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조의 칼
문호성 지음 / 호밀밭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뿌리를 안다는건 자기정체성의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날 탄생하게 한 부모의 탄생에 그 부모를 탄생하게 된 배경까지 알아가다보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곁에 유형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정신적인 든든한 구심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교실 뒷켠에 빼곡하게 꽂힌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울만큼, 학창시절 한국사 과목만큼은 내게 완벽한 과목이었다. 하지만 만20세의 성인의 범주에 편입된 이후엔 지식의 실체는 모래알과 같았다. 역사에 대한 지식고갈에 잔뜩 한심해하던 중, 『덴조의 칼』의 책을 접했다. 쉰 무렵에 습작을 시작한 저자의 심상치않은 이력과 함께 책은 임진왜란후 파견된 조선통신사의 의문의 죽음을 두고 서술을 하고있다.

 

 인간이 가진 동물과의 극명한 차별성은 생각하며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이다. '언어'의 매체를 통해서 말이다. 평소 일본 출장할 일이 잦았던 저자는 우연히 지하철역 구내서점에서 마주한 문헌을 계기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는 열정의 모습을 주저없이 실천하는 것이다. 쉰살이 넘어서야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 기술은 거듭 수상의 영광으로 이끈다.

  

 사건은 명화원년에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가 검은 자객의 습격으로 죽음을 당하면서 시작한다. 새벽녘 밥을 짓기위해 가마솥에 불에 지피던 격군은 고된 여정에 피로가 몰려와 졸고 만다. 한참 졸고 있다가 누군가 다리를 밟고 지나가는 통에 깨고만다. 이내 밟고 지나간 사내를 두리번했더니, 검은 왜인의 옷을 입은 사내가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추후 범인으로 스즈키 덴조 라는 자가 자백하며 체포된다. 책의 1장의 첫 페이지에 서술된 내용이다. 저자가 밝혀내고 하는 주제는 범인이 누군가?에 있지 않다. 외교사신을 살해한 전대미문의 사건에 왜? 그런 살인을 저질렀는가? 하는데 전개의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 책은 결론- 과거회상형으로 전개한다. 즉 당시 사건을 목격한 격군의 서술로 거슬러 올라가 사건의 과정을 밟히고 있다. 최근의 범죄수사드라마등에서 초반 최종전개를 암시하는 내용을 소개하며 전개하는 기법을 닮아있다. 심지어 범인 스즈키 덴조와 살해당한 최천종이 작가전지적 시점의 '나'로 대입되며 솔직하게 과정을 말하고 있다. 단지 범죄가 성립하는 인과관계만 밝혀내려 했다면, 이 책은 정말 시시해져 눅눅한 느낌 그대로일 지도 모른다.

 

 초반 조선 통신사 자신의 자결로 규정하며, 미온적으로 사건을 종결시켜려 하던 막부... 제대로 밝혀내려 하지 않는 막부의 태도에 조선 통신사 일행은 탄식한다. 그런데 자신이 범인임을 밝히는 스즈키 덴조의 서찰이 전해지면서 사건의 배후를 놓고 전혀 의외의 숨은 배경을 찾게 되는데... 책을 끝까지 읽었음에도 과연 스즈키 덴조가 조선통신사를 살해했는지도 불분명한 체로 또다른 죽음을 서술하고 있어 보고 또 봐도 흥미롭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엊그제 끝난 천금같은 기적의 역전 야구경기처럼 맞상대로 부딪치면 늘 없던 열정까지도 쏟아내게 하는 섬나라로 각인된데에는 임진왜란의 영향이 크다 할 것이다. 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란... 조상들의 무고한 희생이 잇따른 전쟁이건만, 불과 수년뒤인 1607년 화친을 맺어 통신사를 파견하기에 이르른다. 전후 새롭게 들어선 도쿠가와 막부의 선린외교정책으로 초청된 통신사 파견은 총 12차례 있어왔는데, 『덴조의 칼』은 1764년에 파견된 통신사에 관한 이야기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그렇듯 170년이 지난 세월에도 아물지 않은 왜에 대한 적대의식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한편으로 응징자의 입장에서 박대하는 관료의 부조리한 모습을 읽어가고 있다. 강직한 성품의 조엄의 인물을 등장시켜 전체적인 중립성을 기하는것도 이때문이다. 사건을 풀어나가는데 있어서도 판이하게 다른 양국의 인물들을 통해 애증에 가까운 양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느 한 민족을 침략자라 할 수 없을만큼, 수많은 영역다툼이 있어왔다. 근대에 들어서 야만적 침략행위에 대한 국제질서차원의 응징이 더해지면서 역사에 대한 자각의식하에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거친 파도에 맞서 순항해야 할 배의 자재가 부실하다. 부실하게 조달관리한 책임을 묻지만, 하급관료들은 빨리 예인에 나서지 않는 왜선을 탓한다. 사건의 해결에 있어서도 실리를 추구하는 왜 vs 명분을 내세우는 조선으로 분명하게 갈린다. 왜 우리가 내세우는 경제지표의 자화상이 기초기술등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열악할 수 밖에 없는지를 풍자하고 있다.

