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그러니 대기가 오염될 일도 없다. 핵에너지는 전혀 필요 없다. 석탄과 석유 또한 의미 없다. 태양열과 풍력발전, 심지어 수력발전은 갑자기 고리타분하고 별 필요 없는 대체에너지가 되어버려서, 현대의 문물을 따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 특이한 인간들 외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p. 13





엘란 마스타이가 그린 미래는 과연 유토피아일까?
일단 에너지를 무한정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라이오넬 구트라이더는 - 의도한 것 같진 않지만 - 시범적인 초연에서 엄청난 구트라이더 엔진의 효과적 시작을 맛보았다.
무한하고 강력하면서 친환경적인 이 에너지는 주인공 톰 배런이 모든 것을 망치기 전까진 완벽했다.
그동안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 이야기를 책이나 영화로 다양하게 접했지만,
이토록 완전한 에너지로 돌아가는 미래는 처음이다.

요새 우리나라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말이 많다.
사실 말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게, 80년에 걸친 슬로우 정책이고,
그 전까지는 - 적어도 가타부타 말이 많은 이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 원자력 발전을 보유한 국가이다.
원자력과 수자력발전을 둘러싼 갖가지 좋지 못한 소문과 말들을 듣고 보고 있자면,
과연 우리나라가 정말로 전력을 포함한 에너지가 부족한가, 아니면 누군가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게다가 올 여름은 110년만의 더위라 다들 에어컨 전기세로 전전긍긍이다.
산업용전기세는 그렇게나 싼 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읽은 SF소설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속 우리가 살 뻔한 미래는 유토피아 자체이다.
물론 그 안에도 갖가지 문제가 있고 그들만의 이슈가 있겠지만, 적어도 전세계적으로 난제인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가.
현재 중국이 선두 주자로 개발하고 있는 태양열,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조차 필요 없는 미래라니.
24시간 에어컨 쌩쌩, 난방기 쌩쌩 틀어도 되고, 정전 없는 아파트와 중간에 갑자기 서지 않는 지하철.
정말로 멋지다.

무언가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면 그 기술 때문에 일어나게 될 사고 역시 발명한다는 의미다.
자동차를 발명한 사람은 교통사고를 발명한 셈이다.

p. 123
솔직히 3차원 교통체증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호버카가 멋지건 뭐건 간에, 어느 거리를 가도 20층 높이는 날아야 교통 체증이 완화된다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

p. 30




읽으면서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사고를 낳는다는 거.
무결한 기술과 혁신은 없나보다.
아무리 선의를 가진 인간이 실용적인 무언가를 만들지언정, 각기 다른 머리는 각기 다른 사용법을 익힌다.
그러려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다를 수가 있다.

컴퓨터의 발명과 개발의 역사는 놀라움의 그것이었다.
전세계가 컴퓨터 - 그리고 다른 통신, 교통수단과 함께 - 로 인해 지구촌이 되고,
실시간으로 어디서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알 수 있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올린 글을 읽을 수도, 그 자와 소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함께 해킹과 바이러스가 생겨났다.
이는 컴퓨터라는 기술, 혹은 도구의 문제인가, 아니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인가.
컴퓨터는 죄가 없다고 해야할까, 일말의 꺼리를 만들어서 탓할 여지가 있다고 해야할까.

하고 싶은 말은 누구 탓하지 말고 기술로 인한 편리함을 얻은 만큼,
그로 인해 발생한 사고나 문제도 우리 스스로 고쳐나가고 다시는 생기지않도록 없애려 노력해야한다는 거다.
너무 속 편한 소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말고 더 나은 방안이 있을까?

