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문득 오늘 뉴스를 떠올려본다.
등록금 반값 시위가 한창이다. 촛불 시위로 "중산층에게도 내기 힘들어진 등록금" 이란 말을 정치인들 입에서 들을 수 있다. 그들의 등록금 인하 응원 글이나 말들을 들으면 나는 "아...... 저들이 서민들을 생각하는구나" 가 아니라 "아....... 또 선거철이 가까워졌구나." 를 떠올린다.
정치가 언론에 압력을 받고 언론이 돈에 놀아나서 삼박자를 짝짝짝 이루고 서민들은 언제나처럼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정치인들 앞에서 힘들다고 울고불고해도 해결되지 않는 약간은 빗겨나간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금 현시점 현실이다.
황석영 작가의 책을 지인들이 읽을 때 "왜 이렇게 우울해? 암울한 내용 뿐이야." 라고 한다.
사실 나도 즐겁자고 그의 글을 읽지는 않는다.
즐겁고 싶어서 그의 글을 읽지도 않는다.
전작인 강남몽에 비해 나에게 낯익은 세상은 좀 더 많은 감흥을 준 것 같다.
사실 티비를 보기전까지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그 일이 힘든 일이라는 걸 몰랐다. 정말 말그래도 눈은 자연히 녹는 줄 알았고 당연히 그래서 길이 깨끗해지는 거라고 생각했던 단순하게 그냥 내 삶에 맞춰 보든 세상을 바라보았던 시절도 있었다. 가끔 메스미디어와 책은 필요한 정보들을 많이 제공한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필요한 것만 골라서 본다면.
아무튼, 이번 작품은 좀 더 쉬우면서 갑갑한 느낌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갑갑함 안에서 나는 왠지 희망을 본다.
황석영 이라는 작가가 비유했듯이
불교에서는 백년 사이에 온 세상이 바뀌어 변하고 나타나는 것을 거대한 런던 아이처럼 '수레바퀴의 한 회전'에 비유한다. 백년 뒤에는 현재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거기 살아가는 이들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새사람일 것이다.....
-(작가의 말 中)
나는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천천히 도는 런던 아이를 떠올린다.
천천히 속력을 내지 않고 도는 런던 아이.
밖에서 보아도 한번쯤 타고 싶어지는 런던 아이.
런던의 상징물 런던 아이.
천천히 도는 수레 바퀴속에 '운명'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하층민들의 삶을 맛갈나게 잘 표현해낸 황석영 작가의 낯익은 세상에는 우리 눈에도 낯익은 것들이 가득하다.
# 너와 나., 낯익은 세상
사실 유학생활을 하면서 쓰레기에 대한 특별한 나름의 법칙이 있는데 쓰레기는 최소화 간편화 시키고 분리수거를 꼭 편리하게 하며, 음식물 쓰레기는 최소한으로 나오게 하고 유통기한은 지키되, 꼭 거기에 집착하지는 말자. 였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하층민과 쓰레기가 있다. '쓰레기'가? 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난지도 쓰레기장의 일화를 정말 몰입할만큼 멋지게 그려낸 작품이다.
사람들은 왜 멀쩡한 걸 버리지?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나 맛있는 걸.
맨날 먹었으면 좋겠다, 히. -(114)
이 대사에서 피식 웃었는데 유학 생활동안 든 습관 중 하나가 음식에 있어서는 최소한 먹을만큼만 사고
음식물 쓰레기가 되도록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일종의 나의 습관 아닌 습관 철칙 아닌 철칙이 문득 오랜만에 생각이 났었다.
망할 것들아, 여기 니들만 사는 줄 알아? 니덜 사람 새끼 다 없어져도 세상을 그대루야. -(218)
어찌 할까 어찌 할까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고
내 새끼들 어찌 할까 있지도 못하고 떠나지도 못하고 -(222)
문득, 이 글을 읽으면서 죽음과 연관된 요즘 너무 쉽게 끊어버리는 목숨,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은 여전히 흘러가고 잘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한숨을 한번 쉬어 본다.
예전에 지인이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내가 한국을 떠나 있으면 무언가 정지되었거나 그대로 있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잘 돌아가더라.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계속 발전하고 무언가는 휙휙 바뀌고 내가 돌아오니 문득 낯설어 지는 그런 느낌이었어."
세상은 잘도 돌아간다. 휙휙휙-
그리고 정지될 것만 같은 시간이 계속해서 흐르고 또 흐른다.
아수라 백작같은 아수라가 감방에 있고 딱부리와 그의 엄마가 여전히 같은 세상을 살아가듯이, 아무 생각없이 살 것 같은 땜통조차 아버지가 떠나고는 자기 밥값이라도 하듯이 일을 따라 나서는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들이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다.
딱부리, 땜통........ 두더지 등의 이름을 읽으면서 어쩌면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보다 닉네임 같은 이름을 부르는게 더 편한 세상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를 조금은 감추고 나서 교류하는 것이 편한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하기 쉽게, 하지만 조금은 낯설게. 그런 한세상을 우리는 함께 교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 낯익지만, 그래도 희망
자, 얼마전에 부시랑 친구라던 오사마 빈라덴이 죽었다. 그것도 죽었냐 죽지않았냐 말이 많지만 공식적으론 죽었다. 그리고 오늘도 변함없이 9월11일은 돌아온다.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 나진 않겠지만 시간은 계속 흐르고 그 중심에 섰던 인물들은 사라지거나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희미해지거나 혹은 미움의 중심에서 조금은 빗겨서게 된다.
어제 했던 시위는 계속 될 것이고,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언론과 결탁을 할 것이며, 그로인해 서민들의
삶이 더 낳아질 것이란 보장 따위는 없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한사람에게 바꿀 수 있는 힘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의 손엔 힘이 있다고.
빌어먹을 세상! 이따위 세상따윈 꺼져 버리라 그래! 라면서 목을 메달거나 투신을 해서 뛰어 내려 못볼 꼴을 보이기엔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처절한 남들이 쓰다버린 쓰레기들을 분류하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과 사랑과 그리고 나눔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사소한 '행복'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느날 갑자기, 세상은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바뀌진 않겠지만 런던 아이처럼 조금씩은 변화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중심에 그 한백년 흘러가는 세월 속에 나도 함께 시간의 째깍 소리를 듣고 살아가고 있음을.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리란 것을.
낯익은 우리의 세상을 한번 다시 돌아 본다.
내일 아침, 당장 대학 등록금은 반값을 때리진 않을테고 10% 인하도 할지 불확실하며
선거철이 지나면 정치인들 기억속에 아웃오브안중일 사안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는 스포츠 경기가 열리고 사람들은 열광을 한다.
우리는 책을 읽고 그 책에 한 글자 한 글자를 음미하면서 세상에 대해서 주절거리기 시작한다.
자 매우 낯익다.
모든 것은 그렇게 낯익은 듯, 그리고 낯설지 않은 듯 흘러간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9회말 투아웃에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낯설지 않은 세상,
낯익은 세상,
구회말 투아웃, 희망이 존재한다.
아, 다행이다 -(228)
진짜 너무 다행이지 않은가.
낯익은 세상 속 너와 나 지금 이 순간 마주보진 못해도 한 글자로나마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어찌보면 이 빌어먹을 세상이라면서 하늘에 대고 삿대질 하고 싶어지면서도 그래도
'우리'라는 천천히 흘러가는 런던 아이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희망으로 씨익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아.............. 진짜 완전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