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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평점 :
위로할 자격을 박탈당할수록, 나를 함부로 위로하려는 사람은 늘어났다. 내가 조금 뒤처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뺀 모두가 내게 충고할 자격을 얻은 것 같았다. 다들 미끈하게 희망을 이야기했다. 정작 내게는 입 뗄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예쁜 말은 모두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찬장 위 장식품 같았다.
p. 015
시시한 청춘을 살아가고있는 저자 유정아는 그녀와 같은 2,30대가 읽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에세이를 채워나가고 있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도 아닌데, 지극히도 개인적인 본인의 입시, 아르바이트, 취업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있는 대한민국의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재벌2세를 비롯한 금수저가 아니라면 말이다.
100% 공감하기가 쉬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부분 부분의 면모를 들여다보면
소위 '내 얘기' 라고 말 할 수 있을 만한 일화들이 꽤 있다.
내가 힘들 때 내게 위로하거나 충고하려는 사람들, 한 마디만 하자면 "NO!" 이다.
라디오에서 누군가가 말한 걸 들은 기억이 난다.
내가 필요해서 요청할 때 하는 건 충고나 조언이 맞지만,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건 오지랖이라고.
나는 네가 아니고 내 삶은 명백히 너의 것과 다르다.
너는 그렇게 삶으로써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와는 다른 길을 가고 싶다.
이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기에 나는 자기계발서와 같은 명령조의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런 나의 성향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내게 조언을 구할 지언정 주려고 하진 않는다.
다행이다.
때로는 돌에 걸려 넘어지고 엎어지고 우는 경험이 필요하다.
누구나 똑같은 과정을 겪고 똑같은 목적을 위해 나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잘못 든 길에도 둘러볼 풍경이 있을 것이고, 운이 좋다면 또 한 번 완벽하게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순간들은, 다음 날들을 살아갈 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테니까.
p. 048
학부 시절 Robert Frost 의 [The Road Not Taken] 이라는 시를 배운 적이 있다.
워낙 유명해서 중, 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이지만
그 의미를 하나하나 파악하려고 고민하고 연구한 이들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시, 난 [가지 않은 길] 의 마지막 세 행의 의미에 대한 열띤 토론에 과한 열정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the difference(차이)' 라고 생각한다.
그게 좋든 나쁘든 간에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고, 한 번 한 선택에 대해 후회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왕 그 쪽으로 가기로 결정한 이상,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어떤 풍경이 나타나든 최대한 즐기며
그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면 된다.
내가 거의 하지 않는 생각이나 말이 있다.
"그 때 이렇게 할 걸.. 왜 그랬을까." 라는 것이다.
내 선택으로 나타난 상황을 똑바로 주시하고 어떻게든 이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된다.
가난에 딸려 오는 것들이 아이의 인생에 어떻게 각인되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섣불리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할 수가 없다. 세상이 별다르게 나아지지 않은 것처럼, 지금의 우리도 그때의 부모와 크게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기에.
p. 125-126
통계청이 2018년 2월 28일 발표한 '2017년도 출생, 사망 통계 잠정 결과' 에 따르면,
2017년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2005년 1.08명 이후 최저치를 갱신했다.
이런 초저출산율의 이유를 물어보면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경제적 이유' 이다.
나 혼자 살기도 힘든데, 나보다 훨씬 나은 경제적 기반을 지닌 누군가와 함께 살지 않는 한 부양할 자식을 가질 순 없다.
한 달에 채 200만원도 안 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비정규직이 쉽사리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이 외에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보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법 체계, 해외에서도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외교부 등
출산, 아니 아예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그래도 역시 출산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불명예는 경제적 이유가 차지하게 된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이미 예전에 끝났다.
나는 나의 힘든 삶을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새 생명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이지 가난은 아이가 견디기 힘든 짐일 뿐이다.
그 안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글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의 행복이 더 낫지 않을까?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 가까이 다가가면 며칠 씻지 않은 냄새가 나는 아이.
이런 아이들은 주위 친구들이 꺼려하고 결국 늘 의기소침하고 우울한 모습을 지니게 된다.
가난하지만 밝은 아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타고난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막상 서른 살을 넘기고 보니 이전과 다른 게 없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데서 오는 중압감은 있었지만 단지 30대가 되었다는 이유로 뭔가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대로 눈에 띄게 더 나은 선택을 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다들 왜 그렇게 서른이란 나이에 의미 부여를 했던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정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p. 116
별 시시껄렁한 미신을 믿어본 적이 없다.
혈액형별 성격, 나이에 따라 해야 하는 것들, 연애할 땐 이렇게 해야 한다는 글로 된 비법서 등.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가르치려 들고 나와 같지 않으면 불안해할까.
10대인데 나처럼 학교에 다니며 정규 교육을 받지 않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다고 여기고,
20대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기며,
30대를 훌쩍 넘은 40대인데 결혼을 하지 않으면 왜 '못' 하고 있는 건지 여기저기서 난리다.
하다못해 식당에 가서 뭘 먹으려고 해도 "이 음식은 이런 식으로 먹어야 해. 그렇게 먹으면 맛없어." 라면서 입맛까지 바꾸려 든다.
우리 부디 그러지 말자.
난 믿지 않는다.
나이가 어리다고 철이 없는 것도 나이가 들었다고 철이 든 것도 아니다.
사실 철들었다는 개념 자체가 웃기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내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한 번 살고 끝날 소중한 인생을 다른 이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다.
영국 프로 축구팀 리버풀 FC의 감독 위르겐 클롭이 말한 바 있다.
"I'm the normal one."
이제는 상표권 등록을 하자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이 회자된다.
청춘 공감 에세이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에서 저자 유정아는 평범을 넘어서 자신을 '시시한' 사람으로 칭하고 있다.
우리는 개개인이 특별한 동시에 시시하다.
누가 누구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에게 갑질을 부릴 필요도 없고 당할 이유도 없으며 스스로 정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