일상생활의 평범하고 진부한 일들은 전부 기술이 도맡아 처리한다. 식료품점이나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같은 것은 없다. 길모퉁이에 있는 쓰레기통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나 카센터에서 공구 같은 것을 가지고 차를 수리하는 가술자도 없다.

p. 31


내가 온 세상에는 하찮은 범죄밖에 일어나지 않아서, 경찰은 보험 처리 업무까지 보았다.

p. 52




내가 궁금해했던 미래 세상을 참으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는 작가이다.
공중의 3차원 교통체증이나 미래 직업군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장면을 읽으면, 직접 호버카를 몰고 날아다니는 기분이 든다.
전혀 새로운 세계관과 전에 없던 캐릭터를 창조한 판타지소설보다는
기술과 과학이 상상력과 결합하여 그럴 듯한 미래를 그려내는 이런 공상과학 소설에 몰입이 잘 된다.

과연 미래의 범죄율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까?
톰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에서처럼 범죄를 미리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다면 경찰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영미소설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에서 보여주는 경찰의 일은 보험 업무이다.
읽으면서 작은 웃음이 터져나온 부분이다.

미화원, 가게 아르바이트생 대신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대부분 근무하는 미래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적어도 구직난은 없는 것인가?
적정 수입을 받고 여유있게 살아가며 범법 행위를 하지 않는 직업이라면 일단 환영이다.
그렇지않아도 한국의 사법농단 이슈는 국민들로 하여금
"재판 판결은 정의롭지 못하고 편파적이며 정치적인 판사 대신 A.I가 해야 한다." 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하고 있다.
A.I와 무한정 에너지는 서로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전혀 다른 분야라고 보지는 않는다.

인생이란 실패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p. 95




엘란 마스타이의 SF소설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한 대목이다.
평생동안 실패 한 번 없이 성공만 하며 살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완전하고 흠 없는 존재가 아니다.
크고 작은 실수를 해 나가며 그를 얼마나 잘 처리하고 받아들이냐에따라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초, 중학교 당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학생이
특목고에 들어가 전교도 아니고 반에서 중위권에 들면서 힘들어하고 못 견디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이 학생은 실패한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효과적인 학습 방법을 찾아 최대의 결과를 얻도록 해야 한다.
내신 성적은 도저히 안되겠다면, 전국 대회에서 수상하거나 어학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등 다른 입시 전형을 모색할 수도 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힘든 기억은 잊으려고 노력해왔다.
여기에서 그치면 회피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가 즐거워지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예컨대 1차 지필을 망치면 좌절은 며칠 안에 끝내고 열심히 공부하여 2차 지필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는다거나,
한 친구와 절교를 하면, 인간관계에 회의를 가지고 다 끊어버리는 대신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내가 잘못한 점을 곰곰히 생각하고, 내가 괜찮은 점도 떠올린 후 다시금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갔다.

실수도 실패도 내 인생을 가로막지 못한다.
직선 대로 대신 꼬불꼬불한 오솔길일지라도 앞을 보고 - 그러나 종종 뒤를 돌아보면서 - 가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유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판타지소설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은 첨단 과학이 이루어낸 미래, 그 속에서 사는 한 명의 보잘것없는 인간, 모든 것을 망친 후 타임머신으로 어떻게든 되돌리려 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철학적인 사유와 재미를 동시에 지닌 SF소설이기에 이렇게 더운 날 읽으면 좋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로토피아 -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성차별과 섹스 파티를 폭로하다
에밀리 창 지음, 김정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가 주변에 있을 때마다 남학생들은 눈에 띄게 불편해하며 안절부절못했고 심지어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고 했다. 행여 대화를 시도하는 남학생이 있어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기 일쑤였다.

p.44
실리콘밸리의 많은 유명 인사들 사이에는 독특한 공통점이 있다. 이성과의 접촉이 없는 외로운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모태솔로였다.  (중 략) 즉 청소년기에 성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해 뒤늦게 이런 욕구를 채우고자 무분별하게 성에 탐닉하는 것이다. p. 348



