이었다.

p. 101


나는 스치야와는 물론 찹쌀떡과도 얘기 한번 해보지 못하고 졸업했다.

p. 102


중학교 시절의 짝사랑, 첫사랑, 풋사랑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일 거다.
그녀도 마찬가지였고, 때로는 하나의 이미지같은 사랑을 한 적도 있다.
아버지 친구의 아들인 미쓰노부는 피부가 하얗고 잘 생겼으며, 옷이 더러워질까봐 병정놀이를 하지 않았다.
그는 베를린 하숙집에서 알게 된 룸메의 옛 남자친구였으며, 몇 년 뒤 신문에서 나온 극단인들 중 한 명이었다.
사실상 어릴 적 이후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가 그녀의 마음 속 한가운데 자리잡아 계속 떠다니고 있다.

그녀의 에세이는 앞이 없고 끝이 없다. 
주제별로 목차가 정해져 있으며 시간과 공간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물론 그동안 살아온 인생에 대한 토로로 짧은 끝맺음을 했지만, 나 역시 그녀처럼 어디서 끝내야 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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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비가 오면
현현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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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프랑스





프랑스, 파리하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를까?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랑, 낭만, 예술, 그리고 자유이다.

영화 '물랑루즈' 에서 볼 수 있는 예술적인 유희와 사랑, '아멜리에' 에서 볼 수 있는 낭만과 아름다운 몽마르뜨 언덕.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곳, 파리에 가면 어쩐지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비록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나의 인연이 될 그런 누군가일 것만 같다.











물론 프랑스로, 그 중에서도 관광지인 파리, 에펠탑, 몽마르뜨 언덕 등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어느 여행 후기를 보든 '집시들이 소매치기 하니 조심하라', 든가, '나도 소매치기 당할 뻔 했다.', 혹은 '가방 통째로 잃어버림.' 등 

파리의 집시에 대한 무시무시할 정도의 실화들이 많이 있다.

로맨스와 그 한 편에 살아 숨쉬는 집시들,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인 소매치기, 이것들이 모두 한 데 있다.

전혀 상반될 것만 같은 두 가지 사실이 파리를 더욱 묘한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어버린다.


물론 단 일주일 정도 머물 여행객으로서 현금이 두둑한 아시아인인 내가 파리에 있다면 조심하게 될 것이다.

나의 주머니, 나의 지갑, 나의 가방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가도 한 편으로는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낭만을 꿈꾸게 된다.

소설 '다빈치코드' 에서 관광객들이 왜 그리 '피라미드를 본 뜬 입구' 로만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하던 루브르 박물관에서조차도.


작년 11월에는 파리의 음식점, 극장 등을 중심으로 IS에 의한 연쇄 테러가 일어났다.

이는 그저 '낭만적인 휴가지' 로만 알려져 온 파리의 이미지에 본격적인 변화를 준 첫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집시가 실제로 여행해 본 사람들이 겪게 되는 이야기라면, 테러는 가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두려워하게 될 크나큰 이미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파리는, 언젠가는 가 보고 싶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에서처럼 별이 반짝이는 도시이다.
가서 이제는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는 '눈썹 없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꼭 감상하고싶다.

















그림 에세이 




전에도 말했다시피 내가 에세이를 읽는 일은 흔치 않다. 아니 소설만 좋아하는 '독서 편식' 을 한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겠다.

소설은 풍부한 상상력을 사용하여 현실엔 없을 것만 같은 이야기를 그럴 법하게 지어내는 것이지만, 에세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다들 남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도통 흥미없는 이야기들뿐이다.

그런데 삽화가 많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속물인 삽화라기보다 그림이 주인공인 에세이라면 대환영이다.


그리고 내가 읽은 '파리에 비가 오면' 은 그림과 에세이가 함께 있는 그림 에세이이다.

작가 현 현이 그라폴리오에서 연재하던 글과 그림을 엮어 만들어진 도서로서 얼핏 보면 웹툰을 모아둔 도서와 비슷하다.

웹툰 도서와 그 형식은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이 그림 에세이는

어린 시절 이후 그림보다는 글자가 훨씬 많은 책을 읽어오던 내게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 준다.
처음 받아 보자마자 책을 앞에서부터 끝까지 한 번 쫙 펴봤다 덮고는 만족했다.

이 책은... 그림 투성이이다.

글씨가 안 보일 정도로 그림이 차지하는 공간이 훨씬 더 많다.














각각의 책장이 패션 매거진을 능가할 정도로 빳빳하다.
올컬러 북이라서 그저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른다.

