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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 - 우리가 만든 어떤 편한 세상에 대하여 ㅣ 사탐(사회 탐사) 6
강혜인.허환주 지음 / 후마니타스 / 2021년 9월
평점 :
이것은 두 기자들이 몸소 체험하며 우리나라 배달 업계의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이다.
너무나 많은 말이 떠올라 몇 번이나 글을 썼다 지우길 반복했다.
이 사회에서 발언권이 약하고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 말하고 싶다.
살아가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새삼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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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산업에서 노동자는 없다.
배달앱의 라이더들이나 청소앱의 가사 노동자들, 대리앱의 운전기사들 모두가 '사장'이다.
이런 새로운 고용 형태를 플랫폼 기업들은 노동자의 '선택'으로 포장한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하기 싫은 일은 거부할 수 있는 등
일감의 내용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과연 '선택'일까?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그것을 제외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게다가 대다수가 '용돈' 벌이가 아닌 생계를 위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플랫폼 노동 시장의 진입 문턱이 낮다 보니 여기에 진입하는 이들 상당수는
사회 초년생이거나 기존의 1, 2차 노동 시장에서도 밀려난 이들이었다.
한국 사회는 IMF 시기를 거치며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비정규직화 되었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더 위험하고 힘든 일에 내몰렸고 임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비정규직 일자리마저 줄어들고 있다.
플랫폼 경제가 유휴 노동력을 기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거나 찾을 수 없는 이들에겐 그나마 일감이 제공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플랫폼이 제공하는 일감의 질적 측면을 보면 열악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현실이 보인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고용해 최소한이나마 부담했던 책임조차 이제는 '사장'이라 불리는
특수 형태의 근로 종사자 개인이 떠안게 됐다. 일이 없어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비용, 일 때문에 다쳤을 경우 져야 하는 부담 등도
이제는 개인이 져야 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시장보다는 하나의 위계적 조직에 가깝다.
이들은 기업이 자기 직원에게 일 시키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감을 할당하고
일하는 방식을 통제한다. 그렇다면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이들에게도 노동법을
적용하는 게 공정하지 않나.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이런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위장하고 노동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을 혁신이라고 말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고 규정한 국제 노동기구헌장[필라델피아선언]과는 반대로,
노동을 그저 온라인상에서 일감 단위로 거래되는 상품으로 취급하고 노동법을 회피하는
기법에 우리는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
성신여대 법대 권오성 교수
"문 앞에 노동자가 도착했습니다",
2020 NPO국제 컨퍼런스 '전환을 통한 회복, 공전을 위한 연결'.
1912년, 2224명이 타고 있던 타이타닉호에 구명정은 비상용 구명보트 열여섯 척과
조립식 보트 네 척이 전부였다. 이를 합하면 1178명밖에 구조할 수 없었다.
결국 구명보트로 구조된 건 711명뿐이었고, 1513명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책임 방기였지만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당시 유람선 회사와 보험사들은 비극을 면했다.
당시 영국의 선박 운항 규정에 따르면, 사람 수가 아니라 톤수에 맞춰 구명정을 준비하면
됐기 때문이다(4만6000톤짜리 타이타닉은 '1만 톤 이상' 배로 취급돼 962명을 수용하는
구명정만 있으면 됐다). 규제가 있어도 현실을 반영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100년 전 타이타닉호는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2018년 열여덟 살 김민준 군이 족발을 배달하다 사망한 건 일을 시작한지 나흘 만이었다.
무면허였던 민준 군에게 사장은 오토바이 배달을 시켰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야근 수장도 없었다. 그런데도 사장이 받은 처벌은 벌금 30만 원이 전부였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근로 기준법이나 산안법이 민준 군에게는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기존 법 규제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유 경제를 표방하는 배달앱은 이를 아예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인가의 노동은 이 체계를 굴러가게 하는 기본 요소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다른 누군가의 노동
덕분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
우리나 마트에서 구입해 쓰는 제품이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든 것인지 알기는 이제 불가능해졌다.
지하철이나 전기도 마찬가지다.
1300원에 우리는 지하철을 탈 수 있지만 그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는지는 모른다.
한국의 전기료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저렴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전기 요금이 왜 그렇게 싼지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이렇게 저렴한 지하철 요금과 전기요금 안에는 구의역 김 군과 발전소 김용균 씨가 있었다.
우리가 누리는 낮은 가격과 편리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노동을
부당한 값으로 거래하는 '불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외면하면 인간의 노동이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와 고통의 크기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우리 자신도 포함 될 수 있다.
대형 마트가 문을 닫은 늦은 밤, 당장 내일 아침 아이들에게 차려 줄 반찬이 없을 때
핸드폰 속 앱을 열고 클릭 몇 번이면 새벽같이 내 식탁 위에 맞춤형 음식이 올라오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편리 뒤에 숨은 건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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