 Nerd, Jerk.
학창 시절에는 은근히 따돌림 받던 컴퓨터에 빠진 남학생의 모습은 미국 드라마나 하이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여자친구는 커녕 친구들도 별로 없이 무시당했던 이들은
실리콘밸리에 가서 창업 신화를 이루고 부를 이루고 권력을 얻으며 칭송의 대상이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컴퓨터와 일, 그리고 돈이 있는 곳에서 이제 하나만 있으면 완벽하다.
여자.
나를 더욱 돋보이게 할 여성, 혹은 성적 욕구를 채워줄 여성을 찾는다.
실리콘밸리의 젊은 인사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그 자리에 반드시 성적으로 매력있는 여성들이 다수 참석하도록 한다.
돈을 쫓는 많은 여성들이 CEO, 혹은 벤처 창업가들과 잠자리를 갖고 한 몫 챙기기 위해 온다.
단순히 사교적 모임인 줄로만 알았던 그 자리는 매춘의 현장이다.
성을 사고 파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당연시하는 돈과 섹스와 권력이 난무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러한 정신 상태를 간직한 채 다음날 실리콘밸리로 출근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기업에나 남성적인 행동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있어요.

p. 74
살인적인 근무 시간, 폭음, 무모한 도박,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클럽 이런 것들은 경험보다 패기 넘치는 젊음과 총명함에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p. 75
그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성미가 깐깐하고 팀플레이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들과 친해지고 유대감을 쌓는 시간을 놓칠 위험이 있고, 그리하여 승진과 업무평가 같은 사내 정치적인 측면에서 개인적인 불이익을 입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참석해도 문제가 있다. 진중하지 못하고 가벼운 사람으로 여기고 심지어 성적인 대상이 되거나 홈스의 경우처럼 성추행을 당할 위험이 있다. p. 223




남성 위주의 술이 잠식한 회식 문화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다.
실제로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에게 힘든 점이 무엇인지 질문하면 하나같이 회식문화라고 답한다.
심지어 그들은 남자인데도 말이다!
많은 서양 문화권에서 퇴근 후 저녁 시간은 오롯이 가족과 보내는 때이다.

그런데 실리콘밸리는 예외인가보다.
회식 문화가 대다수의 우리나라 회사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넘어서기까지한다.
폭음이나 도박, 스트립 클럽은 대개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문화이다.
이를 빌미로 여성이 가면 분위기를 흐린다고 일부러 빼는 소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간혹 여성이 함께 가게 되면, 직장 동료인 여성과 업소 여성을 구분하지 못하여 마구 성추행을 하기도 한다.
이 때, 난감한 건 여성 CEO들이다.
그녀들은 이렇게 난잡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비즈니스에 빠질 수도, 그렇다고 낄 수도 없다.
마치 골프를 통해, 룸살롱에서, 요정에서 중요 사건이 일어나고 계약이 성사되는 우리나라 기업들을 보는 듯하다.

나는 다행인지 여성들의 성비가 높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해도 회식장소는 민주적 의견 수렴보다는 상사의 뜻과 의지에 따라 정해진다.
설사 회식 장소를 어디로 정할 지 투표를 했을지 언정, 최종 결정권자인 상사에 의해 결과가 한순간에 뒤바뀐다.
그나마 회식 후 2차로 룸살롱이나 노래타운을 가지 않아서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다.
만약 그런 곳에 간다 했으면, 눈 밖에 나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회식에 불참했을 것이다.

'힘 있는 사람들이 여성에게 무언가를 약속하면서 자신과 관계를 맺도록 위력을 앞세워 강요하는 행위'를 포함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갑질 성추행이다.

p. 228
그들의 불륜 관계가 가끔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이뤄졌고, 막상 세상에 드러났을 때도 회사는 힘 있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게 인사이동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p. 162




학창 시절 이성에 대한 결핍에 어마어마한 권력이 더해지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자신의 위치에서 여성은 한낱 성노리개로, 필요할 때마다 건드릴 수 있는 물건에 불과한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남성들 속에서 숨쉬고 있는 여성들은 거의 매일 성희롱의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힘들게 용기를 내어 성추행 당한 사실을 알려도, 회사에서는 묵인하거나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다.
이는 직장 내 불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사자 둘 모두에게 조치를 취해야하지만, 권력 밑에 있는 여성에게만 인사이동이 생긴다.