물론 그림체라던가 지나치게 감상적인 듯한 그림들이 나의 감성과는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연필이나 샤프보다는 펜이 더 잘 써지는 고급진 질감의 종잇장을 넘기는 건 기분좋은 일이다.


그림 에세이를 읽을 때는 '읽는다' 기 보다는, '보는' 기분이 든다.

막 이 글은 어떻고, 저 글은 어떠하다고 평가하기보다는 그저 그림과 그 흐름 속에 빠져든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219쪽을 다 읽고 책을 덮게 되는데,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요새 한창 유행하는 컬러링 북 대신 좋은 마음 치료제를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 별, 고양이, 뒷모습





이 그림 에세이 속에서 유독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그림들은 비, 별, 고양이, 그리고 여자친구였던 이의 뒷모습이다.

얼핏 생각하면 비 내리는 프랑스 파리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고백했듯이 그는 파리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냥 파리가 어울릴 거 같아서 그런 이름을 붙인 그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림 속 여성은 생생한 색채를 자랑하지만, 동시에 잘 보이지 않는 듯 희미하게 느껴진다.

제대로 정면을 보여준 그림이 단 두 개 정도일까, 나머지는 모두 옆 모습, 뒷 모습, 혹은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이다.

꽃과 나비가 그녀 곁에 늘 함께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이지만, 

이제는 이별 후 다시 볼 수 없는 - 하지만 지나가다 한 번쯤 보고 싶은 - 전 여자친구이다.


이젠

얼굴도 감촉도 잊어 가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향기만 코끝에 조금 남아 있다.


p. 15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생각하고 있지만 추억 속의 그녀일뿐, 더 이상 내 곁에 있는 여자친구는 아니다.



그림이 시작된 후

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대를 생각해요.


p. 83



마치 영화 '구스범스' -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 액션, 드라마이지만 - 에서 

 스타인이 자신이 만들어 낸 이야기 속 주인공이자 동시에 딸이기도 한 한나에 대해 한 말이 떠오르게 하는 구절이다.



"Not a day goes by that I don't think of her."














비를 좋아하는 그녀는 별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존재이다.

작가는 꽤나 감성적이어서 요즘 시대에는 흔히 생각할 수 없는 하나뿐인 사랑을 말한다.


수많은 밤이 흘러

나 회한에 잠긴 노인이 되고

다시 수많은 날이 지나

모든 걸 잊어버린 작은 아이가 된다 해도


내겐 늘 그대뿐

같은 사랑하고 싶어요.


p. 40



그렇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사랑.

'사랑' 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속물적이며 쉽게 사용되는 요새,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 애도 가끔 내 생각을 할까






나도 사랑을 해 보았고, 또 하고 있다.

'사랑' 이라는 단어를 차마 입 밖에 내기 부끄러웠던 고등학생때부터 짝사랑, 풋사랑... 그리고......

헤어진 이들 중 누군가는 몇 년 동안 집요하게 나의 행방을 물었고, 누군가는 깨끗하게 사라졌으며, 

또 누군가에겐 내가 그 사라진 존재가 되었다.


이별 후에는 늘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쓰라리다는 게 뭔지 알 것만 같았다.

그 애와 했던 모든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만 남아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우리가 남긴 것 중 

아름답지 않은 건 찾을 수 없네요


p. 29



이 도시는 참...

떠나기에도

머무르기에도

추억이 너무 많네요


p. 149



한동안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져 나오곤 했다.

어딜 가도 그 애의 흔적만이 가득해서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자꾸만 나를 에워쌌다.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나를 움추리게 만드는 차가운 겨울 냄새가 좋고, 캐롤이 좋으며, 따뜻한 분위기가 좋다.



겨울이다 나의 계절이다

마음껏 그대를 노래할 수 있는

비로소 나의 계절이다


p. 169



미련은 없다한 들 가끔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겐 그 애를 잊게 할 만한 훨씬 좋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집에 데려다 줄게

하루종일 같이 있었지만 데려다 줄게

오늘처럼 눈이 와도 데려다 줄게

좋은 날도 다툰 날도 집에 데려다 줄게

꼭 데려다 줄게


p. 193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화가 나고 아무리 짜증이 나도 결코 나를 혼자 두지 않는 사람이다.

말다툼을 하고 나서도 꼭 내가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야 안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많이 행복하고, 이 책을 읽어도 감정에 북받쳐 울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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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언트 -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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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영어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초등 3학년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경기도교육청에서 만든 두껍고 말도 안 되는 교재도 없었고, 영어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나마 손녀딸은 영어를 알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할머니께서 시킨 재XXX의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학습지가 전부였다.

