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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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면 기본적으로 배우게 되는 두 가지가 있다.

다름 아닌 카톨릭과 영국 및 미국의 역사이다.

영어의 기원이 된 앵글로 색슨족,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땅에서 번화했던 종교인 카톨릭과 영국 및 미국의 역사는 

영미문학에 근원이 되며 깊게 녹아있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 역사 부분으로 한 번 가 볼까.

미국은 청교도인, 혹은 지금 우리가 소위 미국인이라고 스스럼없이 일컫는 백인들의 땅이 아니었다.

콜럼버스가 인디언이라고 잘못 부른 네이티브 어메리칸 (미국 원주민)이 땅의 주인이었지만, 

유럽에서 온 자들은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듯 하며 추수감사절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들도 모르는 전염병을 전파하기도 하며 결국에는 동부를 중심으로 땅을 '정복' 하고 원주민을 몰아냈고,

나중에는 멕시코 땅까지 흡수하여 로스앤젤레스나 텍사스와 같은 주로 점차 면적을 넓혀 나갔다.

이후로도 다양한 나라들로부터의 이민 역사를 지닌 곳, 그 곳이 바로 미국이다.

이러한 미국은 한 때 여러 문화가 하나로 녹아든 'Melting Pot' 으로 불렸다가 

몇 년 전부터는 그 개념을 폐기하고 각각의 문화를 지켜가는 'Salad Bowl' 이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런 '이민자의 나라' 인 미국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름아닌 미국 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에서 불법체류자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리하여 미국의 문화를 뼛속깊이 알고 있는 이들을 보호하려 자진 신고하도록 하였지만,

트럼프는 이를 역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 자신조차 이민자 가족 출신인데도 말이다.

단지 백인이라는 피부색 하나로 인간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일은 이미 미국의 역사 속에서 한 차례 일어난 바 있고, 

지금은 단지 역사가 반복되는 걸 보고 있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에서는 현 상황과 사상적인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흑인 노예의 실상을 면밀히 드러낸다.

주인공인 흑인 노예 코라를 중심으로, 코라와 그녀 주변의 노예들, 혹은 백인들 개개인의 사정을 챕터별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스티븐스는 매일 소름 끼치는 모순에 직면했다. 그의 직업은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죽은

이들이 늘어나기를 비밀스럽게 바라고 있었다.


p. 157



흑인 노예들의 피임 수술을 권장하는 스티븐스는 외과의사로서 늘 시체가 부족하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고, 

노예들에게 혈액병 약이라고 속이면서 설탕물을 주어 그들이 죽어나가길 바란다.



소녀는 원시의 강처럼 휘어져 침상에 누워 있었다. 에설은 소녀의 불결함을 물로 씻어내 깨끗하게 했다. 에설은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소녀의 이마와 목에, 두 종류의 감정이 섞인 입맞춘을 했다. 에설은 소녀에게 거룩한 말씀을 들려주었다. 

마침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야만인이었다.


p. 222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코라를 집에 숨겨 준 부부 중 아내인 에설은 노예해방을 주장하거나 노예를 돕는 백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렸을 적 아버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해갔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에서는 한 사람을 지칭하는 호칭 또는 이름이 하나가 아니다.

때론 전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던 두 인물이 동일 인물로 밝혀지며 전체적인 퍼즐 조각이 맞춰지기도 한다.



코라의 할머니는 남편을 세 번 들였다.


p. 15

대개 아자리가 선택권을 가졌다. 고를 사람이 없을 때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p. 15



글을 읽는 초반에서부터 코라의 할머니가 어린 아자리를 돕는 영국발 미국행 선박의 또다른 노예 중 하나인 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코라의 할머니가 아자리 그녀 자신이었다.



베시는 자유인 신분으로 인도를 걸었다. 누구도 그녀를 쫓아오거나 학대하지 않았다.


p. 103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부유한 가정의 노예 생활을 제법 만족스럽게 해 나갔던 베시는 도망자인 코라의 또다른 위장신분이었다.

베시일 때 그녀는 더 이상 우발적으로 소년을 죽인 살인자가 아니며, 조지아주에서 지옥같은 생활을 하는 소녀가 아니었다.

호화로운 샵이 늘어선 거리를 백인들에 섞여 즐겁게 걷는 안정된 삶을 사는 새로운 소녀였다.


이러한 시점의 글쓰기 방식은 등장인물을 늘 같은 이름으로만 칭하는 대개의 소설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기에 놀랍고 낯설다.

조지아주에서 시작하여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나중엔 북부까지, 이렇게 지리적 흐름에 따르지만, 

동시에 시간적 흐름을 무시하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거나 인물을 부르는 서로 다른 호칭은 

소설 자체를 그 옛날 검소한 청교도인이 패치워크를 통해 만들었던 퀼트 이불로 만들어준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진가를 알 수 없는 개별 조각들이 모여 멋진 전체를 이루게 된다.

코라의 주변 인물들은 왔다 간다.

그녀는 살아남아 역장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을 타고 다음 주로 간다.

붙잡힌 적도 있었지만 그녀를 도와주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그녀는 몇 달에 거쳐 느리지만 꾸준히 자유의 땅인 북부를 향해 나아간다.


지금의 미국은 어떠한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있어서 미국은 기회의 땅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피부색이 어두운 그들은 운동선수나 랩퍼와 같은 연예인으로서 가장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TV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가 그렇게나 추앙받는 이유이다.

여자이자 흑인인 그녀는 미국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왔다.


이 순간에도 전세계에서 수만, 수억의 코라가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지하철도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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