 

  이 소설의 장점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스타가토의 완급있는 구성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복선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문체는 다소 장황한 편이다. 당시 시대에 사용되던 한자어들이 구사된데다 별도의 각주처리는 없어 의미를 해석하는데 힘들었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단지 첫장의 두페이지만이 그랬을 뿐이다. 생소한 주제에 대한 부적응에서 오는 일시적인 난독현상으로 판단해두자! 소설을 읽어갈수록 주인공이 내가 되어 사건을 파헤쳐가는 느낌이다. 


 단, 저자가 소설을 전개함에 있어서 시점을 혼동하는 옥의 티가 곳곳에 느껴졌다. 대표적인것이 등장인물의 나이를 밝힘에 있어서 삼십대, 사십대 식으로 현재화된 명칭으로 부르고 있거나 자동차의 핸들과 같은 배의 '키'같은 용어를 등장시키는 면이다. 더불어 낮에는 외국선박을 관리하는 회사의 직원으로 밤에는 작가를 오가는 영향이 소설에 배어있다. 지나칠 정도로 배의 세부부품교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설명하면서 현대판의 직역을 하는 범실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부분을 제외하곤 이제껏 내가 읽어본 지루하기만한 역사소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감흥을 준다. 50대의 작가의 차기작이 기대될 수 밖에 없는 절대이유인 것이다. 


 범죄자를 취조하는 구성임에도 전체적으로 달관한 관조로 서술하는 흐름에, 감초같은 반전을 주는것이 그의 죽음의 이면이 결코 양국간의 갈등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 조선침략까지도 전혀 생각치 못했던 이유의 단서때문이란것이 4차원적인 결말을 이끌어낸다. 평범하게 상상해낼 수 없는 원인이건만,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려보면 전혀 가당치 않은것도 아니다. 이같은 여러가지 측면이 다채로운 상상을 자극하니,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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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킹 소사이어티 - 록음악으로 듣는, ‘나’를 위한 사회학이야기
장현정 지음 / 호밀밭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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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에서 경험못하는 지혜를 전해주는것이 '책'을 읽는 대체적인 목적이라 할 것이다. 답답한 머릿속 가운데 지식의 단편이 들어오지 않아도 좋다. 독서를 하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책과 씨름하며 맘의 평정심을 단련할 수 있을테니... 많은 책들중에서도 직관적인 책을 좋아한다. 『록킹 소사이어티』은 단연코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을 읽을 수 있다. 사회학을 대학원에서 전공한 작은 출판사 대표의 저서를 넘기는 순간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서는 인간으로서의 가장 고결하고 소중한 자유본능에 충실하고 있다. 냉철함은 없다. 오히려 록음악에 곁들인 사회적인 현상들을 짚어보며 꽉막혔던 각자의 내면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시한다.

