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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마술사
데이비드 피셔 지음, 전행선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제2차세계대전 중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의 소설화.
마술사를 중심으로 한 다소 특이한 성격과 직업군을 가진 이들이 모인 마술단이 전쟁에 기여한 전쟁영웅 이야기.
데이비드 피셔의 소설 『전쟁마술사』 는 2018년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으로 영화화 될 계획으로,
이 모든 플롯과 영화화 될 일정까지 영화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 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전쟁마술사』 에서 마술사 재스퍼마스켈린과 그를 돕는 마술단 일원이 과학, 건축, 마술 등 다양한 장르의 기술을 이용하여
각종 위장술을 쓰고 이로 인해 곳곳의 전투에서 영국의 승리를 이끌거나 돕게 된다.
영화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 에서는 미술 역사학자 프랭크 스톡스(모티프 : 조지 스타우트) 가
히틀러에 의한 예술품의 약탈 및 파괴, 즉 반달리즘에 맞서 명작과 문화유산을 보호하려 노력한다.
데이비드 피셔의 소설 속에선 육군에서 가장 개성 강한 군인들이 재스퍼마스켈린의 부대에 자원하게 된다.
대다수는 당시 배정받은 부대나 직위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로,
저돌적인 성향의 군인, 만화책 삽화 작가, 목수, 유화 전문 화가 등이 있다.
모뉴먼츠 맨은 13개국 350명의 남녀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다른데, 건축가, 조각가, 극단장, 큐레이터 출신의 이들은,
전투 병력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가 포화와 함께 사라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전투복을 입고 총을 들게 된다.
모뉴먼츠 맨의 창설과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끈 프랭크 스톡스는
나치 독일이 약탈하고 파괴한 유럽의 미술품을 보호하기위해 MFAA를 시작하였다.
반면, 마술사 재스퍼마스켈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마스켈린 가문의 자손으로서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뛰어난 마술사였고,
그 자신도 마술사로서 뛰어난 능력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한 인생을 살아온 듯 보인다.
유럽 전역에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음에도 그는 인생 대부분을 자신이 누군가의 연극 속 배역인 듯한 기분으로 살았다.
(중 략)
이제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드리워놓은 가문의 역사라는 그림자 밖으로 마침내 첫발을 내디딜 작정이었다.
p. 19
마술사 가문의 3대째 이어지는 마술사.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손자, 어떤 가문의 마술사, 이 정도 수식어로는 재스퍼마스켈린을 만족시킬 수 없었나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오롯이 표현하고 인정받길 원했으며, 제2차세계대전이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셈이다.
모뉴먼츠 맨이든 소위 '마술단' 이든 이들은 처음부터 제2차세계대전 중 환영받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자고로 군인이라면 총알받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전쟁터에 나가 진짜 총을 들고 떨어지는 탄환 속에서 싸워야 맞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전장 속에서,
적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거나 적을 무찌르는 것 이외의 예술품 보호 혹은 위장술이라는 임무는 하찮게 여겨지곤 했다.
어떠한 군사훈련도 받지 못한 채 문화유산 수호 작전을 펼치던 모뉴먼츠 맨은 창설 초기엔 아군인 연합군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했다.
독일군의 스파이로 의심받는 일까지 생기며 연합군 내에서 따돌림 당했지만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였고,
전쟁 후에는 전쟁영웅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재스퍼 마스켈린은 유명한 마술사라는 사실이 오히려 독이 되어 군입대부터 가시밭길이었다.
힘들게 부대원을 모아 그들을 훈련시키고 기회를 기다리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첫번째 임무는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위장 페인트 안료 만들기였다.
후에 알렉산드리아 항구 위장, 가짜 병사, 수에즈 운하 위장, 유조 탱크 보호, 모조 잠수함 등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점차 이름이 알려지고 널리 인정받게 되었으며,
재스퍼 마스켈린은 각종 임무에서 실용적으로 사용되는 물건을 만들거나 강의를 하는 등
자신이 마술 무대 이외의 '실제 현장' 에서도 쓸모있다는 걸 입증해간다.
재스퍼 마스켈린의 탈출과 도주에 관한 강의는 중동 전역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동아시아 지역에까지 유명해졌고, 수많은 병사가 그를 보러 몰려들었다.
p. 271
마스켈린이 MI9을 위해 발명한 가장 실용적인 장치는 톱날 간격이 4.75밀리미터나 되는 공구강(절삭 공구 제작에 사용하는 경도가 높은 탄소강_옮긴이) 톱날이었다.