이런 일은 비단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각계에서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서글픈 현실이다.
대학교 교수와 제자, 연구실의 박사와 조교, 체육부의 감독과 학생 등 여러 갑을 관계에서 권력형 성추행이 일어난다.
이 때 대부분의 을인 여성들은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이 두려워 제대로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에밀리 창의 [브로토피아] 를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분위기가 자유롭다는 것만 빼고는 우리나라 직장들과 상태가 아주 비슷한데?'
여성 비하적 발언, 여성 혐오적 발언이나 성추행 실태가 친숙하리만치 꼭 닮았다.
그들만 자유로운 그들만의 캠퍼스인 브로토피아에서 여성들이 동등한 주체로 꼭 살아남길 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가끔씩 왜 데이지가 날 좋아하는지, 적어도 왜 날 참아 주는지 의아했다. 데이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조차도 내가 짜증 나기 때문이다.

p. 15



"넌 네 머릿속에만 갇혀 있다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지."

p. 155



너는 어릴 때부터 많은 걸 누려 왔지만, 네가 얼마나 편하게 사는지조차 몰라.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삶은 안중에도 없으니까."

p. 237




이 소설은 주인공인 -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캔버스이자 조연이고 누군가의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 에이자는 불안증이라는 정신질환을 가진 고등학생이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의사와 상담을 나눠야하고 약을 복용해야하며 수시로 갖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에이자는 고등학생 때 잠시 친하게 지냈던 나의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였는데, 주5일제를 시행하기 전 어느 토요일 방과 후 함께 그 애가 다니는 병원에 따라갔는데,
'정신과 의원' 이라고 적혀있던 글씨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는 정신과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흠이 되어 쉬쉬하던 상황이었기에 내게 조용히 알려주는 친구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그 이후에도 우리의 우정은 학년이 끝나기 전까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시간은 흘러 대학생이 되고 나서 친하게 지내던 다른 학과 친구가 있다.
매우 친해서 공강 시간이면 언제나 만나 문과대학 뒤편에 있는 나무 아래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절친이었던 그 아이는 4학년이 되고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카톡을 하다가 답이 없어서 나 역시도 연락을 끊게 되었다.
6개월이 지난 후 다시 연락한 친구는 자기가 정신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을 다니고 있다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사람들 많은데는 가기 힘들고, 예전처럼 일주일에 서너번씩 같이 만나 놀 수도 없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공황 증세 비스무리한 게 아니었을까?)
가끔씩 만나 이야기하는 걸로 충분하다며.
나는 친구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애가 편한 대로 했다.
친구가 먼저 연락해서야 만났고, 행여나 부담을 줄까봐 먼저 약속을 잡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친구는 어느 날 아무 일도 없고 화낼 일도 없는 상태에서 내게 극심한 히스테리를 부렸고,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그 이후 지금까지 헤어진 상태이다.

에이자의 정신 상태를 받아주고 감당하려 애쓰는 건 그녀의 어머니와 친구인 마이클, 그리고 데이지 뿐이다.
데이지는 데이비스의 아버지이자 현상수배가 걸린 범죄자를 찾겠다며 신상을 숨긴 채 기자에게서 정보를 캐내고,
직접 데이비스의 집에 가서 CCTV 자료들을 폰으로 받는 걸 주도하는 대담한 아이이다.
아마도 이런 '후리한'(?) 성격이 에이자의 까탈스러움을 견뎌낼 수 있었던 비결일 수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다.
아무리 정신이 아픈 친구라고는 해도, 매번 힘들게 하는 사람을 친구로 두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데이지가 참다못해 에이자에게 쌓인 울분을 분출하는 장면이 두어번 나오는데, 독자인 나로서는 격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사랑과 우정으로 받아주고 참기에는 너무한 친구가 있다.