 

  이 책 곳곳에는 독자를 배려한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회과학의 전공을 했지만, 책을 접하기 전엔 무척 따분하고 지루해질 수 있으리라는 부담감을 끌어안게 된다. 하지만 줄간격 200으로 설정된 넓은 폭에 책은 1-2단락의 깔끔한 폰트로 주제를 단락의 처음에 배치하고 있다. 여기에 한술더떠 편안하게 핵심을 바라볼 수 있도록 주홍색으로 인덱싱하고 있다.

 

 냉전시대 암울한 시대상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자주 등장하는 존 레논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제목은 무려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과 '4월의 학문' 이라는 심미적이고, 핵심적인 명제를 내던진다. 역사상 최고의 록 뮤지션 으로 존재하는 '존 레논'의 음악에는 2차 세계대전이후 팽창한 이념적 갈등과 시대적 혼돈 상황에 맞서 그가 가진 음악적 상상력으로 새롭게 바라보려던 데 있다. 전후의 급격해진 제도화된 통제시스템에 맞서 인간스스로가 태생적으로 가져야 할 자존주의적 회복운동을 록음악을 통해 시작했던 것이다. 흔하게 우울증이 급증하고 자살의 사회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저마다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물질문명에 맞설 대항마는 다름아닌 각자의 실존적 의지에 달린 것이다.

 

 본연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라, 싫든 좋든 집단적인 문제인 사회문제에 얽힐 수 밖에 없다. 사회에 대한 통찰력인 지혜를 고찰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특히 세계 경제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대한민국은 전후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초고속성장한 나라이다. 유감스럽게도 선성장 후분배의 경제성장의 기치대로 많은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었지만, 정작의 사회안전망은 갈수록 후퇴한 양상이다. 그러하기에 내가 성찰하지 못한 고뇌를 책을 통해서라도 야무지게 매듭지을 필요있다. 천부인권으로 사회를 통해 보장받을 각자의 권리는 고유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살펴보고 찾지 않는 내 권리를 남이 대신 찾아주진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평상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회시스템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막상 자신의 일이 되었을때야 외면하는 남을 향해 '개인주의'라 원망하는 세태도 적지않다.

 

 저자는 사회학의 출발을 분절적으로 사회현상을 구분짓는 근대에 대한 회복의식에서 시작했다고 본다. 즉 '합리성'의 미명아래 공격적으로 변질한 어두운 세상을 다시 동질의 희망의 세상으로 밝혀가고자 하는 것이다. 냉철함이 예상되는 사회평론서적에 대한 선입견을 초반부터 해소하는 일면이다. 따뜻한 감성이 묻어난 책이다.

 

 사실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딱딱한 뉴스의 소식들처럼 우울한 이야기들이 상당한데, 통쾌하게 사회단면을 서술해주고 있다. 속시원하다.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권리에 대해서 함부로 속박하고 통제하는것만큼 비인간적인 행위도 없다 여겨지는데, 대표적인것이 종교를 통한 권력행사이다. 종교자체는 인간으로서 마주하는 생존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우주라는 경건함에 맡겨 초연하게 이겨나가는 숭엄함이다. 그런데 이것을 누구앞에 군림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오늘날 종교가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특히 한국은 ~ ,개신교의 초강대국이다. -P43 -

 삶은 맥도널드가 아니라는 거 하나만은 분명하다. - P64 -

 아이들을 생명을 '살리는' 손이 아니라 '죽이는' 손으로 기르고 있는 오늘날의 교육은, 어쩌면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근원에 도사리고 있는 핵인지도 모른다. - P153-

우리의 긍정은 뜨겁고 달뜬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느긋하고 작은, ~격정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서늘한 긍정' 이어야 한다. -P250

 

 

