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식료품점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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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종, 성, 나라, 지역 등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편견도 없는 사람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 저는 부끄럽지만, 어느 정도 편견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다문화가정도 많아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예전엔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어요. 그 사람들이 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어느 정도 경계하기도 했고요.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게 되었는데도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네요. 아직 성숙한 사람이 되지는 못한 거죠.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아프리카계 흑인 아버지와 유대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자기 뿌리와 경험을 바탕으로 실존하는 펜실베이니아 포츠타운에 '치킨힐'이라는 가상의 마을을 세워 우리를 안내해요. 대공황 직전이었던 1930년대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미국으로 이민 온 유대인, 유색인종, 흑인들의 삶을 통해 인종 차별 문제, 종교 등 우리들 삶에 대해 성찰하게 해요.


1972년 6월 어느 날, 도시개발업자들이 새로운 타운하우스로 가는 도로를 만들려고 헤이즈 거리 구역의 바닥을 파헤치면서 오래된 우물 하나를 발견해요. 우물 바닥에는 유골 한 구, 벨트 버클 하나, 펜던트, 오래된 실뭉치가 있었어요. 경찰은 펜실베이니아 포츠타운 산동네 치킨힐에 위치한 오래된 유대교 회당터에 사는 나이 든 유대인, 말라기를 찾아가요. 그를 용의자라고 하면서요. 경찰은 조금 더 조사한 후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허리케인 아그네스가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끝장냈기 때문이에요. 우물과 저수지, 유제품 공장, 우물 안 유골, 유대인을 괴롭히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을 이래저래 작은 모든 것들을 쓸고 가버렸어요. 노인 말라기의 경우에는 감쪽같이 사라져서 다시는 찾을 수 없었어요. 이곳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해골의 정체는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치킨힐의 유일한 식료품점인 '하늘과 땅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초나는 소아마비 때문에 다리 한쪽이 다른 쪽보다 짧아요. 많은 사회적 제약이 따랐던 시대 유대인 여성이었지만 지적 호기심이 많은 그녀는 금지된 책을 읽고 끊임없이 배움을 향해 나아갔어요. 다른 사람들이 백인의 횡포를 알면서도 불이익을 당할까 봐 숨죽일 때,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싸워요. 그리고 편견 없는 마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정신을 잃고 발작하는 등 자주 아파요.


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 모셰. 그는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에 낭만을 갖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왔으나 현실은 처참했어요. 흑인들과 다름없이 차별받고 외면받았죠.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되길 원했으나 그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조심 또 조심히 밟고 다녀야 하는 것이었어요. 그는 유대인 극장을 운명하며 모나지 않게, 튀지 않게 생활했어요. 그런 그가 초나를 만나 결혼했어요. 모셰는 사업이 잘 어 성공한 미국인이 되자 초나와 시내로 이사하기를 원해요. 초나가 하는 식료품점이 적자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초나는 떠나지 않겠다고 해요. "내가 해야 할 일이 나를 살아 있게 해줘요." 얘기하면서요. 결국 그들은 그곳에서 계속 살아가게 되죠.


모셰의 극장에서 일하는 네이트와 초나의 식료품점을 돕는 애디는 부부로, 흑인이에요. 네이트는 과묵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갔지만, 어딘가 모르게 사연을 간직한 사람 같아요. 과거 이야기를 하지 않았거든요. 그들은 애디의 죽은 여동생의 아이인 사고로 귀가 먹은 도도라는 12세의 아이를 데리고 있어요. 그런데 주정부에서 도도를 특수학교에 보내고 싶어 해요. 그곳은 사실 펜허스트 요양병원으로, 불의로 가득 찬 세상의 또 다른 부당함이 존재하는 곳이었죠. 그들과 초나는 도도를 그곳에 보내지 않으려고 숨겨요. 하지만 치킨힐의 유일한 내과 의사이자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KKK단원이며, 초나를 짝사랑했던 백인 닥에 의해 모든 것이 엉망이 돼요. 그가 초나를 찾아와 그녀와 언쟁을 벌이면서 초나가 쓰러졌는데 그 틈에 닥은 그녀를 성추행하려고 하죠. 그것을 본 도도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덤볐지만 닥은 도망친 후 경찰을 데리고 와요. 도도는 도망가려다 붙잡혀 큰 사고를 입은 채 펜허스트 C-1 병동에 가게 돼요. 도도는 그곳에서 몽키팬츠라고 또래 백인 남자를 알게 돼요. 그는 온몸이 뒤틀린 상태였지만 둘은 어느새 친구가 돼요. 비록 한 명은 말을 못 하고 한 명은 듣지 못했지만, 그들만의 방법을 찾아 의사소통하게 된 거죠. 하지만 그곳은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었고, 자칭 사람의 아들이라 부르는 악마 같은 흑인이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어요.


