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천 년을 사는 아이들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는 몇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어찌 보면 좁은 취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탓도 있겠지만, 그냥 읽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소년이나 소녀, 즉 청소년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꿈과 성장기가 주가 되는 이야기.
그러다 보면 장르는 추리가 될 수도 있고,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도 있으며 판타지가 될 수도 있다.
이번에 읽게 된 소설이 판타지에 속하는 것으로서, 무려 북유럽 중 노르웨이에서 온 이야기이다.
그간 영미 문화권이나 프랑스 소설까지는 많이 읽어봤고 스웨덴 소설까지도 접했지만, 노르웨이는..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없다.
그렇기에 더욱 뜻깊은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 이름 발음법마저 생소하다. - 의 소설 변신_천 년을 사는 아이들
표지에서부터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두 소년이 서로 같이, 그러나 엇갈린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한 명은 위를 한 명은 정면을.
소설 플롯 소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한 명은 주인공 격인 아르투르를,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파올로가 아닐까.
둘은 서로 비슷한 운명 공동체로서 환생을 겪고 있지만, 각자 다른 길을 가려한다.
바로 그 시점에서 이 소설이 출발하고있다.






[반지의 제왕] 처럼 아예 다른 세계관과 캐릭터를 설정하는 판타지 소설이 있다.
그런 류는 내게 잘 맞지 않아서 읽기가 힘들고 공감이 잘 가지 않는데 반해,
소설 변신_천 년을 사는 아이들 은 배경이 학교와 가정이고, 그 안에서 그럴 법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여졌기때문에
- 작가가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그 중에서도 특히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궁금해하고 추상적인 관념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죽음이 어떤 건지 알고 심지어 이미 여러번 경험했다면 어떨까?
가히 좋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주인공 아르투르 역시 그러하다.

그는 처음 보는 낯선 부모님을 대하자마자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환생을 경험했다는 기쁨, 그리고 이전 삶에서 모든 것을 함께했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 때문이었다.

p. 11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이 죽는 걸 보는 것보다 그들이 내가 사라진 걸 알게 된 게 더 다행인 걸까.
적어도 나는 누군가 죽는 걸 보지 않아서 아픔이 덜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3년 동안 함께 한 사람들과 갑자기 멀어지게 되고, 낯선 이들을 만나게 되는 삶, 그리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는 삶.
이 쯤 되면 환생은 축복이 아닌 저주라고 할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어 사라지지만,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수천 년의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다.

p. 50






421명의 선택된 아이들이 열네살 생일이 되는 날 아침 다시 환생한다는 프레임 자체가 이 소설이 판타지라는 걸 알리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가장 환상적이고 또 동시에 철학적이기도 한 부분은 수호자와 아르투르의 만남에서 드러난다.
아르투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타나는 - 물론 뒤에 가서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 수호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하지만
수호자가 대답하는 건 더 큰 질문을 만들 뿐이다.
어떠한 물음에도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수호자의 애매한 답변과 그들의 대화를 보고 있자면
철학자와 비(非)철학자간의 대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네가 생각하는 만큼 오래되진 않았어. 이곳에서의 시간은 네가 사는 세상에서의 시간과 다르니까."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나요?"
"우선 내가 왜 너를 여기에 데려왔는지부터 설명해줄게."

p. 159



수호자가 하는 말은 동그라미같아서 질문을 질문으로 되받아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며 알려줄 수 없는 일이라고만 한다.
읽다보면 어느새 답답해져서 만약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가장 졸린 부분일 수도 있겠다.
물론 아르투르의 존재 이유와 환생의 서클이 끊어진 이유도 알게 되지만, 대부분의 말은 아리송할 뿐이다.
역시 심리학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지식과 역량에 내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까.






변신은 판타지이기도 하면서 Sci-fi, 즉 공상과학소설이기도 하다.
현대기술이 꽤나 등장하고 있어서 IT 기술에 익숙한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대목들이 많다.
선택된 아이들 중 하나인 레이븐과 아르투르는 스카이프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가끔 일반용 채팅을 위하여 MSN 메신저를 이용할 때도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PC용 카카오톡이나 라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가하면 선택된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네트워크에서 커뮤티니를 형성하여 소통하고 있다.
네트워크의 고문 역할은 인터넷 동호회의 회장과 같은 역할이랄까.

하지만 기술의 집약 및 핵심은 아르투르와 함께 중요성이 더해만가는 너새니얼에게서 보인다.
너새니얼은 위성을 이용하여 지구의 어느 지역에 몇 명이 사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프로젝트를 연구 중이다.
만약 실행될 경우, 분명 개인 사생활 침해의 이슈가 도마 위에 오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의 목적은 인구조사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게 정확한 가운데, 결과값은 421명뿐이다.
그리고 내려진 결론은 421명만 두드러진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더 강한 뇌파를 보낸다는 것이다.
매우 그럴 법하지 않은가?






판타지, 공상과학, 이제 남은 마지막 한가지는 다름아닌 블록버스터 액션이다.
여기에 영화로 갖춰질 퍼즐이 맞춰진 셈이다.
파올로와 메르세르, 아르투르와 너새니얼의 액션 장면, 핵폭탄으로 화산을 폭발시키려는 파올로의 음모,
내서니엘의 가족을 빌미로 협박하는 모습까지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그것을 꼭 닮아있다.

총알은 메르세르의 가슴을 명중했다. 붉은 핏방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불그스름한 구름처럼 공기 중에서 증발해버렸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권총을 치켜들었다.

p. 495



이만하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어도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한계나 타겟층이 명확하므로 조금 더 인기를 끌기 위해선 역시 헐리우드 자본이 투입되는 게 좋을 거 같다.
아니면 오로지 노르웨이만의 자본으로 만들어서 다양성 영화로 선보여도 좋을 듯 싶다.






600페이지가 넘는 다소 두꺼운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3시간만에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지루하지도 않고 박진감있게 읽힌다.
미풍이 살랑이는 봄, 가볍게 읽을 외국소설을 원한다면 변신_천 년을 사는 아이들 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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