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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재료들 - 잠시만 이곳에
오성은 지음 / 호밀밭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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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여행의 재료들>은 다 읽은 후 방구석에 세워진 채로 하루하루 먼지만 쌓여가는 나의 기타 '부농부농이'를 다시금 튕겨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는 노래에는 별로 재능이 없다. 음치는 아니지만 뛰어나게 잘 부르지는 못한다. 어려서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언니가 너무 부러웠고 막연하게 나도 배우면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 내가 번 돈으로 직접 산 나만의 피아노가 생겼지만,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니 나에겐 피아노의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됐고 피아노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나버렸다.


20세에 접어들고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대신에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어쩌다 보니 게임을 만들고 있다. 선택과 집중.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취미로 치던 기타를 친구에게 팔아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보고 '생선가게 뮤지션'에 심취해 다시 기타를 샀다. 스스로를 '게임 가게 뮤지션'이라고 명명했으나 실력은 여전히 초보 딱지를 떼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직 전주밖에 연주하지 못하는 '벚꽃엔딩'을 연습하며 언젠가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버스킹을 하게 될 날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도서 <여행의 재료들>은 사실 여행보다는 작가 스스로에 대한 사색이 담긴 책이다. 늦게까지 '나의 길'을 찾지 못하다가 이제야 '나의 길'이라는 것을 찾아가는 것 같은 서른네 살 어른 아이에게 작가의 '머무름'은 많은 공감을 가져다줬다. 그는 다양한 여행지를 다니지만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는 그의 인생을 찾아나가는 여정 같아 보인다. 그는 잠시 머무르지만 아직 정착하지는 않았다.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아직 정착하지 못하고 잠시 머무르며 계속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어렵지 않고 쉽게 쓰인 문체를 읽어내리며 작가가 지내 온 나날들을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떠나지 못한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있는 그를 부러워하며 혹은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다른 여행책처럼 '나 이렇게 좋은 곳을 여행했어요. 여기 정말 좋아요!' 같은 내용이 아니라 보통은 들르지 않을 장소 - 특히 묘지 - 등을 들르며 작가의 사색과 삶에 대해 써 내려간 책이라서, 책을 읽으면서 '여행 가고 싶다'라는 생각보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는 오묘한 책이다. 책을 읽었지만, 다른 여행 도서를 읽은 것처럼 떠나고 싶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오늘은 어떠한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의 삶이라는 여행에서 나는 잠시 머무를 뿐, 아직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음악의 도시 멜버른에서 작가가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읽으며 그 모습을 상상하고, 곡 세 개를 연주할 수 있게 되면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버스킹을 해보겠다는 꿈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구석에 놓인 기타의 먼지를 쓸어내리고 현을 튕겨 본다. 틈틈이 조율만 해주고 방치된 기타는 그럼에도 아름다운 음색을 방 안에 울리게 한다. 그래. 나도 언젠가는.



여행은 그 자체로 보상이니까.


인생이라는 기나긴 길을 여행하는 것도 어쩌면 그 자체로 보상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만나고 새로운 요리를 만나고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는 것까지. 아주 소소하고 여느 때와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어제와 오늘은 다른 것처럼.


 오늘은 나의 삶이라는 여행에서 '맛있는 저녁'이라는 보상을 채워주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해볼까 한다. 아주 멀리 가지 않고 나의 주방에서도 찾을 수 있는 재료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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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오라클이다 - Oracle 설치부터 PL/SQL 정복까지! 이것이 시리즈
우재남 지음 / 한빛미디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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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클. 그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처럼 강력한 기능을 가진 데이터베이스다. 표지에는 고대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은 로봇이 있다. 이건 마치 오라클의 능력과 IT 기술의 결정체인 로봇을 융합한 것 같아, 오라클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재미있다.



이 책은 오라클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바이블 같은 느낌의 책인 것 같다. 물론 DB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보기엔 난이도가 있는 책이었다. 최소한 데이터베이스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본 사람이 읽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전체적인 책의 느낌은 부드럽고 친절하다. 읽으면서 계속해서 드는 느낌은 1:1 과외를 받는 느낌이랄까?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설치 방법까지 스크릿샷 한 장 한 장 아주 친절하게 잘 설명이 되어 있다. 혹 이 친절한 설명이나 스크린샷을 보고도 헤매는 분들이 있다면, 동영상 강의를 보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이 동영상엔 포함되어있으니까 말이다. 거기다가 무려 무료다.


