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선 너머 - 수상하고도 발칙한 다이어리
손영미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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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선 너머』라는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시간의 끝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어떤 아득한 경계선이 떠올랐다. 낯선 단어인데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부터 ‘시평선’의 의미를 곱씹게 되었다. 다 읽고 난 뒤에는 그것이 단순한 조어가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이 지나가는 불안과 성장의 경계선을 의미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소설은 중학교 2학년 설주의 시선을 따라간다. 설주는 평범하지만 누구보다 복잡한 내면을 가진 아이다. 친구와의 관계, 부모의 기대, 자신의 꿈 사이에서 흔들리며 하루하루를 지나간다. 그런데 손영미 작가는 이 시기의 감정을 과장하거나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담백하고 절제된 문체로 아이들의 불안과 외로움을 천천히 따라간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아프게 다가온다.




책을 읽는 내내 자연스럽게 중2가 된 조카가 떠올랐다. 모두의 축복 속에서 귀하게 태어난 아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그러나 동시에 훨씬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 있다. 어린 시절부터 비교와 평가에 익숙해지고,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이름 아래 쉼 없이 달려간다. “4시간 자면 명문대 간다”는 식의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속도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지금의 교육은 정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부모 세대가 이루지 못했던 시간의 연장선 위에서, 아이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인생은 결국 아이들 스스로 미래를 향해 살아가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지나간 자신의 후회와 불안을 아이들에게 투영하며,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부모의 간절함이 때로는 아이들의 숨 쉴 공간을 좁혀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시평선 너머』는 바로 그 지점을 조용히 건드린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훨씬 깊게 고민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것을 단순한 ‘중2병’ 정도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소설은 그 말 뒤에 가려진 불안과 외로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기만의 꿈을 지키고 싶은 절박함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설주가 끝내 자신의 꿈을 스스로 붙잡으려 한다는 점이었다. 부모는 사랑하기 때문에 간섭한다고 말하지만, 사랑과 통제는 때로 아주 가까운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아이들은 부모의 복사본이 아니다. 각자의 속도와 감정, 각자의 재능과 세계를 가진 독립된 존재다. 소설은 그것을 거창한 교훈 대신 아이들의 일상적인 대화와 감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좋았던 이유는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내려다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어른들이 잃어버린 감수성과 상상력, 상처를 기억하는 힘이 아이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중학생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한때 불안하고 서툴렀던 자기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시평선 너머』는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다. 경쟁과 속도의 시대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른들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아이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불안과 미련을 아이들의 삶 위에 덧씌우고 있는가. 책을 덮고 난 뒤 오래도록 그 질문이 마음에 남았다.



과연 나는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어른인가? 아이들을 모르는 무관심한 존재일까? 


이 책 서평은 바른북스 협찬, 문화충전 200 기획 제공받아, 솔직하게 읽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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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적 오답 연구 ㅣ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1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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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중세의 형벌 제도를 다룬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은 단순히 잔혹한 처벌의 사례를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인간은 왜 형벌을 만들었고, 국가 권력은 왜 공포를 필요로 했는가를 되묻게 만드는 책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느껴지는 것은 충격보다도 인간 본성에 대한 불편한 자각이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다. 문명을 발전시키고 제도를 정비하며 인권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왔지만, 인간 사회의 갈등은 시대를 바꿔가며 반복된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폭력이 난무했다면, 오늘날에는 자본과 권력, 정보의 불균형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박탈감과 갈등이 발생한다. 자유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도 벌어진다. 책 속의 형벌사는 결국 인간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고대와 중세의 형벌이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공포의 시위’였다는 사실이다. 공개 처형과 신체 훼손은 죄인을 벌하는 동시에 대중에게 권력의 절대성을 각인시키는 수단이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국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통치 행위로 기능했던 것이다. 끊임없는 정복전쟁과 살육 속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은 쉽게 소모되었고, 사람들은 공포를 통해 질서를 학습했다. 책은 이러한 역사를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으로 정리해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사법 시스템도 떠올리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인권 친화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왔지만, 흉악범죄에 대한 판결이 국민 정서와 크게 괴리될 때면 사람들은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범죄의 피해와 고통은 분명한데, 법의 판단은 때때로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물론 법은 감정만으로 움직일 수 없고, 냉정한 절차와 기준 위에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법이 사회 구성원들의 상식과 지나치게 멀어질 때, 사법 신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잔혹한 형벌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던지는 핵심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폭력을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해 왔는가에 대한 경고에 가깝다. 동시에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형벌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 역시 피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잔혹함의 강도가 아니라, 법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고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책임의 원칙을 세우는 일일 것이다.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은 과거의 기괴한 형벌을 흥미 위주로 소비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폭력성과 권력의 본질,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인문학적 기록에 가깝다. 책을 덮고 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시대가 변해도 인간 사회는 여전히 정의와 질서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 서평은 모티브 협찬, 문화충전200 기획 제공받아, 솔직하게 읽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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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릴케 시 필사집 ㅣ 쓰는 기쁨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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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순수가 모순의 형체를 띌 수 있을까? 제목 자체가 모순인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시집을 펼쳐봤다. 보라색의 양장본이 오랫동안 간직할 소중한 정성을 떠올리게 했다. 첫 장을 넘겨보는데 조심스러워졌다. 5월의 후텁지근함과 함께 한편에 가득 쌓아둔 책에 대한 미안함이 복잡한 마음에 얽혀 쌓여갔다. 좀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처음 무작정 습작을 이어갔을 때의 홀가분한 마음을 찾기 위해 시집을 선택했다. 번잡한 마음의 무게가 덜어질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흔히 20세기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고독,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존재의 감각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포착했던 인물이다. 특히 그의 시 세계는 당시 유럽 사회의 불안정한 시대 분위기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다.