 끊임없이 갈구하는 사람본연의 외침을 담은 록음악의 태생처럼, 양의 성장앞에 기본적인 삶의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현대사회이다. 자신안의 이정표가 사라진체로 '희망'의 꿈을 품을 수 없어서 좌절하는 청춘만 가득한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하고자 하는 가운데 의욕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대중적인 기준의 '남'이 아닌 나만의 色에 맞춰 구체적으로 추구한다면, 혼돈속의 멘탈장애 현상은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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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킹 소사이어티 - 록음악으로 듣는, ‘나’를 위한 사회학이야기
장현정 지음 / 호밀밭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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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 방황하는 청춘이 있다면, 사회를 꿰뚫어보며 한 수위로 즐기는 통찰력을 길러보는건 어떨까? 속시원하게 서술한 저자의 책이 금새 다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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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메아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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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적으로 풍요로울대로 풍요로워진 요즘이지만, 삭막해졌다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 무한 경쟁시대의 이면에 퇴적된 단면들이 반인륜적인 범죄로 드러나는 일을 드물지않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매스 미디어 ( mass media)의 대중문화로서의 순기능이 쇠퇴하고, 익명성을 무기로 한 SNS가 파격적으로 확장된 원인이 크다 할 수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한 역할부여를 받는 대신 낙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반사회적인 현상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 과연 내 소중한 가족에게 그런 끔찍한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처신할 수 있으며, 극복할 수 있던가?" 떠올리기도 조차 가슴 막막해지는 무거운 주제앞에 독일작가 샤를로테 링크는 <죄의 메아리>라는 책속에 정교한 묘사로 담아내고 있다. 10대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엄청한 스팩트럼은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확천금'을 향한 형제간 친구간의 반목, 출생의 비밀을 주류로 삼고있는 통속적인 우리 세태의 소설과는 기본맥락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볼 점이다. 가장 인간적인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의 학문이 존재한다. 이 정통학문을 이야기할때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보통 장편소설의 깊이는 200자 원고지로 환산되지 않지만, 300매 이상의 기술일때 인정된다. <죄의 메아리>는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다. 책으로 편집된 용적이 이 정도이니, 원고지에 써내려간 깊이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과히 독일 국민작가로 불릴 만한 각인요소이다.

 

 책은 철저하게 과거- 현재를 넘나들며 복선적인 전개와 함께 여러 인물을 오가는 치밀한 심리묘사로 이뤄져있다. 1995년 시점으로 거슬러올라가 삶에 지친 한 남자의 꿈이야기 에서부터 전개한다.

 

 꿈속, 그의 눈앞에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환한 미소, 이빨이 몇 개 빠진 자리들, 겨울에는 잘 드러나 보이지 않다가 봄이 되면 따스한 봄볕을 받아 짙어지던 주근깨들, 제멋대로 뻗친 덥수룩한 검은머리.

- 프롤로그  p7 中 -

 비록 꿈속이지만 소년의 머리카락에 코를 들이대는 순간 가슴이 저리도록 그리움이 밀려왔다. 다음 순간 소년의 모습이 희미해지며 끔찍한 장면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회색빛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도로,...

-프롤로그 p7 中 -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심장이 요란하게 뛰고 있었다. 그가 숨을 헐떡이고 있는 동안 옆에 누운 여자는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 그가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동안 그녀는 신기하게도 잠을 잘 잤다.

-프롤로그 p8 中 -

 

  서두에서부터 앞으로 전개될 소설의 단면이 결코 밝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워하면서도 끔찍한 고통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남자 vs 이미 체념해버린 여자의 모습을 통해 이 시대의 단절적인 자화상의 모습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고단함을 해소할 가장 아늑해져야 할 공간이 보이지않는 숨막히는 벽으로 변해간 것이다.

 

 11년이 흐른 시점으로 이동한 본격적인 전개는 여덟살 소녀 레이첼에서 시작한다.

 

 레이첼 커닝햄은 큰길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막 꺾어져 걷고 있을때 그 남자를 보았다. 그 골목 끝에 성당이 있었고,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교구회관 건물이 있었다. 남자는 신문지를 겨드랑이에 끼고 나무그늘 아래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 1부 p11 中 -

  "그래, 낯선 사람에게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아서는 안 되지. 혹시 성당에 왔니? 미사시간에 많이 늦었구나?"

