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투 더 워터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요즘같이 추운 겨울날 가장 읽기 좋은 건 미스터리 소설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어서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스릴러소설 [걸 온 더 트레인] 의 저자 폴라 호킨스가 

후속작인 [인투 더 워터] 를 출간하였다.

북폴리오에서 나온 스릴러소설 [인투 더 워터] 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드라우닝 풀' 이라는 익사의 웅덩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폴라 호킨스의 전작 [걸 온 더 트레인] 에서 사건을 관찰하는 장소가 기차라면, 

후속작 [인투 더 워터] 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 물이다. 

두 스릴러소설에서 흐름을 이끌어가는 성별은 다름아닌 여성이다.

물론 주변에 중요 등장인물로 남성들이 등장하지만, 

사건의 피해자이고 조사 과정에서 휘말리면서 결국 해결까지 하는 사람은 여성이다.

그들은 속 시원하게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 하나 풀어헤쳐가는 이들이 아니다.

계속해서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받고 위기의 상황에 처하다가

 어느새 사건의 끄트머리에 있는 것이다.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답답하지만 

애초에 외모적으로 부족하고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여성 나레이터가 등장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어머니 로런은 현재 경찰관인 아들 션이 아주 어릴 적 드라우닝풀로 떨어져 죽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케이티라는 이름의 총명하면서도 예쁘고 부족할 것 없는 여학생이 같은 익사의 웅덩이에서 죽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다른 여성인 넬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들이 죽은 현대보다 아주 오래 전에 이 곳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죽임을 '당했다.'

징글징글한 이 여성 피해자들은 자살일 수도 타살일 수도 있다.

설사 자살이라 할 지라도 그 이유가 석연치 않다.

대체 드라우닝풀의 무엇이 그녀들을 그리로 이끄는 것일까.


마을 사람들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마녀들의 후손이라 믿는 니키,

드라우닝풀의 전설과 역사를 파헤치면서 살짝 이상하고 미쳐있으며 유부남과의 불륜을 서슴치 않는 넬, 

어릴 적 언니 넬에게 상처 받은 이후로 쭉 원망하며 살고 있는 줄스,

자신의 딸이 죽은 이후 넬을 미워하는데 온 힘을 쏟다가 결국 결혼 생활에 균열이 생긴 루이즈,

말다툼 이후로 사이가 소원해진 리나와 케이티.

이들은 서로 얽힌 복잡한 관계로 인해 미워하기도 하고 오해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한 마을에 사는 이웃이지만 서로 못 믿고 의심하는 사이가 되고 만다.









루이즈는 속이 텅 빈 괴물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를 위로해 줄 마음은 생기지 않고 이런 생각만 들었다. '왜 네가 아니었어? 물속으로 들어간 게 왜 네가 아니었냐고. 리나, 왜 네가 아니었어? 왜 우리 케이티야? 착하고 순하고 너그럽고 부지런하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아이였는데. 모든 면에서 너보다 나았는데. 거기 들어갔어야 할 사람은 케이티가 아니야. 너였어야 했어.'


p. 54








한 편, 남성들은 거칠거나 아니면 겉으로 들어난 모습과 속이 정반대이다.

강인한 모습으로 며느리를 믿고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걸로 보이는 패트릭, 

그런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를 여읜 슬픔을 뒤로 하고 열심히 건실한 경찰관으로 사는 듯한 션, 

화려한 칭찬으로 가득 찬 평점을 받고 교단에 서게 된 마크,

넬과 사귀는 와중에도 다른 여성들과 만나는 걸 전혀 꺼려하지 않는 폭력적인 남자 로비.

이들은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제공자가 되기도 하고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미스터리 소설 [인투더워터] 에서 유일하게 겉과 속이 다르거나 의뭉스럽지 않은 남성은 케이티의 남동생 조시뿐이다.

그 아이는 아직 어려서 거짓말 하는 법을 모르고 사람들이 상처받을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조시를 제외한 모든 성인 남성은 스릴러소설 [인투 더 워터] 에서 결코 긍정적인 시선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고통 받고 손가락질 받는 건 여성 등장인물들이고, 남성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비록 작은 마을이지만, 어쩌면 우리 인간 사회를 축소화 한 건 아닐까?









"쟤는 분명 입양됐을 거야. 저 뚱녀가 넬 애벗의 친동생일 리 없잖아."