영어학원도, 영어유치원도, 영어과외도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것에 대한 취향은 타고 나는 것인가 보다.

그도 아니라면 누군가 말했듯이 음악을 관할하는 뇌의 부분과 언어를 관할하는 뇌의 부분이 같았거나.

나는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했고 영어도 또한 좋아했다.

영어 원어민을 만날 기회가 없었으니 그들을 만났을 때 떨거나 두려워 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저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통한 단어 암기, 문법 암기와 독해가 다였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유행했던 성문 종합영어를 사서 보기도 했으나, 한자 투성이에 너무 구식이라 잘 보지 않았다.

대신 관심을 돌린 건 음악과 영화였다.

좋아하는 영화인 '프린세스 다이어리' 는 영어 원서를 다 읽고, 도서를 녹음한 CD본을 모두 들었으며,

 영화 DVD와 사운드트랙을 소장하고 있다.

미드도 좋아해서 '길모어걸즈' , ' That 70's Show', 'The O.C' 등을 보거나 DVD로 구매해서 

우리말 자막으로 보기, 영어 자막으로 보기, 무자막으로 보기를 반복하였다.
그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냥 영어가 좋아서 그렇게 했다.

그 때부터 10년 넘게 계속 들은 프로가 KBS FM 라디오의 새벽 방송 '굿모닝팝스' 이다.

중간에 진행자가 2~3번 교체되었지만 나는 바뀌지 않았다.

중3 겨울방학에는 독학으로 토익 시험을 봤으며, 고등학교 내내 전교 5등 안에 들었다.

고등학생 때는 영어와 더불어 프랑스어를 알게 되었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라는 가수를 좋아하여 스페인어까지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어학과 문학 전반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전공인 영어영문학 이외에 프랑스 문학, 러시아 문학, 독일 문학도 교양으로 배웠다.

고3때부터 우연히 푹 빠지게 된 스페인어에 대한 사랑이 커져서 대학 4년 내내 배웠다.

수업 과목으로도 배웠고, 방학 때는 대학 어학원에서 따로 배웠다.

영어를 배우는 것에서 나아가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다는 걸 알게 된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영어교육을 전공하였다.


2년 반의 대학원 생활이 끝난 지금, 나는 초~고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중이다.

때로는 회화를, 때로는 학교 내신을 위해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원어민과도 여러 해 일했지만, 나의 영어 실력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영어회화모임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회화 학원도 다닌 바 있다.
이런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은 말하기가 아닌 영어로 글쓰기이다.

SAT나 A Level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위해선 필수인데 말이다.





저자의 영어, 언어





나는 내게 설명하려고 들거나 '~해라' 라고 지시하는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 '플루언트' 도 그런 과라서 읽지 않으려다가 영어에 관한 책임을 알고 책장을 폈다.

그가 설명하는 언어학적 사실이나 영문학에서의 비유가 내게는 매우 친근하게 다가왔다.

대학교와 대학원에 걸쳐 배웠던 내용이었고 특별할 게 없는 얘기들이었기 때문이다.



1964년 오드리 햅번이라는 여배우를 일약 요정 반열에 올린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리이디 My Fair Lady' 는 대영제국 시대 영어에 대한 영국인의 자부심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p. 33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 는 학부 시절 영어학개론 첫 수업시간에 영상으로 감상했다.

하지만 나처럼 영어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런 내용이나 영어를 언어학적으로 접근한 방식에 생소하기에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저자는 언어학자나 영어 전공자가 아니면 알지 못할 사실들을 영어 학습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링구아 프랑카로서 영어는 이 시대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언어이다.

다만 영어를 대하거나 배우는 방식이 한참 잘못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저자는 커다란 깨우침을 준다.



하지만 프랑스는 오랫동안 명품과 와인 등의 생산으로 '섹시'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인 자신도 외국에 나가 프랑스인으로 인식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을 알고 있어 자신들의 영어 발음을 고치려 들지 않는다.

(중  략)

한류와 아시아 세기의 도래를 계기로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우리가 흔히 '원어민 발음' 이라고 하는 것을 꼭 배울 필요가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p. 47-48



그 나라 말을 너무 잘하면 외국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들과 같은 국적으로 오인하여 문화 차이에 따른 실수를 관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저자의 언급은 충격적이었다. 

오히려 적당히 자기 나라권의 억양을 갖고 있어야만 외국인에 대한 관용의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내게는 잘 와닿지 않는 이유가, 소위 '표준영어' - 이런 말이 없다고는 하지만 - 발음을 해야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의 영어 발음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식이어도 안 되고, 동남아식이어도 안 되며, '영어권 화자' 에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


저자는 글에서 영어에 대한 언어학적 접근을 하는 한 편, 어떻게 해야 우리가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이미 알고 실행하는 방법도 있었고,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어 실천하고픈 방법도 있었다.



