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언니
윤이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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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는 아이들, 뒤로 가는 학교





현대로 들어서기 전 근대 사회까지만 해도 모든 속도와 변화가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는 정도였고, 

어느 정도의 혼란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잘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IT로 대변되는 21세기에는 모든 게 너무나 빠르고 또한 그런 것들이 전세계에서 동시에, 그것도 순식간에 일어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알아채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때로는 어찌할 수 없음에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한 혼돈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10대들은 그들의 본성에 가장 반대되는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갇혀 살고 있다.


소설『타로 언니』에서는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생들이 대치점에 서서 얼마나 상반된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줄 모르며, 언제나 자신의 입장을 최우선시한다.



문학 선생님은 학습 목표를 쓰는 몇 안 되는 선생님이고 게다가 학습 목표를 오래 쓰기로 유명했다. 아이들은 그 시간을 이용해서 요리조리 뛰어다니거나 물을 마시고 오거나 먹던 음식을 급하게 삼키면서 휴식을 즐겼다.


p. 78



교사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개개의 인격을 지닌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기보다는,

 위계 질서 속에서 교사보다 권위면에서 아래에 있기에 늘 가르치고 지시하고 교육시켜야한다는 시각으로 보고 있다.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 반에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학생이 있었지. 바로 저기에."

아이들이 일제히 일대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엉겁결에 주먹을 쥐었다. 기가 막혔다. 이 상황에서 내 이름이 거론된다는 게 전혀 즐겁지 않았다. 기분 더러웠다. 


p. 172-173



만약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 학생이 아닌 자기 아이였으면 이런 식의 공개적인 처형을 감행했을까?

한 아이의 비밀을 상담에서 끝내지 못하고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는 국어교사는 또 어떠한가?

이런 교사들이 딱히 성격에 문제가 있다거나 교사 자격이 없다기보다는, 

어떤 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을 학생이 아닌 본인으로 두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인데, 

이런 일은 실제로 학교 내에서 일상다반사로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모인 자리에서 말하기 좋아한다.


"얘들아, 너희도 알잖아. 대의원 회의라고는 해도 선생님들 의견이 중요하지, 우리야 머리수만 채우는 거 몰라서 이래?"


p. 187



학교에서 가장 잘하는 일이 있다면 학생들이 뭔가 색다른 일을 하는 것을 말리는 것이다.

(중  략)

선생님들은 이런 걸 굉장히 좋아한다. 무언가를 교육적으로 만드는 것 말이다.


p. 192



그 정도가 덜하다고는 해도 일반 기업체와 마찬가지로 학교 역시 관료주의라는 틀 안에 있으며,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교사는 교감, 교장의 말을, 교장은 교육청의 말을, 교육청은 교육부의 말을 따라야 한다. 

한 편으로는 '혁신학교', '학생중심교육과정', '학생인권' 을 외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학생 스스로, 혁신적인, 새로운' 이런 단어가 학교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작은 국가와 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아가미를 뻐끔대고 있는 국민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일진이 되는데 언제나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다.





주인공 주윤아가 전학 간 고등학교에는 전교에서 유명한 일진 무리인 '라붐' 이 소위 문제아반에 함께 배정되어 있다.

라붐에서도 '짱' 인 지나는 비닐캡을 두르고 담배를 피워서 머리카락에 냄새가 배지 않게 할 정도로 '일진 생활' 이 습관화된 학생으로,

 그녀가 일진의 세계로 빠지게 되고 그 세계를 드넓게 만드는 데 일조한 데는 가정 배경이라는 이름이 있다.

남들과는 무언가 다른 특유의 분위기와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지나의 외모는 그녀가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는 걸 잘 보여준다.

아랍계 출신의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외국인센터에서 힘들게 혼자 살아가고, 그런 어머니를 지나는 몹시도 그리워한다.


한 편, 말보다는 이빨과 주먹이 먼저 나가는 라붐의 행동파 개새는 어릴 적 당한 성폭행의 트라우마로 몹시 공격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성폭행을 당할 정도로 약하기만 했던 자신을 가릴 방어막으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폭력성을 사용한다.


라붐에서 가장 조용하고 한 편으로는 '일진답지않게' 모범적인 학교 생활을 하는 쌍수는 

사춘기의 호르몬 분비로 지나를 동경하고 그녀를 롤모델로 삼아왔다.


주윤아가 들어가기 전 원조 라붐의 멤버들을 보았을 때 일진이 된 데 있어서 특별한 결핍이 없는 아이는 쌍수뿐이다.

나머지 둘은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일진의 길에 빠지고 만 것처럼 합리화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일진이 된 데 가장 큰 원인이 가정환경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모든 일진이 가정환경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진이 되었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아빠가 화를 내는 진짜 이유를 생각하자 더욱 눈물이 났다. 지금쯤 C컬 속눈썹 연장을 한 여자랑 데이트할 시간인데 그걸 못해서일까, 결국 엄마와 나라는 연결고리로 맺어져 다시 지긋지긋한 집구석으로 들어와야 하기 때문일까,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딸에 대한 부모로서의 걱정이 문득 되살아났기 때문일까.

p. 24



주인공 주윤아에 관해선 어떠한가?