아이들은 웃었고, 나는 위로받고 싶어 언니를 봤지만 내 눈에 비친 건 수치심뿐이었다.


p, 96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살인사건과 자살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마을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

소설을 읽는 동안 떠올린 건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도그빌] 이었다.

상황들이 정말 예쁘거나 깨끗하지 않고 흐리멍텅하다.

만약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도그빌] 처럼 연극 세트장에서 찍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극한견주 1 - 사모예드 솜이와 함께하는 극한 인생!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드.. 드디어... 반려견 웹툰!

요 몇 달 사이 맹견의 사람 공격, 입마개 착용 논란, 죄 없는 개와 몰상식한 주인 등 다양한 이슈들이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

나의 생각은 EBS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와 일맥상통한다.

고양이와 달리 개는 인간과 상호작용하면서 그 오랜 세월을 보내온 결과 지능이 높아졌다고 한다.

개는 가르치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재이다.

다만 반려견과 함께 살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귀여운 사모예드 솜이의 캐릭터가 포스트잇 선물로 변신한 웹툰 개그만화 극한견주 1.

마일로의 웹툰 '여탕보고서' 는 본 적 있지만 '극한 견주' 는 본 적이 없기에 내겐 새로운 만화책이다.

평소 강아지를 귀여워하고 사랑하지만 털 빠진다고 또 케어해줘야 한다고 정작 집에서는 길러 본 적이 없다.

내 유년시절을 떠올리자면 남생이와 금붕어가 전부이다.

네 발 달린 동물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강아지 키우는 집에 놀러가면 그렇게 신기했다.


길거리 지나가다가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한동안 몰래 지켜본다. (대놓고 뚫어져라 보면 공격하는 걸로 오인할 수 있기에.)

식당이나 카센터 앞을 지나가면 밖에 두고 키우는 개 없나 하고 개집 유무를 꼭 확인한다.

옛날에는 카센터마다 개가 한 마리씩 있었는데 이젠 그렇지가 않다.

지방에 여행가면 - 특히 시골일 경우 - 사람 무서워하지 않는 동네 개들과 마주쳐서 놀고 사진 찍는 게 낙이다.


그런 내게 북폴리오의 개그만화 극한견주 1은 큰 선물이다.

게다가 솜이가 좀 귀엽게 생겼어야 말이지.






저자에게는 다소 미안할 말이지만, 솜이와 함께 사는 주인공 인간을 보고 한동안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나온 '언니' 라는 말을 듣고는 여성 저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긴 '여탕 보고서' 는 여자만 쓸 수 있겠지..)

여하튼 웹툰 극한견주의 저자이자 등장인물인 주인은 털 많이 빠지는 솜이를 몹시도 사랑하고 귀여워한다.

내가 집에 가자마자 토끼인형 헤니를 품에 끌어안고 있듯이 솜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솜이는 귀엽다.

우선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발랄함이 귀엽고, 하얗고 부숭부숭한 털뭉치라서 귀엽다.

평소엔 명령어에 따라 행동하지 않다가도 간식만 들어가면 열심히 행동으로 옮긴다.

저자가 잠깐 나갔다 들어오기라도하면 마치 몇 년은 못 본 아프간 파병 주인을 반기듯 온 몸으로 격렬하게 반긴다.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으며, 사람에게 받은 사랑을 나눠주는 반려견이다.


솜이는 산책을 좋아한다.

대형견의 넘치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사람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산책 나가서 만난 개들을 반기면서도 자신에게 짖어대는 소형견들을 무서워한다.

이는 나도 자주 본 풍경으로, 흔히 공원에 가면 큰 강아지는 고개를 갸웃하며 가만히 서 있고, 

소형견들은 그런 대형견에게 허세라도 부리려는 듯 사납게 짖어댄다.








애교많은 사모예드 솜이는 의외로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

사람이 만지면 휙~ 피한 다음 딴 데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도 처음 보는 보통의 강아지들에게 써먹으면 좋을 듯한 인간을 위한 tip이 나와 있다.

처음 보는 강아지를 만지고싶다면 앉아서 눈높이를 맞추고 손을 내밀어 강아지가 직접 냄새 맡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흔히 하는 머리 터치 말고 턱을 만져주면 대개는 좋아한단다.

이거야말로 꿀 tip!


한 때 애견카페에 빠져서 수도권 애견카페들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상주하는 강아지들은 이미 사회를 알아버린 건지(?) 손에 간식이 담겨있지 않은 사람 주위에는 가까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시골 동네 개들을 좋아한다.

