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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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오만과편견] 이라는 수식어는 마치 '제2의 보아' 나 '제2의 김연아' 처럼 흔하게 들어서 때론 질릴 정도이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 남자 주인공 이름이 소설 [오만관편견] 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아시(Darcy)였다는 거! - , 뮤지컬 [아이 러브 유 비코즈] 등이 대표적이고, 패러디물인 소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가 나와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주드데브루의 할리퀸로맨스 [파이와공작새] 가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서머힐이라는 마을에서 연극 '오만과 편견' 을 올리기 위해 배우들을 뽑는 과정을 그린 내용인데, 실제 주인공들의 성격 묘사가 원작 소설 오만과편견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가벼워서 읽기가 두렵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 케이시 레딕은 뛰어난 셰프라서 그녀의 요리가 종종 등장하므로, 읽는 내내 구미가 당기게 된다.
한 편, 현재 다음 1boon에서 동일한 소설 내용이 웹툰으로도 연재되고 있으므로 함께 보면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할리퀸로맨스란 무엇인가?
할리퀸 출판사에서 나온 1980년대 출간된 중편의 로맨스 시리즈물에서 유래하였으며, 벗어나지않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 남성의 육체를 여성의 입장에서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한다든가 비슷한 장르의 라이트 노벨이나 칙릿보다는 좀 더 에로틱한 장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고집불통 육체파 남성과 말괄량이 여성이 만나 에로틱한 사랑을 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 주드데브루의 영미소설 [파이와 공작새] 에서도 본 거 같지 않은가?

{워후! 가슴근육 좀 봐. 복근은 또 어떻고? 옆모습의 곡선이 끝내줬다. 허벅지가 꼭 동계올림픽 스케이터를 보는 것 같네.} - p. 9

너무나 노골적으로 생각하는 케이시의 머릿 속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처음부터 제시되어 깜짝 놀랐다. 작가는 이러이러한 틀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맞게 내용을 펼쳐나가는 걸까?


케이시에게는 뛰어난 미모를 지녔지만 한 성격하는 자매 지젤이 있다. 그녀는 자신을 마치 보모처럼 돌봐주고 심리를 꿰뚫어보는 올리비아와 늘 대화를 나누고 상담을 받으며, 끔찍하게 싫지만 점점 이끌리는 남자인 테이트가 있다. 테이트의 친구인 잭은 케이시와 처음부터 영혼의 친구인 듯 마음이 잘 맞으며, 천재적인(?) 사기꾼인 데블린은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케이시를 비롯하여 로리 등 여러명의 여자들을 속이고 다닌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마구 웃었다. 척 봐도 둘 사이에는 무언가가 일어날 리 없다는 걸 이미 양쪽 다알고 있었다. 잭이 그렇게 멋있는 미소를 지어 주었건만 케이시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고, 그건 잭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좋은 친구로 지낼 운명이었다.} - p. 35

너무나도 [오만과편견] 을 그대로 들고와 서머힐이라는 마을에 옮겨놔서 책을 읽다보면 계속하여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는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한 때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에 빠진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중간 중간 요리 레시피가 등장하는 맛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했는데, 그 예로 [프랑스 요리 살인사건] 과 [퍼지 컵케이스 살인사건] 이 있다. 아주 잔인한 사건 묘사보다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사건과 달콤한 냄새를 솔솔 풍기는 요리 장면이 나오는 소설들이다. 로맨스소설 [파이와 공작새] 에서도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케이시의 파이가 수시로 등장한다.

{천을 확 걷어 내자 서로 다른 모양으로 장식된 여섯 개의 파이가 보였다. 어떻게 이토록 예술적으로 잘 만들었을까! 그중 하나는 머랭으로 장식했는데, 머랭이 어찌나 폭신해 보이던지 베개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어떤 파이는 여섯 가지 과일로 무늬를 만들어 놓았다. 또 다른 파이는 크림에 복숭아를 얹은 다음 구웠고, 자그마한 나뭇잎 무늬를 잔뜩 그려 놓은 파이도 있었다. 마지막 파이는 살구에다 아몬드 슬라이스를 넣고 크러스트를 돌돌 말아 구운 것이었다.} - p. 74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테이트는 처음부터 케이시를 싫어하지 않았다. 유아를 연상시키는 잠옷을 입은 그녀를 보고도 몸매를 감상했으며, 짧은 순간 그녀의 가슴이 자연산이라는 것까지 캐치하는 꼼꼼함을 보였다. 반면, 케이시는 그의 육체적인 매력에는 끌렸지만, 스타병(?)에 사로잡힌 콧대 높은 성격과 오만함을 싫어했다. 하지만 둘은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견뎌내고 결국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된다.
정말이지 가볍게 읽기 좋은 로맨스소설로서, 현실에 찌들어있거나 업무에 지쳐 있을 때 잠들기 전 머리맡에 두고 넘기면 좋을 거라 생각한다. 읽다보면 살짝 오글거리기도 할 거고, 어쩌면 스크린 속 연기 못하는 배우가 떠오르기도 한다. 심오하거나 의미있는 작품에 대한 잣대를 내려놓고 읽는다면 킬링 타임용으로 아주 훌륭하다. 햇빛 따뜻한 바닷가로 일주일간 여행 가서 하루 정도는 호텔에서 쉬면서 읽으면 완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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