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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폴라 데일리 지음, 최필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케이트의 삶이 부럽다.
자, 됐지? 깨끗이 인정했어.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때는 조를
원망하기도 했다. 남편 때문에 내가 풀타임으로 일을 하게 됐으니. 이렇게 매일 진이 다 빠져 산다고.
p. 32
삼남매의
어머니, 동물보호소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원이자 누군가의 아내.
1인 3역으로 일하고 있는 리사는 몇 년째
삶이라는 굴레 안에서 지쳐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너무나 친근한
광경이다.
그녀에게 이웃집 케이트는 그야말로 '완벽한 어머니'
이다.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별장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편하게 살아가는 소위 '건물주' 인 케이트는 어머니로서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서,
아픈 아들인 퍼거스와 함께 병원에 갈 때도 놀이처럼 즐거운 분위기를 형성해내고,
딸 루신다도 바르고 훌륭한 소녀로 길러왔다.
마치 미국
어머니의 날 볼 수 있는 선물 중 하나인 컵에 적힌 'World's Best Mom'이라는 글귀가 사람으로 나타난 듯
하다.
그렇지 않아도 보잘것없이 살아간다고 느끼는 리사에게 있어서 케이트와의 비교는
치명적이다.
"남과 비교하지 말라." 라고 말하지만 눈과 귀를 닫은 채 살 수는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된다.
리사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은 건, 애초에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조와 결혼
한 거 아니었나?
택시기사라는 조의 직업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 한 거
아니었나?
일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드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아이 셋을 낳은 건 자기 자신, 혹은 부부의 선택이다.
누구를 탓 할 수도
없다.
DINK족으로 살 수도 있었으나, 아이를 가진 즐거움을 택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인생은 선택의 연속으로,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뒤따른다.
피할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즐기길 바란다.
남편인 조도
똑같이 힘들지 않은가.
언제나. 조는 말한다.
우리는 함께할 거야, 언제나.
내가 그의
아이들을 세상으로 밀어냈을 때 그가 했던 말이다. 과음 후 변기에 대고 속을 비워내는 내게 하는 말. 펍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우울해할 때,
조가 그 여자 대신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는 걸 확인할 때도. 언제나. 그 말이 내 우울함을 떨쳐낸다. 나를 바로잡아준다.
p.
54
그런
리사를 바로잡아주는 건 남편 조이다.
리사가 아내로서 해서는 안 될 치명적인 실수를 해도 이해해주고,
케이트 딸 루신다의 실종에 심한 자책감을 가졌을 때 곁에서 지켜준다.
택시 기사 일을
하느라 잠을 자지 못했는 데도 불구하고, 실종된 아이를 찾으러 다니며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물론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이, 변치 않을 것만 같던 남편이 변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리사가 남편
조를 믿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기 전이나 후나 변함없이 나에게 푹 빠진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이를 직시하고 살아간다면 지금처럼 우울한 생활이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
부인이, 혹은 남편이 불륜한 사실을 알고도 곁에 남아주는 반려자는 세상에
몇이나 될까?
자식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보는 눈 때문에 말고 순전히 상대방을 믿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별로 없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바람은 한 번 피는 게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그 후에도 계속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라면... 나라면... 한 번은 실수라고 봐주지 않을
것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하는 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나쁜 짓일 뿐이다.
그런데
폴라 데일리의 소설 [퍼펙트
마더] 에서는 총 두 건의 시기와 기간, 그리고 종류가 다른 불륜이 나타나고,
이에
대해 상대방 둘 다 받아들이고 이혼하려하지 않는다.
물론 불륜을 받아들이고 이를 타개하는
방식은 양 쪽에서 몹시 다르다.
한 쪽은 상대가 더 이상 불륜을 안 하고 내게 관심을 가지도록 각종 일을 벌이는
반면,
다른 한 쪽은 너무 사랑해서 헤어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때 알렉사가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우린 텔레비전을 안 봐요. 대신 책을 읽죠. 안
그래요?"
순간 방 안의 기류가 바뀌었다.
p. 81
과연
케이트의 언니 알렉사는 자랑하기 좋아하는 타입이다.
단순히 자신에 대해 자랑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남이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랑의 결과가 오히려 자신에게 안 좋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아니, 자신감 넘치는 그녀는 애초에 자신에게 좋지 않은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즐거운 홈파티를 소위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로 만들고도 의식하지
못하는 알렉사의 문제는 무엇일까?
타인의 기분에 대해 신경쓰지않고 공감도 하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사회 생활에
무리가 있을 수 있는 소시오패스인가?
자신이 문화연구 MA코스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은 그렇다치고,
굳이 신나게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TV 같은 건 안 본다는 투로 이야기해야
했을까?
그야말로 사회적 공감 능력 제로에 전혀 눈치가 없어서 인기 없는
타입이다.
정작 모든 게 완벽하다고 여기는 자신을 가장 가까운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바보이다.
그래도 이거저거 신경쓰고 주변
상황과 주위 사람을 돌보려고 하는 리사보다 살기 편한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내가 최고이고 남들은
다 나보다 아래라는 마음으로 사는 게 더 건강하고 더 오래, 더 즐겁게 사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리사, 케이트, 알렉사, 이 셋 중에서 가장 행복한 건 알렉사가 아닐까.
적어도 스스로에겐 퍼펙트 마더 이자 퍼펙트
와이프일테니.
퍼펙트
마더 가 되지 못해서 고분분투하며 사는 여성, 퍼펙트 마더 로 보이면서 사는
여성, 퍼펙트 마더
라고 생각하며 사는 여성.
이렇게 서로 다른 세 명의 여성들 사이에서 실종 사건이라는
중대 이벤트가 끼어든다.
루신다의 실종이 자신의 탓이라며 내내 자책하는 리사를 보면서 이 책을 읽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도 중간 중간 소아성애자의 관점에서 적힌 심리가 블랙 페이지 안에 묘사되어 있어서 환기시킬 수
있다.
과연 퍼펙트 마더 란 어떤 여성을
지칭하는 것일까?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후반부로 가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