목차나 주 내용은 여느 데이터베이스 입문 책과 비슷하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왠지 친근하고 친절한 느낌(?)의 표지도 상당히 재밌는 편이다.  그리고 추가로 PHP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과 오라클과 같이 활용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첨으로 오라클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고려해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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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나무와 바람
장현정 지음, 배민기 그림, 홍성기 영역 / 호밀밭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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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화책을 좋아한다. 장르문학에서는 추리소설을 가장 좋아하지만 그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 동화책이다. 처음에는 게임 작업을 할 때 그래픽(그림)의 콘셉트를 참고하기 위해서 펼쳐보고는 했는데,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보니 그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아주 뜬금없지만, 아이들이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동화책은 아주 훌륭한 자료가 된다. 


호밀밭 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신간인 '아기나무와 바람'은 아이들보다는 사실 어른을 위한 동화다. 아이의 시선에 맞춰 쉽게 쓰이고 쉽게 그려졌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오늘 하루를 힘들게 살고 있는 나 같은 '어른이'를 위한 내용 같다.



가로로 길쭉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동화책 '아기나무와 바람'은 주인공 아기나무와 바람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함께 하고 또다시 봄을 함께 하게 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실의 나무가 이렇게 빨리 성장하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아기나무의 성장은 조금은 빠른 편이기는 하다.



무엇보다 동화책이 한글과 영어로 함께 쓰여 있기 때문에 아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어학 공부 용도로 매우 좋은 책인 것 같다. 동화책이다 보니 영어 단어도 쉬운 단어 위주로 쓰여 있어서 읽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따뜻한 그림에 위로해주는듯한 문체가 마음에 드는 동화책이었다.



'아기나무와 바람'에서 바람은 움직일 수 없는 아기나무에게 자신이 다녀온 곳의 이야기들, 본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 데 그중에서 '사막'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람은 사막을 '울기 좋은 곳'이라고 표현한다. 아기나무는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어른이'인 나는 그 부분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사막은...... 울기에 좋아.



거기엔 아무것도 없으니까. 아무것도 없어서 울기에 좋아.

하지만 슬퍼서 우는 건 아니야.

오히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말이 마음을 채워왔다. 그렇구나.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게 다 있는 느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의 나는 이것저것 많지만 아무것도 없는 느낌을 겪고 있는 중이라서 더욱 와닿았던 것 같다. 바람이 아기 나무에게 건네는 말들은 마치 이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던 나를 향한 말 같았다.



마침내 사막에 다녀온 아기 나무가 바람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부분도 마음에 와닿았다. 그저 동화책일 뿐인데 다 큰 어른이 마음 찡해지는 따뜻한 글귀들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 그리고 책을 덮은 이후에도 빙글빙글 맴도는 책. '아기나무와 바람'. 처음에 제목만 보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내용을 상상했던 나 자신이 참 안타까워질 정도였다.



끊임없이 찾아다닌다는 건 아름다운 일인 것 같아.

희망이란 건 그런 걸까?


듣는 어른 찡하게 만드는 아기나무의 말. 잘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지천에 깔려 있는 행복의 세잎클로버처럼 보이지 않아서 끊임없이 찾아다니게 되는 희망. 하지만 그렇기에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아기나무의 말이 위로가 되어 다가온다. 혼자서만 읽기엔 정말 아까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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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 이펙트 - 세상에서 가장 중독성 높은 게임의 탄생 비화
댄 애커먼 지음, 권혜정 번역 / 한빛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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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테트리스는 러시아의 한 프로그래머가 시작한 간단한 프로젝트다. 러시아의 연구원이 본인과 연구소 내 몇명과 즐길 생각으로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였. 하지만 게임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소비에트 연방의 철의 장막을 너머 세계상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 책은 테트리스의 원 저작권을 둘러싼 신명나는 투닥투닥을 다루고 있다. (물론 닌텐도가 이겼다)



