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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잇 스노우
존 그린.로렌 미라클.모린 존슨 지음, 정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크리스마스
내가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은 다름아닌 크리스마스이다.
할로윈 데이도 좋아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정말이지 이 세상에 어떤 '신적인' 산타클로스는 없지만,
북유럽에 크리스마스 마을이 있고 '사람 형상의' 산타클로스가 있닫는 걸 깨달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줄곧 가장 좋아하는 날이었다.
크리스마스 특유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물론 종교적 이유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이겠지만, 이제는 - 책에서도 언급되었듯 - 종교가 다른 유대인들도
하나의 축제로서 즐기는 날이 아니던가.
Santa Tell Me, Santa Baby, Let It Snow를 비롯한 수많은 가수가 부른 수많은 버젼의 캐롤들,
작은 전구들이 반짝이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아래에 있는 선물들, 크리스마스임을 상기시키는 영화들의 재상영,
이 모든게 합쳐져서 '크리스마스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나는 한 달 전부터 설레이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이 되면 감정이 절정에 다다른다.
어느정도인가하면 크리스마스 D-day 어플을 휴대폰에 깔아서 D day가 될 때까지 매일 들여다보는 수준이다.
물론 땅이 좁아서 고층 아파트들이 가득한 우리나라보다는 주택이 많은 서양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훨씬 대단하다.
대한민국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로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나인데,
언젠가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면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책 표지도 마치 컴퓨터 윈도우즈 바탕화면처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한다.
침엽수가 높이 자라난 숲에 내리는 눈과 베이비 핑크 컬러의 바탕, 거기에 껍데기(?) 를 벗겨내면 순록이 뛰어다닌다.
소설의 제목과 표지, 그리고 3가지 이야기 각각의 줄거리까지 모두 크리스마스를 나타내기에 매우 만족한다.
어쩌면 『렛 잇 스노우』는 나를 위한 소설같다.
내게 한 달 정도 먼저 온 크리스마스 선물 같다.
3개의 단편, 혹은 1개의 장편
이 소설은 세 가지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는데, 사실 소설 속 인물들이 사는 곳이 모두 같으며,
한 이야기에서 주변 인물이나 단역으로 나왔던 인물이 다른 이야기에서 또 다시 등장하거나, 아니면 아예 주인공이 되버리곤한다.
그래서 마치 크리스마스 전 날과 당일에 일어난 한 가지 이야기를 읽듯 그 재미와 감동이 이어진다.
만약 아예 다른 장소와 인물을 그린 완전 다른 3가지 이야기였다면 몰입도가 좋지 않았을테지만,
이 이야기 3편을 읽는 내내 나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잠시 장면만 전환되는 듯 계속 푹 빠져 있었다.
영화로 치자면 'Love Actually' 라고 해야 할까?
「주빌레 익스프레스」에서 주인공 주빌레가 폭설로 멈춰버린 기차에서 만났던 잘 생긴 미국 원주민 소년 잽은
마지막 편인「돼지들의 수호신」에서 주인공 여자아이와 서로 좋아하다가 오해가 깊어져 잠시 사이가 틀어진 남자친구이기도 하다.
또한「주빌레 익스프레스」에서 주빌레가 기차에서 벗어나 간 와플하우스, 그리고 그 곳의 직원 던큰과 치어리더 소녀들은
두번째 이야기인「크리스마스의 기적」에서 친한 친구였던 소년, 소녀를 연인으로 만들어주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그러니 이 세 편의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로 만든다고 하는데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다.
소설과는 다르게 영화에서는 빠른 장면의 전환과 장면 사이의 겹침이 가능하기때문에 영화적 기법을 사용하여
훨씬 더 속도감 있고 몰입도 높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 마음에 눈을 내리게 하는 이야기는...
지난 몇 년간 동성친구처럼 지내다가 어느 한 순간 동시에 이성으로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
남자친구 가족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가려다가 감옥에 갇혀버린 부모님때문에 기차 타고 할아버지댁 가는 길에 폭설로 기차가 멈추고,
중간에 내린 마을에서 만난 남자아이와 사귀게 되는 이야기,
전자는 별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고, 후자는 매우 흥미로우나 역시 그뿐이다.
