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 담덕 2 - 천손신화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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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부터 평양성에는 폭풍우가 치면서 먹구름이 몰려들었고, 성루 곳곳에 흰 깃발의 조기가 걸린 가운데 사흘을 내리 흙비가 내렸다. 서북풍이 부는 봄철에 황사먼지와 함께 내리는 흙비가 초겨울 하늘을 뒤덮는 것은 분명 이상 현상임에 틀림없었다. 고구려 대왕 사유는 평양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국원에 묻혔다. 그가 바로 고구려 16대 고국원왕이었다. 49쪽

[광개토대왕 담덕 1: 순풍과 역풍]에 이어 2권 천손신화에서는 고구려 대왕 사유(고국원왕)과 백제 근초고왕의 한판승부인 평양성 전투로 막을 연다.

지난 수곡성 전투 때 백제의 복병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치욕을 떠올리며 복수의 칼날을 가는 대왕 사유. 고구려의 대장군은 계루부의 수장 고계가 맡았다. 산길을 타고 칠성문 쪽으로 대군을 이동시켜 일단 평양성으로 들어가는 쪽과, 백제의 주력군과 당당하게 맞서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려 작전 회의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동부 책성에서 철갑기병 5백 기를 이끌고 온 해평(대왕 사유의 동생 왕제 무의 아들)은 철갑기병에게 우회는 있을 수 없다며 정면돌파를 하여 고구려 대군의 위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적의 부대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이므로 무모한 정면돌파보다 기회를 엿보아 적을 패수(대동강)로 몰아넣자는 추수의 의견. 추수는 하대용이 운영하는 종마장에서 일하는 일꾼으로 연화를 흠모지만, 역시 연화를 흠모하여 혼인을 하고자 했던 해평과 대립각을 세운다.

지난날의 치욕을 생각하며 반드시 '백잔(백제를 낮추어 부르는 말)들'을 꺾고 백잔왕 구(근초고왕)와 태자 수를 죽이겠다며 펄펄 뛰는 대왕 사유. 추수는 지금 전면전만은 안 된다고 대왕을 말리고 싶었으나 이미 늦었다. 백제의 대장군 목라근자의 계략에 또 당하게 된다. 빗발치는 화살로부터 대왕을 보호하던 추수는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왼쪽 눈에 박히고 뒤이어 고국원왕도 화살에 맞고 전사하게 된다. 왼쪽 눈을 잃고도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던 추수의 가슴에 또 하나의 화살이 꽂히고 그대로 절벽 아래 강물로 떨어지는데 ......

대왕 사유에 이어 왕위에 오른 태자 구부가 17대 소수림왕이다. 무리한 전쟁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를 바로잡고자 구부는 먼저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 체제를 바로잡기에 힘쓴다.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을 설립하여 나라의 교육 기반을 다지고자 한다. 구부는 이를 위해 을두미를 국상으로 임명한다. 을두미는 고국천왕 시절 국상을 지낸 을파소의 후손이다. 오랜 기간 왕후를 배출해 온 연나부 세력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을두미는 이러한 신권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대왕 구부(소수림왕)와 왕후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왕후는 동궁빈 하씨(연화)가 회임을 할까 두려워 비소를 넣은 한약을 동궁빈에게 보낸다. 그 사실을 알고도 조용히 지혜롭게 처리하고자 했던 동궁빈 하씨. 이 모든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격노한 대왕 구부는 왕후를 폐서인 시키고 장인인 명림수부를 귀양 보낸다.

폐서인이 된 후 자결을 한 왕후의 최후에 자책을 느끼며 백팔 배를 올리는 동궁빈 하씨. 그런 동궁빈에게 석정 스님은 천손신화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천신의 아들인 해모수는 하늘을 상징하고, 물의 신 하백은 땅을 상징합니다. 즉, 하늘과 땅의 결합에 의해 천손이 태어나는데, 이는 인간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궁빈 전하는 추모대왕의 어머니이자 우리 고구려의 부여신(농업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유화부인의 품성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앞으로 추모대왕처럼 고구려를 빛낼 왕자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듯합니다." 219쪽

드디어 천손이 태어나게 되고 그 이름을 담덕이라 짓게 된다. 대왕 구부가 담談자를 국상 을두미가 덕德자를 내어 지었다. 앞으로 천하를 호령하게 될 큰 이름을 가진 천손, 담덕 -광개토대왕의 출생이다.