"내가 너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빤히 보이겠다."

p. 114



"너무 좋아서 꿈만 같다는 생각."

"뭐가 너무 좋다는 거야?"

"너."

p. 121



나 - 그럼 뭐에 관심 있는데?

데이비스 - 너.

p. 179




이렇게 직진하는 연애 타입의 남자아이가 너무나 좋다.
얼마 전 후배가 내게 계산하면서 다가오는 찌질한 남자에 대해 상담을 구한 적이 있다.
으으...
남자고 여자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은 어쩔 수 없다치지만,
모든 상황을 조금씩 계산해서 카톡은 이틀에 한 번하고,
직접 고백은 하지 않으나 같은 동아리 아이들이 알게 해서 저절로 퍼뜨리고 하는 이런 식의 행동은 용납할 수가 없다.
사랑을 하라고 했지 누가 수학 계산을 하라고 했나.

그런 점에서 데이비스는 나의 이상형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적어도 간사해 보이지 않는다.
그의 행동과 말에 나도 솔직하게 반응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나의 연애를 반추해보건데, 사귀었던 남자들 중에서 이런 직진 노선은 세 명 정도 였던 것 같다.
달랑 세 명이라니.. 헛 산 건가...
한 번 사는 인생, 밀당은 접어두고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했으면 좋겠다.
누구든.







데이비스와 나는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심지어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고, 왜냐하면 함께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건 서로 마주보는 것보다 더 친밀한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p. 17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어린왕자] 의 작가 생텍쥐베리가 [바람과 모래와 별들] 에서 한 명글귀가 떠올랐다.
'서로 마주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 명언을 중학생 때 처음 접했을 때의 내 반응은
1단계 - 이해가 잘 안 간다. 2단계 - 곰곰히 생각 3단계 - 아하!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이었다.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만 봐도 행복한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어찌 그 사람을 보지 않고 둘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게 더 행복하단 말인가.
그건 어쩌면 굳이 서로를 보고 있지 않아도 마음을 느낄 수 있고, 같은 생각으로 같은 곳을 향해 가기 때문이 아닐까.

데이비스와 에이자는 케미가 잘 맞는 한쌍이다.
자기 아버지를 찾아 현상금을 받겠다는 '불순한' 의도로 왔을지도 모를 어릴 적 친구를 거리낌없이 받아주고는
자신의 생각을 과감없이 털어놓는다.
에이자가 키스할 때 느끼는 숨막히는 증상이나 여러가지 불안 증세를 말했을 때도
데이비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자의 몸과 그녀 자체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자꾸만 뒤로 한 걸음 물러서려고 했던 에이자도 데이비스의 진심을 알고 그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난 데이비스 피킷과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중 략)
인스타그램에도 같은 아이디로 만든 계정이 있었다.
(중 략)
그 애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은 트위터와 연동되어 있었고, 트위터에서는 nkogneato라는 아이디를 아직 팔로잉하고 있기에 클릭해 보니 데이비스의 트위터였다.
(중 략)
nkogneato 아이디로 검색해 보니 유튜브 프로필이 나왔는데
(중 략)
마침내 검색 결과를 한참 넘긴 끝에 블로그가 나왔다.

