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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평점 :
정규직 or 비정규직
대학교 시간강사와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대리기사에 이르는 비정규직.
저자의 화려하다면 화려한(?) 이력이다.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가 무엇때문에 이런 '비정규직' 에 계속 몸 담고 있어야 할까?
흔히들 이런 말을 한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도둑놈이 많을 뿐이다."
적극 공감한다.
하다못해 마트에서 귤 한 봉지를 사도 중간에서 돈을 나눠갖는 중개인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아파트에서 주최하는 직거래 장터는 사정이 바뀔까?
이번에는 그 중개인이 아파트 부녀회라는 이름으로 불릴 뿐이다.
우리나라는 소수의 대기업이 부를 독식하는 매우 불균형 사회 구조를 이루고 있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부유층과 하루 하루를 아껴써야 하는 서민층, 그리고 빈곤층이 남게 된다.
그리고 사회 대부분에서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인원을 차지하고 있다.
서양에서 비정규직은 퇴직금을 비롯하여 고용안정성이 없기때문에 그만큼 일반사원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게 된다.
물론 나라들마다 천차만별이긴하지만 정규직, 비정규직의 개념이 모두 우리나라와 같은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이란 정규직보다 더 적은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낮은 임금, 無보험, 無성과급 등을 뜻한다.
그들이 초과근무한다고 해서 법에 제시된 대로 수당을 더 주는 고용주는 찾기 힘들고,
하다못해 명절날 나오는 선물세트도 비정규직은 제외 대상이다.
한마디로 정규직보다 덜 인간 취급하고 덜 대우하며 싼 값으로 더 부려먹고 자르기 쉬운 게 바로 비정규직이다.
저자는 학문의 최정점을 보여주는 대학교라는 곳에 얼마나 비정규직이 많으며, 그 안에 얼마나 모순이 가득한지 지적한다.
얼마 전 함께 밥을 먹던 20대 교직원이 "이 학교에는 20대와 30대 중 아무도 정규직이 없어요. 저도 이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라는 말이, 그대로 대학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그뿐 아니라 학생들의 밥을 퍼주는 이도, 강의동의 환경미화와 경비를 책임지는 이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처럼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으로 대학 행정과 강의의 최전선이 지탱되고 있습니다.
p. 24
몇 년 전에는 모대학에서 교내 환경미화원들의 부당한 처우에 대하여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적이 있다.
그들 모두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인데, 개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 대학에서 배울 게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 사회는 누구를 위한 사회이고 또 누구를 위해 굴러가는 것인가?
시간강사에서 '진짜' 교수로
나의 큰아버지는 대한민국 일류대라고 하는 곳의 교수이다.
그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을 빛낼 100명' 에 뽑혀서 신문 한 켠을 장식한 적도 있으며,
지도교수를 잘 만나서 40대가 되기도 전에 정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석사와 박사학위를 따야 했고, 미국 대학원에서의 유학 비용은 그의 아버지인 나의 할아버지가 부담하였다.
자식의 유학 생활비를 위해 직업군인 생활을 1년 먼저 접고 때 이른 퇴직금을 받은 할아버지.
그렇게 할아버지의 희생으로 큰아버지는 멋지게 유학 생활을 마무리짓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간강사 일을 하면서 제대로 된 집을 구하지 못해 6개월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큰아버지 식구가 함께 살게 되었다.
방 3개 딸린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버지, 큰아머니, 사촌 두 명, 이렇게 6명이 살았다.
그 안에서 의견 차이로 인해 '말 그대로' 밥상을 엎은 일도 있었으며, 결국 집을 구하기도 전에 큰아버지 식구는 나가 버렸다.
얼마 후 나는 아내에게 논문을 쓸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아내는 지친 표정으로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1년이면 되겠다고 했다.
p. 135
결국 서울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사정이 이러저러하니 1년 정도 아이 돌보는 것을 도와달라고 여쭈었다. 어머니는 너희가 맞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p. 136
박사에서 정교수가 되는 과정을 직접 곁에서 보고 겪어 온 터라 저자의 입장이 굉장히 잘 이해된다.
그나마 나의 큰아버지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 시간강사는 몇 년 안 하고 정교수가 될 수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리 아버지 친구분 중 한 분은 8년간의 시간강사 일을 접고 작년에 드디어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 돈도 잘 못 가져다주고, 눈칫밥 먹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순간 - 8년을 한 순간이라고 말하는데는 무리가 있지만, 일단 -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호칭만 '교수님' 이 아닌 진짜 정규직 '교수님' 이 되었으며, 4대 보험과 정년이 보장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하며 수업하고, 방학 때는 해외로 연수를 떠날 수도 있다.
사회의 '하층민' 에서 가장 존경받는 계층 중 하나로 바뀐 것이다.
내부고발자를 죽이는 사회
저자가 시간강사의 실태를 고발하고, 힘든 현실을 알린 글을 쓴 후 그에게 돌아온 건 따뜻한 시선과 위로였다.
그런데 그 따뜻함은 오로지 대학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뿐이었다.
그와 같이 시간강사 일을 하는 동료들은 오히려 그를 나무라며 질타하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것은 동료들이었다. 같은 연구실의 연구자들이, 같은 교양과목을 강의하던 시간강사들이, 왜 자신들을/대학을 모욕했는지를 물었다. 내 앞을 막아선 것은 갑이 아닌 을이었다. 대학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었다.
p. 182
나 또한 마찬가지 현실에 처해 있다.
내가 속한 집단을 고발하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나의 상사를 고발하고 싶은 적은 정말이지 셀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해가 올 까봐 하는 비겁함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왜 우리 집단을, 우리 상사를 욕해서 우리까지 피해를 보게 만들었느냐?" 라고 물으며 나를 욕할 동료들 때문이다.
그른 건 그르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회, 지금 내가 제대로 된 건강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몇 년 전, 서울 양천구의 모 사립학교의 각종 비리를 알렸다가 재단과 학교로부터 뭇매를 맞고 학교를 떠나야했던 교사가 있다.
그는 그 후에도 계속하여 학교와 재단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고발하였으며, 결국 교육의원으로 당선되어 깔끔한 '복수' 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권선징악' 적 결말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학교건 기업이건 정부건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는 '선한 내부고발자' 에게는 즉시 보복을 가한다.
내가 얼마나 잘못했고, 우리 학교가 우리 회사가 우리 당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는 지독한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앞으로의 대한민국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꼰대' , '고인 물' 이라 불리는 이들과 집단을 모두 개선해야 한다.
비정규직인으로서 무시받고 핍박받는다고 조용히 숨어 살지 말고 '밟혀서 꿈틀한 지렁이' 처럼 계속 일어나 대항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나의 학교를, 나의 직장을, 나의 정부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 언론에서 너나 할 거 없이 신나게 보도하는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대통령 퇴진 요구' 또한 그 중 하나이다.
우리는 비정규직이 불행한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웃음 지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런 세상이 앞으로 1년 후에 올 지, 10년 후일지, 아니면 100년 후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