막 코에 흙 묻히고 사람 오면 신나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꼬리 흔드는 그런 강아지들이 좋다.

솜이를 직접 만나면 내게 데면데면하게 굴겠지만 그래도 하얀 털뭉치와 마주치면 기분이 좋을 거 같다.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를 사랑하는 분들, 부드러운 그림체의 웹툰 좋아하는 분들, 

복잡하고 깊은 내용 싫어하고 가볍게 머리 식힐 만한 개그만화 찾는 분들에게 북폴리오의 신작 극한견주 1을 추천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2016년 카네기 메달 수상작
사라 크로산 지음, 정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여기,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소설이 하나 있다.

사라크로산의 소설원은 작은 크기의 책자부터 행과 연이 재미나게 구분된 글의 형태까지 자유시형태를 띄고 있다.

내가 여지컷 자유시형태의 소설을 못 봐서 그런지 몰라도 감동소설 원은 신기하고 새롭다.

소설인데 시같다. 

까만 글자들을 하나의 뭉텅이이자 그림으로 본다면 그저 시를 보고 있는 듯하다.

한글로 번역된 내용과 단어들마저도 단순해서 원서로 읽어도 충분히 이해될 거라고 생각한다.

기록 형식이자 일기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연말연시 최고의 책선물 소설원은 

그래서 그런지 '프린세스 다이어리'(멕 케봇 저)를 떠올리게 한다.

배우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 가 넘나 맘에 들어서 그 길로 당장 시리즈 원서 몽땅과

 앤 해서웨이의 음성이 담긴 책 녹음 CD까지 구매하였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소녀 미아의 마음과 그녀의 일상, 그리고 어조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 점에서 북폴리오의 소설원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겠다.

자유시형태이지만 어쩐지 소녀의 일기같아서 이해가 쏙쏙 되고 독서 진행률이 빨라져서 1시간 30분만에 독파하였다.


Here

We Are.

And we are living.

Isn’t that amazing?

How we manage

to be

at all.


소설이 시작되는 첫 부분을 보면 굳이 한글 번역을 보지 않아도 얼마나 심플한 어조를 구사하는지 알 수 있다.

한글 번역본 보고 원서를 구매하고픈 마음이 들기는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결합쌍둥이인 그레이스와 티피는 쌍둥이라기 보다는 자매에 가까울 만큼 극단적인 성격 차이를 보인다.

활발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한 티피와는 달리 소설원에서 나레이터 역할을 하는 주인공 그레이스는 생각을 주로 하는 편이다.

행동보다는 그 전에 생각을, 그리고 고민하는, 그런 성격이다.



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저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셔츠 위로 비어져나온 실밥을

단추가 떨어질 정도로

잡아당겼을 뿐이다.



하지만 티피는 참지 못했다.


말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지금 나 놀려요?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한참을 엄마 아빠와 다투었다.


p. 8-9




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하는 북폴리오의 신작이다.

샴쌍둥이 중 한 명인 그레이스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린 결합쌍둥이 소설원.

장애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읽어나가면서 내가 가진 삶에 감사하게 되는 그런 이기적임이다.





가게에 도착하자 우리 둘 다

너무 숨이 차서

우유를 집까지 들고 갈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p. 20





고작 집 앞 슈퍼 가는 행위도 숨이 차서 힘들어하고, 때때로 지독한 감기에 걸리기도 하며, 기절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시선, 동정심, 경멸, 두려워하는 태도나 학교 생활의 불편,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 등 

결합쌍둥이로 살아가는 것의 여러가지 어려움 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은 단연 건강일 것이다.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고 병원에 가서 상담 받아도 샴쌍둥이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처럼 수명을 다 채우기란 극히 힘드니 말이다.

어쩌면 소설 속 그레이스와 티피가 살고 있는 청소년기는 그들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순간일 수도 있다.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카네기메달을 수상한 청소년 문학이자 성장소설이니만큼 학교와 교우관계, 사랑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 없겠다.

홈스쿨링만 하다가 처음으로 가게 된 사립학교에는 

에이즈에 걸려 아웃사이더로 생활 중인 야스민과 엄마 없이 새아버지와 살고 있는 존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은 그레이스와 티피에게 친구이자 그 이상의 존재가 된다.