릴케가 활동하던 시기의 독일과 유럽은 격변의 시대였다. 제국주의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전통적인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었고, 인간은 점점 거대한 국가와 체제 속의 부속품처럼 변해갔다. 당시 독일은 강한 중앙집권적 질서와 규율, 군국주의적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발전과 질서의 시대였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성의 소외와 정신적 공허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긴장감은 유럽 지식인들에게 존재론적 불안을 안겼고, 릴케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인간 내면의 고독과 죽음을 응시하게 된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고요함’이었다. 격렬하게 감정을 토해내지 않는데도 이상하리만큼 깊게 흔들린다. 마치 오래된 호수의 수면처럼 잔잔한데, 그 아래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슬픔과 사랑, 죽음에 대한 사유가 끝없이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릴케의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스며드는 것에 가깝다. 필사를 하며 한 문장씩 따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시인의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릴케의 시가 특별한 이유는 시대를 직접적으로 고발하거나 거칠게 저항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거대한 정치적 구호 대신, 아주 사적인 감정과 침묵 속으로 파고들었다. 꽃 한 송이, 오래된 조각상, 창밖의 풍경, 고독한 산책 같은 일상의 감각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길어 올렸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마치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신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필사집의 제목이 된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라는 문장 역시 릴케 특유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장미는 아름다움과 생명, 동시에 시듦과 죽음을 품고 있다. 인간 역시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받고,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릴케는 이런 모순을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시는 슬프지만 절망적이지 않고, 고독하지만 차갑지 않다. 오히려 모든 불완전함을 끌어안으려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이 필사집의 부제인 ‘쓰는 기쁨’ 또한 릴케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릴케는 평생 끊임없이 메모하고 편지를 쓰며 살아간 인물이었다. 그는 특정한 장소에 정착하기보다 유럽 여러 도시를 떠돌며 산책하고 사색하는 삶을 택했고, 일상의 작은 풍경과 감정을 섬세하게 기록했다. 특히 그는 “시는 감정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축적된 경험 속에서 나온다"라는 취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에게 시는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자체에 가까웠다. 순간의 인상을 오래 응시하고, 그것이 마음속에서 충분히 숙성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언어로 꺼내는 과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필사는 단순히 문장을 따라 적는 행위가 아니라, 릴케가 세상을 바라보던 호흡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경험에 가깝다.





그래서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는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삶의 감정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언어에 익숙한 시대 속에서 릴케의 문장은 오히려 천천히 멈춰 서게 만든다. 그리고 독자는 문득 깨닫게 된다. 인간은 완벽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모순과 상처를 품고 살아가기 때문에 더 깊고 애틋한 존재라는 사실을.





