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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철학 편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세계척학전집, 훔친 철학편》을 읽고서···.
이클립스 저 《세계철학전집, 훔친 철학편》은 철학을 ‘위대한 사상가들의 고상한 언어’가 아니라, 인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축적해 온 공유된 사유의 역사로 풀어낸 책이다. 제목에 담긴 ‘훔친’이라는 도발적인 표현은 자극적이기보다 문제의식을 분명히 한다. 철학은 어느 한 개인이나 문명의 독점물이 아니라, 이전 사유를 차용하고 변주하며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철학사를 단절이 아닌 연결의 관점에서 서술한다는 점이다. 흔히 철학사는 “누가 무엇을 처음 말했다”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이 책은 “누가 누구에게서 무엇을 가져와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 완전히 자생적인 산물이 아니라, 이전 문명들의 지식·수학·천문·종교적 사고와 접촉하며 형성되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고대 철학을 보존하고 재해석해 유럽으로 전달했는지, 근대 철학자들이 선배 사상가들의 개념을 어떻게 계승·비판했는지를 비교적 명확한 구조 속에서 보여준다. 덕분에 철학이 단절된 천재들의 연속이 아니라, 사유의 계보와 대화라는 점이 선명해진다.
<"우리는 정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정의로워지고, 절제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절제력 있는 사람이 된다." 책 199쪽>
내용 면에서도 교훈적이다. 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새로운 생각은 무(無)에서 나오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들조차 이전 사상을 비판적으로 ‘차용’했고, 그 과정에서 철학은 진보했다. 이는 독자에게 겸손한 태도를 요구한다. 동시에,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비판적 수용과 재구성이야말로 진정한 창조라는 점을 일깨운다. 오늘날 우리가 어떤 지식이나 의견을 받아들일 때에도, 맹목적 수용이나 무조건적 부정이 아니라 맥락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준다.
특히 인상적으로 남는 부분은 철학의 ‘순수성’이라는 신화를 해체하는 대목이다. 서양 철학이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통념을 넘어, 다양한 문명과 사상 간의 교류가 없었다면 지금의 철학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이는 철학뿐 아니라 역사, 문화, 학문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킨다. 지식의 소유권보다 지식의 순환과 축적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일어난 일을 사랑하라. 최악을 미리 생각하며 현재에 감사하라. 감정을 선택하라. 장애물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라. 그리고 죽음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라." 책 268쪽>
여기에 더해, 이 책이 독자에게 특히 의미 있게 다가오는 지점은 이러한 고대 문명 간의 사유 이동을 현대 문명, 특히 소셜미디어 환경과 자연스럽게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긴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SNS와 유튜브, 커뮤니티를 통해 타인의 생각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그것을 변형하거나 재해석하며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 간다. 책은 이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고대 문명 간 지식의 이동과 축적 과정을 통해 오늘날 정보가 생성·확산·변주되는 구조와 본질적으로 닮아 있음을 독자가 이해하도록 돕는다.
문체 또한 비교적 친절하다. 난해한 개념을 나열하기보다 사례와 흐름 중심으로 설명해 철학 입문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동시에 철학을 어느 정도 접한 독자에게는 기존에 알고 있던 사상들을 새로운 연결 구조 속에서 재정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세계철학전집, 훔친 철학편》은 철학을 외우는 학문이 아니라, 사유하는 태도를 배우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철학자들의 이름보다, 사상들이 어떻게 이어지고 변주되었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지식을 대하는 겸손함, 생각을 발전시키는 방법, 그리고 ‘내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묻는 질문을 독자에게 남긴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철학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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