만약 하루에 1시간 정도 영어 공부를 한다고 치면 미국인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블로그에 게재한 글, 신문기사, 영, 미 영화감상에 30분 정도를 투자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므로 '저 사람이 왜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말을 하지?' 라는 의문을 많이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문법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 56



영화나 동영상은 나도 즐겨서 시청하는 매체로서, 

특히나 아시아권 사람들은 visual learner가 많아서 들은 것 보다는 본 것을 더 잘 기억하고 학습할 수 있다는 글을 

교육심리학에서 배운 적이 있다.


내가 처음에 영작을 했던 방식을 소개한다. 나는 영어로 글을 쓸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 영미권 문학가가 쓴 시나 간단한 소설 문단을 읽고 마음에 드는 몇 문장을 골라 '힙합 버전', '텍사스 농민 버전', '신문 기사 버전','학교 리포트 버전' 등으로 바꾸어 써보는 연습을 했다.


p. 266



학창 시절 노래 개사를 종종 하였고 친구들에게 큰 웃음을 준 적이 있다. 삼행시나 오행시 쓰는 것도 어렵지 않게 했다.

저자가 한 방법도 다른 버전의 개사가 아니던가.





우리나라의 영어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이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저자는 고종 때 본격적으로 시행된 영어 교육에 대해서 비판하듯 말하지만 그가 간과하는 점이 있다.

고종 때에는 원어민을 불러 '유창하게' 영어를 말하는 법을 위주로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던 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영어를 일본어로 독해하는 아주 나쁜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수십년간 지속되어 이제는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4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0년을 배우고도 외국인 앞에서 제대로 말 할 수 없는 영어는 

이미 'communication' 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위치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반면 룩셈부르크에서는 일주일 중 영어 수업에 들이는 시간이 꽤나 많고, 그들 스스로도 인정할 정도로 수학에 대한 비중은 낮춘다.

한 편, 몇 년 전 터키에서는 국가원수가 영어와 그 문화권에 빠져 영어를 반드시 배우도록 국가 정책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잘못된 점은 무엇일까?

현재는 초등학교의 회화식 수업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곤 있지만,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

현행 수업 방식 대신, 영어로 된 도서를 읽고 영어로 토론을 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영어를 도구로 이용한 다른 과목의 수업, 즉 immersion 수업도 좋다.

그렇지 않아도 강남 8학군에서는 10년도 더 전에 유행했던 영어책 읽기를 작년인가부터 교육부에서 공문을 보내 시행하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도 본 수업 시간이 아니라 집에서 '원하는 학생만' 스스로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그 독후감을 온라인 어디서 보고 배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문법 외우고, 단어 외우고, 우리말로 해석. 

이 자체가 송두리째 바뀌어야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영어권 화자를 잔뜩 들여왔다가 다 내 보낸 이유 중 하나는 정해진 교과서 때문이다.

나와 같이 일했던 원어민 역시 "틀에 박힌 교과서를 가르치는 앵무새가 된 느낌이다." 라고 자신의 블로그에 쓴 바 있다.

그들을 데려왔으면 그들의 문화권이나 실생활영어를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원어민이 우리나라에 와서 주로 한 건 정해진 책을 읽어서 따라하게 함으로써 소위 '완벽한 발음과 억양' 을 구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체 누가 생각해 낸 방법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영어 학습




국가의 영어 교육 정책이 이만큼이나 잘못되지 않았다면 개인은 힘들여 영어를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이런 '플루언트' 와 같은 도서를 사서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공립교육에서의 영어가 변하지 않는 이상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법은 부모를 잘 만나서 외국에서 산다든가,

 역시 부모를 잘 만나서 원어민과 1:1 로 과외를 받는다든가, 또 부모를 잘 만나서 - 합법이든 불법이든 -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길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내가 그런 혜택받은 - privileged - 계층이 아니라면 단 하나밖에 없다.

죽도록 노력하고 고생해서 어떻게든 영어를 언어로서 정복하는 것이다.

'비정상회담' 에 출연하는 타일러도 자신이 한국어를 잘 하게 된 건 그만큼 고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제2언어가 아니라 그저 외국어일 뿐이다.

방송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영어를 생활 언어로 사용하는 곳은 없다.

영어를 배워도 직접 말 할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좌절하든가 아니면 '플루언트' 라도 읽고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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