나를 정말로 크리스마스 모드로 진입하게 하는 이야기는 세 편 중 가장 마지막에 해당하면서 제목은 비호감인「돼지들의 수호신」이다.
「돼지들의 수호신」으로 말 할 거 같으면 세 편 중 가장 식상하고 또 누구나에게 있을 수 있는 그런저런 연애사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이유로 굉장히 공감되었고, 마치 내 자신이 남자주인공 젭과 사귀는 기분까지 들었다.
여자주인공은 서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로 남자친구와 틀어지고, 술김과 홧김에 능글거리는 바람둥이와 키스한 후,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친구에게 고백, 그리고 이를 다시 후회하고 비참한 기분에 빠져 있는 중이다.
남자친구라고 불렀던 젭에게는 연락이 없고 세상 모두는 나 빼고 연애하고 있는 듯하다.
모두들 징글벨을 부르며 기뻐하는데 나만 징글징글한 종소리를 듣고 있다니. 꼴좋다.
p. 195
주인공이 하는 모든 행동은 사랑하는 사람과 막 헤어진 이들이 하는 그것과 정확히 같다.
집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며불며하다가 그와의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기고, 온갖 이별 노래를 듣는다.
몸을 굴려서 침대 테이블에 있던 아이팟을 집어 들었다. '우울한 날' 이라는 재생 목록을 골라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 안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구슬픈 노래가 저장되어 있었다. 아이팟의 차가운 플라스틱 몸통에서 '사랑에 빠진 얼간이들' 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자, 펭귄 모양의 아이콘이 양쪽 날개를 천천히 퍼덕거렸다.
다시 메인 메뉴로 돌아가서 '사진첩' 이 나올 때까지 아이팟 화면을 아래로 쭉 내렸다.
p. 198
마치 수년 전 내가 많이 좋아하던 사람과 헤어졌을 때 했던 행동과 비슷하다.
물론 나는 그 때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나의 깊은 절망과 이별의 상처를 알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슬퍼하고, 밤에 잠들면서 울고, 길거리를 걷다가 지나가는 연인을 보며 울음을 삼키는 정도였다.
그런데 둘 사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인한 갈등이 이별의 원인이었다니 이 또한 나와 비슷하다.
우리가 멀어진 이유는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젭이 나를 향한 사랑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p. 205
매일 밤 전화로 잘 자라는 인사를 듣고 싶었는데 젭은 그러기에는 집이 너무 좁아서 불편하다고 했다.
"여자친구랑 달달한 얘기하는 걸 엄마한테 들키고 싶지 않아."
게다가 다른 남자애들은 학교 강당에서 여자 친구의 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고 다니는데, 내가 젭의 손을 잡으면 잠깐 꽉 잡고는 곧바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p. 206
하지만 끝에 가서 다른 남자와 키스한 여자친구를 용서하고 다시금 돌아오는 젭.
과연 현실에서도 이런 결말이 가능할까 의문이긴하지만 어쨌든 해피엔딩이라 행복하다.
영화
이 소설을 영화로 각색할 때 나의 가상 캐스팅은 이렇다.
(이미 감독도, 배우도 다 정해졌겠지만...)
제목 | 주빌레 익스프레스 | 크리스마스의 기적 | 돼지들의 수호신 |
역할 : 배우 | 주빌레 : 다니카 야로쉬 | 토빈 : 저스틴 비버 | 나 : 엘리자베스 올슨 |
스튜어트 : 에즈라 밀러 | 앤지(듀크) : 클로이 모레츠 | 젭 : 테일러 로트너 |
| JP : 이기홍 | 찰리 :로건 레먼 |
책 한 권으로 잠시나마 나를 행복하게 해 준 『렛 잇 스노우』.
내년에는 꼭 영화 『렛 잇 스노우』로 만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