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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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할 자격을 박탈당할수록, 나를 함부로 위로하려는 사람은 늘어났다. 내가 조금 뒤처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뺀 모두가 내게 충고할 자격을 얻은 것 같았다. 다들 미끈하게 희망을 이야기했다. 정작 내게는 입 뗄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예쁜 말은 모두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찬장 위 장식품 같았다.

p. 015



시시한 청춘을 살아가고있는 저자 유정아는 그녀와 같은 2,30대가 읽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에세이를 채워나가고 있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도 아닌데, 지극히도 개인적인 본인의 입시, 아르바이트, 취업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있는 대한민국의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재벌2세를 비롯한 금수저가 아니라면 말이다.

100% 공감하기가 쉬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부분 부분의 면모를 들여다보면
소위 '내 얘기' 라고 말 할 수 있을 만한 일화들이 꽤 있다.
내가 힘들 때 내게 위로하거나 충고하려는 사람들, 한 마디만 하자면 "NO!" 이다.
라디오에서 누군가가 말한 걸 들은 기억이 난다.
내가 필요해서 요청할 때 하는 건 충고나 조언이 맞지만,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건 오지랖이라고.
나는 네가 아니고 내 삶은 명백히 너의 것과 다르다.
너는 그렇게 삶으로써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와는 다른 길을 가고 싶다.
이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기에 나는 자기계발서와 같은 명령조의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런 나의 성향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내게 조언을 구할 지언정 주려고 하진 않는다.
다행이다.
때로는 돌에 걸려 넘어지고 엎어지고 우는 경험이 필요하다.
누구나 똑같은 과정을 겪고 똑같은 목적을 위해 나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잘못 든 길에도 둘러볼 풍경이 있을 것이고, 운이 좋다면 또 한 번 완벽하게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순간들은, 다음 날들을 살아갈 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테니까.

p. 048




학부 시절 Robert Frost 의 [The Road Not Taken] 이라는 시를 배운 적이 있다.
워낙 유명해서 중, 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이지만
그 의미를 하나하나 파악하려고 고민하고 연구한 이들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시, 난 [가지 않은 길] 의 마지막 세 행의 의미에 대한 열띤 토론에 과한 열정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the difference(차이)' 라고 생각한다.
그게 좋든 나쁘든 간에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고, 한 번 한 선택에 대해 후회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왕 그 쪽으로 가기로 결정한 이상,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어떤 풍경이 나타나든 최대한 즐기며
그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면 된다.
내가 거의 하지 않는 생각이나 말이 있다.
"그 때 이렇게 할 걸.. 왜 그랬을까." 라는 것이다.
내 선택으로 나타난 상황을 똑바로 주시하고 어떻게든 이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된다.

 

 


가난에 딸려 오는 것들이 아이의 인생에 어떻게 각인되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섣불리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할 수가 없다. 세상이 별다르게 나아지지 않은 것처럼, 지금의 우리도 그때의 부모와 크게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기에.

p. 125-126




통계청이 2018년 2월 28일 발표한 '2017년도 출생, 사망 통계 잠정 결과' 에 따르면,
2017년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2005년 1.08명 이후 최저치를 갱신했다.
이런 초저출산율의 이유를 물어보면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경제적 이유' 이다.
나 혼자 살기도 힘든데, 나보다 훨씬 나은 경제적 기반을 지닌 누군가와 함께 살지 않는 한 부양할 자식을 가질 순 없다.
한 달에 채 200만원도 안 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비정규직이 쉽사리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이 외에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보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법 체계, 해외에서도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외교부 등
출산, 아니 아예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그래도 역시 출산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불명예는 경제적 이유가 차지하게 된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이미 예전에 끝났다.
나는 나의 힘든 삶을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새 생명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이지 가난은 아이가 견디기 힘든 짐일 뿐이다.
그 안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글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의 행복이 더 낫지 않을까?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 가까이 다가가면 며칠 씻지 않은 냄새가 나는 아이.
이런 아이들은 주위 친구들이 꺼려하고 결국 늘 의기소침하고 우울한 모습을 지니게 된다.
가난하지만 밝은 아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타고난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막상 서른 살을 넘기고 보니 이전과 다른 게 없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데서 오는 중압감은 있었지만 단지 30대가 되었다는 이유로 뭔가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대로 눈에 띄게 더 나은 선택을 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다들 왜 그렇게 서른이란 나이에 의미 부여를 했던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정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p. 116