평양성 전투부터 소수림왕의 국가 체제 정비와 불교 수용, 광대토대왕 담덕의 출생까지 [광대토대왕 담덕 2: 천손신화]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끊임없이 영토 확장을 꾀했던 고대 국가들과 대왕들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전쟁과 영토 확장은 일면 멋있어 보일 수 있으나 수많은 백성들이 죽고 남은 자들의 삶은 말도 다 할 수 없이 피폐했을 것이다. 광개토대왕이 광활한 영토 확장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 바로 대왕 구부, 소수림왕이었다. 복수에 눈이 멀어 내실 없는 리더십을 보여준 대왕 사유(고국원왕)과 착실하게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은 대왕 구부(소수림왕), 그리고 광대토대왕 담덕까지! 광개토대왕 담덕 3권에서 펼쳐질 그 광대한 스토리가 기대된다.

해당 도서는 새움출판사의 담덕북클럽으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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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1 - 순풍과 역풍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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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년(고국원왕 41년 봄). 밤낮으로 강물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계절이었다. 삼월 삼짇날이 가까운데도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10쪽)

[광개토대왕 담덕 1: 순풍과 역풍]은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 말기 371년의 쌀쌀한 봄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를 읽기 전에 광대토대왕을 기준으로 인물들의 이름과 관계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16대 고국원왕, 대왕 사유, 재위 331-337년, 광개토대왕 담덕의 할아버지

17대 소수림왕, 태자 구부, 고국원왕의 아들, 광개토대왕 담덕의 큰아버지

18대 고국양왕, 왕태제 이련, 소수림왕 구부의 동생이며 광개토대왕 담덕의 아버지

19대 광개토대왕, 담덕, 391-413년


이 정도 인물의 이름과 관계를 알고 읽어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광개토대왕 담덕 1: 순풍과 역풍]의 첫 장면은 371년 대왕 사유(고국원왕)이 군사 1천을 이끌고 종마장을 운영하는 하대용을 찾아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371년에 백제 근초고왕은 태자 수를 앞세워 3만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평양성을 총공격한다. 이 전투에 친히 군사를 이끌고 출정했던 대왕 사유는 독화살에 맞고 전사하게 된다.

대왕 사유(고국원왕)은 하대용의 종마장에 왕자 이련을 동행한다. 하가촌에서 전렵 행사가 벌어지는데 이는 단순한 사냥 놀이가 아니라 일종의 군사훈련이다. 13세의 왕자 이련도 참가하지만 낙마하여 다리를 다치게 된다. 하대용의 딸 연화도 전렵에 참가했는데 낙마한 왕자 이련을 보살펴 주게되면서 둘 사이에 연정이 싹트게 된다. 연화는 왕자 이련보다 4살 연상이며 무술에 매우 뛰어난 낭자이다. 역시 왕자님은 키가 크고 잘생긴 것이 고구려 때도 그랬나 보다. 13세의 왕자 이련은 기골이 장대하여 이미 청년다움 면모를 갖추고 있었고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연상의 여인 연화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대왕 사유(고국원왕)은 우유부단한 성품으로 결단력 있고 힘 있는 왕으로 그려지지 못하고 있다. 당시 주변 형세는 모용선비족이 주변 국가들을 차례로 복속시키며 강대국으로 부상해 급기야 고구려를 침략하기에 이른다. 전연의 황제 모용황은 장국 모용한을 앞세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쳐들어 온 것이다. 고국원왕의 빗나간 판단 때문에 고구려군은 참패를 면치 못했고 고국원왕은 도망가기에 급급했다. 고국원왕의 동생 무武는 뒷수습을 하기 위해 (모용한이 떠나면서 고국원왕의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을 도굴해 가져감) 황제 모용황과 거래를 하고 사라지게 되는데 ......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 배울 때는 왕들의 업적과 주변 형세를 외우기 바쁘고 그래서 역사라는 과목은 아주 재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과목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러한 업적을 이루기까지의 배경과 이야기를 듣는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하겠는가!

