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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어요 - 봄처럼 찾아온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
클레리 아비 지음, 이세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엘자 - 얼음산을 등반하다 사고를 당해 혼수 상태에 빠진 지 20주.
들을 수는 있으나 말 할 수도, 볼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
사람들은 그녀가 여전히 전혀 의식이 없는 줄 알고 있다.
티보 - 신디라는 여자친구와 사귀다 헤어진 상태.
여자아이 둘을 치어 죽인 교통사고의 장본인인 남동생 병문안을 가려다 엘자의 병실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다.
이야기는 엘자와 티보, 서로 모르는 그러나 서로를 알게 되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혼수상태였다가 깨어난 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청각을 다시 얻게 된지 6주가 된 엘자의 생각과, 그녀를 바라보는 티보.
둘은 그렇게 서로에 대해 인지하게 되고 조금씩 사랑을 느끼게 된다.
과연 주변인들의 눈에 둘의 사랑이 정상으로 보일 수나 있을까?
엘자가 의식이 돌아온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마당에 티보의 사랑을 황당한 짝사랑이나 연민쯤으로 치부하진 않을까?
어쩌면 소설이라 로맨스가 되고, 소설이라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일 수 있다.
만약 이게 현실이고, 티보가 나의 친구였다면 나는 결코 쥘리앵처럼 그를 응원해주고, 혼수상태에 관한 서적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쥘리앵은 프랑스 사람이고 나는 한국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이름과 외모, 그리고 사고의 원인만 아는 여자와 단 한 번 말도 섞어보지 않고 무작정 좋아하는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짓 당장 그만 두라고 소리 치거나, 다시는 그 여자의 병실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어쩌면 티보의 마음에 깊게 공감하고 그를 지지한 쥘리앵은 티보 본인보다 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 예쁜 사람, 생일 축하 뽀뽀를 받아야지."
p. 19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과 한 침대에서 잠을 자려 하다니, 뭔가 병적인 낌새를 느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p. 107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뽀뽀를 하는 그.
행여나 이 장면을 우연히 보기라도 한다면,
그는 정신이상자나 가만히 누워있는 여성에게 성적인 호감을 느끼는 변태로 취급받아 쫓겨날 게 뻔하다.
과연 티보가 엘자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가 궁금하다.
엘자가 예뻐서? 신디와 다르게 말이 없고 조용해서? 지금 누군가가 필요한 공허한 때라서?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엘자에 대한 그의 진심을 알려면 엘자가 깨어난 이후의 상황을 가정하면 좋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깨어나고 그 후에도 그가 그녀와 사귈 의향이 있다면 그의 마음은 어느 정도 인정받을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엘자는 청각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 기능까지 되찾으려는 기미를 보인다.
나는 혼수상태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누군가가 coma에 빠져 버리고 혹시 다시 깨어날 수 있다면,
엘자와 같은 단계를 겪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본다.
"꿈을 꾼 게 아니래도요, 의사선생! 분명히 이 환자가 무슨 소리를 냈어요!"
p. 137
맥박이 엄청 빨라지더군요. 다음 순간, 엘자가 몸부림치는 바람에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p. 175
온기. 부드러움. 접촉.
p. 191
간병인 아주머니가 에센셜오일 두 방울을 내 목덜미에 발라줄 때 희미하게 재스민 향도 맡았던 것 같다.
p. 237
듣기만 하던 엘자는 말하고, 몸부림치고, 누군가가 살에 닿는 걸 느끼고, 향기를 맡는다.
물론 이 모든 게 너무나 찰나의 순간이라서 마치 꿈같이 여겨지고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품게 한다.
어쩌면 비정상적으로만 보이던 티보의 사랑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엘자의 설레임이 환희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연명치료를 중단하려는 엘자 어머니의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
소설의 결말은 책 표지처럼 아름답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별처럼 누군가는 곧 다시 빛나게 된다.
책을 덮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눈가에 살짝 무언가 맺힌 걸 발견하게 된다.
기뻐서일까, 의아해서일까, 안도해서일까.
엘자와 티보.
이 둘이 과연 사귀게 될 지, 아니면 서로간의 백일몽으로 끝날지는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뒷 이야기를 독자의 상상에 맡긴 저자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