-1부  p12 中-

 

  대체 어린이미사를 좋아해 담당신부를 흠모하기까지 하는 여덟살 소녀에게 어떤 일이 전개되는걸까? 소설은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 지 복선적인 암시를 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부유한 은행가의 후손이자, 정치 야심가의 아내 버지니아 쿠엔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물의 깊이는 측량 가능하나,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 의미이다. 태어날 때부터 근원적으로 '희소성'에 직면하는 인간이기에 욕망을 채우기위해 타협없는 경쟁을 하게된다. 경제적으로 성취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울수록 정작 정신은 빈곤해지는 '풍요속의 빈곤'의 원인이다. 버지니아는 경제적으로 아쉬울것없이 여유로운 자본가의 아내이다. 별장에 머무르는동안 알게된 독일인 부부의 안타까운 침몰소식을 접하고 기꺼이 도움을 자청한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나탄은 이를 이용해 탐욕을 꾀한다. 낯선 남자는 제 집 처럼 드나들며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까지도 아무런 죄의식없이 행한다. 한창 젊은 시절의 깊은 상처감에 주눅든 버지니아는 결국 본능에 타협하며 유혹에 빠져든다. 하지만 종적을 알기 힘든 수상한 남자의 행각은 이어지고...그러는 동안 뉴스에선 안타까운 소녀들의 끔찍한 희생소식이 전해진다.

 

 버지니아는 서서히 마음속에서 분노가 되살아났다.

" 당장 여기서 나가요. 이제 나와 내 가족들을 제발 좀 가만히 내버려둬요."

나탄이 두 손을 높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은 나를 증오하는군요. 나도 내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어요."

-p520 中 -

 

 철저하게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전개하는 이 소설은 끝까지도 이성적인 감정자체를 유보시키고 있다. 후속 시리즈를 기획하는것인지 소설가 '나탄'을 등장시킨 개연적인 이유가 확실치않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작가가 쏟아내고 싶은 메세지를 나탄을 통해 쏟아내고 있는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현대생활의 맹점중 하나가 자신의 본성을 감춘체 지위,조직역할에 강요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가면의 실체...페르소나에 둘러싸여 온전히 자신이 아닌, 남의 시선을 의식한체 자아는 수축되어가고 있는것이다. 그러다보니 조직속에 활동할때는 왕성하던 모습이 급격하게 약육강식의 먹이감으로 도퇴되고 마는 것이다. 소설에서도 버지니아의 모습을 통해 욕망과 현실앞에 좌절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려가고 있고, 주변인에게서 벌어진 일련의 범죄를 통해 자성적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끝까지도 애증에 가까운 남자에 대한 결코 가져서는 안될 감정은 잠시 미뤄두고 있다. 소름끼치게 정교한 묘사를 통해 우린 경각심을 일깨워갈 수 있고, 좀더 냉철한 판단을 할 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실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쟁'과 일맥상통한다. 영토쟁탈전의 명분으로 수없이 칼,총의 무기가 등장했고, 이에 대한 통치유지수단으로 법이 등장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끔찍한 범죄는 여느때에도 있어왔지만,분명한건 과거로 갈수록 처벌이 억울할 정도로 과감했다는데에 있다. 