p. 67-69




이 소설은 한 소녀의 성장기이고 로맨스 소설이며, 동시에 소년 탐정물이기도 하다.
물론 그 중에서 소녀의 성장이 60%, 사랑이 30%를 차지하고 있어서 추리 부분은 겨우 10%에 불과하다.
정작 러셀 피킷을 찾는 장면이 많이 보이지 않아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내겐 의외로 데이비스를 추적하는 에이자의 모습이 재미있고 깊은 공감이 갔다.
소위 '싸이월드' 시절엔 좋아하는 아이의 싸이를 몰래 찾아보기위해 친구 아이디로 접속해보기도 했고,
로그아웃한 상태로 페이스북 이름을 검색하기도 했다.
에이자는 데이비스와 페이스북 친구를 한 후, 그의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에 블로그까지 알아버린다.
중간에 데이비스의 전 여자친구에 대한 정보도 알게 되고, 그가 써놓은 포스팅들을 통해 성향을 파악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추리, 탐정이라고 하기엔 우스운 장면이라 할 수 있고, 그 보다는 썸 타는 여학생이 흔히 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쩐지 예전의 나를 보는 거 같아서 재미있다.





[렛 잇 스노우] 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를 통해 본 작가 존 그린은 너무 극한 상황이나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렇다.
이 소설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역시 그렇다.
아쉽지만 잔잔하고 여운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차를 멈춘다. 여자를 그냥 놔두고 가서는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위험하게 차 밖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다. 생각해보니 내가 옆을 지나쳐 갈 때 여자는 그냥 나를 보기만 했던 것 같다. 다급하게 손을 흔들지도 않았고 도움이 필요한 표시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p. 15




무더운 여름날 짜증나는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아니면 장마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느끼기 위하여
읽기 좋은 스릴러소설이 여기에 있다.
B.A. 패리스의 소설 [브레이크 다운]이 그것으로,
제목인 Break Down은 '(차의) 고장' 과 주인공 여성인 캐시의 '신경쇠약', 이렇게 두가지 뜻을 지닌 중의적 타이틀이다.

남편 매튜가 그렇게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폭우 중 숲 속 지름길로 운전해가던 캐시는 멈춰선 차를 발견하고,
그 안의 여성과 눈이 마주친다.
차가 고장난 것 같으니 도와줘야할까, 아니면 그냥 지나칠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가운데 캐시의 선택은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이다.
다음날 차 안의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이는 캐시를 자책감과 신경쇠약으로 이끈다.

과연 캐시가 끊임없이 하는 후회처럼 내려서 어떤 상황인지 모를 여성을 도와줘야했을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캐시가 차 안에서 내리지 않은 이유에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혹시나 여자 뒤에서 누군가 숨어있다가 오히려 자신의 차를 빼앗거나 생명에 위협을 가한다면?
어차피 차 안의 여성도 딱히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제스쳐를 취하지 않지 않았는가?
설령 그랬다 할 지 언정, 캐시가 그녀를 꼭 도와줘야하는 의무도 법도 없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없다.
현대 사회는 서로가 매우 각박해져서 도와준 사람이 되려 원망을 사기도 하고,
기껏 도와줬더니 왜 진작 안 와서 죽게 했냐며 유가족에게 질타를 받기도 한다.
때론 선의로 도운 사람이 법적으로 처벌받기도 한다.
게다가 캐시는 여성이고 혼자다.
캐시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그녀 자신밖에 없다.
내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누구를 도울 수 있겠는가.

 




나에게도 엄마와 같은 일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가장 나쁜 건, 여행가방을 사자고 했던 기억은 물론이고 160파운드를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p. 35