치킨힐에 사는 몇 안 되는 백인 가족 중 하나인 이탈리아계인 빅솝, 치킨힐 유일의 술집의 소유주이자 여러 일을 하는 흑인 패티, 어린 시절 학교에서 부당한 차별을 당해 마음의 문을 닫았지만, 아이들은 많이 낳은 패티의 여동생 버니스, 세탁업을 하면서 치킨힐의 소식통인 강하고 용감한 흑인 여성 페이퍼, 뛰어난 구두 제작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사교성이라고는 없는 쌍둥이 흑인 형제인 어브와 마브, 성공한 사업가인 모셰의 친척인 유대인 이삭 등은 도도를 구하기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해요. 백인 위주의 사회에서 유대인, 흑인, 유색인종이었던 그들은 결국 도도를 구하게 될까요? 우물에 빠져 47년 후에야 모습을 드러낸 해골은 누구였을까요?


"다름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 같은 인류이기 때문이다." (P. 287)


인종 차별, 성차별 등을 구시대적 산물로 보기에는 지금도 현재진행 중인 이야기가 많아요. 왜 그런 폭력적인 생각을 가지고 행동할까요? 당연하지 않은데 왜 그것을 당연시할까요?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 읽고 있는 <코스모스>에 이런 말이 나와요.

"우주에서 벌어졌던 진화의 단계를 차근차근 이해하노라면, 거대한 '수소 산업'의 최종 산물로서 태어난 생물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확실히 알게 된다. (…)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30년대 유대인들, 유색인종들의 삶을 알고 싶은 분,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은 분께 추천해 드려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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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만든 그릇에 내 인생을 담지 마라 - 삶의 주도권을 잡고 나답게 사는 비결
파(pha) 지음 / 새벽세시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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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해서 모양은 별로지만 내가 직접 만든 그릇에 내 인생을 차곡차곡 담고 있나요? 아니면 남이 만들어놓은 이쁘고 그럴듯한 그릇에 눈치 보며 내 인생을 담고 있나요? 나다움을 찾기 위해서 타인의 그릇을 모방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길을 가야 해요.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내 인생이니까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퇴사한 저자. 백수가 된 후부터 마음 가는 대로 블로그에 글을 올렸고, 그가 제시한 삶의 방식에 공감한 독자들의 인기를 얻었어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살아갈 방법을 알려줘요. 삶의 한복판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이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에요.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여행하기, 취미 만들기, 책 읽기, 외국어 배우기, 재테크 공부하기, 노후 대비 등등. 모두 좋은 것이에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일까요? 남들이 하니까,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지는 않나요? 이렇게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살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바쁘게만 살게 돼요. 시간이 지나면 어딘가 텅 빈 느낌을 마주할 테고요. 그렇다면 저자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일에만 집중하며 살아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행복한 삶을 꿈꾸는데 그 행복이라는 것의 기준을 타인이 아닌 나에게로 옮겨오자는 거죠. '나만의 가치관'을 명확하게 정립한 후, '나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 보는 거예요. 남들이 이쁘게 빚어놓은 그릇에 나를 담지 말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내가 직접 내 그릇을 빚어 내 인생을 하나씩 담아봐요. 그렇게 한 걸음씩 노력하면 '가짜 숙제'들에서 벗어나 '나다운 진짜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인생을 숙제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며 잠까지 줄이면서요. '직접 하는 게 더 빨라 병'에 걸린 사람들은 더 그래요.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면 상관없지만, 피곤한데도 그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아서 반복하고 있다면 잠깐 멈춰보는 건 어떨까요? 피로를 느끼는 것은 '잠시 쉬거나 방향 전환을 하는 게 좋다'고 외치는 몸의 신호일 수 있어요. 그럴 땐 '모든 것을 잊고 잠시 내버려두는 과정'을 거쳐보는 건 어떨까요? 멍을 때려도 좋고요. 빨리 결정해야 하는 일도 있지만 숙성해야 더 좋은 것들도 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건 나만의 속도를 제대로 아는 것이겠네요.