이 책 [광개토대왕 담덕 1: 순풍과 역풍]을 쓴 저자 엄광용은 광개토대왕 담덕에 대한 소설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고구려연구회 회원이 되어 답사 여행을 다니며 자료 조사를 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만주, 백두산, 실크로드까지 오로지 광개토대왕 담덕을 쓰기 위한 답사가 계속되었다. 오로지 광개토대왕릉비의 비문 해석이 거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 외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았다.

역사소설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물론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사실일 수는 없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픽션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작가가 추가한 가공의 인물이 있을 수도 있고 가공의 사건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엄광용 작가처럼 방대한 자료 수집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최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소설을 쓰겠다는 집념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의 불타는 집념이 뜨겁게 달궈지는 것을 소설 속에서 느꼈다.

한 장 넘기면 도저히 멈출 수 없다. 이 무더위를 단번에 날려버릴 4세기 고구려, 백제, 전연 등의 국제 정세 속, 광개토대왕 담덕의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아버지를 둘러싸고 박진감 넘치게 벌어지는 암투과 전투의 현장으로 몰입해 보자. 화살이 빗발치는 백제의 평양성 총공격에서 [광개토대왕 담덕 1: 순풍과 역풍]이 마무리된다. 대왕 구(근초고왕)는 고구려 평양성을 일시에 함락시킬 계획을 세우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데 ......

해당 도서는 새움출판사의 담덕북클럽으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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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 - 코로나19로 남극해 고립된 알바트로스 호 탈출기
김태훈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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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그저,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었다. 바이러스, 세상은 변해있었다. 우리 배가 입항할 예정이었던 항구도 도시도 그 주변 나라도 모두 우리에게 문을 굳게 닫았다. 결국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게 된 우리의 배는, 지구상에서 정확하게 대한민국의 대척점에 위치한 바다 위에 그냥 떠있을 수밖에 없었다. (6-7쪽)



"마흔 살엔 같이 세계 일주를 떠나자"고 약속했던 부부,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정말 마흔이 되었을 때는 훌쩍 떠나기가 너무 어려웠다.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다. 몇 년 만 더...... 미루고 또 미루고 또 꿈을 꾸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남극 여행은.



최근에 보았던 남극 여행에 관한 영화가 오버랩되었다. 웅장하게 솟아 있는 빙하와 얼음, 잔잔한 바다, 그리고 펭귄들. 주인공은 조이악이라고 부르는 1인용 카약을 타고 남극 바다에 혼자 둥둥 떠 있는 장면을 보았다. 천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하고 아름답고 정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기겁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도 나는 절대로 남극 바다에서 혼자 조디악을 타지는 못할 것이다.


8개월간 남아메리카 대륙을 북에서 남으로 횡단한 부부는 드디어 남아메리카 대륙의 끝, 지구 최남단의 도시 우수아이아(Ushuaia)에 도착했다. 남극으로 가는 배는 이곳 우수아이아나 푼타아레나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남극행 티켓은 정말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출발 1-2년 전에 예약을 하지만 막판에 취소되어 약간의 할인을 하는 티켓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정말 비싸다.


남극에 가기 위해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우수아이아로 몰려온다. 그렇게 김태훈 작가 부부는 함께 남극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되었다. 알바트로스 호를 타고.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남극에서 정말 아름다운 사진을 많이 남겼다.남극의 상징과 같은 펭귄, 남극의 동물들은 사람을 봐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에 다가오는 녀석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물개들은 덤벼드는 경우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남극에서 환상적인 14일을 보낸 후, 바이러스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인터넷과 거의 단절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즉각 남극 탐험을 중지합니다. 최대한 서둘러 우리의 입항이 예정된 도시 푸에르토 마드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는 비상 엔진 두 개를 추가로 가동하여 엔진 4개를 모두 켜고 최대 속력으로 귀항지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드레이크 해협을 건널 것입니다." 선장의 말이었다.


