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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그러니 대기가 오염될 일도 없다. 핵에너지는 전혀 필요 없다. 석탄과 석유 또한 의미 없다. 태양열과 풍력발전, 심지어 수력발전은 갑자기 고리타분하고 별 필요 없는 대체에너지가 되어버려서, 현대의 문물을 따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 특이한 인간들 외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p. 13
엘란 마스타이가 그린 미래는 과연 유토피아일까?
일단 에너지를 무한정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라이오넬 구트라이더는 - 의도한 것 같진 않지만 - 시범적인 초연에서 엄청난 구트라이더 엔진의 효과적 시작을 맛보았다.
무한하고 강력하면서 친환경적인 이 에너지는 주인공 톰 배런이 모든 것을 망치기 전까진 완벽했다.
그동안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 이야기를 책이나 영화로 다양하게 접했지만,
이토록 완전한 에너지로 돌아가는 미래는 처음이다.
요새 우리나라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말이 많다.
사실 말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게, 80년에 걸친 슬로우 정책이고,
그 전까지는 - 적어도 가타부타 말이 많은 이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 원자력 발전을 보유한 국가이다.
원자력과 수자력발전을 둘러싼 갖가지 좋지 못한 소문과 말들을 듣고 보고 있자면,
과연 우리나라가 정말로 전력을 포함한 에너지가 부족한가, 아니면 누군가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게다가 올 여름은 110년만의 더위라 다들 에어컨 전기세로 전전긍긍이다.
산업용전기세는 그렇게나 싼 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읽은 SF소설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속 우리가 살 뻔한 미래는 유토피아 자체이다.
물론 그 안에도 갖가지 문제가 있고 그들만의 이슈가 있겠지만, 적어도 전세계적으로 난제인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가.
현재 중국이 선두 주자로 개발하고 있는 태양열,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조차 필요 없는 미래라니.
24시간 에어컨 쌩쌩, 난방기 쌩쌩 틀어도 되고, 정전 없는 아파트와 중간에 갑자기 서지 않는 지하철.
정말로 멋지다.
무언가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면 그 기술 때문에 일어나게 될 사고 역시 발명한다는 의미다.
자동차를 발명한 사람은 교통사고를 발명한 셈이다.
p. 123 솔직히 3차원 교통체증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호버카가 멋지건 뭐건 간에, 어느 거리를 가도 20층 높이는 날아야 교통 체증이 완화된다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
p. 30
읽으면서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사고를 낳는다는 거.
무결한 기술과 혁신은 없나보다.
아무리 선의를 가진 인간이 실용적인 무언가를 만들지언정, 각기 다른 머리는 각기 다른 사용법을 익힌다.
그러려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다를 수가 있다.
컴퓨터의 발명과 개발의 역사는 놀라움의 그것이었다.
전세계가 컴퓨터 - 그리고 다른 통신, 교통수단과 함께 - 로 인해 지구촌이 되고,
실시간으로 어디서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알 수 있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올린 글을 읽을 수도, 그 자와 소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함께 해킹과 바이러스가 생겨났다.
이는 컴퓨터라는 기술, 혹은 도구의 문제인가, 아니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인가.
컴퓨터는 죄가 없다고 해야할까, 일말의 꺼리를 만들어서 탓할 여지가 있다고 해야할까.
하고 싶은 말은 누구 탓하지 말고 기술로 인한 편리함을 얻은 만큼,
그로 인해 발생한 사고나 문제도 우리 스스로 고쳐나가고 다시는 생기지않도록 없애려 노력해야한다는 거다.
너무 속 편한 소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말고 더 나은 방안이 있을까?
일상생활의 평범하고 진부한 일들은 전부 기술이 도맡아 처리한다. 식료품점이나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같은 것은 없다. 길모퉁이에 있는 쓰레기통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나 카센터에서 공구 같은 것을 가지고 차를 수리하는 가술자도 없다.
p. 31 내가 온 세상에는 하찮은 범죄밖에 일어나지 않아서, 경찰은 보험 처리 업무까지 보았다.
p. 52
내가 궁금해했던 미래 세상을 참으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는 작가이다.
공중의 3차원 교통체증이나 미래 직업군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장면을 읽으면, 직접 호버카를 몰고 날아다니는 기분이 든다.
전혀 새로운 세계관과 전에 없던 캐릭터를 창조한 판타지소설보다는
기술과 과학이 상상력과 결합하여 그럴 듯한 미래를 그려내는 이런 공상과학 소설에 몰입이 잘 된다.
과연 미래의 범죄율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까?
톰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에서처럼 범죄를 미리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다면 경찰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영미소설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에서 보여주는 경찰의 일은 보험 업무이다.
읽으면서 작은 웃음이 터져나온 부분이다.
미화원, 가게 아르바이트생 대신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대부분 근무하는 미래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적어도 구직난은 없는 것인가?
적정 수입을 받고 여유있게 살아가며 범법 행위를 하지 않는 직업이라면 일단 환영이다.
그렇지않아도 한국의 사법농단 이슈는 국민들로 하여금
"재판 판결은 정의롭지 못하고 편파적이며 정치적인 판사 대신 A.I가 해야 한다." 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하고 있다.
A.I와 무한정 에너지는 서로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전혀 다른 분야라고 보지는 않는다.
인생이란 실패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p. 95
엘란 마스타이의 SF소설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한 대목이다.
평생동안 실패 한 번 없이 성공만 하며 살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완전하고 흠 없는 존재가 아니다.
크고 작은 실수를 해 나가며 그를 얼마나 잘 처리하고 받아들이냐에따라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초, 중학교 당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학생이
특목고에 들어가 전교도 아니고 반에서 중위권에 들면서 힘들어하고 못 견디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이 학생은 실패한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효과적인 학습 방법을 찾아 최대의 결과를 얻도록 해야 한다.
내신 성적은 도저히 안되겠다면, 전국 대회에서 수상하거나 어학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등 다른 입시 전형을 모색할 수도 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힘든 기억은 잊으려고 노력해왔다.
여기에서 그치면 회피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가 즐거워지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예컨대 1차 지필을 망치면 좌절은 며칠 안에 끝내고 열심히 공부하여 2차 지필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는다거나,
한 친구와 절교를 하면, 인간관계에 회의를 가지고 다 끊어버리는 대신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내가 잘못한 점을 곰곰히 생각하고, 내가 괜찮은 점도 떠올린 후 다시금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갔다.
실수도 실패도 내 인생을 가로막지 못한다.
직선 대로 대신 꼬불꼬불한 오솔길일지라도 앞을 보고 - 그러나 종종 뒤를 돌아보면서 - 가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유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판타지소설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은 첨단 과학이 이루어낸 미래, 그 속에서 사는 한 명의 보잘것없는 인간, 모든 것을 망친 후 타임머신으로 어떻게든 되돌리려 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철학적인 사유와 재미를 동시에 지닌 SF소설이기에 이렇게 더운 날 읽으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