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
티에리 코엔 지음, 임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눈앞에서 가장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는 이의 슬픔은 헤아릴 수 없다. '만약'에 라는 가정자체를 거부하는 이 명제는 사람에게 필연적인 과제이다. 엄마의 품속에서 유영하던 태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벅찬 환희와 더불어 막막함에 우렁차게도 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들어섰다는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는 것이다. 해맑은 모습으로 부모의 따뜻하고 포근한 보살핌을 받던 아이가 몸을 뒤집기 시작하고, 기어가며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이후 부모는 근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홀로 태어나 오롯이 품안에서 학습하던 아이의 사회화 과정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 』은 현대인이 당면한 정서적 소통의 부재에 대한 극복의 모습을 담고 있다. 흔히 사회의 왜곡된 부조리에 맞서 자존적 자기극복을 담고 있는 문학을 실존문학이라 하는데, 이 책은 실존문학의 방향성을 따르고 있으면서, 현대 심리학에 관한 일목요연한 핵심을 짚어내고 있다. 소설에선 서두에서 말한 '만약'의 상황이 실제로 펼쳐가고 있다. 한창 호기심많은 아이와 함께 가던 어머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그려가고 있다.


로랑스 박사의 목소리.
" 아줌마가 이번에 뭐라고 하지?"

아이의 목소리.
" '아이고, 이 아이가 잘못한 거예요!" 라고 말해요., "

침묵.

           - 프롤로그 p12-13 中 -

 

 한순간에 어머니를 잃은것을 자책한 아이의 정신적 충격은 단절적이고 폐쇄적이며 편협한 행동유형을 드러내게 된다. 조부모의 품에서 누이와 함께 외롭게 커온 주인공은  한 여인을 통해 극복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특출한 학습능력으로 명망있는 대학에 좋은 직장까지... 주인공의 사회성취감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결과가 커갈수록 내면속의 상처는 깊어져만 간다. 그렇게 속앓이하던 맘속 갈등은 뜻하지않은 순간에 찾아온다. 세 살의 조카가 내뱉은 말 때문이다. 주인공이 다시 심리치료상담을 간절하게 요청하게 된 계기점이다.

 

 "왜?"

 노암이 다소 불안하게 물었다. 안나는 곧 한손을 내밀어 그의 볼에 대고는 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넌 다섯 사람과 함께 같은 날 심장으로 죽을 것이다."

 노암은 한동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3장 p67 中 -

 치열한 경쟁사회의 이면속에 현대인의 정신은 고갈되고 있다. 문명의 혜택으로 편리함을 경험하기 위한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편리함은 불편함의 개선측면 일것인데, 정작 기본적으로 필요한 용도까지 잊은체 맹목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견고한 사회문화의식 흐름속에 발전을 추구해온 유럽의 서양문화에 비해 아시아 주류의 동양문화는 현대에 와서 급진적인 성향을 띄고 만다. 단단한 기초위에 탑을 쌓아야 할 정신문화대신 물질문화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소설에서의 치유법또한 인물간의 갈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다. 추구하는 바가 극적인 효과연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숨막힐듯한 등장인물들의 논리정연한 화법이 이어지고, 서로간의 소통적 화해를 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모든 상실의 원인을 자기탓으로 돌리면서도 아버지를 원망하는 주인공의 심경변화를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족의 모습을 주제의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현대인이 당면한 가족의 상실을 주변인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극복하는 모습을 제대로 그려낸다. 왜 티에리 코엔을 기욤 뮈소, 마르크 레비와 함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칭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군더더기 없는 서술을 펼치는 순간 그만이 가지고 있는 심리학적인 깊은 성찰을 읽을 수 있다.

 

 누군가의 마음속 깊은 소리에 귀기울이며, 때론 쓰디쓴 소리를 아낌없이 해줄 수 있는 사람의 소중함도 일깨워준다. 작가는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도 감사의 말을 빌어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들 소중한 사람들을 말하며 감사와 존경의 맘을 유감없이 활자에 담고 있다. 지금 이순간 상처에 고뇌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빌어 생존할 희망과 용기를 얻어갈 수 있으리라. 감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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