별 시시껄렁한 미신을 믿어본 적이 없다.
혈액형별 성격, 나이에 따라 해야 하는 것들, 연애할 땐 이렇게 해야 한다는 글로 된 비법서 등.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가르치려 들고 나와 같지 않으면 불안해할까.
10대인데 나처럼 학교에 다니며 정규 교육을 받지 않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다고 여기고,
20대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기며,
30대를 훌쩍 넘은 40대인데 결혼을 하지 않으면 왜 '못' 하고 있는 건지 여기저기서 난리다.
하다못해 식당에 가서 뭘 먹으려고 해도 "이 음식은 이런 식으로 먹어야 해. 그렇게 먹으면 맛없어." 라면서 입맛까지 바꾸려 든다.

우리 부디 그러지 말자.
난 믿지 않는다.

나이가 어리다고 철이 없는 것도 나이가 들었다고 철이 든 것도 아니다.
사실 철들었다는 개념 자체가 웃기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내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한 번 살고 끝날 소중한 인생을 다른 이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다.




영국 프로 축구팀 리버풀 FC의 감독 위르겐 클롭이 말한 바 있다.
"I'm the normal one."
이제는 상표권 등록을 하자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이 회자된다.
청춘 공감 에세이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에서 저자 유정아는 평범을 넘어서 자신을 '시시한' 사람으로 칭하고 있다.
우리는 개개인이 특별한 동시에 시시하다.
누가 누구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에게 갑질을 부릴 필요도 없고 당할 이유도 없으며 스스로 정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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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천 년을 사는 아이들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는 몇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어찌 보면 좁은 취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탓도 있겠지만, 그냥 읽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소년이나 소녀, 즉 청소년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꿈과 성장기가 주가 되는 이야기.
그러다 보면 장르는 추리가 될 수도 있고,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도 있으며 판타지가 될 수도 있다.
이번에 읽게 된 소설이 판타지에 속하는 것으로서, 무려 북유럽 중 노르웨이에서 온 이야기이다.
그간 영미 문화권이나 프랑스 소설까지는 많이 읽어봤고 스웨덴 소설까지도 접했지만, 노르웨이는..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없다.
그렇기에 더욱 뜻깊은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 이름 발음법마저 생소하다. - 의 소설 변신_천 년을 사는 아이들
표지에서부터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두 소년이 서로 같이, 그러나 엇갈린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한 명은 위를 한 명은 정면을.
소설 플롯 소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한 명은 주인공 격인 아르투르를,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파올로가 아닐까.
둘은 서로 비슷한 운명 공동체로서 환생을 겪고 있지만, 각자 다른 길을 가려한다.
바로 그 시점에서 이 소설이 출발하고있다.






[반지의 제왕] 처럼 아예 다른 세계관과 캐릭터를 설정하는 판타지 소설이 있다.
그런 류는 내게 잘 맞지 않아서 읽기가 힘들고 공감이 잘 가지 않는데 반해,
소설 변신_천 년을 사는 아이들 은 배경이 학교와 가정이고, 그 안에서 그럴 법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여졌기때문에
- 작가가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그 중에서도 특히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궁금해하고 추상적인 관념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죽음이 어떤 건지 알고 심지어 이미 여러번 경험했다면 어떨까?
가히 좋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주인공 아르투르 역시 그러하다.