'노력할수록 잘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통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인생이란 타이밍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내가 이만큼 열심히 하니까 그만큼의 보상을 받아야 해!'라는 생각은 나를 힘들게 할 뿐이에요. 원하는 대로 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 아니면 자신이 싫어하지 않는 일을 자신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속도로 하는 사람이 꾸준히 해서 결국 살아남아요. 단기간에 성공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만 속도를 늦춰보는 건 어떨까요?


책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읽거나 술자리나 모임, 행사 등에 참석했을 때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본인이 좋아서 그런 거라면 상관없지만 타인의 눈치를 살피느라 중간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 괴로워요. 뭔가에 실패했을 때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까워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왠지 찜찜한 느낌이 들 땐 빠르게 빠져나오는 것도 방법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맞출 필요 없어요. 나에게 필요한 부분만 골라 집어먹어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해요.


인생을 살다 보면 타인의 조언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아무리 나를 위해 해주는 이야기라도 해도 결국은 남이예요. 그렇기에 남의 이야기는 적당히 흘려듣고, 내게 도움 될 만한 부분만 적당히 활용해요. 남들은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남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 탓에 실패를 겪게 되더라도, 그 사람은 아무런 책임이 없어요. 결국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사람은 언젠가는 죽어요. 그 시기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요. 한 번뿐인 내 인생인데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요? 사회가 정해놓은 타임라인에 따라 내 인생을 구겨 넣고 있지는 않나요? 이 시기에 꼭 해야 할 일을 정해두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요. 하지만 삶이라는 것은 시간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에요. 내 마음에 따라 사는 것이에요. 그래야 죽음을 앞에 두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요. 나라는 사람이 나답게 살았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한때 인생을 숙제처럼 산 적이 있어요. 한 번뿐인 인생, 이렇게 살면 후회할 것 같았거든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방법을 엿보면서 따라 했어요. 남이 만들어놓은 그릇에 살짝 발을 담근 거죠.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많이 지치더라고요. 이게 내가 원하는 인생인가? 질문을 던졌을 때 아닌 것 같았어요. 저에게 맞는 방법을 제가 직접 찾아야 하는데 남들이 좋다니까 이거 했다 저거 했다 그랬던 거였어요. 그제야 서툴지만 저만의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직 미완성인, 틀만 잡은 상태지만, 그렇기에 어떻게든 제가 원하는 대로 변경할 수 있어요. 아직은 저자만큼의 결단성도 없고 나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헷갈릴 때도 많아요. 하지만 예전보다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을 덜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나답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거죠. 아직은 초기 단계라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답게 꾸준히 살아보려 합니다.


타인의 말에 많이 휘둘려 지친 분, 나답게 살고 싶은 분께 추천해 드려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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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하소연 옮김 / 자화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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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1949년 출판된 조지 오웰의 <1984>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 가운데 대표작으로 손꼽혀요. 두 작품 모두 권위적인 정부의 통제 아래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는 개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당시 초강대국이 세계를 재편하며 지배하던 시대 배경에 영향을 받은 저자들에게 미래상은 낙관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조지 오웰은 1943년 12월에 있었던 테헤란 회담의 경과를 보면서 세계가 초강대국의 영향권 아래 있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고 해요. <동물 농장>처럼 이 소설의 배경 역시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에요. 하지만 조지 오웰이 공산주의만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는 나치, 파시즘과 함께 전체주의 전체를 비판한 것으로 평가돼요.


소설의 배경은 1984년 영국이에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로 나누어진 세계는 항상 전쟁 중인데, 영국은 오세아니아의 하나의 주예요. 이곳은 지배자 '빅 브라더', 내부 당원, 외부 당원, 프롤레타리아로 철저하게 계급이 나누어져 있어요.


어딜 가나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글과 함께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빅 브라더의 눈동자가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고안된 포스터가 있어요.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도 잘 보이는 곳에 쓰여 있고요. 지배자 '빅 브라더'의 명령 아래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식별하는 '사상경찰'이 존재하고, '텔레스크린'을 통해 전체주의 사상을 주입하면서 한편으론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요.