나는 사실 이 책을 받아보기 전에 '페르시아 왕자 개발일지' 같은 느낌을 기대를 했는데(게임 개발 하기 싫다 으앙~~ 같은), 이 책은 좀 더 역사서 같은 느낌이다. IT서적이지만 교양서에 가까운 느낌이라서 쉽게 술술 읽히지도 않는다. 테트리스의 역사와 어떻게 이 작고 간단한 게임이 장벽을 너머 세계로 퍼졌는지를 알게 되는 것에 있어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테트리스를 해본 적이 없는 요즘 세대에게는 사실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 힘들 것 같지만, 오히려 그로인해 고전게임인 테트리스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영화 개봉 이후 차트 역주행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테트리스 이펙트'라는 책의 제목처럼 테트리스의 파급력이나 이 게임이 장벽을 넘어서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면서 만들어 낸 효과들까지 그런 부분들을 좀 더 다루었으면 좋았을텐데, 기획적인 측면이나 게임의 재미적인 측면 보다는 단순히 역사서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은 많이 아쉽다. 책의 제목에 많은 기대를 했던 사람으로써 더욱 그렇다.


제목이 '테트리스의 역사'가 아니라 '테트리스 이펙트'라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게임 기획자로써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테트리스라는 게임의 이름만 알고 있는 정도라면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들과 역사 중심으로 나열된 사건들에 지루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차피 한빛의 IT서적은 개발관련 직군들이 주로 읽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다만서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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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유산
김성용 지음 / 호밀밭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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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산의 대연동에 있는 지역 출판사 <호밀밭>에서 SNS 서포터즈를 모집했다. 으레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제한을 두지 않고 있었다. 원래도 책을 좋아하지만 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어서 심리에 관한 책을 부쩍 더 찾아 읽고 있는 요즘, 꽤 좋은 기회라고 생각됐다. 특이하게도 오프라인 발대식을 갖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발대식 날 첫 리뷰 서적을 선택(!)하게 되었다. 간단한 게임을 통해서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그 많은 책 중에 내 손에 들린 책은 <망각의 유산>이었다. 



책 안을 천천히 훑어 볼 시간은 없었기 때문에 표지의 도자기 찻잔, 다완을 보고 골랐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최근 새로운 취미에 빠졌는데 바로 도자기를 모으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도꾸리(술병)와 술잔들을 모으고 있다. 원래 술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좋기 때문에 최근 들어서 마음에 드는 술병과 술잔들을 모으고 있었다. 내가 주로 술병과 술잔을 구입하는 판매처에서는 다양한 일본의 도자기 제품들을 다루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도자기로 만든 다기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만큼 호밀밭 출판사의 수많은 책들 중 이 책을 집은 것은 내게 있어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도자기를 좋아하기는 해도 '도기'와 '자기'의 차이를 잘 몰랐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수집한 잔과 술병들 중 어느 것이 '도기'이고 어느 것이 '자기'인지 알 수 있어서 괜스레 수집한 잔과 술병을 두드려보며 소리를 듣기도 하고 실생활에 매우 유익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도서 <망각의 유산>은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팩션 형식으로 다룬 소설이다. 안타깝게도 직접 읽다 보면 에세이 형식을 띈 이 책 때문에 독자인 나는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헷갈리게 되고 만다. 그리고 아무래도 정년퇴직을 한 언론인 출신 주인공과 나의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고 이 책은 '도자기'를 통해서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책 속의 도자기 장인 운봉 선생은 어찌나 말을 매끄럽게 하는지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푹 빠져서 읽다가도 주인공 김기자의 의식의 흐름 따라 움직이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흐름이 더뎌진다. 그래도 책 한 권을 한 작가가 쓴 것인데 같은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인 운봉 선생의 말은 어찌 이렇게 쉽고 매끄럽게 들리며, 김기자의 말은 쉬운 말인데도 따라잡을 수가 없는지 미스터리 한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책 속 김기자가 말을 틀 때마다 읽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고, 운봉 선생님이 입을 떼면 어찌나 흥미 진진하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도서 <망각의 유산>은, 정년퇴직을 한 언론인 출신 주인공이 부산 기장에 터를 잡고 도자기를 빚는 장인 운봉 선생과 해후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우리 도자기의 발자취와 속내를 들려준다. 주인공 김 기자는 일본과 부산 기장을 오가며 한일 양국 사이에 놓인 도자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동안 한일 양국의 지나간 역사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4대째 도예가로서의 가업을 이으며 오랜 시간 일본에서 도자기 공부를 하기도 했던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효봉 김영길 선생과 그의 부친을 실존 모델로 일본 문화 속 한국 도자기의 발자취를 톺아보는 역사 스토리텔링 형식의 소설이다. 한일 양국 도자기 역사의 이면을 파헤치면서 그 진실을 통해 역사적 의식을 고취할 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찾고 힘을 기를 수 있는 미래상을 그려낸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조선시대 우리 조상이 대마도를 그냥 두지는 않았다. 왜구들이 하도 쳐들어 오니까 왜구 토벌을 위해서 대마도 정벌을 갔지, 대마도를 우리 것으로 하기 위해서 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 거라면 맞는 말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바다를 두려워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그 작은 섬에 욕심도 없었고 애당초 남의 것을 욕심내는 것은 일본이 잘 하던 짓이지 우리 선조들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율곡 이이가 임진왜란이 일어날 거라고 했음에도 반대 세력의 말만 믿고 멍 때리고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는 나도 분통이 터지는 일이기에 그 부분은 공감한다.