그는 처음 보는 낯선 부모님을 대하자마자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환생을 경험했다는 기쁨, 그리고 이전 삶에서 모든 것을 함께했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 때문이었다.

p. 11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이 죽는 걸 보는 것보다 그들이 내가 사라진 걸 알게 된 게 더 다행인 걸까.
적어도 나는 누군가 죽는 걸 보지 않아서 아픔이 덜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3년 동안 함께 한 사람들과 갑자기 멀어지게 되고, 낯선 이들을 만나게 되는 삶, 그리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는 삶.
이 쯤 되면 환생은 축복이 아닌 저주라고 할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어 사라지지만,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수천 년의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다.

p. 50






421명의 선택된 아이들이 열네살 생일이 되는 날 아침 다시 환생한다는 프레임 자체가 이 소설이 판타지라는 걸 알리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가장 환상적이고 또 동시에 철학적이기도 한 부분은 수호자와 아르투르의 만남에서 드러난다.
아르투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타나는 - 물론 뒤에 가서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 수호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하지만
수호자가 대답하는 건 더 큰 질문을 만들 뿐이다.
어떠한 물음에도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수호자의 애매한 답변과 그들의 대화를 보고 있자면
철학자와 비(非)철학자간의 대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네가 생각하는 만큼 오래되진 않았어. 이곳에서의 시간은 네가 사는 세상에서의 시간과 다르니까."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나요?"
"우선 내가 왜 너를 여기에 데려왔는지부터 설명해줄게."

p. 159



수호자가 하는 말은 동그라미같아서 질문을 질문으로 되받아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며 알려줄 수 없는 일이라고만 한다.
읽다보면 어느새 답답해져서 만약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가장 졸린 부분일 수도 있겠다.
물론 아르투르의 존재 이유와 환생의 서클이 끊어진 이유도 알게 되지만, 대부분의 말은 아리송할 뿐이다.
역시 심리학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지식과 역량에 내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까.






변신은 판타지이기도 하면서 Sci-fi, 즉 공상과학소설이기도 하다.
현대기술이 꽤나 등장하고 있어서 IT 기술에 익숙한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대목들이 많다.
선택된 아이들 중 하나인 레이븐과 아르투르는 스카이프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가끔 일반용 채팅을 위하여 MSN 메신저를 이용할 때도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PC용 카카오톡이나 라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가하면 선택된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네트워크에서 커뮤티니를 형성하여 소통하고 있다.
네트워크의 고문 역할은 인터넷 동호회의 회장과 같은 역할이랄까.

하지만 기술의 집약 및 핵심은 아르투르와 함께 중요성이 더해만가는 너새니얼에게서 보인다.
너새니얼은 위성을 이용하여 지구의 어느 지역에 몇 명이 사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프로젝트를 연구 중이다.
만약 실행될 경우, 분명 개인 사생활 침해의 이슈가 도마 위에 오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의 목적은 인구조사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게 정확한 가운데, 결과값은 421명뿐이다.
그리고 내려진 결론은 421명만 두드러진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더 강한 뇌파를 보낸다는 것이다.
매우 그럴 법하지 않은가?






판타지, 공상과학, 이제 남은 마지막 한가지는 다름아닌 블록버스터 액션이다.
여기에 영화로 갖춰질 퍼즐이 맞춰진 셈이다.
파올로와 메르세르, 아르투르와 너새니얼의 액션 장면, 핵폭탄으로 화산을 폭발시키려는 파올로의 음모,
내서니엘의 가족을 빌미로 협박하는 모습까지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그것을 꼭 닮아있다.

총알은 메르세르의 가슴을 명중했다. 붉은 핏방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불그스름한 구름처럼 공기 중에서 증발해버렸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권총을 치켜들었다.

p. 495



이만하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어도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한계나 타겟층이 명확하므로 조금 더 인기를 끌기 위해선 역시 헐리우드 자본이 투입되는 게 좋을 거 같다.
아니면 오로지 노르웨이만의 자본으로 만들어서 다양성 영화로 선보여도 좋을 듯 싶다.






