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유산
김성용 지음 / 호밀밭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부산의 대연동에 있는 지역 출판사 <호밀밭>에서 SNS 서포터즈를 모집했다. 으레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제한을 두지 않고 있었다. 원래도 책을 좋아하지만 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어서 심리에 관한 책을 부쩍 더 찾아 읽고 있는 요즘, 꽤 좋은 기회라고 생각됐다. 특이하게도 오프라인 발대식을 갖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발대식 날 첫 리뷰 서적을 선택(!)하게 되었다. 간단한 게임을 통해서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그 많은 책 중에 내 손에 들린 책은 <망각의 유산>이었다. 



책 안을 천천히 훑어 볼 시간은 없었기 때문에 표지의 도자기 찻잔, 다완을 보고 골랐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최근 새로운 취미에 빠졌는데 바로 도자기를 모으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도꾸리(술병)와 술잔들을 모으고 있다. 원래 술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좋기 때문에 최근 들어서 마음에 드는 술병과 술잔들을 모으고 있었다. 내가 주로 술병과 술잔을 구입하는 판매처에서는 다양한 일본의 도자기 제품들을 다루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도자기로 만든 다기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만큼 호밀밭 출판사의 수많은 책들 중 이 책을 집은 것은 내게 있어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도자기를 좋아하기는 해도 '도기'와 '자기'의 차이를 잘 몰랐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수집한 잔과 술병들 중 어느 것이 '도기'이고 어느 것이 '자기'인지 알 수 있어서 괜스레 수집한 잔과 술병을 두드려보며 소리를 듣기도 하고 실생활에 매우 유익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도서 <망각의 유산>은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팩션 형식으로 다룬 소설이다. 안타깝게도 직접 읽다 보면 에세이 형식을 띈 이 책 때문에 독자인 나는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헷갈리게 되고 만다. 그리고 아무래도 정년퇴직을 한 언론인 출신 주인공과 나의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고 이 책은 '도자기'를 통해서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책 속의 도자기 장인 운봉 선생은 어찌나 말을 매끄럽게 하는지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푹 빠져서 읽다가도 주인공 김기자의 의식의 흐름 따라 움직이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흐름이 더뎌진다. 그래도 책 한 권을 한 작가가 쓴 것인데 같은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인 운봉 선생의 말은 어찌 이렇게 쉽고 매끄럽게 들리며, 김기자의 말은 쉬운 말인데도 따라잡을 수가 없는지 미스터리 한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책 속 김기자가 말을 틀 때마다 읽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고, 운봉 선생님이 입을 떼면 어찌나 흥미 진진하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도서 <망각의 유산>은, 정년퇴직을 한 언론인 출신 주인공이 부산 기장에 터를 잡고 도자기를 빚는 장인 운봉 선생과 해후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우리 도자기의 발자취와 속내를 들려준다. 주인공 김 기자는 일본과 부산 기장을 오가며 한일 양국 사이에 놓인 도자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동안 한일 양국의 지나간 역사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4대째 도예가로서의 가업을 이으며 오랜 시간 일본에서 도자기 공부를 하기도 했던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효봉 김영길 선생과 그의 부친을 실존 모델로 일본 문화 속 한국 도자기의 발자취를 톺아보는 역사 스토리텔링 형식의 소설이다. 한일 양국 도자기 역사의 이면을 파헤치면서 그 진실을 통해 역사적 의식을 고취할 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찾고 힘을 기를 수 있는 미래상을 그려낸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조선시대 우리 조상이 대마도를 그냥 두지는 않았다. 왜구들이 하도 쳐들어 오니까 왜구 토벌을 위해서 대마도 정벌을 갔지, 대마도를 우리 것으로 하기 위해서 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 거라면 맞는 말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바다를 두려워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그 작은 섬에 욕심도 없었고 애당초 남의 것을 욕심내는 것은 일본이 잘 하던 짓이지 우리 선조들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율곡 이이가 임진왜란이 일어날 거라고 했음에도 반대 세력의 말만 믿고 멍 때리고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는 나도 분통이 터지는 일이기에 그 부분은 공감한다.



책의 제목이 왜 <망각의 유산>이 되었는지 알려주는 부분. 


그동안 성장만을 추구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는 바람에 보지 못하고 놓친 것.

'망각의 유산'이 되어 버린 안타까운 우리 연사라고도 할 수 있겠지.


운봉의 말대로 도서 <망각의 유산>은 도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역사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우리나라 도공들이 어마어마하게 끌려갔던 임진왜란을 계속 예를 들며 이야기 하니 들을수록 가슴 아프고 분통 터지는 일이다.


특히 초반부 이삼평의 이야기를 보면서는 고려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일본 편할 대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들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랄까. 일본의 히젠 <도자기 사고>에는 이삼평이 왜군의 앞잡이였고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일본에 가기를 원하였다고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살아남은 자, 승리한 자를 기준으로 기록이 되기 때문에 <도자기 사고>가 납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일 거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고려 말. 민심은 바닥을 치고 왕이 방탕하였다고 말하는 기록이 한편으로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면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려 말을 그렇게 묘사했다는 설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다.


4백 년의 세월이 거대한 산을 모두 도자기로 만들어 버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 그래서 언제나 볼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을 소홀히 여긴다. 조선에게 도자기는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일본인들에게는 도자기 흙을 얻을 수 있는 '아리타'가 너무나 소중한 곳이었던 만큼, 언제나 도자기 흙을 얻을 수 있고 가까운 주막에서 언제든 도자기 잔과 병으로 탁주를 마시던 이들에게 도자기는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겠지.


도자기를 떠나서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사람도 가장 가까이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쉽게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마니까. 우리가 우리의 기술에 좀 더 가치를 쏟았다면, 우리나라의 찻잔이 일본의 국보가 되는 일 없이 우리나라의 박물관 곳곳에도 우리의 도자기가 더 가득 차지 않았을까. 당장 건물 지으려고 땅 파다가 유물이 발굴되면, 신고할 경우 공사가 지연될까 봐 그냥 덮어버린다는 실정과는 너무나 먼 나라의 이야기이기는 하다.



나는 수영 주민이다. 수영은 옛날의 좌수영성의 이름을 따서 지명이 '수영'이 되었다. 모든 수영 주민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고 내가 사는 지역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있어서 관련 사적지가 많은 이 지역에서 살며 이 책에서 다루는 '왜구'와 '임진왜란'은 와닿는 깊이가 달랐다. 무엇보다 단순히 역사를 나열하는 것으로도 충분했을 이야기인데 <도자기>로 시작해서 호기심을 끌어내고 한일 관계를 비교해 앞날까지 바라본다는 건 참신했다. 다만, 위에서 말했다시피 김기자의 에세이(?) 부분은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쉬이 읽히는 책은 아니므로 역사와 도자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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