(중 략)
영국 육군, 항공병 또는 비밀요원들이 적과 접촉해서도 그 장비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p. 273-274
그러나 과학을 이용한 '속임수' 를 미신적인 마술로 신격화한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병을 치료해 줄 사람으로
재스퍼마스켈린에게 의지했고, 이는 그를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국군 소속의 마법사 하나가 절망적인 병과 끔찍한 기형을 치료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일강 유역 전체에 퍼져 있었다. 마법의 계곡과 공연 무대에서 행해진 기적에 관한 이야기는 소문에서 전설로 쉽게 넘어가버렸다. 매일 아침 이집트 사람들은 마법의 계곡 안에 사는 마법사의 손길을 기대하면서 계곡 정문에 모여들었다.
p. 267
이 그럴듯한 소풍, 캔버스 탱크, 마분지 대포, 모든 게 아주 인상적인 헛짓거리라는 거, 안 그래?
p. 333
마스켈린은 마술 기법이 전쟁에 적용될 수 있음을 입증하였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총검이 아닌 마술 놀이나 했던 마술사로 역사에 남을 거라는 생각에 절망감에 빠지고 만다.
실의에 빠져 있는 건 재스퍼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마술단 소속으로 여러 임무에 참여한 동료들조차 때로는 '진짜' 전투를 하기 원하였으며,
가짜 탱크나 가짜 전함, 또는 가짜 병사나 만들고있는 자신들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무수히 많은 여성들을 만났지만 끔찍한 허전함을 느끼는 힐,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정갈한 제복과 경례에 신경 쓰는 잭 풀러,
음울한 성격의 화가 타운센드는 각자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이 '낙오자' 부대에서 나름의 보람도 느끼지만
순간 순간 찾아오는 무력감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베네딕트컴버배치 주연으로 영화화 될 이 소설은 마술사와 마술단의 업적, 그들 개개인의 이야기 이외에
히틀러 개인에 대한 내용도 빼놓지 않는다.
그저 세계사 교과서 속의 한 부분으로서 제2차세계대전을 배운 사람이라면 히틀러를 전쟁 광이나 권력 광 정도로만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히틀러는 예술을 사랑한 사람이었으며, - 물론 개인 취향에 있어서 호불호가 심한 게 문제이지만 -
신비주의를 믿는 독일인이기도 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유년시절 자유로운 생활과 권력 상승을 위해 화가가 되고자했지만 실패하고,
후에 아리아인의 인체적 우월성과 높은 정신성을 홍보하기 위해 신고전주의 화풍을 선호하여 예술품 구입에 엄청난 돈을 들였다.
아돌프 히틀러는 국가 사회주의 운동을 창설할 때 독일 국민이 초자연적 현상을 맹신한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나치당의 상징인 卍자는 많은 문명에서 행운의 부적이나 다산의 상징 등 여러 의미로 이용되어왔다. 빨간색, 흰색,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당을 상징하는 색깔은 오컬트를 기반으로 하는 마니교 성직자의 제복 색이었다. 당의 엘리트 군인들이 착용했던 나치 친위대의 문장에 들어가는 'SS'는 신화 속 룬문자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나치 강제수용소 장교들은 악마의 두개골이 대퇴골 두 개를 깔고 있는 휘장을 착용했다.
p. 108
국가원수가 특정 종교를 믿거나 이용하는 건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승만 이후로 지금껏 오랜 기간동안 개신교와 기득권층, 그리고 국가원수는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후에 각 교회의 목사들로부터 안수기도를 받은 것도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진짜 교회에 가느냐 가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개신교와 서로 이해관계를 유지하며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로 대통령이 된 자는 거대 집단인 개신교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집권 내내 각종 핍박을 받는다.
비단 개신교뿐만 아니라 독일의 신비주의처럼 우리나라의 무속 신앙에서 유래한 종교를 믿었던 국가원수도 있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 때 무속 신앙의 상징인 다섯가지 색의 복주머니를 버젓이 선보였으며, 그 외에도 많은 일련의 사건들이 있다.
개인이 어떤 종교를 믿건 믿지 않고는 순전히 개인의 자유이며 이를 강제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종교를 권력의 수단이나 발판으로 삼거나, 국민을 억압할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최근의 IS 집단의 테러만 제외한다면, 유럽은 큰 전쟁 없이 무려 50여년간 평화로운 시대를 유지해왔다.
이는 인류의 역사상으로 봐도 유래없이 긴 기간으로서, 과거 선조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게 틀림없다.
그들 중 하나가 전쟁마술사와 마술단이 아닐까싶다.
현재에 감사하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기 위하여 과거의 역사를 책을 통해 다시금 만난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