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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난 짝사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늘 주기만 하는 그런 사랑은 재미 없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혼자서만 애태우는 그런 사랑은 싫다.
짝사랑을 해보진 않았지만, 짝사랑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그 마음은 안다.
바라봐 주지 않아도 해바라기가 되어 단지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 할말은 없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할 외사랑은 마음에 쓸쓸함과 커다란 아픔을 남겨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진솔의 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면 어쩌나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콩닥거렸다.
먼저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
잘 진행되는 듯하다가 한때 사랑했었던 애리의 아픔을 거둬주기 위해 건이 했던 말은 진솔에겐 충격이었다.
좋아하는 감정은 있지만, 옛사랑의 기억이 앙금으로 남아 마음을 열지 못했던 이건 PD...
기다려주는 진솔...

라디오 작가로 있는 진솔은 31살의 입사 9년차이다.
한때 시집을 냈다던 사람이 <꽃마차> 프로그램의 피디로 오게 되고, 진솔은 글깨나 쓴다는 피디가 온다는 소리에 신경이 쓰인다.
작가 입장에서는 글쓰는 피디가 불편한건 사실이니까...
건 피디는 긴장하고 있던 진솔을 알았는지 첫 미팅에서 얼굴 보고 커피 마신걸로 회의를 끝낸다.
그러면서 자긴 편한 피디라면서... ㅎㅎㅎ~~
진솔은 건 피디에 대해 알기 위해 그가 냈다던 시집을 사보기도 한다.
그 시집을 통해서 진솔이 느낀 것은 그는 불이라는 것.
꽃마차 프로그램의 주요 단골 고객인 이필관 할아버지는 늘 신청곡으로 <마도로스 수기>를 신청하곤 하는데, 건은 그 노래에 알레르기가 있다면서 신청곡을 안틀어준다고 한다. 라디오에 옆에 딱 달라붙어서 끝까지 듣고 계신 할아버지께 신청곡을 틀어드린다는 얘기를 해 곤란한 입장이 되어버린 진솔에게 건은 스무디의 달콤한 제안을 한다.
둘의 만남은 그렇게 스무디를 함께 마시는 일부터 조금씩 시작된다.
한 프로그램에서 피디와 작가로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만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고, 건은 일을 핑계삼아 조금씩 진솔에게 다가간다.
1박2일 직원 야유회가 있던 날 건은 의도적으로 진솔을 갯벌에 빠뜨리게 되고 여벌로 챙겨온 자신의 추리닝을 빌려준다.
갈아입을 옷이 없었던 그녀는 서울로 올라가려면 옷을 주고 가라는 소리에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건은 감기에 걸려 몸이 안좋은 진솔이 먹는 약을 자신도 감기에 걸렸다면서 뺏어먹기도 하고, 함께 산책을 하자는 핑계로 글쓰는 진솔을 위해 수시로 메일함을 체크하며 새벽 1시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진솔은 친구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한다.
그러면서도 그를 보면 자꾸만 마음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진솔 씨는, 나한테 일기장 같은 사람이에요."
"오늘도 당신이랑 마무리가 안 되니 뭔가 허전했지. 수첩에 몇 줄 적는 것처럼 꼭 진솔 씨한테 하루를 정리하게 되잖아요. 요즘 계속 그랬으니까." <본문 p. 160~161 일부 발췌>
진솔은 낙산공원에서 건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게 되고, 건은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모른다면서 마음을 들여다 볼 시간을 달라고 한다.
밤에 고궁에 가보고 싶다던 진솔의 다이어리를 생각해 둘은 저녁에 고궁을 찾기도 한다.
진솔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친구 이상으로 대해주지 않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고, 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두려웠지만 한편으론 행복하기도 했다. 바람이든 아니든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느낌으로만 알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주는 그가 서운하기도 했다.
함께 하는 시간들 속에서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은 그를 보며 자신을 사랑하는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지 늘 혼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진솔에게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림 속에서 보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신년 축하 파티가 있는 날, 애리는 선우에게 화가 나서 뛰쳐 나가게 되고,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애리의 아픈 모습을 보는게 싫었던 건은 차라리 자신에게 오라는 소리를 하게 된다. 이 소리에 충격을 받은 진솔은 자신과 함께 있으면서 늘 애리를 생각했다는 것에 화가 나고,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건이 수차례 진솔에게 사과하려고 다가가지만, 진솔은 매정하게 뿌리치게 되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결국 작가 생활을 잠시 쉬기로 한다. 방송국을 떠나는 날 건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장례식장을 찾아간 진솔은 건을 보게 된다.
"그날 빈소에서, 나 나쁜 놈이었어요. 내내 당신만 생각났어. 할아버지 앞에서 공진솔 보고 싶단 생각만 했어요. 뛰쳐나와서 당신 보러 가고 싶었는데…정신 차렬, 꾹 참고 있었는데…. 갑자기 당신이 문 앞에 서 있었어요. 그럴 땐, 미치겠어.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 <본문 p. 408 일부 발췌>
꽤 두꺼운 책이었지만, 진솔과 건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지루하지 않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한번 책을 잡으니 그들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고, 그들의 데이트 장면을 보면서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위트있는 말들에 빵 터지기도 했다. 라면과 화해하라는 말, 라면이 양떼같다는 말, 맞춤법 때문에 애인에게 차인 군인병의 편지 이야기, 선우가 건에게 엿 먹으라고 전해달라는 말을 진솔이 심각한 얼굴로 진지하게 전달하는 부분는 정말 재미있었다.
가을부터 초봄까지 진행된 이야기라 수채화빛 같은 아름다운 풍경들은 별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의 러브스토리 덕분에 그런 모든 것들이 커버되는 책이었다. 몇개월 동안의 러브스토리였지만, 긴 시간이라 느껴질만큼 아름다운 이야기였고,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연애를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나도 이런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한 소설이었다.
책을 다 읽었지만, 문득 문득 주인공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오늘은 산에 갔다가 주인공들의 대화내용이 생각나서 혼자 미소를 지어보기도 했다.
정말 다행인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어서 내 마음이 좋다. 혹시라도 건이 애리와 연결되어 진솔이 아픈 짝사랑을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가끔 젊은 연인들이 부러울 때 한번씩 꺼내서 읽어보면 내 마음에도 그 아름다움이 그대로 전달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