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글리 러브
콜린 후버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이런 소설 장르를 로맨스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나는 남녀간의 소위 말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만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몸과 몸이 섞이는 이야기가 소설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책도 로맨스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인공은 석사 과정을 준비하며 간호사로 일하는 테이트,
그리고 그런 그녀와 육체적으로 끌리는 마일스이다.
테이트는 오빠 집으로 이사 온 직후 앞 집에 살고 있는 마일스에게 첫 눈에 반하는 듯하다.
이건 오바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과한 상상, 망상을 한다.
그의 키가 얼마나 큰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내 방문에 서 있는, 아니 방문 틀을 온몸으로 막고 있다시피 한 그를 보자 정말 키가 크다 싶었다. 만약 지금 팔로 나를 끌어안으면 내 귀가 저 가슴팍에 닿겠구나. 그러면 저 사람 턱이 내 정수리에 편안하게 내려앉을 거고.
나한테 키스라도 한다면 입술이 닿아야 할 테니 난 얼굴을 위로 젖혀야겠네. 하지만 내 허리를 둘러서 나를 끌어당길 테니까 우리 입술은 퍼즐 조각처럼 딱 맞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같은 퍼즐에서 나온 조각은 아닌 게 분명하니 그렇게 잘 맞지는 않겠군.
정말로 어떤 남자를 처음 보자마자 이렇게 구체적으로 성적인 상상을 하는 여자가 있단 말인가?
아니면 테이트는 그저 말이 없는 남성에게 끌리는 타입이라 그런 것인가?
지금껏 내가 사귀어 온 남성들과의 첫 만남을 회상해보면, 늘 설레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설레임. 두근두근함.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나는 확신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기대도 하지 않고, 그건 이성 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내가 맘에 드는 남성이라 할지라도 그도 역시 내게 마음이 있다는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날 원하고 있다는 갖가지 암시를 보내면, 그 때서야 조금씩 내 마음의 빗장을 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해도 이런 저런 상상을 하진 않는다.
어쩌면 나는 성적인 상상을 포함해서 그냥 상상력이 메마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 앞에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이 내게 대하는 정도에 따라 사랑을 느끼거나 그렇지 않거나 한다.
먼저 앞서 나가거나 과도한 장면을 머릿 속에 떠올리는 일은 없다.
이 점에 관해서는 나와 달리 마일스와 테이트가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전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비치지 않는 그는 사실 수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레이철.
너는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 레이철.
나는 그 애에게 문을 열어주고 클레이턴 선생님에게 레이철이 전학 왔다고 말했다. 나는 덧붙여 말하고 싶다. 교실에 있는 다른 남자애들한테, 레이철을 건드리지 말라고.
그 애는 내 거니까.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읽자마자 드는 생각은 '헐.. 소름...'
집착 심한 스토커나 은둔형 외톨이, 변태들이 흔히 할 것만 같은 생각이다.
처음 전학 온 여학생을 보고 자신의 아이의 엄마가 될 거라고 말하는 남학생이라니.
그의 잘 생긴 외모가 아니었다면 분명 더더욱 무서운 발언이었겠지.
다행히도 레이철 역시 마일스에게 마음이 있었고, 그 덕분에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레이철과의 사랑, 레이철과의 동거, 레이철 사이에 낳은 아기, 그리고 그 아기의 죽음.
결국 마일스는 힘들어하는 레이철과 헤어지게 되고, 그 이후로 6년간 사랑이라는 걸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 앞엔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테이트가 서 있다.
겉으로 보기엔 매우 조용하고 이성적이며 일중독인 남자가 하는 말치고는 꽤나 직설적이다.
나는 당신을 갖고 싶어요. 하지만 다른 것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당신을 갖고 싶을 뿐입니다.
테이트는 이미 마일스에게 홀딱 빠져 있었기때문에 둘의 비밀스러운 육체적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친구라면 Friends with benefit 이라고 부르겠지만, 이들은 그저 길게 이어지는 원나잇 관계라 부를 수 있다.
절대 연인들이 할 만한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기로 하고, 서로에 대해 알려고 들지 않으면서 관계를 이어나가지만,
알게 모르게 마일스는 테이트를 사랑하고 있었다.
다만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난 너에게 키스하는 게 좋아, 레이철.
당신에게 키스하는 게 좋아, 테이트.
테이트는 언젠가 끝날 관계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 둘은 즐길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일스를 향해 커져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정말 형편없는 시를 짓고 있었다.
마일스가 웃죠.
다른 사람에게 아니죠.
마일스가 웃는 건
오직 나한테만이죠.
나의 남자친구가 누구에게나 잘 웃어주는 호감형인 것도 좋지만,
평소에는 거의 무표정이다가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만 잘 웃는 사람인 것도 꽤나 좋다.
그리고 사실 후자의 경우가 훨씬 더 마음에 든다.
둘의 관계는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결국 마일스가 전 아내와의 일을 조금씩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난 다음에야 결말로 다다른다.
이사 간 테이트에게 가서 쉴 새없이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마일스는 심지어 결혼을 원한다고 말한다.
이게 마일스의 단점아닌 단점이 아닐까?
한 여자만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끊임없이 사랑하는 건 좋은데, 한 번 꽂히면 무조건 결혼까지 가야한다는 거.
그 점이 상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거라고 생각한다.
나랑 재밌고 행복하게 연애하는 것 만으로는 안 되나.
데이트를 더 즐기고 싶은 이 때, 굳이 결혼해서 배 아파 아이를 낳는 계획까지 짜야 하는가.
'추한 사랑' 은 의외로 해피엔딩이다.
모두가 윈윈하고 행복한 그런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조금 안 어울린다는 느낌도 들고,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나조차 육체적 관계를 탐하던 사람들이 서로를 진정으로 원해서 결혼까지 할 수 있나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