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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울어도 되는 밤
헨 킴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morning please don't come
초등학생 고학년인가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꽤 오랜시간동안 이어진 나의 사춘기.
그 때는 뭐가 그린 슬픈 지, 억울한 지, 서운한 지 마음 속에 꿍꿍 숨겨두었던 아픔이 밤만 되면 스물스물 올라오곤 했다.
기억컨대 친구 문제나 공부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그 날 하룻동안 있었던 일, 혹은 그에 대한 나의 반응 중 분명 석연치않거나 맘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춘기의 어린 소녀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종종 울다가 잠들었다.
창피한 마음이 커서 가족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소리 내지 않고 눈물만 떨구다 잠들었다.
왠지 그러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이 - 아무도 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 가련한 여인처럼 느껴져서 맘에 들었다.
분명 마음은 아픈데 한 켠에서는 후련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호르몬 때문이었을까 내게도 중2병이 있었던 것일까 그런 날들이 며칠간 지속되곤 했다.
그러나 나는 북폴리오 그림에세이 [실컷 울어도 되는 밤] 에서 저자 헨킴이 그러하듯 아침이 오지 않길 바라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였다.
빨리 아침이 와서 나의 우중충한 기분을 떨쳐주었으면 했다.
laid-back time
나 역시도 북폴리오 일러스트 [실컷 울어도 되는 밤] 의 저자처럼 밤이 오길 기다렸다.
무언가 알 수 없이 센치해지는 시간대였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밤에서 새벽에 이르는 시간에 그렇게도 온라인 채팅을 많이 했다.
친구랑 유머 글이나 사진,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사진을 교환하기도 했지만, 주로 한 건 세계인들과의 소통이었다.
나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영타 빨리 쓰기 시합을 하듯 채팅하고, 간혹 음성 채팅을 하기도 했다.
리투아니아의 한 친구와는 무려 2년 넘는 기간동안 사이버 우정 관계를 유지했다.
한동안은 새벽녘에 일부러 베란다로 나가서 달이나 별 따위를 관찰하기도 했다.
별자리 이름도 잘 모르고 무엇이 금성이고 목성인지도 헷갈려하면서도 그렇게 미지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짝사랑했던 반 부회장의 취미가 천체 관찰이기때문에 그럴 것이다.
도심의 조명 공해 속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인공위성인지 별인지 헷갈리는 그것을 볼 때 마다
그 애도 같이 보고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밤은 그렇게 많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waiting for the night
[실컷 울어도 되는 밤] 은 위험한 때이기도 하다.
감성적으로 가장 폭발하는 시간이기때문에 이 때 내가 뭘할지 몰라서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헨킴에게는 그저 피곤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고 지친 몸에게 휴식을 주는 밤일지도 모른다.
내겐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밤으로, 몸 속에 죽어있던 연애 세포가 꿈틀거리는 밤이기도 하다.
휴대전화 연락처 목록을 뒤지다가 연락이 뜸해진 이성친구나 이미 헤어진 전 남자친구, 아니면 썸만 탔던 남자아이의 번호를 찾는다.
전화할 용기는 없지만 문자할 만용은 있어서 자칫 잘못했다간 그 누군가에게 '전송' 버튼을 누르고 만다.
이 때 나를 제어하는 유일한 방법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음악에 취해 온갖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노라면 사사로운 연애 감정 따위는 무시하게 된다.
I need a vacation
not a stupid weekend
한국에 몇 년간 살아본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말하곤 한다.
한국인들은 너무나 일만 한다고, 1년 중 며칠 되지도 않는 휴가만 보고 산다고. 그렇게 살면 하루 하루가 너무 괴롭지 않냐고.
질적으로 풍부한 삶을 살기 위해선 매일이 휴식이어야 한다.
북폴리오 그림에세이 [실컷 울어도 되는 밤] 과 같은 아트테라피를 해도 좋고, 동적인 활동을 해도 좋다.
뭐가 되든 간에 나에게 행복한 여유를 안겨주는 어떤 것을 하면 된다.
다행히 내게는 주말도 있지만 스스로에게 선사하는 주중의 휴가도 있다.
일도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그 무엇도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건 없다.
매일 나를 즐겁게 할 새로운 걸 찾아다니고 그걸 큰 행복으로 여긴다.
가령 일 끝나고 바로 방탈출카페에 간다든가, 영화는 개봉일에 바로 본다든가, 수요일에는 동네 호텔에서 잔다든가,
서핑, 펜싱, 크라브마가, 발레, 피겨스케이팅 등의 일일 클래스를 듣는 것 등이 있다.
물론 긴 휴가도 필요하기에 1년에 한 두 번 정도는 해외로 떠난다.
그 외의 시간엔 국내를 탐방하러 돌아다닌다.
girls just wanna have fun
가수 IU는 [팔레트] 뮤직비디오에서 계속하여 말한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이라고.
나는 이걸 좋아하고 저걸 싫어하는데 이 모습도 나고 저 모습도 나이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그녀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그 모든 걸 합치면 IU가 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준법정신 투철하고 불의를 못 보는 정의의 투사도 나이고, 꼼꼼하게 모든 걸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도 나이며,
클럽에서 춤추고 비 맞으며 달리는 것도 나이다.
나도 모르는 나인데 누군가 나를 판단하려는 건 정말 억지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니 Don't judge me. 'Cause I don't judge you, either. I got issues, 'n' I know you have 'em, too.
한 번 뿐인 인생,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살고 싶을 뿐이다.
do I love you or
do I just love me in love
헨킴의 감성적이면서도 살짝 잔혹(?) 할 수 있는 그림에세이 [실컷 울어도 되는 밤] 은
나에서 시작하여 우리로 흘러가고 다시 나로 마무리한다.
제대로 아트테라피 받고 싶다면 ~2017. 10/1 대림미술관 구슬모아당구장에서 진행 중인
헨 킴의 전시 [미지에서의 여름] 을 보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