600페이지가 넘는 다소 두꺼운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3시간만에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지루하지도 않고 박진감있게 읽힌다.
미풍이 살랑이는 봄, 가볍게 읽을 외국소설을 원한다면 변신_천 년을 사는 아이들 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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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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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를 책으로 읽고 영화로도 본 바 있다.
주인공 오베의 성격 묘사를 보면 읽는 이로 하여금 짜증이 나게 하지만,
가면 갈수록 푸근해지는 기분이 들게 하는 내용이었다.
프레드릭 배크만이 드디어 후속작을 냈고, 제목은 [베어타운] 이다.
운 좋게 누구보다도 먼저 가제본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눈 내리는 어느 유럽의 마을, 얼음과 아이스하키, 커피와 위스키가 있는 풍경.
얼핏 보면 평화롭고 동경을 일으킬 수 있는 풍경이 표지에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마을의 형태이기에,
그나마도 그런 마을에서 아이스하키를 온 동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하는 상황은 아니기에, 막연한 기대감을 일으키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명심하시라, 당신의 감동을 무너뜨리는 사악한 내용이 나올 수 있으니.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고 현실은 가혹할 정도로 잔인하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으로 플롯을 그렸고,
그 점이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소설의 초반은 베어타운에 사는 다양한 군상을 그리고 있다.
그들의 현재 상황과 예전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속마음까지
독자들에게 하나 하나 알려주고 있다.
이로 인해 그들의 성격이 어떻든지간에,
모두를 하나 하나의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다.
기타를 사랑하는 마야의 어머니이자 냉철한 변호사인 미라는 하키를 사랑하지 않지만, 스포츠를 사랑하는 도시를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한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사랑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믿으면 안 돼."
미라와 나는 남자를 보는 눈이 비슷한 거 같다. 나는 꿈을 가진 남자를 사랑한다. 현재 수중에 있는 돈이나 사회적 지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늘 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 전진하는 사람이 좋다. 희망이 보이는 사람이 좋다.
아맛은 아이스링크장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하키를 사랑하는 소년이다.
돈이 바닥날 수도 있는 집에서 사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다. 없어본 사람만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아이스하키 팀에서 퇴출 위기에 놓인 코치 수네는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으로 인식된다.
나이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가 어린아이와 스포츠다.
어린아이는 그 자체로 예쁘다. 외모가 아니라 '어린이다움', '부드러운 피부', '천진함' 이 그들을 예쁘도록 만든다.
나는 일주일에 5회씩 운동을 한다. 체중 감량이 가장 큰 목적이긴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아니 죽기 전까지 꾸준히 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 가장 힘들어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너무 늦어서 바로잡을 수 없는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세월의 지혜를 깨달은 존경할 만한 어르신' 과 '고집불통의 노인' 사이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감사합니다." 와 "죄송합니다." 라는 말에 인색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젊은 나이인 지금,  그렇게도 욕했던 그런 사람으로 나이들고싶지 않아서이다.
 
[베어타운] 을 읽다보면 현재 한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흡사한 사회적 현상과 문제들을 엿볼 수 있다.
먼저 교권이 바닥에 떨어진 교실이 그렇다. 젊은 여선생을 대하는 남학생들이 하는 행태는 성희롱일 뿐이다.
아이스하키 시합 전 어린 선수들이 서로의 사기 진작을 이유로 건네는 성적인 농담을 코치인 다비드는 묵인한다. 그가 선수들과 같은 성별을 가져서일까?
그리고 가장 심한 사건은 아이스하키 준결승전 이후에 발생한다.
요 몇 달 사이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이슈와 너무나도 흡사해서
막 화가 나고 속에서 열이 부글부글 끓는다.
어쩌면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을까?
마치 NIMBY나 PIMFY 현상을 보는 듯한 팽배한 지역 이기주의를 관찰할 수 있다. 흔히들 말한다. 서울 사람들, 혹은 도시 사람들보다 시골 사람들이 더 하다고. 그들에겐 있는 게 없다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야박하고 못되게 굴 수 있다고.
그 말을 이 소설에서 뼈저리게 확인할 수 있다.