하지만 입항은 계속 거절되었고 세상은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문을 닫고 있었다. 어떻게든 배에서 내려야 한다. 배에서는 계속 직접 항공티켓을 알아보는 행위는 이기적 행동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때부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피말리는 알바트로스 호 탈출기가 시작되었다.


이 책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는 남극에서의 아름다운 여행인 chapter 1 남극에서 부분과 18일간의 선상 고립생활을 다룬 chapter 2 대한민국까지, 이렇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극에서 보낸 시간은 정말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을 보면 펭귄이 내 손끝에 만져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작가 부부가 대한민국에 무사히 돌아오기까지 각 나라의 영사님들의 많은 도움도 있었고 한국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도와준 친구들이 있었다. 남극 바다에서 고립된 채 떠 있었던 그때 과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천국과 지옥의 시간이었다는 작가의 표현이 정말 맞을 것이다. 나라면 우리나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해당 도서는 푸른향기 출판사의 서포터즈 6기로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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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이재형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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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사랑한 번역가 이재형, 예술의 힘을 믿고 예술로 용기를 얻는 작가 이재형. 그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예술의 회복력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내가 이재형 작가님을 알게 된 것은 안타레스 출판사의 [여성의 대의]라는 책을 읽고서였다. 작년 10월이었다. 서평단으로 20세기 최고의 페미니스트라는 지젤 알리미의 대표작 [여성의 대의]를 읽었다. 그 책을 번역하신 분이 바로 이재형 작가님이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 이재형 작가님 계정을 찾았다. 그때 곧 파리와 예술에 대한 책을 출간할 예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https://blog.naver.com/sweetcinnamonroll/222558471861 


이재형 작가는 1996년부터 프랑스에서 살면서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꾸뻬 씨의 사랑 여행]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프랑스 작품을 150권 넘게 국내에 번역 소개했다.

이재형 작가는 30년 가까이 파리에 살면서 파리에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생활비는 말도 안 되게 비싸고 공기도 안 좋고 교통도 불편하고 어떤 동네는 지저분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하지만 파리를 떠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왜? 파리에 무엇이 있길래? 바로 예술이다. 파리는 '예술의 힘'을 가졌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파리 곳곳에 있는 예술 작품을 보고 다시 일어섰다고 한다. 그를 일어서게 한 파리, 회복력을 가진 파리가 가진 예술의 힘은 무엇일까?

예술을 우리 삶 가운데서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도시가 바로 파리라고 이재형 작가는 단언한다. 파리의 모든 것에 예술이 스며 있다고. 그 유명한 오르세 미술관과 루브르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과 퐁피두 현대미술관이 아니더라도 공원과 광장 등 시내 곳곳에서도 야와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파리를 '예술의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이런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파리에서는 소득이 많거나 적거나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나다. 쉽게 말해 대부분의 미술관에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으로 들어가서 감상을 할 수 있다. 예술이 일부 고상한 상류층의 예술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예술인 도시, 그게 바로 파리다. 그래서 이재형 작가는 파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작품들과 대화를 나눈다. 힘든 일을 이야기하고 따뜻한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그래서 직접 사진을 찍고 글도 쓰면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프랑스라는 나라는 나에게 어떤 나라일까 생각해 보았다. 고등학교 때 불어를 선택했다. 나는 프랑스어를 아주 좋아했다. 제법 잘하기도 했고 대학교 1학년 때도 교양 불어를 수강했다. 그리고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었다. 런던으로 가서 여러 나라를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파리에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몽마르뜨 언덕에 갔고 거기서 여행자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수많은 화가들을 봤다. 그리고 사크레 쾨르 성당도 봤다.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물랭 루즈, 루브르 미술관, 베르사이유 궁전까지. 고작 2-3일 파리에 있었다. 맞다. 파리는 아름답기도 하면서 더럽기도 했다. 특히 지하철역은 지저분했다.

물론 그때 루브르에서 봤던 그 유명한 명화들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를 보면서 어떤 그림들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파리라는 도시보다 파리가 가진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부러웠다. 그런 명화를 책에서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다. 스페인 소피아 미술관에서 게르니카를 직접 봤다. 미술 교과서에 실린 게르니카가 아닌 실제 게르니카를. 작품이 그렇게 큰 지 몰랐다. 커다란 벽면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작품의 크기에 한 번 압도되고 다음에는 뭔지 모를 느낌에 압도당했었다.

