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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설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 - 교과서 문학으로 떠나는 스토리 기행
정명섭.이가희.김효찬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4월
평점 :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 작품은 왜 재미가 없을까?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질문일 것이다. 정답은? 그 문학 작품 자체가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국어든 다른 과목이든 교과서가 재미있다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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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했지만 교과서는 좋아하지 못했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교과서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국어 교과서에 있던 문학작품은 저에게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주는 존재였습니다. (4쪽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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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하지만 교과서가 중요하다는 점에는 거의 모두 동의할 것이다. 수능 결과가 발표되고 나면 수능 만점자가 발표되고 곧 그들의 인터뷰가 매체에 실린다. 그들의 공통적인 대사는 바로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가 아니던가?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이 인터뷰 내용이 똑같은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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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던 작품도 국어 교과서에 실리고 나면 따분한 작품으로 변모한다. 밑줄 치고 분석해야 하는 일로 바뀌니까 감동도 없다. 이런 식으로 문학 작품을 대하게 되니 당연히 감동은커녕 아무런 느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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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글이지만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 공간을 직접 만나보고 걷게 된다면 문학을 더 사랑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4쪽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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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서 밝힌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자 목적이다. 동감한다. 입체적 읽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길을 걷는 책을 준비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어떤 문학 작품을 고르느냐 하는 것이었다. 교과서에는 수많은 문학작품이 실려 있고 저마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공저자들이 어렵사리 고민하고 토론을 거쳐 선정한 12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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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의도가 정말 좋다. 이 책을 읽는다고 수능 국어 점수가 몇 점 더 올라가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고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걸어본다면, 작가의 생각과 느낌, 아픔과 슬픔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과서 속의 지루했던 작품이 내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문학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바뀔 것이고 그러면 작품 분석과 공부도 훨씬 재미있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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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수능 국어 점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문학 분야를 별로 즐겨 읽지 않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저마다 좋아하는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문학이 주는 즐거움과 위로, 공감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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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 소설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세 명의 저자가 공동 집필했다. 저자들이 작품 속 공간을 직접 다니며 찍은 사진도 있고 김효찬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도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파주 출판도시에서 일하다 소설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정명섭 작가의 이력이 특이하다. 최근 추리문학상 대상을 받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문학과 역사를 결합한 글을 쓰는 그의 스타일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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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직지』로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조선변호사 왕실 소송사건』으로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상을 받았으며 2019년 ‘원주 한 도시 한 책’에 『미스 손탁』이 선정되었다. 2020년에는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YES24 작가 소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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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중에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 3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황해도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된 박완서 작가, 그 시절의 서울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매우 다르다. 20세에 미군 PX 초상화부에서 근무하다 만났던 박수근 화백과의 만남을 쓴 [나목], 작가의 유년 시절의 자전적 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세운상가 전기용품점에서 일하는 16세 수남이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그린 [자전거 도둑], 이렇게 3편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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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생들에게 매우 생소할 광주대단지항쟁을 다루고 있는 윤흥길 작가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도 있다. 1971년 8월, 가난하다는 이유로 서울에서 성남으로 쫓겨온 빈민들과 경찰들의 대립. 집을 마련해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성남으로 왔지만 허허벌판에 군용텐트만 있었다. 그들은 분노했고 폭발했다. 이런 작품을 읽을 때는 배경이 된 역사적 사건을 알지 못하면 무슨 이야기인지 감을 잡기 어렵고 그러면 흥미를 느낄 수 없다. 이 사건은 학생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가려지고 잊힌 채 남아 있는 사건이다. 지금의 화려하고 번잡한 성남의 모습을 보고 그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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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에 가 보았는가? 중국집에 가서 중국 음식만 먹을 게 아니라 차이나타운 언덕 뒤로 펼쳐진 자유공원에 올라보자. 차이나타운은 작은 응봉산을 따로 조성되어 있다. 자유공원에 오르면 차이나타운이 한눈에 펼쳐진다. 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은 청의 조계지, 지금의 차이나타운이다. 오른쪽은 일본의 조계지로 일본풍 건물이 남아 있다. 마치 일본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풍경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조계지란 외국인들이 한국의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치외법권 지역을 말한다. 자유공원에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아주 오래전에 나도 인천 차이나타운을 한두 번 가 보았었다. 물론 중국집에서 자장면도 먹고 일본풍 건물도 감상했었다. 방문하기 전에 오정희 작가의 [중국인 거리]를 읽어보자. 청소년 자녀와 함께 읽고 주말에 차이나타운에 가서 점심도 먹고 소설 속 내용을 이야기해 보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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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글이지만 공간이기도 하다" 멋진 말이다. 기억해 둘 것이다. 입체적으로 읽는 문학이 되면 좋겠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작품은 대부분 아픔과 슬픔이 혼합되어 있는 우리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어두운 내용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역사와 국어 공부를 따로 할 것이 아니다. 국어 교과서의 작품을 읽으며 역사 공부도 함께 하고 그 장소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는다면 훨씬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것이다. 한국사와 문학을 가르치는 국어 교사로서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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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초록비책공방으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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