예상했던 감동적인 소설이 아니라서 당황하였다. 믿었던 작가에게 뒤통수 맞은 기분이랄까? 중반 이후 읽는 내내 사회고발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적 현대소설을 예쁜 풍경과 잔잔한 서술 속에 숨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 중요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 부인하고 싶은 진실은 세계 곳곳에 만연해있고,
나의 이기주의나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피해자는 이중 고통을 받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느낀 바는 간단하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이게 전부이다.
기본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모든 진실은 무너지고, 희생자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결코 가볍게 읽을 소설이 아니었지만, 의외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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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It Up! - Music Craft Studio, 남무성·장기호의 만화로 보는 대중음악만들기
남무성.장기호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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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인 Jay Park, 즉 박재범이 추천한 음악 도서가 여기 있다.
비단 박재범뿐만 아니라, 배철수, 박완규, 김형석, 윤일상, 한동준 등
특별히 음악을 공부하는 음악학도가 아니더라도 귀에 익숙한 이름들이 추천사에 보이는 가운데,
실용음악 만화 Pop it up! 이 태어났다.
이 도서에 관한 전체적인 나의 평은 이렇다.

성인을 위한 학습만화도서


수년째 초등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한자 만화책, 내가 어렸을 적 읽었던 여행 만화책 등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만화로 쉽게 풀어낸 도서들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남무성이 그리고 장기호가 쓴 실용음악도서 Pop It Up!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단, 대상이 일반 대중이라기 보다는 음악을 전공한 학생이나 뮤지션에 한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히 다르다.
이 책을 읽고 음악에 흥미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 이다.
오히려 어려운 음악 용어들이 그들로 하여금 금새 질리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음악 공부에 입문한 이들에게는 가볍게 볼 만한 기본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작곡, 작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좋은 Pop it up!은 중간 중간 트렌드에 맞는 인물과 유머 등장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랍스터와 햄버거, 자장면을 먹는 백종X, J방송사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손X희, 영화 [곡성] 의 유행어 등이
피식하는 웃음을 자아내고, 두 작가인 남무성, 장기호가 노력했다는 걸 알게 한다.
크게 보면 단칸방에서 라면으로 식사를 때우면서 뮤지션으로서의 큰 꿈을 꾸는 재즈바 알바생과
그 곳에 늘 외상을 달고 오는 단골 뮤지션, 이 둘 사이의 대화 형식이라는 틀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음악 이론서답게 '~다.' 형태의 설명문 조도 많이 나오지만,
독자로 하여금 재즈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가는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하면서
음악의 역사와 콩나물(음표) 속에 빠져들도록 유도하고 있다.
분명 만화 속 남자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음악가들이 있을 것이다.
TV 속에 나오는 메이저급 - 혹은 자본을 많이 끌어당기는 - 뮤지션들과는 정반대로
음지에서 힘들게 자신의 음악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음악가들 말이다.





