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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스트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전세계를 휩쓸고 내 마음 또한 휩쓸어버린 영화가 있으니 다름아닌 [트와일라잇] 시리즈이다.
[트와일라잇]부터 [뉴문], [이클립스]를 도서로도 독파했고 영화관에서도 관람했다.
작가 스테프니 메이어는 티네이지 판타지물, 혹은 칙릿만 쓰는 한 장르에 치중한 작가인 줄 오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후속작으로 낸 신간 [케미스트] 에서 스릴러를 선보이며 나의 편견을 한순간에 종식시켰다.
과학자와 스파이가 나오는 북폴리오의 신간 스릴러 [케미스트] 는 두 권은 족히 될 듯한 분량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스테프니 메이어의 신간 스릴러 [케미스트] 의 히로인은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화학자로서,
흡사 십대 소년을 연상시키는 작은 몸집과는 달리 화학약품을 이용한 심문 기술에서 능가할 자가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인간은 절대 아니며,
오히려 늘 자신의 기술을 활용하여 취조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고 아파하는 작은 인간일 뿐이다.
여기서 서양 블록버스터 - 아마도 [본 시리즈] 를 연상시키는 - 를 떠올리게하는 플롯이 있다.
주인공 줄리아나이자 알렉스는 정부 조직에서 버림 받고 3년째 도망다니는 신세이다.
그녀는 매일 다른 이름과 신분으로 살아야 하며 한 번 묵었던 모텔을 다시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
신분 세탁과 위조한 자동차 번호판은 이제 일상이 되었으며,
잠들기 전 혹시나 모를 기습에 대비해 방독면을 착용하고 부비트랩을 설치했다가 아침에 해제하기를 반복한다.
이런 삶이 지치고 싫증나냐고?
늘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다가 전 상사인 카스턴으로부터 아주 달콤한 제안이 오게 되는데,
이는 그녀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을 구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핵심 배달책으로 보여지는 - 겉으로는 평범한 교사 신분인 - 대니얼 비치가 등장하는데,
그는 뜻밖에도 주인공에게 첫 눈에 반하여 작업을 건다.
"만나서 반가워요, 알렉스. 저, 난 원래 이러지 않거든요. 하지만...... 음, 뭐, 어때요? 내 전화번호를 줄까요? 언젠가 조용한 저녁을 함께 보낼 수도 있잖아요?"
p. 77
미행 대상과의 연애라니, 제거 대상과의 사랑이라니,
누구도 상상 못한 기발한 접근 방식으로 한 편으로는 호기심을 다른 한 편으로는 성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 이유인 즉슨, 명색이 스릴러 소설이기에 이 책에서는 사랑 이야기를 그만 보나 싶었는데,
읽어보면 책의 절반 이상이 그와 그녀의 이야기이다.
화려한 액션과 잘 짜여진 정부조직의 치밀한 음모만 원하는 분들은 이쯤에서 그만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스테프니 메이어는[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이어서
다시금 여성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기 위해서 작정하고 이 소설을 지필한 것 같다.
(스포가 싫은 분들은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고, 줄거리가 궁금한 분들은 계속 읽어보시길...)
네 명의 주인공은 줄리아나이자 알렉스인 화학자이면서 도망자인 그녀, 그녀에게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이는 대니얼 비치,
CIA에게서 버려진 케빈 비치, 그리고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밸이다.
이 넷 사이에서 복잡한 연애의 사각관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트와일라잇]에서 벨라가 제이콥과 에드워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둘 다에게 상처와 피해를 입힌
그런 짜증나는 연애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네 주인공 중에서도 핵심 인물 둘의 사랑이 주된 소재이며, 나머지 둘은 조연 정도로 나오게 된다.
"내가 지금껏 만났던 어떤 여자보다 진실한 여성이 보여요. 당신은 내가 아는 다른 모든 사람을 대단치 않게 보이게 해요.
(중 략)
나는 당신에게 끌리는 것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끌린 적이 없었어요. 난 당신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끌렸어요. 이건...... 중력에 대해 읽는 것과 처음으로 낙하하는 것만큼 달라요."
p. 316
자칫 사탕발림처럼 보일 수 있는 대사로서,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접할 법한 표현들로 가득하다.
대니얼 비치는 이토록 순수하며 자신의 마음에 대해 정직하므로 결국 주인공의 닫힌 틀을 깨고 들어가게 된다.
한 편, 대니얼의 이러한 순진무구함, 혹은 무지가
소설에서 위기 상황을 가져오며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니얼은 차를 몰고 번화가를 달리면서 은행을 지났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그렇게 알아냈을 것이다.
p. 394
"음,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네요. 그 여자는 죽을 때까지 우릴 기억할거에요."
p. 427
대니얼 비치의 답답한 행동에도 이토록 차분하게 반응할 수 있는 주인공의 인내심과 자제력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보통 스릴러 액션 이야기에서 열불나게 하는 군더더기 스타일의 인물은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케미스트]에서는 그게 남성이라는 점만 다르다.
소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제이콥은 늑대인간 부족의 일원이었다.
그와 그의 가족, 친구들은 늑대인간이기도 하면서 미국 원주민들이기도 했다.
그러한 인물이 [케미스트] 에서도 한 명 있는데, 바로 케빈 비치의 안전가옥에서 그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아르니이다.
아르니를 보면 제이콥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과묵하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고 전혀 튀는 법이 없지만 언제나 사건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차가 멈추는 동안 그는 아무 감정 없이 그들을 보았다. 케빈이 그에게 대니얼에 대해 말했더라도 또 다른 손님은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p. 236
한 편, 보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매혹시키게 하는 창녀(?) 밸은
[트와일라잇] 에서 뱀파이어족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생각나게 한다.
밸이 사는 워싱턴 DC의 초호화 아파트는 20명이 살아도 될 정도로 커서
으리으리한 궁전에 사는 [트와일라잇] 속 볼투리 일가를 연상시킨다.
그녀의 집은 부동산업자들이 초호화 아파트라고 묘사할 만한 곳이었다. 아니, 단순한 초호화 아파트를 넘어섰다.
p. 497
밸이 주인공에게 변장이라고 부를 만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트와일라잇] 에서 벨라를 꾸며주는 뱀파이어 앨리스와 꼭 닮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메이크업을 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듯, 벨과 주인공 알렉스, 벨라와 앨리스는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지금 알게 된 건데 각각 이름의 발음마저 비슷하다!)
그 과정에서 서로는 서로에 대해 품었던 작은 오해의 불씨를 끄게 되는 계기를 가진다.
굳이 두 소설 사이에서 연관성을 찾으려 한 건 아니지만 계속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것도 내 평생 가장 섹시한 모습일 거에요. 더 섹시한 모습은 보기가 두렵네요."
"틀림없이 대니얼이 좋아할 거에요."
p. 555
[트와일라잇] 의 주인공 벨라는'쉴드' 라고 불리는 가공할 만한 보호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단순히 보호를 넘어서서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 대한 방어와 그에 더불어 쉴드를 이용한 적에 대한 공격까지 할 수 있다.
[케미스트] 에서 알렉스는 화학약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녀는 마피아를 대상으로 했던 외상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대니얼까지 살려내고만다.
이렇듯 [트와일라잇] 과 [케미스트] 는
읽는 당시에는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읽고 난 후에는 접점이 많은 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