쓰는 기쁨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를 나무생각 협찬, 문화충전200 기획 제공받아, 솔직하게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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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닝 - 끝없이 나를 타인에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잉그리드 클레이튼 지음, 최시은 옮김, 김현수 감수 / 센시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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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만큼, 삶에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의 뜻 자체가 삶과 삶 사이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삶 자체를 알아가며 진화하는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같아도, 표현방식도 다르니, 같은 뜻이 왜곡되고 굴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AI의 출현 이후 사람의 입지는 점점 좁아들고 있다. 모바일 등장하곤 바로 앞의 사람을 대면하고서도, 터치 화면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황이 드물지 않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은 가족 간의 시간은 직장동료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턱없이 비좁다. 사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은 가족 사이 서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인 이후의 자녀는 더욱 부모에게 삶의 고충을 털어내지 못한다. 부모 마음 모르는 자식보다는 자식 마음 헤아리지 못하는 노욕의 부모가 훨씬 많다. 결혼의 대전제에 행복이 빠져 있고, 세월이 약이다.는 식이다. 본질적으로 애증의 관계에 가깝다 할 것이다.



둘 만 낳아 잘 키우자. 시절만 해도,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부대끼며 성장해나갔다. 아이의 교육을 일일이 봐줄 여력 되는 부모가 몇이나 되었을까? 이 시절의 가장은 무능하고 폭력적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 스스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가정의 평화에 일방적으로 순응했다. 뻔히 불합리한 상황까지도 감수했다. 트라우마 치료 심리 전문가 잉그리드 클레이튼은 이런 순응을 생존의 과정으로 정의했다.




포닝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은 단순히 “나는 왜 타인에게 맞추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질문, “나는 정말 내 삶의 중심에 서 있는가”에 가까워진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고,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를 먼저 살피며, 스스로를 뒤로 미루는 태도는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회와 가족 안에서 학습된 생존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인관계가 활발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면의 고충은 누구에게도 털어낼 수 없었다. 듣고 보면, 누가 누구의 푸념을 듣고 있는가? 생각이 들었다. 역설적으로 나는 갈등에 순응하는 것보다, 반응하며 나 자신을 지켜내려고 했다. 특히 가족 간에 지켜야 할 선을 지켜내기 위해, 폭압적인 관계를 끊어내야 했다. 그때마다 가족을 비롯하여, 자초지종을 제대로 알리 없는 주변인들이 거드는 흐름에 폭압이 단절되지 못하고, 반복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특히 생각하는 능력이 감퇴하고 나면, 육체의 고단함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평소 순응적인 대상에 감정이입하며 하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어쩌면 20살 이후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까닭은, 본인의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명의 이기는 효율성의 방향으로 알고리즘 생성되는데도, 변화 자체에 적응하지 못할수록 과거지사에 집착하며, 현재와 미래 시간 자원을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자인 잉그리드 클레이튼은 포닝(fawning)을 타인의 요구와 감정에 과도하게 적응하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트라우마 반응으로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반응이 폭력적이거나 극단적인 환경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을 위해 참고 살아야 한다"라는 문화 속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재생산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 포닝은 쉽게 미덕처럼 오해된다. 순종, 희생, 배려, 인내 같은 이름으로 말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를 들여다보면, 그 체계를 실질적으로 유지해 온 것은 의외로 ‘권위적인 아버지’만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 질서를 묵묵히 감당하고 지탱해 온 것은 순종적인 어머니 세대였다. 특히 지금의 시니어 여성 세대는 자신의 욕구나 감정보다 가족의 안정과 체면을 우선하도록 교육받았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곧 좋은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의 역할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순응의 방식이 세대를 넘어 정서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면 현재의 부모 세대는 과거보다 훨씬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내면의 깊은 부분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포닝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고부 갈등의 구조를 보면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들에게는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지만, 정작 독립적인 판단의 주체로 신뢰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일부 어머니들은 자신이 과거 가부장적 남편에게 순응하며 살아왔던 감정 구조를 아들에게 투영하거나, 며느리와의 관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때 억압받았던 위치에 있던 사람이 또 다른 관계 안에서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남편에게는 침묵했던 사람이 자녀 세대에게는 감정적 압박을 행사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보다 “조용히 넘어가지 못하느냐"라는 태도로 갈등 자체를 비난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질서 유지’가 된다. 그리고 그 질서 유지를 위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대개 가장 순한 사람, 가장 양보하는 사람의 감정이다.