'과연 히트곡의 조건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팝의 명곡들을 예시하고 있다.
내가 알고 또 좋아했던 곡들이 많이 등장하여 정말이지 반가웠다.
발매 당시 가사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가사가 아름다워서 영어 교과서에도 실린 바 있는 사이먼 & 가펑클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오즈의 마법사에 삽입된 오버 더 레인보우 등이 그렇다.
특히, 내게 감동을 준 바 있는 세 곡이 전부 음악적으로 AABA 형식이라는데 새삼 놀라게 되었다.
Over the Rainbow,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 - 최근 노래방에서 불렀다. -
휘트니 휴스턴의 Saving All My Love For You는 멜로디가 심금을 울려서 정말 정말 좋아하고 자주 부르는데, 와우!
"이제부터 나는 AABA 스타일의 팝송을 좋아한다." 라고 말하면 되는 건가?
빌보드 선정 연대별 팝 히트곡을 보면서도 반갑기 그지 없었다.
이제는 종영된 미국 드라마 [Glee]에서 원곡 가수인 올리비아 뉴튼 존이 직접 나와 부른 Physical이 1982년 대표곡,
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는 머라이어 캐리의 Love Takes Time이 1990년, Fantasy가 1995년 히트곡,
한 때 우리나라에도 R&B 열풍을 일으켰던 보이즈투맨의 End of the Road가 1992년,
나의 롤모델이었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Come On Over Baby가 2000년,
듣고 있으면 춤추게 하는 퍼렐 윌리엄스의 Happy가 2014년 대표곡으로 제시된다.






그나마 대중들에게 친숙한 부분은 팝의 역사나 예시로 나오는 가수와 곡들뿐,
나머지는 작곡, 작사, 실용음악 이론 덩어리라 어려울 게 분명하다.
물론 나는 어릴 적 클래식 피아노를 9년 배웠고, 성인이 된 후 재즈피아노를 배웠기에 다시 한 번 공부하는 기분이 든다.
대학교 학부 시절 음악 미학 시간에 배웠던 중세 유럽 수도승들의 그레고리안 찬트가 나오는가 하면,
재즈피아노의 고전이자 기본인 곡 Autumn Leaves의 악보가 나온다.
스케일, CM, Cm, CM7 등.. 아아아.. 바로 올해 1월에 노트에 적고 디지털피아노로 쳤던 내용들이 다 나온다.
이 책에 언급되었듯 '모든 공부의 쌩기본은 외우는 거!' 다.
이 책으로 실용음악 이론을 다 알 수도 없고, 아주 자세히 적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시험 보기에도 적합하지 않지만,
적어도 음악을 전공하려는 초심자에게 주기에는 좋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음악에 관한 천재적 능력을 타고나서 감각적으로 작곡하거나 연주할 수 있지만,
이론에는 무지한 사람에게 주어도 좋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니 실용음악학원에서 몇 달에 걸쳐 배운 내용을 한 번에 몰아쳐서 배운 느낌이 든다.
마치 고등학교 입학 전 미리 보는 국사 만화책을 읽은 것 같달까?
아무튼 되도록이면 친근하며 쉽게 음악을 알려주려고 한 두 분의 노고에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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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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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오만과편견] 이라는 수식어는 마치 '제2의 보아' 나 '제2의 김연아' 처럼 흔하게 들어서 때론 질릴 정도이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 남자 주인공 이름이 소설 [오만관편견] 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아시(Darcy)였다는 거! - , 뮤지컬 [아이 러브 유 비코즈] 등이 대표적이고, 패러디물인 소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가 나와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주드데브루의 할리퀸로맨스 [파이와공작새] 가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서머힐이라는 마을에서 연극 '오만과 편견' 을 올리기 위해 배우들을 뽑는 과정을 그린 내용인데, 실제 주인공들의 성격 묘사가 원작 소설 오만과편견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가벼워서 읽기가 두렵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 케이시 레딕은 뛰어난 셰프라서 그녀의 요리가 종종 등장하므로, 읽는 내내 구미가 당기게 된다.
한 편, 현재 다음 1boon에서 동일한 소설 내용이 웹툰으로도 연재되고 있으므로 함께 보면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할리퀸로맨스란 무엇인가?
할리퀸 출판사에서 나온 1980년대 출간된 중편의 로맨스 시리즈물에서 유래하였으며, 벗어나지않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 남성의 육체를 여성의 입장에서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한다든가 비슷한 장르의 라이트 노벨이나 칙릿보다는 좀 더 에로틱한 장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고집불통 육체파 남성과 말괄량이 여성이 만나 에로틱한 사랑을 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 주드데브루의 영미소설 [파이와 공작새] 에서도 본 거 같지 않은가?