 갈수록 교묘하게 지능화되어가는 범죄들앞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방어할 수 있는 체력과 현혹되지 않을 지혜를 갖출 수 밖에 없다. " 잘 알고 따지는게 힘이다. " 한권의 책을 통해 고양할 수 있는 값진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지혜로 옹골지게 매듭짓지 못할수록 현란하게 뛰는놈앞에 당해낼 재간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엄벌백계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자면 일반인들의 지혜의 저변이 확대되어야 한다. 두꺼운 페이지의 종이책을 넘길때마다 넘실대는 향기는 내 머릿속이 알아게 채워지는 행복한 향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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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
티에리 코엔 지음, 임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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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서 가장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는 이의 슬픔은 헤아릴 수 없다. '만약'에 라는 가정자체를 거부하는 이 명제는 사람에게 필연적인 과제이다. 엄마의 품속에서 유영하던 태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벅찬 환희와 더불어 막막함에 우렁차게도 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들어섰다는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는 것이다. 해맑은 모습으로 부모의 따뜻하고 포근한 보살핌을 받던 아이가 몸을 뒤집기 시작하고, 기어가며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이후 부모는 근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홀로 태어나 오롯이 품안에서 학습하던 아이의 사회화 과정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 』은 현대인이 당면한 정서적 소통의 부재에 대한 극복의 모습을 담고 있다. 흔히 사회의 왜곡된 부조리에 맞서 자존적 자기극복을 담고 있는 문학을 실존문학이라 하는데, 이 책은 실존문학의 방향성을 따르고 있으면서, 현대 심리학에 관한 일목요연한 핵심을 짚어내고 있다. 소설에선 서두에서 말한 '만약'의 상황이 실제로 펼쳐가고 있다. 한창 호기심많은 아이와 함께 가던 어머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그려가고 있다.


로랑스 박사의 목소리.
" 아줌마가 이번에 뭐라고 하지?"

아이의 목소리.
" '아이고, 이 아이가 잘못한 거예요!" 라고 말해요., "

침묵.

           - 프롤로그 p12-13 中 -

 

 한순간에 어머니를 잃은것을 자책한 아이의 정신적 충격은 단절적이고 폐쇄적이며 편협한 행동유형을 드러내게 된다. 조부모의 품에서 누이와 함께 외롭게 커온 주인공은  한 여인을 통해 극복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특출한 학습능력으로 명망있는 대학에 좋은 직장까지... 주인공의 사회성취감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결과가 커갈수록 내면속의 상처는 깊어져만 간다. 그렇게 속앓이하던 맘속 갈등은 뜻하지않은 순간에 찾아온다. 세 살의 조카가 내뱉은 말 때문이다. 주인공이 다시 심리치료상담을 간절하게 요청하게 된 계기점이다.

 

 "왜?"

 노암이 다소 불안하게 물었다. 안나는 곧 한손을 내밀어 그의 볼에 대고는 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넌 다섯 사람과 함께 같은 날 심장으로 죽을 것이다."

 노암은 한동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3장 p67 中 -

 치열한 경쟁사회의 이면속에 현대인의 정신은 고갈되고 있다. 문명의 혜택으로 편리함을 경험하기 위한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편리함은 불편함의 개선측면 일것인데, 정작 기본적으로 필요한 용도까지 잊은체 맹목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견고한 사회문화의식 흐름속에 발전을 추구해온 유럽의 서양문화에 비해 아시아 주류의 동양문화는 현대에 와서 급진적인 성향을 띄고 만다. 단단한 기초위에 탑을 쌓아야 할 정신문화대신 물질문화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소설에서의 치유법또한 인물간의 갈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다. 추구하는 바가 극적인 효과연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숨막힐듯한 등장인물들의 논리정연한 화법이 이어지고, 서로간의 소통적 화해를 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모든 상실의 원인을 자기탓으로 돌리면서도 아버지를 원망하는 주인공의 심경변화를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족의 모습을 주제의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현대인이 당면한 가족의 상실을 주변인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극복하는 모습을 제대로 그려낸다. 왜 티에리 코엔을 기욤 뮈소, 마르크 레비와 함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칭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군더더기 없는 서술을 펼치는 순간 그만이 가지고 있는 심리학적인 깊은 성찰을 읽을 수 있다.

 

 누군가의 마음속 깊은 소리에 귀기울이며, 때론 쓰디쓴 소리를 아낌없이 해줄 수 있는 사람의 소중함도 일깨워준다. 작가는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도 감사의 말을 빌어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들 소중한 사람들을 말하며 감사와 존경의 맘을 유감없이 활자에 담고 있다. 지금 이순간 상처에 고뇌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빌어 생존할 희망과 용기를 얻어갈 수 있으리라. 감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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