그녀가 남들만큼 정상적이거나, 화목하거나, 아니면 특별히 더 좋은 가정에서 자랐다고 볼 수는 없다.

그녀의 아버지는 죽지 못해 혹은 대외적 시선때문에 이혼하지 않은 상태로 늘 바람 피는 사람이다.

바람 피는 아버지를 둔 딸이 학교 상담실에서의 충격 전까지 지극히도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건 앞선 두 경우와는 다르다.


부유한 환경 속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지극히 받고도 어긋난 길을 택한 아이와 

술 마시고 폭행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나 동생과 단둘이 나와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는 각자가 선택한 삶의 방식대로 살 뿐이다.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를 생각해보라.

어떤 이유에서건 일진 학생들이 한 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은둔자라고 연애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아, 사춘기만의 특권인 것인가.

2, 30대가 솔로예찬과 모쏠, 혼밥과 혼술을 외치고 있는 동안, 10대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사랑을 한다.

학교에만 가면 말을 못할 정도로 심한 충격을 받아 독서실에서 은둔하고 있는 주윤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썸만 타다 애석하게 막을 내린 풋사랑은 상대방의 죽음으로서 사랑으로 열매를 맺는다.



가끔은 용기를 내어 그를 만져 보기도 했다. 혹시 내가 가짜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오빠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슬픈 얼굴을 하고는 체온 없는 몸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죽어서야 비로소 그를 안을 수 있다는 기쁨과 슬픔에 목청껏 울어 보았다.


p. 160



오빠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종일 내 옆에 붙어 있진 않았다. 화장실을 갈 때나 샤워를 할 때, 수업 시간에 졸 때, 내가 오빠를 보고 싶지 않을 땐 사라졌다.


p. 53-54



기쁠 때나 힘들 때 늘 곁에 가만히 서서 미소지어보이고 심지어는 안아주기까지하는 귀신 남자친구라니.

게다가 알아서 소녀가 곤란해 할 상황은 피해 나타나지 않으니 배려와 매너를 모두 갖춘 남자친구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 속에서 후니오빠라는 귀신이 진짜로 보이는 것이든 아니면 심약한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든 

- 지나의 어머니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귀신을 보았다는 데서 이런 의심을 할 수 있다. - 

질풍노도의 시기인 소녀의 마음에 꽃을 가져다준 건 분명하다.









동화적인 결말, 실제라면...






죽지도 않고 멀쩡히 살아있는 자신의 엄마 귀신을 봤다는 주윤아의 말을 듣고도 일진답게 손 봐주기는 커녕, 

오히려 윤아를 자기 무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전과 달리 잘 웃으며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도 줄이는 지나. 

학교 축제에서 윤아에게 타로카드 점을 보며 자신들의 속마음을 보인 개새와 쌍수.



라붐이 사고를 안 친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요즘 지나는 예전에 비하면 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담배를 줄였다. 검은 여자가 지나가 담배를 피울 때마다 많이 슬퍼한다는 얘길 듣고부터였다. 엄마가 전하는 말이라고 하자 애매한 자세만 취하던 지나가 꽤 진지해진 것이다.


p. 174



"너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싫어하지?"

"내가 날 싫어한다고 했어? 내가 너한테 물은 건 그게 아닌데. 뭐야, 이 잘난 척은?"

쌍수가 인상을 쓰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널 싫어하지 않는데 왜 일부러 스스로를 괴롭혀?"

내가 고집스럽게 파고들자 쌍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렇다고 쳐. 그럴 수 있다고 하자."


p. 215



"도대체뭘어떻게해야하지?"

개새가 마치 속사포를 쏘듯 쏟아 낸 말이었다. 이게 정말 개새가 할 만한 말인가 싶어 어리둥절해진 내가 되물었다.

"뭐라고?"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게 내가 궁금한 거야."


p. 222



어떻게 타로 언니(=주윤아) 의 등장 이후 일진 학생들이 이토록 바뀔 수 있는 건지 놀랍기만 하다.

이들은 윤아의 집에서 파자마파티를 하는가하면 라붐을 해체하고 평범한 학생으로 되돌아가려한다.


그런데 만약 현실 속에서의 일진 아이들이라면 어땠을까?

일단 주윤아는 라붐 내에서 지나의 입김 하에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그들 사이에서 가장 아랫 존재가 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다 해줘야 하고, 언제든지 타로 카드를 꺼내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고달픈 존재말이다.

또한 라붐은 윤아 하나로 인해 절대 해체되지 않을 것이며, 

윤아가 제안하는 파자마 파티에 가서는 흡연과 음주 등 자신들이 원하는 건 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말은 어떠했을까?

일진 학생들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으며, 다만 주윤아가 다시 전학가고 싶을 정로도 힘들어질 거라는 거다.

물론 실제 고등학교 윤리 교사인 작가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고자 해피 엔딩 비슷한 결말을 쓴 거라 생각한다.

다만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꿈과 같은 것일 뿐이라는 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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