윈스턴은 정부 조직 중 하나인 진리부 기록국에서 기록 조작을 담당해요. 모든 역사는 당의 필요에 따라 깨끗이 지우고 다시 고쳐 쓰여졌어요. 과거는 지워지고, 지워졌다는 사실마저 잊히고 거짓은 진실이 되었지요. 이에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어 말살시켰는데, 이를 '현실 제어', 신어로는 '이중사고'라고 불러요. '신어'라는 것은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의 수를 줄이고 언어의 활용규칙 또한 단순화시켜 의문을 갖게 하는 언어 자체를 없애 개인들이 당의 방침에 의구심을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사고의 폭을 제한하여 생각의 자유마저 없애려고 하는 것이 당의 목표죠. 윈스턴은 자신이 기억하는 진실과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로 조작된 사실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하며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이 옳은 것인지 의구심을 가져요.


"과거는 변질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변질될 것이다. 악몽처럼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히는 것은 왜 이런 사기 행위가 행해지는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과거를 날조해서 얻는 직접적인 이득은 명백했지만, 그 궁극적인 동기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펜을 들고 글씨를 썼다. 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윈스턴은 생각을 글로 옮기고, 이제 글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해요. 당에 반기를 든 것이 알려지면 '증발'되어 버릴지 모르지만요. 채링턴 씨와 내부당원인 오브라이언의 도움으로 사랑하는 줄리아와 함께 인민의 적인 골드스타인의책을 읽고 '형제단' 단원이 돼요. 빅 브라더를 타도하겠다는 열망을 가지지만, 그는 체포돼요. 7년 전부터 감시의 대상자였던 그는 애정부 어딘가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해요. 오브라이언은 그의 정신 속에 깃든 모든 악과 망상을 불태우고, 개조해서 새로운 인간으로 만든 다음에 처형할 것이라고 해요. 반항심을 가진 채 처형당하면 누군가는 그를 추앙할 수 있으니까요. "자네는 존재하지 않아, 윈스턴."이라는 오브라이언의 말처럼 그야말로 철저하게 빈껍데기로 만드는 거죠. 윈스턴은 순응했다 저항했다 하지만 결국 101호실에서 자백(없던 사실도 지어서), 배반 등을 하게 돼요.


도대체 당은 어떤 세계를 창조하려는 걸까요? 공포와 반역과 고문의 세계. 유린하고 유린당하는 세계. 갈수록 정교한 수법으로 '더욱더' 잔인해지는 세계. 당에 대한 충성심과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 말고는 감정 따위는 필요 없는 세계. 예술·문화·과학도 없어지는 세계. 이런 세계를 위해 당은 모든 것을 파괴하며 진정한 권력을 추구하고자 해요.


<멋진 신세계>, <1984>를 읽으면서 현재를 들여다봤어요. 작가들이 묘사한 디스토피아가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들었어요. 현재 진행 중인 보이는, 보이지 않는 전쟁들. 강대국과 힘 있는 자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많은 것들. 권력을 지키기 위해 불법 행위도 서슴지 않고 대중을 우매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을 펼치는 지도자들.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은 점점 다양해지고 많아지는 현실. 하지만 그런 현실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늘 존재해 왔어요.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라는 것, 정말 당연한 걸까요? 자유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 싸워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겠죠.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자유 의지는 내가 지켜야만 유지되는 것 아닐까요?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언젠가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요. 깨어있는 사람이 많아야 유토피아까지는 아닐지라도 디스토피아는 벗어나게 되지 않을까요? 저는 최근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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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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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고전이 어렵게만 느껴지고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매력을 느끼고 하나씩 천천히 읽고 있어요. 5월 북클럽을 통해 읽은 책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에요.

 

<동물농장>은 조지 오웰이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에요. 1938년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면서 사회주의의 부패에 대한 분노로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고, 이 분노가 <동물농장>과 <1984>를 쓰는 사실상의 동기를 제공했어요. <동물농장>은 1943년 11월~1944년 2월에 썼는데, 일 년 반이 지나서야 간신히 출판되었어요. 그 이유는 책이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 소련에서의 정치 상황을 대상으로 하는데, 스탈린 독재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 때문이에요. 2차 세계 대전 기간, 소련은 서방 연합국들에게는 사실상 동맹이었기에 정치적 이유에서 그랬던 거죠.

 

존스가 운영하는 '메너 농장'에서 일하는 동물들은 인간이 다 잠든 밤, 늙은 수퇘지 메이저가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들으러 모두 모여요. 메이저는 동물들이 노예 같은 비참한 삶을 산다면서 이것은 모두 인간 때문이라고 하죠. 인간이 사라진 다음의 지상에 대한 꿈을 꾸었다면서 '영국의 짐승들'이란 노래를 들려주고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해요. 메이저의 연설을 듣고 농장의 머리께나 쓴다는 동물들은 삶에 대해 전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고, 혁명을 일으켜요. '동물농장'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동물주의 원리에 따라서 '일곱 계명'을 정하고,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는 구호를 외치게 해요. 동물들은 이제 동물이 주인이 되는 평등한 이상 사회를 건설하리라는 기대를 해요.