미술 수업 시간에 처음 만났을 때 존은

티피와 내게 

차례로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정말 두 사람인 것처럼.


p. 64




한 몸, 아니, 정확하게 말 하면 하나의 하체와 두개의 상체를 지닌 결합쌍둥이인 그레이스와 티피 중

 그레이스는 존에게 첫눈에 반한다.

존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둘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서로에 대한 이끌림을 부정할 수가 없다.




한순간

 티피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p. 237



존은 그야말로 멋진 남자애이다.

존이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프린세스 다이어리' 의 마이클이 떠올랐고,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의 어거스터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셋의 공통점은 잘 생기고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거적대기를 입혀도 잘 어울리는 뛰어난 신체 비율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맑고 착한 인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만약 사라크로산의 소설원이 영화화된다면 가장 기대되는 등장인물이 바로 존이다.



존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눈빛은

냉정하고 도전적이었다.

"나는 너희가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뿐이라고."


p. 156



이런 말을 듣고 두근두근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바보다.

새벽에 술 마시다가 여자 생각이 나서 전 여친에게 문자나 하는 그런 멍청이 성인 남성 말고, 

순수하고 착한 심성을 지닌 남자아이가 있다.






그레이스와 티피의 모습은 실화가 아니지만 실화의 그것과 참으로 닮아있다.

결합쌍둥이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불편함은 소설 속에서 10대 소녀의 관점으로 담겨져있고, 

그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내가 매일 느끼는 스트레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삶이 순조롭게 흘러갈 때

사람들이 걱정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p. 352




한 때 "짜증나." 를 입에 달고 산 적이 있다.

버스를 놓쳐서 짜증나고, 아침에 학교 갈 때 할머니께 꾸중 들어서 짜증나고, 해 온 숙제를 검사하지 않아서 짜증난다.

요즘엔 지하철에서 노인분들에게 밀려서 짜증나고, 기껏 찾아간 맛집이 문을 닫아서 짜증난다.

그런데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지.

누군가 말하듯 '머리 두 개 달린 괴물' 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 수만 있다면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정말 이기적이게도 그레이스를 통해 위안을 받고, 티피를 통해 감사를 한다.

장애인이 아님에 대해서.







연말연시 책선물을 원하는 감수성 풍부한 소녀에게, 작아서 지하철에 들고 다니기 좋은 감동소설 찾는 누군가에게,

사라 크로산의 소설원을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테미스' 라는 이름의 달 최초이자 유일한 도시는 지극히 지구의 그것과 닮아있다.

부자가 있고 노동자가 있으며, 그 곳에 관광하러 오는 자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 재즈는 노동자 계급으로, 끊임없이 신분 상승과 부(富)를 노리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그녀는 불법 밀수업을 돕고 있는 중간 배달자이지만, 

한 편으로는 스스로 주장하기에 도덕적이기때문에 총과 같은 옳지 못한 물건들은 밀반입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단골 중 한 명의 제안으로 큰 돈을 만질 기회를 갖게 되고, 결국 어마어마한 일에 엮이고 만다.


노동자 계급의 사람도 필요하다. 'J.돈많아 넘쳐흘러 3세' 께서 스스로 변기를 닦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p. 21



SF소설이기도 하면서 장르적인 면에 있어서 액션,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 앤디 위어의 소설 [아르테미스] 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건

 무언가 알 수 없는 음모에 빠져 있는 듯한 주인공과 그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진행 방식이라든가 플롯 자체가 아닌, 

아르테미스에 대한 설정이다.

과학이라곤 초, 중, 고등학교 때 배운 게 다인 나로서는 작가의 진짜같으면서도 '그럴 법하지 않은 ' 달 도시가 꽤나 인상적이다.


이곳의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걷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다.

p. 22


임신한 상태로는 달의 중력에 있을 수 없다. 아기가 선천적 장애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곳에선 아이를 기를 수도 없다. 뼈와 근육 발달에 좋지 않으니까.

p. 50


지구에서는 휠체어에 못 박혀 있어야 하지만 달에서는 목발을 짚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트론은 부사장을 여러 사람 뽑아 회사 대부분을 맡기고 아르테미스로 이사 왔다. 그리고 레네 란비크는 아주 손쉽게 다시금 걷게 되었다.

p. 67



이 밖에도 담배가 달의 도시에서 금지되어 있는 이유는 화재 발생시 도망 갈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달과 지구의 중력 차이때문에 서로의 성관계를 새로이 하기 위해 노년 커플들이 찾는 인기 관광지라는 것, 

그리고 커피가 맛없고, 인터넷이 지구보다 4초 정도 느리다는 소소한 사실들이 나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히로인 재즈가 뜻하지 않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설마하니 그녀 혼자 난관을 헤쳐나갔을 리는 없고 

당연히 주위에 남자들이 있다.