이 지점에서 포닝은 단순한 심리학 서적을 넘어 사회문화적 통찰로 확장된다. 포닝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정서적 생존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갈등을 두려워하고, 관계의 균열을 공포처럼 여기며, 누군가의 불쾌함을 막기 위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조정하는 문화.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법부터 배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정말 평화를 원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갈등이 두려운 사람인가. 나는 내 삶에 충실한가, 아니면 누군가의 감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는가. 그리고 내가 ‘배려’라고 믿어온 태도는 과연 건강한 공감이었는지, 아니면 오랫동안 학습된 포닝의 흔적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인간관계의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를 묻는 책에 가깝다. 그리고 그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사회적이며, 세대적이고, 가족사적인 문제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포닝의 징조가 발견될 때 냉철하게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뭐든 처음이 어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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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목소리로 SING - 세계적인 보컬 코치가 전하는 브로드웨이 보컬 레슨 10
메리 세트라키안 지음, 이계창.조선아 옮김 / 센시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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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수록 좋은 목소리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엔 귀가 즐거운 목소리 톤 억양이 존재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명쾌한 발성이 귀에 쏙쏙 들어와 호감으로 작용한다. 반면 불쾌감을 자아내거나 우울감을 유발하는 리듬도 있다. 비교적 청력이 뛰어난데도 상대방이 말하는 의사 표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 때가 많다. 신기할 정도로 그들 사이에선 마법의 언어처럼 통하는 사이는 많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의 언어생활은 기복이 심각한 정도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단절'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순간, 목소리 자체가 묵히는 일도 일어났다. 쇤 소리도 유발되었다. 사람과 대화를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목소리 톤은 윤활유를 바른 것처럼 부드럽게 탄력을 받는다. 반면 대화가 단절된 순간 속에서 억누르고 두터운 막을 뚫고 나와야 하는 오래된 본드와 같이 들러붙었다.





지금은 나만 빼고 모두들 말을 잘한다. 어린아이, 외국인 들도 유창하게 말을 잘한다. 내가 음치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은 노래방에 처음 갔던 때였다. 그때 나만 빼고 다들 노래를 잘한다를 실감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음치도 꽤 있었으며, 나름 몸으로 하는 건 리듬을 탈 줄 알았단 사실에 탬버린으로 민망한 틈을 메꿨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K-팝의 본산에 살고 있음에도, 난 가수 이름을 모르고 지낸 지 까마득한 지경이다. 그런데 감미롭거나 리듬감 있는 선율을 듣고 나면, 감흥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고, 몸이 흥겨울 때가 많았다. 음악이 주는 묘미이다. 세계적인 보컬 트레이너 메리 세트 라카 안이 쓴 "나만의 목소리로 SING" 한국어 버전. 상큼한 헤어스타일에 밝은 표정의 저자 사진이 표지에 등장한다. "나만의 목소리로"에 방점이 각인된다.





저자는 수십 년간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책에 써 내려가고 있는다. 독특한 보이스 트레이닝 방식은 교습 대상의 삶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모습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저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책의 첫 장에 담고 있다. 원래 행복이라는 궁극적인 감정을 위해 절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점진적인 허용의 과정을 깨닫기 시작한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했다는 인간승리의 휴머니즘은 AI 시대를 맞아, 더욱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소용돌이 앞에, 실패에 대한 관용은 발견하기 힘들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긍정의 동기부여가 귀하다. 완벽해지지 않아도 될 일에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이분법적인 비판에 열을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은 10가지의 단계별 과정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발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보이스 트레이닝보다도 훨씬 정교한 과정을 텍스트로 풀어쓴다는 자체가 놀랍다. 그런데 내가 쇤 소리가 나올 때, 평소와 다른 명료한 목소리가 나올 때를 생각해 발성했던 공명의 과정과 이치가 비슷해서 신기했다. 원리는 우연의 관찰을 어떻게 발굴하는가?에 진화하는 것인가?






겸손의 인간적 매력이 풍성한 책의 매력을 발견했다. 저자가 바로 옆에서 이건 이렇게... 조금씩~ 일러주는 느낌이었다. 현란한 자화자찬 무용담은 없었다. 수십 년간의 보컬 트레이닝의 과정을 기록한 것을 생생하게 책으로 펴낸 자체였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생동감 있게 재현하는 천부적인 능력을 보유한 저자일 것이다. 워낙 상세한 예시에 설명은 간결하게 해둬서, 보컬 교본을 접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 서평은 센시오 협찬, 문화충전200 기획 제공으로 솔직하게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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