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 ㅣ LL 시리즈
다카도노 마도카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셜록홈즈 시리즈의 애독자이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를 황금가지의 9권 전집으로 구매하여 읽은 바 있다.
영국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된 [셜록] 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영화 [셜록홈즈]도 물론 보았다.
이런 나를 '셜로키언' 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아무튼 중요한 건 도서 [셜록홈즈] 로 인해 추리소설에 입문하게 되었고,
아가사 크리스티, 그리고 더 나아가서 코지 미스터리의 영역에까지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사실 너무 복잡하고 전문적인 용어가 난무하면서 동시에 우울하고 피가 낭자하는 추리소설은 내게 맞지 않다.
요리와 말랑말랑함이 있는 미스터리가 딱인데, 이번에 황금가지 LL시리즈로 출판된 [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이 그러하다.
일본소설 [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 에서는 거의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이 여성이다.
셜록 홈즈에 해당하는 셜리 홈즈부터 시작하여 왓슨 박사,
그리고 셜리 홈즈에게 늘 도움을 청하는 런던 경시청의 레스트레이드 경감에 이르기까지,
하다 못해 홈즈의 가장 큰 적인 모리아티 교수마저도 모두 다 여성이다.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이거 너무 여자만 많아서 이상한데?'
그런데 이쯤에서 스스로의 선입견에 대해 질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작 [셜록홈즈] 시리즈에서 허드슨 부인이나 미모의 여성 의뢰인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이
남성인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고해보면 그건 내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물들어있다고 하기 보다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나 직업적 특성에서 당연히 남자가 많았기 때문에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고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게 더 옳다.
그런 의미에서 보건대, 단순히 [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 의 캐릭터들이 순 여자들뿐이라서 이상하게 여긴 게 아니라,
원작에선 남자들이었던 존재가 여자로 성별이 바뀌어서 낯설게 느껴졌다고 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의식 체계에는 문제가 없으며 남녀에 관한 편견으로 사로잡혀 있지 않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이 추리소설 속 주인공 셜리 홈즈는 원작의 셜록 홈즈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관찰력이 뛰어나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훤칠한 체형을 지녔으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오만하고 무례해보이며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못하고 소위 팩폭을 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비슷하다.
"자네는 군의관으로, 바솔로뮤 병원에서 공부한 적도 있지. 그래서 여기에 왔어. 육군 의료 코스를 마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파견된 지 6년, 오랜만에 런던에 돌아와 오랜 친구와 연락을 취했지. 미캘러 스탠포드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 런던에 가족은 없으나 시골로 돌아갈 생각도 없다. ......틀렸나?"
p. 23
세인트 바솔로뮤에서 인턴쉽을 했고. 여기에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하숙집이 있었다는 뜻이니 대학은 런던. 그 뒤로 육군 의료 코스. 아프가니스탄에 간 건 장학금에 대한 봉사. ......틀렸나?"
"안 틀렸어, 대단해 셜리. 드라마 같아!"
p. 48
"조, 나는 오늘 귀중한 발견을 할 수가 있었어. 자네에게 감사하지."
"엇. 발견이라니 뭔데?"
"평범한 사람의 한계."
p. 90
다만 인공 심장을 달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운명으로, 올림픽 대신 패럴림픽에 참가한다는 설정은 다소 다르다.
못 하는 게 없는 셜록 홈즈의 특기 중 하나인 승마는 [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 에서 직업적 승마 선수로 승화되었다.
원래 여성이었던 허드슨 부인은?
성별을 남성으로 바꿀 수는 없었는지 우스꽝스럽게도 AI로 등장한다.
이는 이미 여성인 허드슨 부인의 성별을 한 번 꼰 것일 수도 있고, 가정용 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일본인 특유의 정서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셜리 홈즈의 인공 심장에서도 볼 수 있듯 그저 시대적 트렌드에 맞춘 결과물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셜록 홈즈가 런던의 거지 소년들을 정보망으로 써서 수사에 효율성을 높인 것과
셜리 홈즈가 허드슨 부인을 통해 도움을 받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허드슨 부인은 수 분 만에 SIS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할 수 있어. 경찰 따윈 별거 아니야."
p. 46
이게 다가 아니다.
소설 속 핵심 사건인 핏빛 우울이라는 주제는 지극히 여성성에 관련되어 있고 연쇄살인의 범인과 대상 역시 여성이다.
정부 관료인 언니는 권력과 돈을 지닌 인물로서 셜리 홈즈에게 소위 대어(大魚) 사건을 가져다주는 장본인으로서 동성애자이다.
마지막으로 범죄의 가장 위에는 악(惡) 중의 악(惡)인 버지니아 모리어티가 있다.
모리어티의 별명은 '거미 여인' 아니고 '거미 여왕' 이다.
너무나도 원작 소설을 좋아하기에 이 소설 자체가 마음 속 깊이 와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설이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고, 그저 큰 기대 없이 가볍게 읽기엔 최적의 추리소설이다.
일상 속 스트레스와 나라 정치 스트레스로 고생 중인 분들에게 머리 식힐 겸 읽을 소설로 추천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