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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음에 머물기 - 명상 수행을 위한 지침서
비쿠 아날라요 지음, 김수진 옮김 / 지식과감성#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비어있음에 머물기》를 읽고서···.
아날라요 스님의 《비어있음에 머물기》는 초기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비어있음(空)의 의미를 수행적으로 풀어낸 명상 안내서이다. 이 책은 단순한 개념 설명에 그치지 않고, 비어있음을 실제 명상과 일상 속에서 어떻게 체험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단계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번역자인 김수진은 스님의 명료하면서도 단정한 문체를 자연스럽게 살려내어, 한국어 독자들도 깊이 있는 수행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일상생활, 운둔, 땅, 무한한 공간, 무한한 의식, 자아의 비어있음, 표상없음, 열반’ 등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수행자가 점차 외부 자극과 물질적 조건에서 벗어나, 내면의 미세한 의식 상태와 궁극의 해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단계적으로 따라가는 구조이다. 각 장은 해당 주제에 대한 초기불교 경전의 구절을 바탕으로 명상 수행의 실제적인 접근법을 제시하고, 독자로 하여금 ‘비어있음’에 점점 더 깊이 머물도록 유도한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초기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비어있음에 대한 짧은 경’과 ‘비어있음 대한 긴 경’을 중심으로 비어있음 수행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님은 경전 본문을 인용하고 해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실제 수행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방식은 이론적 이해와 수행적 실천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독자들이 비어있음을 체험 가능한 수행의 길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책에서 말하는 ‘비어있음’은 흔히 오해되듯이 단순한 공허함이나 부정성이 아니다. 그것은 현상 세계가 고정된 본질 없이 조건적으로 형성된다는 통찰이며, 이러한 비어있음을 통해 집착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궁극의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아날라요 스님은 이를 수행적으로 풀어내며, 마음속의 불필요한 구성물과 개념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실천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특히 외부 환경에서 멀어지는 ‘운둔’, 감각적 인식을 초월하는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의식’,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자아의 비어있음’, 그리고 마침내 ‘열반’에 이르는 여정은 수행자로 하여금 자신을 해체하고 진정한 자유를 체험하게 한다.
<"앞으로 기울지도 뒤로 기울지도 않으면서, 억제나 제어하려는 노력 없이 집중에 도달한다. 그는 자유로워짐으로써 안정되고, 안정됨으로써 만족하게 되고, 만족함으로써 도용하지 않게 된다." 본문 중에서 151쪽>
또한 이 책은 명상 전용 공간이나 긴 수행 시간 없이도, 일상 속에서 비어있음을 실천할 수 있는 방식을 강조한다. 아침에 일어나며 느끼는 감각, 대화 중 드러나는 감정, 마음속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비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비어있음에 머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 실천은 단지 좌선 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수행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은 누구에게나 쉽고 가볍게 다가오는 읽을거리는 아니다. 불교에 대한 이해도나 수행적 배경지식이 많지 않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텍스트 자체는 읽고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 같지만, 아날라요 스님이 전달하고자 하는 심오한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자아 없음’이나 ‘표상 없음’, ‘열반’과 같은 개념은 불교 수행 전통에 대한 일정한 친숙함 없이는 관념적으로만 이해되기 쉬우며, 오히려 수행의 방향성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 이 책은 기본적인 경전 지식과 명상 경험을 가진 독자일수록 더욱 풍성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어있음에 머물기》는 불교 수행자뿐만 아니라 명상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에게도 깊은 통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아날라요 스님의 설명은 간결하면서도 정제되어 있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안에 수행의 핵심이 녹아 있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속에 가득 찬 것들을 하나씩 비우며, 그 빈자리를 고요함과 자유로 채우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비어있음 속에서 참된 평온과 해방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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