도와줄 수도 있었던 여성을 그대로 지나쳤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캐시를 더욱 괴롭히는 건 어머니가 생전에 가졌던 치매 증상이 자신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제안했다는 친구의 생일 선물이며 친구들에게 받은 돈이, 이웃집 커플을 초대한 사실이, 친구 레이철과 만나기로 한 날이,
남편이 출장가기로 한 날짜가, 심지어 가전제품의 작동법이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증상이 억수같이 비가 오던 그 날 밤 전부터 나타났는지 아니면 후부터 심해졌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확실한 건 상태가 악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걸려오는 말없는 익명의 전화는 캐시의 상태를 부채질하여 이제 약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아직 30대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 앞에 펼쳐진 현실은 암울할 따름이다.
만약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상상하기조차 싫다.
하루 빨리 대형 병원에 가서 갖가지 검사를 받고 정확한 진단을 받은 다음 의사의 처방에 따를 것이다.
캐시처럼 자신의 상황을 부인하고 남편에게 민낯을 보이기 싫어하면서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피할 수 없이 닥친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최선의 방법으로 타개해 나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우체통에 편지를 넣을 때 누가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지난번 공중전화로 경찰에 신고할 때와 마찬가지 기분이다. 뒷목에 소름이 돋아서 몸을 휙 돌려 돌아본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p. 126




실체가 확실하지 않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로부터 보이지 않는 위협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매일 남편이 회사 간 시간만 골라서 걸려오는 말없는 전화, 집 주변을 서성이는 미지의 남성,
이 모든 상황은 한 사람을 미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최초의 원인이 폭우가 오던 날 밤인지, 단순 신경쇠약인지, 치매 때문인지, 아니면 약 때문인지 모호하다.
과연 주인공 캐시는 구체적인 누군가에 대항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힘들어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책장을 넘길 수록 증세가 심각해져만가는 그녀를 보면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상상으로 만들어낸 건지 곱씹게 된다.
점점 캐시가 지각한 세상과 그녀의 머릿 속 세상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독자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어떤 결말을 예상하든 후반부에 가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내가 그랬다.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려고 고민 해가면서 읽지 않는다면 더욱 시원한 한 방을 기대할 수 있다.
올 여름 스릴러소설은 [브레이크 다운] 을 강추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퍼펙트 마더
폴라 데일리 지음, 최필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케이트의 삶이 부럽다.
자, 됐지? 깨끗이 인정했어.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때는 조를 원망하기도 했다. 남편 때문에 내가 풀타임으로 일을 하게 됐으니. 이렇게 매일 진이 다 빠져 산다고.

p. 32




삼남매의 어머니, 동물보호소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원이자 누군가의 아내.
1인 3역으로 일하고 있는 리사는 몇 년째 삶이라는 굴레 안에서 지쳐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너무나 친근한 광경이다.

그녀에게 이웃집 케이트는 그야말로 '완벽한 어머니' 이다.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별장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편하게 살아가는 소위 '건물주' 인 케이트는 어머니로서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서,
아픈 아들인 퍼거스와 함께 병원에 갈 때도 놀이처럼 즐거운 분위기를 형성해내고,
딸 루신다도 바르고 훌륭한 소녀로 길러왔다.
마치 미국 어머니의 날 볼 수 있는 선물 중 하나인 컵에 적힌 'World's Best Mom'이라는 글귀가 사람으로 나타난 듯 하다.

그렇지 않아도 보잘것없이 살아간다고 느끼는 리사에게 있어서 케이트와의 비교는 치명적이다.
"남과 비교하지 말라." 라고 말하지만 눈과 귀를 닫은 채 살 수는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된다.

리사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은 건, 애초에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조와 결혼 한 거 아니었나?
택시기사라는 조의 직업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 한 거 아니었나?
일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드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아이 셋을 낳은 건 자기 자신, 혹은 부부의 선택이다.
누구를 탓 할 수도 없다.
DINK족으로 살 수도 있었으나, 아이를 가진 즐거움을 택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인생은 선택의 연속으로,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뒤따른다.
피할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즐기길 바란다.
남편인 조도 똑같이 힘들지 않은가.