{워후! 가슴근육 좀 봐. 복근은 또 어떻고? 옆모습의 곡선이 끝내줬다. 허벅지가 꼭 동계올림픽 스케이터를 보는 것 같네.} - p. 9

너무나 노골적으로 생각하는 케이시의 머릿 속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처음부터 제시되어 깜짝 놀랐다. 작가는 이러이러한 틀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맞게 내용을 펼쳐나가는 걸까?


케이시에게는 뛰어난 미모를 지녔지만 한 성격하는 자매 지젤이 있다. 그녀는 자신을 마치 보모처럼 돌봐주고 심리를 꿰뚫어보는 올리비아와 늘 대화를 나누고 상담을 받으며, 끔찍하게 싫지만 점점 이끌리는 남자인 테이트가 있다. 테이트의 친구인 잭은 케이시와 처음부터 영혼의 친구인 듯 마음이 잘 맞으며, 천재적인(?) 사기꾼인 데블린은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케이시를 비롯하여 로리 등 여러명의 여자들을 속이고 다닌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마구 웃었다. 척 봐도 둘 사이에는 무언가가 일어날 리 없다는 걸 이미 양쪽 다알고 있었다. 잭이 그렇게 멋있는 미소를 지어 주었건만 케이시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고, 그건 잭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좋은 친구로 지낼 운명이었다.} - p. 35

너무나도 [오만과편견] 을 그대로 들고와 서머힐이라는 마을에 옮겨놔서 책을 읽다보면 계속하여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는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한 때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에 빠진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중간 중간 요리 레시피가 등장하는 맛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했는데, 그 예로 [프랑스 요리 살인사건] 과 [퍼지 컵케이스 살인사건] 이 있다. 아주 잔인한 사건 묘사보다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사건과 달콤한 냄새를 솔솔 풍기는 요리 장면이 나오는 소설들이다. 로맨스소설 [파이와 공작새] 에서도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케이시의 파이가 수시로 등장한다.

{천을 확 걷어 내자 서로 다른 모양으로 장식된 여섯 개의 파이가 보였다. 어떻게 이토록 예술적으로 잘 만들었을까! 그중 하나는 머랭으로 장식했는데, 머랭이 어찌나 폭신해 보이던지 베개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어떤 파이는 여섯 가지 과일로 무늬를 만들어 놓았다. 또 다른 파이는 크림에 복숭아를 얹은 다음 구웠고, 자그마한 나뭇잎 무늬를 잔뜩 그려 놓은 파이도 있었다. 마지막 파이는 살구에다 아몬드 슬라이스를 넣고 크러스트를 돌돌 말아 구운 것이었다.} - p. 74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테이트는 처음부터 케이시를 싫어하지 않았다. 유아를 연상시키는 잠옷을 입은 그녀를 보고도 몸매를 감상했으며, 짧은 순간 그녀의 가슴이 자연산이라는 것까지 캐치하는 꼼꼼함을 보였다. 반면, 케이시는 그의 육체적인 매력에는 끌렸지만, 스타병(?)에 사로잡힌 콧대 높은 성격과 오만함을 싫어했다. 하지만 둘은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견뎌내고 결국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된다.
정말이지 가볍게 읽기 좋은 로맨스소설로서, 현실에 찌들어있거나 업무에 지쳐 있을 때 잠들기 전 머리맡에 두고 넘기면 좋을 거라 생각한다. 읽다보면 살짝 오글거리기도 할 거고, 어쩌면 스크린 속 연기 못하는 배우가 떠오르기도 한다. 심오하거나 의미있는 작품에 대한 잣대를 내려놓고 읽는다면 킬링 타임용으로 아주 훌륭하다. 햇빛 따뜻한 바닷가로 일주일간 여행 가서 하루 정도는 호텔에서 쉬면서 읽으면 완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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