이재형 작가와 함께 파리의 길을 걸어보자. 도시를 감싸고 있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예술의 회복력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어보자. 작품이 이끄는 대로, 그림이 말하는 대로 몸을 맡기고 귀를 기울여 보자. 파리 구석구석의 역사 속으로!

해당 도서는 서평단으로 이재형 작가님께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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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탑의 라푼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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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범죄자가 되는 길이 닦여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엉망진창인 가정에서 착실한 아이로 자라는 게 이상한 일이다. 다마가와시 남부에서는 아이들 사이의 상하 관계가 뚜렷하고 거기서 벗어나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중학생이 되어 길을 잘못 든 아이는 선배들에게 '칸파'라는 상납금을 낸다. 칸파는 부모 지갑에 손대는 정도의 귀여운 행동으로는 절대 메울 수 없는 액수다. 결국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날치기를 하거나 사찰의 새전함을 털고 , 이윽고 공갈이나 빈집털이 같은 짓까지 하다가 결국 경찰에 체포되곤 한다. (55-57쪽)

마녀는 탑에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라푼젤, 라푼젤, 네 머리카락을 내려 주렴!" 라푼젤의 머리카락은 금실로 자아낸 것처럼 길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누나는 불쌍한 아이를 보면 자기 머리카락을 내려서 탑 위로 끌어올려 준다고 해."

"라푼젤이 분명 도와줄 거야. 저 탑 꼭대기에 올라가면 그 뒤로는 아무도 데려갈 수 없어. 저긴 불쌍한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장소야." (210-211쪽)

다마가와 강을 경계로 도쿄와 인접해 있는 다마가와시, 공업지대의 굴뚝과 공해, 유흥가를 지배하는 조폭과 깡패들, 위험하고 더럽고 무서운 동네. 이곳 출신 성공한 사업가가 이런 이미지를 탈피시키려고 전망탑을 세웠다고 한다. 원래 이름이 베이뷰 타워이지만 라멘 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 때문에 '라멘 타워'라고 불린다.

안타깝고 슬프다는 말로는 어떻게 설명이 되지 않는 이야기, [전망탑의 라푼젤]이다. 가슴이 저리도록 아픈 이야기, 어떻게든 그 아이들은 구해내고 싶은 마음...... 금빛 머리카락을 내려주어 불쌍한 아이들을 올려준다는 바벨탑처럼 높고 높은 새하얀 전망탑은 아무런 말이 없다.

더럽고 추악한 도시의 이면과 그 구덩이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아이들.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 이국적 외모를 가진 카이, 조폭 애인과 헤어진 어머니는 술로 연명한다. 친오빠에게 몹쓸 짓을 당한 뒤 오빠 친구들의 성적 노리개로 살아가던 소녀 나기사. 결국 집을 나온 나기사는 중학교 동창인 카이의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카이와 나기사는 전망탑 근처를 혼자 배회하는 미취학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하레'라고 이름을 지어준다.

나기사의 이야기를 읽으며 정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이토록 잔인하고 더러운 것이 인간의 본성이었던가? 어릴 때 가정에서 방치와 배고픔, 폭력 등으로 심신이 미약해진 아이들은 거리로 나오고, 이런 아이들을 최대한 찾아내 보호하려는 아동보호소의 직원들. 그러나 이들 또한 부모들의 폭언과 폭행까지 감수해야 하는데......

일상에 내재된 균열을 파악해 작가 특유의 예리한 시선으로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파고 드는 우사미 마코토, 이 세상의 약자로 살아가는 카이, 나기사, 하레를 조명하며 더럽기 짝이 없는 인간의 추악함을 보여준다.

베이뷰 타워 전망탑은 가난과 폭력에 지친 아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충격과 반전의 연속인 우사미 마코토의 걸작 [전망탑의 라푼젤]. 구원은 이루어질 것인가?

해당 도서는 블루홀식스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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