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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공을 본 적 있나요? ㅣ 인생그림책 45
배유정 지음 / 길벗어린이 / 2025년 8월
평점 :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개인적인 주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그때의 나는 야생동물처럼 불안하고 긴장된 눈빛으로 늘 두리번거리며 살았다"
- <초록색 공을 본 적 있나요?>그림책 작가의 말 중에서
이 한 문장을 읽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배유정 작가의 신작 <초록색 공을 본 적 있나요?>는 단순한 그림책의 영역을 넘어,
가장 깊은 내면을 건드리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심오한 자기 탐색의 여정으로 이끈다.
내면의 불안과 고요하지 못한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문장은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길을 잃고 방황했던 모든 이들에게 날카롭지만 공감을 느끼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되는 그림책이었다.
존재 코칭을 통해 타인의 내면을 마주하고 있는 코치로써 강력한 통찰의 시간으로 다가올 거라는 기대가 들었다.
배유정 작가의 특유의 매력은<안녕, 파라다이스>그림책 등 전작을 통해 이미 드러나고 있다.
작가는 무겁거나 추상적일 수 있는 주제들을 유쾌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풀어내는 독보적인 역량을 선보인다. .]
'어떻게 이런 주제를 이토록 쉽게, 하지만 깊이 있게 담아낼 수 있을까?'
배유정 작가의 그림책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림책을 펼칠 때마다 그때그때,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을 겪을 수 있는 마법 창고 같다.
<초록색 공을 본 적 있나요?>는 '초록색 공'을 통해 '나'라는 존재의 다양한 모습을 은유적으로 만날 수 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이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이 날뛰는 감정이기도 하고,
감추고 싶은 욕망의 덩어리기도 하다.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색채가 불안과 긴장된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그림 속 고릴라가 작은 공을 응시하는 모습에서부터 긴장과 함께 감정적인 동요를 느끼게 된다.
시각적인 자극으로 감정을 직관적으로 전달하여, 내면의 소용돌이를 섬뜩하리만큼 생생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공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숲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의 공간이 아님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숲을 헤매는 공의 여정은 내 안의 무의식을 만나는 느낌과 비슷하다.
장면 장면 만나는 다양한 동물들은 내 안에 존재하는 복잡한 자아의 조각들이라는 책 소개 글이 떠올랐다.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심리적 표현들은 책을 덮어버리고 싶기도 하고, 마주하고 싶기도 하는 양가감정을 가지게 했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이토록 가시화할 수 있다니..
작가님의 표현에 다시 감탄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코칭에서 고객이 스스로 감정의 패턴을 인식하고, 수용할 수 있는 도구로써 활용하기 좋은 귀한 그림책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책을 보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글과 그림이 어긋나 있다는 점이었다.
'초록색 공을 본 적 있냐'라고 묻는 질문에 동물들은 못 보았다고 대답한다.
그림 속에서 공이 있음에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은 철학적 관점이 느껴졌다.
인식론적 관점에서 '본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눈으로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뇌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동물들의 대답은 시각적으로 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닌 공의 존재를 인식하거나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에 가깝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동물들은 '초록색 공'을 '초록색 공'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인식하고 있을 수도 있다.
책 속의 동물들은 단순히 공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각자의 내면적 특성이나 몰두하고 있는 행위와 결부시켜 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루거나 바라보고 있다.
아기 오리들은 '어미로부터의 보호와 따라가야 할 길'이라는 더 큰 의미가 있기에 초록색 공이 독립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을 수 있다.
원숭이에게는 초록색 공이 새로운 구슬이거나 이미 가지고 있던 구슬이라는 기존 놀이 프레임 안에서의 대상으로 인식했을 수 있다.
빈자리를 찾는 부엉이에게는 '빈자리'라는 목적과 연결되지 않는 '초록색 공'이 피해야 할 장애물 정도로 인식되었을 수 있다.
현상학에서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판단 없이 바라보는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사물의 본질적인 의미를 파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상을 경험할 때 이미 기존의 경험과 관념을 가지고 대상을 이해하고 의미를 구성한다.
그러하기에 동물들이 초록색 공을 '다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자신들의 현상적 세계 안에서 공을 재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부분이 작가가 그림책 속에서 동물들을 통해 인간의 인식 과정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느껴진다.
결국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에서처럼 '초록색 공'은 보는 이에 따라 수많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초록색 공을 본 적 있나요?>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그림책을 읽어야 했다.
잃어버린 '초록색 공'이 주는 질문에 대한 내면이 해답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애초에 잃어버린 것은 없었으며,
'초록색 공'을 찾아 헤매면서 마주한 모든 것이 사실은 '진짜 나'였다는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너지고, 동굴에 들어가고, 회피하고, 한심하기도 한 나
그런 나의 모습을 그래도 마주하고 품어야 한다는 자기 수용의 시작을 담고 있었다.
복잡한 심리적 개념들을 직관적인 이미지와 은유로 풀어내고,
다양한 연령의 대상자와 다각도로 만나보며 성찰할 수 있는 그림책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초록색 공을 본 적 있나요?> 그림책을 건네고 싶다.
작가의 말처럼, 더 이상 초록색 공을 찾아 헤매지 않고, 초록색 공이 곧 나 자신이며 늘 내 안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면의 숲은 고요해질 거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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