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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불꽃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검은 집>과 함께 기시 유스케의 초창기 걸작.
예전에 트위터에서 친분있는 분들과 도대체 왜 기시 유스케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인기가 있는가에 대해서 분노(?)했었는데..-_-
솔직히 이유는 한가지다. 너무 감정 소모가 심해.. 기시 유스케 작품은... (털썩..)
거기다가 읽고 난 뒤에도 한동안 감정적으로 심하게 흔들려서
정말 책을 읽는 건지 격렬한 감정적 노동을 하는 건지 모를정도다.
(<검은 집>을 읽고 난지 몇 년이 됐는데 지금도 엘리베이터를
밤에 타려면 등골이 오싹하고 무서울 때가 있다.. -_-)
<푸른 불꽃>도 마찬가지인데 읽을때도 힘들지만,
읽고 난 뒤에도 주인공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한동안 이어져서 정서적으로 참 힘들다.
(거기다 읽을 때 하필이면 대자연 시기라..
눈물까지 주루룩 훌렸다는.. 하아.. 이래서 다시 읽기 싫었어..)
내용은 도서추리 형식으로 흘러간다.
도서추리란 순서가 도치되었다는 의미로,
범인이 이미 드러난 상태에서 범죄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서스펜스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
잠깐 벗어난 이야기지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도서추리 스타일의 수작 중
하나를 꼽는다면 리처드 헐의 백모살인사건을 추천!
천하에 얼뜨기 조카가 자신의 백모를 죽이기 위해
온갖 범죄 계획을 꾸미는 과정이 코믹하고 어이없게 펼쳐진다.
현재 동서추리문고.. (하아.. 이 출판사는 정말 할말이 많은 짜증나는 곳이지만..)에서
유일하게 번역본이 나와있고 같은 책에 휴 월폴의 최고작인 <은가면>이 수록되어 있으니
나름 소장가치도 있다.......고 해야겠지...
다시 푸른불꽃으로 돌아와서..
줄거리는 간단하다.
17세의 슈이치는 그림과 사이클을 좋아하고,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지극히 사랑하는 순수한 소년이다.
하지만 우연하게도 인간 말종인 양아버지가
집에 찾아오게 되면서 가족의 행복은 산산조각이 난다.
결국 슈이치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괴롭히는
어머니의 전남편을 가족의 삶에서 없애기위해 치밀한 살인을 계획한다.
사실 이 책이 본격적으로 독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건,
살인이 성공한 뒤에 슈이치의 심리변화다.
처음엔 완전범죄가 성공한 것에 우쭐하지만,
슈이치는 꼭 쏟아지는 죄책감과 불안, 자괴감에 휩싸인다.
아무리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몇번이나 되뇌어도
유달리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의 마음은 점점 금이간다.
그리고 의도치않은 또 다른 불행의 등장은
결국 슈이치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일본에선 이 작품을 일본판 <죄와벌>이라고 했다는데....
오히려 내 생각엔 <죄와벌>보다 더 비극적이고
암담한 운명에 무너지는 슈이치가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다.. ㅠ.ㅠ
슈이치가 살인을 저지른 뒤에 곱씹는 수많은 회한은
모두 하나의 서글픈 가정으로 돌아간다.
" 만일 내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기시 유스케가 뛰어난 작가라는 점은
소년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하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제시하지도
그의 행동을 독자가 단죄하지도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저 책을 읽으며 소년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슈이치에게 공감하고,
그러면서도 꼭 그래야만 했었나하는 안타까움과
연민을 저절로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역시 떠오르는 건 니체의 이 문장이 아닐까싶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 보고 있으니..."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