책의 제목이 왜 <망각의 유산>이 되었는지 알려주는 부분. 


그동안 성장만을 추구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는 바람에 보지 못하고 놓친 것.

'망각의 유산'이 되어 버린 안타까운 우리 연사라고도 할 수 있겠지.


운봉의 말대로 도서 <망각의 유산>은 도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역사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우리나라 도공들이 어마어마하게 끌려갔던 임진왜란을 계속 예를 들며 이야기 하니 들을수록 가슴 아프고 분통 터지는 일이다.


특히 초반부 이삼평의 이야기를 보면서는 고려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일본 편할 대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들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랄까. 일본의 히젠 <도자기 사고>에는 이삼평이 왜군의 앞잡이였고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일본에 가기를 원하였다고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살아남은 자, 승리한 자를 기준으로 기록이 되기 때문에 <도자기 사고>가 납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일 거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고려 말. 민심은 바닥을 치고 왕이 방탕하였다고 말하는 기록이 한편으로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면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려 말을 그렇게 묘사했다는 설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다.


4백 년의 세월이 거대한 산을 모두 도자기로 만들어 버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 그래서 언제나 볼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을 소홀히 여긴다. 조선에게 도자기는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일본인들에게는 도자기 흙을 얻을 수 있는 '아리타'가 너무나 소중한 곳이었던 만큼, 언제나 도자기 흙을 얻을 수 있고 가까운 주막에서 언제든 도자기 잔과 병으로 탁주를 마시던 이들에게 도자기는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겠지.


도자기를 떠나서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사람도 가장 가까이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쉽게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마니까. 우리가 우리의 기술에 좀 더 가치를 쏟았다면, 우리나라의 찻잔이 일본의 국보가 되는 일 없이 우리나라의 박물관 곳곳에도 우리의 도자기가 더 가득 차지 않았을까. 당장 건물 지으려고 땅 파다가 유물이 발굴되면, 신고할 경우 공사가 지연될까 봐 그냥 덮어버린다는 실정과는 너무나 먼 나라의 이야기이기는 하다.



나는 수영 주민이다. 수영은 옛날의 좌수영성의 이름을 따서 지명이 '수영'이 되었다. 모든 수영 주민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고 내가 사는 지역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있어서 관련 사적지가 많은 이 지역에서 살며 이 책에서 다루는 '왜구'와 '임진왜란'은 와닿는 깊이가 달랐다. 무엇보다 단순히 역사를 나열하는 것으로도 충분했을 이야기인데 <도자기>로 시작해서 호기심을 끌어내고 한일 관계를 비교해 앞날까지 바라본다는 건 참신했다. 다만, 위에서 말했다시피 김기자의 에세이(?) 부분은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쉬이 읽히는 책은 아니므로 역사와 도자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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