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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쉬왕의 딸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처럼 비가 오락가락하고 쌀쌀한 날씨에 잘 어울리는 소설은 다름아닌 심리스릴러이다.
흐릿한 하늘에 우울해하지 말고 사이코패스 탈옥수와 여성영웅이 나오는 서스펜스스릴러를 읽으면서 날씨에 대항하자.
북폴리오에서 늪의제왕과 그의 딸을 주제로 한 카렌디온느의 [마쉬왕의딸]을 출간하였다.
'아버지사냥' 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자신이 유괴당한 소녀에게서 태어난 딸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아이,
후에 사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복잡다양한 감정을 가지게 되며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려다가
감옥에서 탈옥한 사이코패스 아버지를 사냥하려는 여성을 그리고 있다.
북폴리오에서 출시된 카렌 디온느의 [마쉬왕의 딸]은 소재와 줄거리가 매우 독특한 심리스릴러 소설로서,
우리가 가끔씩 해외 외신에서 접하게 되는
'청소년기를 한 남자에게 납치당한 채 성노예로 살다가 스톡홀롬 증후군을 가지고 세상에 나서게 된 여성' 이라는 뉴스와
그 여성이 세상에 나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쓴 자서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선, 주인공은 납치당한 여성이 아니며 그 여성에게서 태어난 딸이고,
자신이 처한 상황의 특이점을 알지 못하고 늪의제왕 하에서 나름 평화롭고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내온 여성이다.
어쩌면 [정글북] 의 모글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글리는 정글이 자신이 아는 세상의 전부이고, 그를 둘러싼 곰, 호랑이 등이 친구이며 가족이다.
서스펜스스릴러 소설 [마쉬왕의딸]의 히로인인 헬레나 역시도 늪이 그녀에겐 집이고 놀이터이며 세계이고,
늪의제왕인 아버지와 자기를 별로 닮지 않은 어머니, 그리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책이 알고 있는 전부이다.
[정글북] 에서 모글리는 나중에 자신을 발견한 인간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고 그들의 무리 속에 들어가고 싶어할까?
인간 사회에서 소 떼를 모는 일을 맡게 되지만, 결국 욕심 많은 노인을 죽이고 다시 정글로 돌아가고만다.
그렇다면 카렌디온느의 [마쉬왕의딸] 에서는 어떨까?
헬레나는 늪에서 '구출' 된 후 세간의 이목에 괴로워하며 살다가 결국 성을 바꾸고,
지금의 남편과 만나 두 딸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늪을 그리워하고 있다.
집에 가족을 둔 채로 혼자 나가서 곰사냥을 하면서 보내는가하면,
순간 순간 늪의제왕인 아버지와 보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곤 한다.
아버지와 늪의 손에 의해서 자란 여자 모글리인 헬레나는 아직도 소위 '문명 사회' 인 늪 밖의 세계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문명' 이라고 부르는 것, '옳다' 고 믿는 것, '교양' 이라고 아는 것이 과연 진리일까, 어쩌면 일(一)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여성영웅인 헬레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하고 눈치껏 해야 할 말과 하지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이해되고 맞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그저 튀지 않고 조용한 삶을 살기 위해서 택한 처세술일 뿐이다.
"이제 날이 덥죠?"
제이슨은 나에게 다가와 어깨에 있던 상자 중 하나를 받아들며 이렇게 물었다.
나는 대답으로 몇 마디 투덜댔다. 이런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 지 알 수 없던 시기도 있었다. 내가 날씨에 대해 어떻다고 대답한들 날씨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어째서 내 의견을 물어대는 걸까?
P. 16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똑바로 행동할지 알고 있는데 나 혼자만 그걸 모른다는 느낌을 얼마나 많이 받았던가. 그런데 이런 규칙들은 대체 누가 만든 걸까? 그리고 나는 왜 그걸 다 따라야 하는 걸까? 만약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p. 17
Small Talk에 대해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는 헬레나.
그녀에게 명쾌한 대답을 준다면 이런 규칙들은 누가 만들었다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 세상에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진화에 이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게되고,
인간에게 있어서 그런 방법들 중 하나는 'reciprocation(보답)' 이었다.
내가 남을 돕고, 남이 나를 도우면 서로 필요할 때 도움을 얻게 되고 이는 상생의 길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누군가 사회적 터부(taboo, 금기사항) 를 행할시에는 법치국가에서 법으로 가해지는 불이익은 없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피할 거라는 건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렇기때문에 헬레나의 아버지와 같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다들 자기가 사는 사회의 규범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물론 헬레나가 늪 밖의 생활을 모두 다 싫어하고 늪 속의 생활만 원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을 언제든지 따뜻하고 깨끗하게 씻길 수 있는 실내 배관 시설을 좋아하고, 전기에 감탄하는 등
사회 인프라에 대한 깊은 호감을 보인다.
어머니와 내가 구출된 후에, 가장 놀랍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전기였다. 그 세월 동안 어떻게 전기 없이 살았을까.
p. 34
우리는 이제 이 소설 속 어떤 상황도 흑백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늪지대의 생활을 순전히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라고만은 말 할 수 없다.
늪 밖의 생활을 문명화되고 인간다운 정상적인 삶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각각은 그 나름의 특징이 있을 뿐이며,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더불어 헬레나의 탈옥수 아버지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애초에 자신의 상태를 '비정상' 으로 인지한 적이 없기에 스톡홀롬 증후군을 겪을 이유도 없으며,
단지 12년간 늪의제왕과의 가족 생활이 그에 대한 애정을 만들어버렸다.
아버지가 사이코패스인 걸 알고 굳이 죽일 필요 없을 때 살인을 하는 탈옥수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아버지사냥에 힘쓰고 있는 그녀이지만, 동시에 오로지 어머니와 아버지와 늪이 전부였던 유년시절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를 보고싶어한다.
하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 저 늪지대에 사는 한 떨기 꽃송이 속의 꽃가루 한 알보다도 더 작은 크기의 마음속에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양갈래 머리의 꼬마 소녀가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마음은 분명히 아버지가 자유를 찾아 기뻐하고 있다.
p. 41
나는 아버지를 찾을 것이다. 아버지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감옥으로 돌려보내 그가 저지른 모든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p. 158
그 누구도 헬레나를 욕할 순 없다.
마쉬왕의딸과 늪의제왕 사이에 있었던 일은 딸과 아버지 사이의 그것이며, 사이코패스는 나름의 방식대로 양육을 한 것이다.
어찌됐든 지금의 탈옥수는 주인공에겐 아버지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오히려 남편과 딸들을 안전한 곳에 두고, 혼자서 아버지사냥을 하려고 하는 이 여성영웅을 칭찬해도 모자랄 판이다.
늪의제왕인 아버지 아래에서 강하게 자라서 대담하고 두려울 게 없는 헬레나는 존경할 만한 여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아버지는 그저 사이코패스에 나르시시스트일 뿐이고,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이기주의자이다.
"널 다치게 하려던 건 아니었다. 네가 그렇게 몰아갔지."
p. 304
"넌 늪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어. 네가 모든 걸 다 망쳤다."
p. 305
마지막에 가서 헬레나는 아버지 사냥에 성공하고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그녀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흥미가 동하는 사람은 지금 당장 카렌 디온느의 심리스릴러, [마쉬왕의 딸]을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