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은 괜히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정치하는 꼴은 내란을 조장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갑오난이 괜히 일어난 게 아니듯이 이대로 가다간 또 그런 농민난리가 일어나게 돼 있습니다. - P87
그때는 동학사상이 농민들을 일으키는 불씨가 됐고, 이번에는 공산주의가 불씨가 되는 것만 다를 뿐이겠죠." - P87
여대로 여윈 아버지는 전혀 딴모습을 하고 있었다. 살이라고는 없는 얼굴에 저승꽃이 부쩍 늘어나있었다. - P88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스치는 걸 김범우는 보았다. 그 웃음이 안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 커나는 것이 오뉴월 하루볕 다르고, 노인네 기력 쇠하는 것이 하룻밤새다르다는 말을 김범우는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89
나만 헛지랄헌 것이제 김범우 저것이 틀림없이 손승호 그놈얼끼고 있을까. 글안허먼, 머리크락 빼갖고 지구녕에 도로 박을 손승호 그 촌놈이워디가서멀묵음시로 요리 오래 견디겠어. 나가저놈 뒤럴 밟아 서울로 치고올라가뿌러? 염상구는 아무래도 마음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 P95
신령님이 살피시니라고 총알이 창시 하나 안 건디리고 피해갔제. 항, 저것이 워쩐 자석인다. 저것을 뺐을 적에 희연헌 도야지꿈 꿨는디, 고것이 워디예사꿈이간디.자석 많이 낳고, 묵을 것 안 기롭게 부자로 살 길몽중에 길몽이었제. 워디 그뿐이간디, 껌댕이 도야지도 태몽으로는 치는디, 거다가 희연헌 도야지가 아니었능감고것이 유명하게도 된다는 뜻인디 신령님이 태와준 고런 기맥힌태몽 타고난 내 자석얼총알이 워찌 안 피해갈 것이여 안직 장개도 못 가고, 태몽대로 되자먼당아당아멀었는디, 총알이 지가 안피해가고 워쩌겄어. - P103
"그 원장님은 너무 고진이라서 탈이랑께. 염가고 장 순경이고, 고런 인종덜헌테넌 기술을 써도 쪼깐씩만 쓰고 말어야는디, 판판이살려께로 씨언혀질라고 허든 우리덜 속이 요리 되갱기는 것 아니겄능가" - P107
"그리 됐어요. 그 무지스런 사람들이 터진 데가 아물 만하면 때려서 터쳐놓고, 아물 만하면 또 때려서 터치고 하는 데다, 날이 더워놓으니 그 자리가 덧나고 긁을 수밖에요. 그런데 거기다가 어느새파리라는 놈이 쉬를 깔겼는지 썩어들어가는 살 속에 구더기가끓기 시작한 것이지요. - P109
허벅지나 팔을 동여맨붕대 속에서 구더기를 파내야 했던 버마전선의 부상자들을 김범우는 떠올렸다. - P109
‘사찰 일은 어떻게 해결이 되었습니까? 앞으로 거취문제도...... "종교가 타락하면 자체의 자율적인 법을 버리고 세간법을 이용하거나 의탁하게 되는 법입니다. - P110
농지개혁법이라는 것이 그 모양인데 사답을 작인들에게 그냥 넘겨줄 리가 없지요. 그리고 나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엄연한 죄인이니 더이상불문에 머무를 수 없다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불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 P110
강원도의 산들은 전라도의 산들과는 사뭇 달랐다. 전라도의 산들이 나지막하면서 둥그스름한 모양새로 유연하게 흐르며 이어지는 것에 비해 강원도의 산들은 드높으면서 날이 선 모양새로 억세게 각을 이루며 솟구치고 있었다. - P114
전라도의 산들은 평야를 거느리고 멀리 풍경으로 잡히는 데 비해 강원도의 산들은 평야를 제 몸으로 다 차지하고 앉아 바로 눈앞을 가로막았다. 전라도의 산들이부드럽게 출렁거리는 물결이라면 강원도의 산들은 폭풍을 타고 내달아오는 겹겹의 성난 파도였다. - P114
경기도의 산들은 어떤모습이던가? 강원도와 전라도의 중간모습이던가? 그렇지 않았다. 지역적으로는 강원도와 가까우면서도 평야를 끼고 있는 탓인지 오히려 전라도의 산을 닮아 있었다. - P115
전라도사람들이 무슨 말인가를 감춘 채 적의를 품고 있는 것 같은 무표정한 얼굴과 눈을 내리깔거나 옆걸음질을 치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것은 예민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순간순간 번뜩이는 불만에 찬 눈동자들인 것에 비하면 강원도 사람들은 그저 덤덤하고묵묵했다. 말도 전라도는 알아듣기가 어려울 지경으로 사투리가독특한데 강원도는 경기도 비슷해서 별다른 특색이 없었다. 강원도사람들을 대하면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사람냄새를 진하게 느꼈단 것이다. - P115