언제나. 조는 말한다.
우리는 함께할 거야, 언제나.
내가 그의 아이들을 세상으로 밀어냈을 때 그가 했던 말이다. 과음 후 변기에 대고 속을 비워내는 내게 하는 말. 펍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우울해할 때, 조가 그 여자 대신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는 걸 확인할 때도. 언제나. 그 말이 내 우울함을 떨쳐낸다. 나를 바로잡아준다.

p. 54




그런 리사를 바로잡아주는 건 남편 조이다.
리사가 아내로서 해서는 안 될 치명적인 실수를 해도 이해해주고,
케이트 딸 루신다의 실종에 심한 자책감을 가졌을 때 곁에서 지켜준다.
택시 기사 일을 하느라 잠을 자지 못했는 데도 불구하고, 실종된 아이를 찾으러 다니며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물론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이, 변치 않을 것만 같던 남편이 변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리사가 남편 조를 믿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기 전이나 후나 변함없이 나에게 푹 빠진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이를 직시하고 살아간다면 지금처럼 우울한 생활이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

부인이, 혹은 남편이 불륜한 사실을 알고도 곁에 남아주는 반려자는 세상에 몇이나 될까?
자식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보는 눈 때문에 말고 순전히 상대방을 믿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별로 없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바람은 한 번 피는 게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그 후에도 계속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라면... 나라면... 한 번은 실수라고 봐주지 않을 것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하는 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나쁜 짓일 뿐이다.
그런데 폴라 데일리의 소설 [퍼펙트 마더] 에서는 총 두 건의 시기와 기간, 그리고 종류가 다른 불륜이 나타나고,
이에 대해 상대방 둘 다 받아들이고 이혼하려하지 않는다.
물론 불륜을 받아들이고 이를 타개하는 방식은 양 쪽에서 몹시 다르다.
한 쪽은 상대가 더 이상 불륜을 안 하고 내게 관심을 가지도록 각종 일을 벌이는 반면,
다른 한 쪽은 너무 사랑해서 헤어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때 알렉사가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우린 텔레비전을 안 봐요. 대신 책을 읽죠. 안 그래요?"
순간 방 안의 기류가 바뀌었다.

p. 81




과연 케이트의 언니 알렉사는 자랑하기 좋아하는 타입이다.
단순히 자신에 대해 자랑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남이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랑의 결과가 오히려 자신에게 안 좋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아니, 자신감 넘치는 그녀는 애초에 자신에게 좋지 않은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즐거운 홈파티를 소위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로 만들고도 의식하지 못하는 알렉사의 문제는 무엇일까?
타인의 기분에 대해 신경쓰지않고 공감도 하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사회 생활에 무리가 있을 수 있는 소시오패스인가?
자신이 문화연구 MA코스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은 그렇다치고,
굳이 신나게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TV 같은 건 안 본다는 투로 이야기해야 했을까?
그야말로 사회적 공감 능력 제로에 전혀 눈치가 없어서 인기 없는 타입이다.
정작 모든 게 완벽하다고 여기는 자신을 가장 가까운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바보이다.

그래도 이거저거 신경쓰고 주변 상황과 주위 사람을 돌보려고 하는 리사보다 살기 편한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내가 최고이고 남들은 다 나보다 아래라는 마음으로 사는 게 더 건강하고 더 오래, 더 즐겁게 사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리사, 케이트, 알렉사, 이 셋 중에서 가장 행복한 건 알렉사가 아닐까.
적어도 스스로에겐 퍼펙트 마더 이자 퍼펙트 와이프일테니.

 
 
퍼펙트 마더 가 되지 못해서 고분분투하며 사는 여성, 퍼펙트 마더 로 보이면서 사는 여성, 퍼펙트 마더 라고 생각하며 사는 여성.
이렇게 서로 다른 세 명의 여성들 사이에서 실종 사건이라는 중대 이벤트가 끼어든다.
루신다의 실종이 자신의 탓이라며 내내 자책하는 리사를 보면서 이 책을 읽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도 중간 중간 소아성애자의 관점에서 적힌 심리가 블랙 페이지 안에 묘사되어 있어서 환기시킬 수 있다.
과연 퍼펙트 마더 란 어떤 여성을 지칭하는 것일까?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후반부로 가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