이들은 그녀에게 직,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며 때로는 이성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재즈는 자기 자신이나 돈 문제 말고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믿어줘서 고맙군. 하지만 넌 안전하려면 내 곁에 있어야 해."

p. 272


"10만 슬러그는 넣어둬. 난 다른 걸 원하니까. 다시 친구가 되고 싶어."

p. 199



끊임없이 재즈를 체포하기위해 쫓고 있지만 심각할 정도로 잘 생겨서 단기적 관계의 상대로 좋은 루디, 

비록 재즈의 전 남친과 사랑에 빠졌지만 인생에 하나 정도 있으면 좋은 게이 친구 데일, 

거기에 서로 투닥투닥 말다툼하며 대하는 법을 잘 모르긴 하지만 이성적으로 끌리는, 

그러면서도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스보보다까지.

아빠까지 더하면 총 넷.

인생의 한 시점에서 동시에 네 남자가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앤디 위어의 소설 [아르테미스] 를 읽는 내내 느낀 건, 이 소설이 꼭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거다.

캐릭터가 확실한 여주인공, 그런 그녀를 둘러싼 주변의 남자들, 그리고 산체스 알루미늄 공장에서의 실감나는 장면 등을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쉬왕의 딸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처럼 비가 오락가락하고 쌀쌀한 날씨에 잘 어울리는 소설은 다름아닌 심리스릴러이다.

흐릿한 하늘에 우울해하지 말고 사이코패스 탈옥수와 여성영웅이 나오는 서스펜스스릴러를 읽으면서 날씨에 대항하자.

북폴리오에서 늪의제왕과 그의 딸을 주제로 한 카렌디온느의 [마쉬왕의딸]을 출간하였다.

'아버지사냥' 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자신이 유괴당한 소녀에게서 태어난 딸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아이, 

후에 사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복잡다양한 감정을 가지게 되며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려다가 

감옥에서 탈옥한 사이코패스 아버지를 사냥하려는 여성을 그리고 있다.


북폴리오에서 출시된 카렌 디온느의 [마쉬왕의 딸]은 소재와 줄거리가 매우 독특한 심리스릴러 소설로서, 

우리가 가끔씩 해외 외신에서 접하게 되는 

'청소년기를 한 남자에게 납치당한 채 성노예로 살다가 스톡홀롬 증후군을 가지고 세상에 나서게 된 여성' 이라는 뉴스와 

그 여성이 세상에 나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쓴 자서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선, 주인공은 납치당한 여성이 아니며 그 여성에게서 태어난 딸이고,

자신이 처한 상황의 특이점을 알지 못하고 늪의제왕 하에서 나름 평화롭고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내온 여성이다.


어쩌면 [정글북] 의 모글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글리는 정글이 자신이 아는 세상의 전부이고, 그를 둘러싼 곰, 호랑이 등이 친구이며 가족이다.

서스펜스스릴러 소설 [마쉬왕의딸]의 히로인인 헬레나 역시도 늪이 그녀에겐 집이고 놀이터이며 세계이고, 

늪의제왕인 아버지와 자기를 별로 닮지 않은 어머니, 그리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책이 알고 있는 전부이다.

[정글북] 에서 모글리는 나중에 자신을 발견한 인간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고 그들의 무리 속에 들어가고 싶어할까?

인간 사회에서 소 떼를 모는 일을 맡게 되지만, 결국 욕심 많은 노인을 죽이고 다시 정글로 돌아가고만다.

그렇다면 카렌디온느의 [마쉬왕의딸] 에서는 어떨까?

헬레나는 늪에서 '구출' 된 후 세간의 이목에 괴로워하며 살다가 결국 성을 바꾸고,

지금의 남편과 만나 두 딸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늪을 그리워하고 있다.

집에 가족을 둔 채로 혼자 나가서 곰사냥을 하면서 보내는가하면, 

순간 순간 늪의제왕인 아버지와 보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곤 한다.

아버지와 늪의 손에 의해서 자란 여자 모글리인 헬레나는 아직도 소위 '문명 사회' 인 늪 밖의 세계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문명' 이라고 부르는 것, '옳다' 고 믿는 것, '교양' 이라고 아는 것이 과연 진리일까, 어쩌면 일(一)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여성영웅인 헬레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하고 눈치껏 해야 할 말과 하지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이해되고 맞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그저 튀지 않고 조용한 삶을 살기 위해서 택한 처세술일 뿐이다.