 

하지만 읽고 쓰는 것이 완벽하다는 이유로 돼지들이 특권을 누리게 돼요. 돼지들은 직접 일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을 감독하고 지휘하면서 우유, 사과 같은 것을 따로 빼돌려서 자기들만 먹어요. 몇몇 동물이 의문을 제기하면 언변가 스퀄러가 등장해 '설마 존스가 되돌아오길 바라는 건 아니죠?'라고 말해 동물들은 그냥 수긍해요. 젊은 수퇘지 나폴레옹은 라이벌이었던 스노볼을 내쫓고 권력을 잡아요. 나폴레옹은 스퀄러, 작곡하고 시 쓰는 데 재주 있는 미니무스, 새끼 때 자기가 교육을 책임진다며 데려가 키웠던 사나운 개 아홉 마리를 이용해 권력을 더 공고히 하죠.

 

시간이 지나면서 돼지, 개들을 제외한 동물들의 삶은 비참해져가요. 하루 종일 일해야 해서 고단하고 힘들고, 자주 춥고 배고팠어요. 이의를 제기했던 몇몇 동물들은 배반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요. 글자를 잘 몰랐기에 일곱 계명의 내용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도 제대로 몰랐죠. 점점 나폴레옹의 독재 사회로 전락한 동물농장. 돼지들은 인간의 악습을 되풀이해요. 분명 인간과 관련된 것들을 모두 금지했지만, 어느 날 돼지들은 직립 보행을 해요. 동물들은 경악해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라고 양들이 선동하죠. 일곱 계명도 사라지고 단 하나의 계명이 새로 생겼어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고요.

 

돼지들은 인간들을 불러 함께 카드놀이를 하고 술도 마셔요. 그리고 '동물농장'을 다시 '메너 농장'으로 바꿔요. 다른 동물들은 창밖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상한 점을 느껴요. 돼지들의 얼굴이 뭔가 이상해지고 있었어요.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거죠.

 

조지 오웰은 혁명이 성공한 후에 변질되는 과정을 면밀히 그린 우화를 통해 특정한 시대를 넘어 '일반 독재'에 대해 풍자하고 있어요.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꿀 뿐 본질적 사회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것, 대중이 살아 깨어 있으면서 지도자들을 감시, 비판하고 질타할 수 있을 때만 혁명은 성공한다는 것 등을 메시지로 전하고 있어요. 독재와 파시즘은 지배 집단 혼자만의 산물이 아니라, 동물들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요.

 

책을 읽으면서 무섭기도 했고 많은 의문도 떠올랐어요. 인간의 본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권력을 손에 쥐면 처음의 신념과 목적은 모두 잊어버리게 될까? 부당하다는 것을 알지만 아니라고 말할 용기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방관하는 자들을 비판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일까? 모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정말 존재할까? 등이에요. <동물농장>에서 돼지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기에 권력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예전에 지배계급들이 왜 자기들만 문자를 알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자기들 입맛에 맞게 뜯어고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배움이라는 것이 중요한 거네요. 내가 제대로 알고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그나마 눈치를 보고 제대로 할 테니까요. 시대적 배경이 비슷해서 일제 식민지 시대가 떠올랐는데,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이었는지 새삼 알겠더라고요. 용기 있는 분들의 희생으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제대로 알고 관심을 가져야겠어요. 깨어있는 사람이 많아야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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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소담 고전 명작 시리즈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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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사는 세상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아니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나요? 인류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자연스레 이뤄진 발전도 있겠지만, 이상향이라는 것을 꿈꾸었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하지만 예전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요즘, 이 변화의 속도와 방향에 가끔 겁이 나기도 해요. 편리해진 만큼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느낌이 가끔씩 들거든요.


