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공감능력 결여




태어날 때부터 울지 않던 소년 선윤재.
엄마의 걱정 하에 동네 병원에서부터 대학 병원에서까지 찾아가 본 결과
뇌의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남보다 작아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 표현 불능증에 걸린 것이다.
소년은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간지러움 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왜 사람이 웃고 울고 기뻐하고 화내는 지 그 이유를 알 지 못한다.

그렇다고 소년을 소시오패스와 동급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소시오패스가 다른 사람이 가질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면서 해를 가하는 반면, 소년은 무리 속에서 평범하게 살려고 한다.
어머니가 늘상 하는 '정상적' 으로 살라는 말이 습관이 되고 훈련이 되어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내 머릿 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p. 19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머릿 속 어디 한군데가 고장이 났는지 마땅히 '그래야 할 때' 그런 감정을 경험할 수가 없다.

이건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할머니의 죽음에도 울지 않을 수 있고 가슴 아프지 않다면 축복인 것일까.
누군가에게 죽도록 맞아도 아프거나 힘들지 않고 조금 불편할 뿐이라면 축복인 것일까.
영화 '이터널 선샤인' 에서 주인공 조엘이 그랬듯 사랑에 대한 아픈 기억을 지울 필요가 없으니 축복인 것일까.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려워 늘 혼자 있어야 하니 저주인 것일까.
주위 사람들에게 '괴물', '사이코패스' 따위의 소리를 들어야 하니 저주인 것일까.
감정 연습을 따로 해야 하니 저주인 것일까.

나의 생각은 축복이라는 거다.
그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있다고 해서 겪는 모든 것에 대해서 느낄
부정적인 감정이 없으니 이건 그야말로 축복이지 않을까?
사람들이 아무리 내게 손가락질 하고 나를 욕해도 난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으므로 편한 인생이 아닐까?
지금처럼 사소한 일로 상처받고 분노하고 하루를 망칠 필요가 없으니 부러울 따름이다.

 

 

 

 

 

 

 

전혀 다른 두 소년의 만남



우리 주변에 있는 공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윤재.
그리고 그의 삶에 운명처럼 나타난 이름 곤이.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른 성향을 띄고 있다.
윤재가 모든 일에 처연한 자세를 취하는 반면,
어릴 적 실종되어 소년원에 다녀 온 적 있는 곤이는 흔히 말하는 애정결핍 증상을 보이면서
모든 일에 폭력적으로 대꾸하는 경향이 있다.

곤이는 윤재를 타겟 삼아 학교에서 계속하여 괴롭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
결국 자기도 모르는 사이 윤재와 가까워지려고 한다.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겐 곤이가 필요했다.

p. 107


곤이의 등장과 그가 하는 모든 행동, 그리고 언어는 윤재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그저 세상에 태어나 숨만 쉬는 존재였다면, 이제는 세상 속에서 조화롭게 살려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나는 나비가 편안한 곳으로 갔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비가 불편에 처하는 걸 막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p. 134


생물, 혹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시험해보려했던 곤이의 '나비 실험' 이 실패로 돌아간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소년은 나비의 아픔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에 느낄 수 없었지만 나비가 죽은 걸 결코 당연하거나 옳은 것으로 여기진 않는다.

서로 같이 시간을 보내고, 함께 대화를 나누며, 많은 것을 나누는 관계.
안 보이면 궁금하고 만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친구' 임을 깨달은 소년은 곤이를 '친구' 로 인정하고 그 애를 구하기로 한다.
곤이 대신 두드려 맞으면서도 몸이 살짝 아프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줄 알았으나,
이내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비로소 인간으로서 거듭 태어나게 된다.

혹시나 머리에 가해진 엄청난 충격이 물리적으로 그의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일까?
소년이 신체적으로 변화하였든, 아니면 정신적으로 변화하였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친구를 얻고 동시에 감정까지 얻었다는 것이다.


 

 

 

 

 

 

소년에게도 봄은 오는가



마치 자기 혼자만 세상에 존재하는 듯 살아가는 소녀 도라.
"왜 달리냐?" 는 질문에도 숨쉬듯 그냥 달린다고 답하는 소녀.
왕따를 당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친한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늘 누군가와 잘 지내는 듯 하다.

혼자 있을 때도 완전해보이는 그녀에게 서서히 마음이 끌리는 소년이다.
無감정이었던 소년에게 다행인 건 누구나 겪는 사춘기를 똑같이 겪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춘기 덕분에 친구도 얻고 사랑이라는 감정도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환영같은 영상들이 머릿속에 한없이 반복 재생됐다. 출렁이던 나무들, 색색의 이파리들, 그리고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서 있던 도라.

p. 166


소년이 부지불식간에 도라에게 마음이 가듯, 소녀 역시 윤재를 '평범' 한 동시에 '특별' 한 사람으로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의 편도체 크기차가 얼마나 되었든지간에, 중요한 건 그들 사이에 흐르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 소년이 말한 것처럼 과연 뇌가 조종한 것일까, 아니면 마음이 속삭인 것일까.

 

 

 

 

 

 

소년, 다시 태어나다.




소년은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를 도와준 주위 사람들과 그 자신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의 고백을 들려주었고 관찰할 수 없는 자의 인생을 보게 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 겪어 보지 못한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p. 37


물론 그가 뭘 어쩌려는 목적으로 책을 읽은 건 아니다.
어머니가 헌 책방을 운영한 탓에 자연스럽게 손에 들어온 게 책이었기에 읽은 것 뿐이다.
덕분에 그는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누구보다도 많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내게 본격적인 '교육' 을 시작했다. 내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건 그저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임을 넘어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p. 22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p. 146



만약 가족마저 그를 외부인 취급하며 손을 떼고 포기했다면 어찌 되었을 지는 눈에 그리듯 선하다.
그는 자기 자신의 노력, 어머니와 할머니의 사랑, 그리고 친구들로 인해 비로소 사람다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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