"와따 되었다! 불거져뿌렸다!" 어머니의 기쁨에 찬 소리가외서댁의 귀를 때렸다. 웬수놈에 씨가 인자사 떨어져나갔구마.외서댁은 왈칵 울음이 솟구치며, 온몸이 한정 없이 아래로 까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P135
아이 울음소리가 울리면서 뒤따라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눈을감은 외서댁은 양쪽 관자놀이께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서늘한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도 까닭 모르게 눈물이흘렀지만 그때는 서늘한 감촉이 아니었었다. 따뜻하고도 아늑한감촉이었다. 그때는 남편이 문밖에서 지키고 있었다. - P135
원체로 엄니 때부텀 뼉다구 실현 물림잉께로, 그러다가 그녀당 금세 부자 되야겄네." "와따 별걱정 다 허네. 거그도 잽이들에다가, 조무에다가, 딸린 입이 수십이여. 무당질혀서 부자 됐다는 말들었는가, 자네?" "그러시, 우리야 옛말 이른 대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묵으면 그만이제 - P166
꽃맹키로 이쁘시. 작약이 저리 이뿔랑가?" "아니, 작약이야 너무야허고, 머시다냐, 저리 깨끔허고 복시럽게 생긴 꽃 안 있드라고? 잉, 대웅전 앞에 핀 수국이지." "와따, 용케도 찍어내네." - P167
소화는 하얀 모본단 치마저고리 차림이었고, 저고리섶·소매깃·고름을 남색으로 받치고 있었다. 하얀 모본단의 우아한 색조 속에서남색은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며 소화의 얼굴을 떠받치고 있었다. - P167
큰 굿판에 꼭 손님굿이 끼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마마신을위무하는 손님굿은 굿주와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모를 마마병을 예방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굿이었다. - P172
개인적인 욕구를 채우면서도 이웃의 안위를 빌고 유대감을 가지려 한 삶의 슬기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었고, 굿판을벌이자고 해도 경제적 능력이 없는 더 많은 사람들의 질시에 찬 감정을 해체시키려는 방편이라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었다. 소작인이 논두렁에 콩을 심고, 밭 가장자리를 따라 고추를 심어도 지주들이 모르는 척하는 것과 동일한 성질의 문제로 그녀는 파악했다. - P172
굿을 주관할 제석님을 인도하여 모시는제석굿의 시작이었다. 서장이 끝나고 본굿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 P173
소화는 액맥이상에서 놋쇠주발 두개를 양손에 들었다. 굿주의자손들에게 미칠액을 막고, 살펴달라는 액맥이굿이었다. - P175
그녀의 큰 눈은 먼 하늘의 별빛을 담고, 고풀이가 시작될 때부터 손을 맞비비기 시작한 낙안먹은매듭이 풀릴 때마다 점점 더 빨리 비벼대던 손을 이제 모으고 소화를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무릎 꿇어 앉은 그녀의 볼에는줄줄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P177
쌀이 수북하게 쌓인 소쿠리 가운데 혼대가 꽂혀 있었다. 혼대를낙안댁이 조심스럽게 잡았다. 망자의 혼이혼대를 타고 내리면 혼대를 잡은 사람의 손이 떨리고, 망자는 무당의 입을 빌려 소원을말하는 손대잡이였다. - P178
"나가 죽은 그 연고가 나가 지은 죄업인디, 그 죄업을 안 풀먼은왕생극락 못 이루네. 임자임자 내 말 듣소, 염전 헐란 그 논배미처분 말고 두었다가 농지개혁허거들랑 작인헌테 넘게주소. 그 죄업을 풀어야만 왕생극락 이루는디, 임자 맘은 워쩌는가. 나 소원을들을랑가"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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