<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미래 과학 문명의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해요. 조지 오웰의 <1984>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공포라는 충격을 제시, 인간성이 맞게 될 위기를 다루는, 인간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죠.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이라는 세계국의 표어. <멋진 신세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A. F. 즉 헨리 포드가 T형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해 낸 해를 기원으로 삼은 시대의 세계국. 사람들은 인공 부화기에서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다섯 계급으로 태어나요. 특히 보카노프스키 과정이라는 것을 거쳐 최대 96명의 일란성 쌍둥이가 태어나기도 해요. 이는 사회 안정을 위한 주요 수단 중의 하나인데, 인간이 공장에서 필요에 따라 맞춤형으로 대량 생산되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유대는 사라졌어요. 이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수면 학습과 전기 충격을 통한 세뇌로 각자의 신분에 만족하며 살아가요. 그들은 정해진 노동을 끝내면 자극적이고 단순한 오락(촉감놀이, 자유분방한 성교, 장애물 골프 등)들로 시간을 보내며, 항상 소마라는 약을 통해 환각과 쾌락을 느껴요. 누구도 불만이 없고,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공유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으며, 심지어 죽음도 길들여서 죽음까지도 무의미한 세계. 이 완벽한 멋진 신세계에 사는 모두는 만족스럽고 행복해요.


하지만 이렇게 멋진 세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도 있어요. 알파 플러스지만 신체적 결함을 가진 심리학자인 버나드 마르크스. 그는 자신이 다른 알파들과 다르기에 소심하고 외톨이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요. 소마를 복용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보다 차라리 고통스럽더라도 나 자신으로 남고 싶어 해요. 그리고 감성과학 대학 문예창작과 강사인 유능한 헬름홀츠 왓슨.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른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고 그것을 찾고자 해요. 이후 그는 '고독'에 관한 시를 쓰면서 내면에 지녔다고 느끼는 어떤 힘을 느끼지만, 문제아로 낙인찍히죠. 안정성에서 벗어났다는 이유에서예요. 안정을 위해 고전, 예술, 종교, 역사, 변화, 고독 등 모든 것을 금기시해요. 심지어 과학까지 통제하는 곳이니까요. 이 둘은 나중에 섬으로 쫓겨나요. 이곳에서 섬이란 자아의식이 강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즉 조금이라도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버나드 마르크스는 야만인 보호 구역에 갔다가 신세계와 격리된 보호 구역에서 살고 있던 야만인 존과 그의 어머니인 린다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요. 존은 젊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처음 보는 놀라운 과학 문명에 감탄하지만, 자유를 빼앗긴 채 소마를 복용하며 아무 생각 없이 순응하며 살아가는 거짓된 행복에 점차 환멸을 느껴요. 결국 야만인 존은 자유, 인간성을 찾고자 고통과 불행을 달라고 부르짖고는 홀로 외딴 등대로 가게 돼요. 그토록 갈망하던 원시적인 평화를 누리기를 기대했지만, 신세계 사람들은 그를 구경하러 찾아오고, 그 또한 참회수도회적 기질이 다시금 머리를 들어서 미친 듯 자신을 학대하며 절망에 빠져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말아요.


책에서 묘사한 '멋진 신세계'는 정말 멋진 신세계일까요? 사회의 안정을 위해 변화를 거부하는 곳.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도록 자유, 행복까지도 통제하는 곳.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 길들어서 그런지 의문을 품지 않아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소마라는 것에 의지해 의식을 포기하며 살아가요. 책을 읽으면서 저런 곳에 살아간다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숨 막히고 무서웠어요. 고독할 권리조차 없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박탈당하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저런 곳을 꿈꾸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과학기술의 발달이 선한 의지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은 언제든 있으니까요. 저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기에 이런 생각을 하지만 그곳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사는 세상이 제일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알아야 시야가 넓어져서 다른 가능성도 생각할 틈이 있을 텐데, 아예 그런 것이 차단된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버나드 마르크스, 헬름흘츠 왓슨 같은 사람이 자기주장을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있는 섬으로 가는 것을 보면 조금은 변화의 가능성을 꿈꿔보기도 해요.


'멋진 신세계'는 어떤 세계일까요? 사람마다 자기가 꿈꾸는 것이 다르기에 정답은 없을 거예요. 저는 어떤 세상을 바라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글쎄요, 때에 따라 달라지기에 명확하게 답하기 어려워요. 그래도 내가 내 생각대로 살 수 있는 곳이 좋아요. 나라는 사람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곳. 모든 사람이 그렇게 존재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는데, 정말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곳일까요? 아니면 노력하면 언젠가 이뤄질 수 있는 꿈같은 곳일까요? 책을 덮으면서도 여러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네요.


책에서 묘사한 멋진 신세계와 자기가 생각하는 멋진 신세계를 비교해 가며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인간성을 상실한 곳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 분께 추천해 드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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