"이제 날이 덥죠?"

제이슨은 나에게 다가와 어깨에 있던 상자 중 하나를 받아들며 이렇게 물었다.

나는 대답으로 몇 마디 투덜댔다. 이런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 지 알 수 없던 시기도 있었다. 내가 날씨에 대해 어떻다고 대답한들 날씨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어째서 내 의견을 물어대는 걸까?

P. 16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똑바로 행동할지 알고 있는데 나 혼자만 그걸 모른다는 느낌을 얼마나 많이 받았던가. 그런데 이런 규칙들은 대체 누가 만든 걸까? 그리고 나는 왜 그걸 다 따라야 하는 걸까? 만약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p. 17


Small Talk에 대해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는 헬레나.

그녀에게 명쾌한 대답을 준다면 이런 규칙들은 누가 만들었다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 세상에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진화에 이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게되고, 

인간에게 있어서 그런 방법들 중 하나는 'reciprocation(보답)' 이었다.

내가 남을 돕고, 남이 나를 도우면 서로 필요할 때 도움을 얻게 되고 이는 상생의 길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누군가 사회적 터부(taboo, 금기사항) 를 행할시에는 법치국가에서 법으로 가해지는 불이익은 없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피할 거라는 건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렇기때문에 헬레나의 아버지와 같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다들 자기가 사는 사회의 규범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물론 헬레나가 늪 밖의 생활을 모두 다 싫어하고 늪 속의 생활만 원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을 언제든지 따뜻하고 깨끗하게 씻길 수 있는 실내 배관 시설을 좋아하고, 전기에 감탄하는 등

사회 인프라에 대한 깊은 호감을 보인다.


어머니와 내가 구출된 후에, 가장 놀랍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전기였다. 그 세월 동안 어떻게 전기 없이 살았을까.

p. 34


우리는 이제 이 소설 속 어떤 상황도 흑백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늪지대의 생활을 순전히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라고만은 말 할 수 없다.

늪 밖의 생활을 문명화되고 인간다운 정상적인 삶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각각은 그 나름의 특징이 있을 뿐이며,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더불어 헬레나의 탈옥수 아버지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애초에 자신의 상태를 '비정상' 으로 인지한 적이 없기에 스톡홀롬 증후군을 겪을 이유도 없으며, 

단지 12년간 늪의제왕과의 가족 생활이 그에 대한 애정을 만들어버렸다.

아버지가 사이코패스인 걸 알고 굳이 죽일 필요 없을 때 살인을 하는 탈옥수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아버지사냥에 힘쓰고 있는 그녀이지만, 동시에 오로지 어머니와 아버지와 늪이 전부였던 유년시절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를 보고싶어한다.


하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 저 늪지대에 사는 한 떨기 꽃송이 속의 꽃가루 한 알보다도 더 작은 크기의 마음속에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양갈래 머리의 꼬마 소녀가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마음은 분명히 아버지가 자유를 찾아 기뻐하고 있다.

p. 41


나는 아버지를 찾을 것이다. 아버지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감옥으로 돌려보내 그가 저지른 모든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p. 158


그 누구도 헬레나를 욕할 순 없다.

마쉬왕의딸과 늪의제왕 사이에 있었던 일은 딸과 아버지 사이의 그것이며, 사이코패스는 나름의 방식대로 양육을 한 것이다.

어찌됐든 지금의 탈옥수는 주인공에겐 아버지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오히려 남편과 딸들을 안전한 곳에 두고, 혼자서 아버지사냥을 하려고 하는 이 여성영웅을 칭찬해도 모자랄 판이다.




늪의제왕인 아버지 아래에서 강하게 자라서 대담하고 두려울 게 없는 헬레나는 존경할 만한 여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아버지는 그저 사이코패스에 나르시시스트일 뿐이고,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이기주의자이다.


"널 다치게 하려던 건 아니었다. 네가 그렇게 몰아갔지."

p. 304


"넌 늪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어. 네가 모든 걸 다 망쳤다."

p. 305


마지막에 가서 헬레나는 아버지 사냥에 성공하고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그녀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흥미가 동하는 사람은 지금 당장 카렌 디온느의 심리스릴러, [마쉬왕의 딸]을 읽어보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