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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큰 판형 양장본)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평점 :
제목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코팅지의 촉감이 개인적으로 불호.
- 마우스 같은 전자 제품에 흔히 하는 러버 코팅이란 게 있는데
그것과 촉감이 매우 비슷. 왜 책에 이런 코팅을 한 걸까.....
그립감을 높여서 어디다 쓰게?
그리고 이것 때문에 먼지가 쉽게 붙고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게 최악임)
아직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책장에 꽂을 때 잘 들어갈까? 싶다.
2. 큰 판형을 써야 할 정도의 무언가가 없다.
글씨체가 달라진 것도 없고 그림도 큰 판형 효과를 받는 다는 느낌이 없다.
미리 이야기 하자면,
스포일러는 없지만 내용을 옮겨 적은 게 많아서 스포가 될 수 있음.
이것은 늙은 코뿔소의 이야기.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한 펭귄의 이야기.
읽으면서 수많은 생각이 일었다가 부서지곤 했다.
그리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코뿔소와 펭귄의 이야기지만, 인간에 대입한다면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상을 코뿔소와 펭귄으로 한 것은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짧은 이야기에 많은 것들을 잘 담았다.
억지스럽거나 건너 뛰는 곳 없이.
우리나라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게 생소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문득 "갈매기의 꿈"과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강인한 의지가 세 작품에 모두 있기 때문 아닐까.
아쉬운 점을 꼽자면,
- 표지의 저 그림이 후반부 내용이기도 한데,
저렇게 펭귄의 머리를 맞대는 것, 코뿔소의 뿔을 대는 것이
두 동물의 본능적인 고유 습성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저 행동이 둘만의 약속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 알에서 목숨을 빚지고 태어난 어린 펭귄"
일본 문학에서 보여지는 표현법 같아서 아쉬웠다.
특히 목숨을 빚진다는 부분은 사실 개인적으로 혐오하는 표현이라서 싫었음.
일본의 스포츠 만화, 전쟁 만화 등을 통해 저런 표현을 접했기 때문에 반감이 깊다.
내가 살아 남기 위해 고의적으로 동료를 죽게 한 것이 아닌데
살아 남았다는 "책임"으로 죽은 자의 몫까지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흐름을 나는 혐오한다.
삶과 죽음이 수없이 교차하는 곳에서 생존도 죽음도 그저 각자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다른 존재(타인)의 죽음까지 내 책임이라고 여기며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주인공 펭귄이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 주변의 생명체를 죽게 한 것은 아니니까.
인상 깊었던 구절>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P16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P115
긴긴밤이 등장하는 구절>
그날 밤, 노든과 치쿠는 잠들지 못했다.
노든은 악몽을 꿀까 봐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은, 밤이 더 길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P57
치쿠는 기진맥진하여 휘청 거리면서도 지평선이 곧 파란색으로 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속한 하늘은 그들이 걸어가는 길 위로 촉촉한 비 한 방울 뿌려 주지 않았다.
그날도 긴긴밤이 이어졌다. 노든과 치쿠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P71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졌다. 노든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짝이는 별들과 연한 구름들이 보였다. 노든은 외로웠다. 그래서 하늘을
계속 바라보았다. 오늘도 긴긴밤이 될 것이다. P76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노든이 나와 같이 바다에 가고 싶어 한다고,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해 왔지, 절망을 품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말없이 긴긴밤을 넘기고 있었다. P87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되었지만
복수를 할 수 없는 흰바위코뿔소와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 알에서 목숨을 빚지고 태어난
어린 펭귄이었지만,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P104
* 마지막 '긴긴밤'이 등장하는 구절은 결말이므로 옮겨 적지 않았다.
각 구절에 등장하는 긴긴밤의 의미는 약간씩 다르지만,
나는 이 긴긴밤들이 인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아픔을 참아서 곪게 만드는 인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휴식을 갖는 인내인 것이다.
좋은 책을 읽게 되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 책을 내가 읽게 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한다.
심플한 그림체가 불만인 것은 아니지만,
좀 더 풍성한 색감과 따스하고 세밀한 그림이었다면
(내용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심플한 그림체로는 쉽게 연상되지 않았다.)
두 동물의 이야기와 대조 되어 또 다른 느낌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