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소, 맞소. 정치가가 권력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것이나, 군인이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나, 둘 다 남자로서 한바탕 해볼 만한 일인 건 틀림없소. 박 소령도 아주 앗싸리한데, 역시 우린 아주잘 어울린 짝이었소." - P210
최익승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헛웃음을 쳤다. 이놈아, 까불지 마라 군인 찌끄레기야 정치가에 비하면 발샅에 때다. 정치가가 하라는 대로 꼼짝달싹 못하고 목숨을 내거는 것이 군인이라는 것들 아니더냐. 그는 속으로 비웃고 있었다. - P210
박 소령은 봉투를 바지 뒷주머니에 밀어넣으며 최익과 눈길을나누고 있었다. 그래, 내가 소령으로 진급을 한 것도, 서울로 자리를 옮기는 것도 네놈 돈줄이 힘이 된 셈이지. 네놈 하는 짓이 심장에 털난 모리배이긴 하다만, 요런 개떡같은 세상에서 언제 또 국회의원이 될지 알게 뭐냐. 너같은 놈을 알아둬도 손해날 것 없으니까 어디 길을 계속 터보자구. 그는 속으로 빙그레 웃고 있었다. - P211
그러니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 이승만 대통령 각하의 휴전 결사반대, 북진통일은 역시 옳은 말씀이오. 안 그렇소?" - P213
"예, 그런 말도 있기는 하지요. 헌데, 트루만은 맥아더 장군 목을쳐버렸고, 휴전회담까지 시작하고 나섰으니 우리로서야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요. 작전권이 미군 손에 넘어가 있는 형편이니까요." 박 소령이 지루한 듯 눈을 껌벅이며 쩝쩝 입맛을 다셨다. - P214
이근술은 불화로를 잘못 잡기라도 한 듯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놀란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서민영은 그를 처음 대하는 것이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대꼬챙이‘니 ‘탱자가시‘니 하는 별명이 붙어 있는서민영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217
야학의 선생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서민영 같은 분이 자신을 그토록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그는 가슴 벌떡이는 흥분과 함께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기분은 도경에 불려가 조사 같지도 않은 조사를 받고 사표를 쓸때의 참담했던 감정을 남김없이 보상받는 것 같았다. - P219
내가 일자리를 바꿔보라고 권유하는 것은 야학선생이 이 일보다 더 낫기 때문이 아니오. 사람이 너나없이 평등해야 하는 세상에서 직업의 귀천이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 P219
단지 내가 야학선생을 권하는 건 지금 하는 일이 이근술 씨한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오. 사람이란 능력에 따라 자기 몫의 일을 맡아야 하는 법인데, 이 튀밥 튀기는 일은 어찌할 수 없이 아무런 배움도 갖지 못한사람이 생계수단으로 삼아야 될 일이고, 이근술 씨가 이 일을 직업해적 으로도 큰 손해요. - P219
그는 찾아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 하고 있었다. 이근술은 생각보다 사람이 신실해 보였고, 예절과 겸손이 깊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 P221
그는 야학선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근술의 처지를 듣고 나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며칠을 생각한 끝에 그를 돕기로 마음 정했다. 그에게 맡길 일은 야학선생만이 아니었다. 아직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는 장학회 일 같은 것도 겸해서 맡길 수 있는 일거리였다. 무슨 일을 맡기든 간에 그런 사람이 혼자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살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서민영은 메칠수가 없었던 것이다. - P221
그의 생각으로는, 보도연맹원을 무작정 처단하지 않은 이근술의 처사도 값진 것이었고, 그런 이근술을 알아보고 또 무작정 처단을 하지 않은 염상진의 처사도 값진 것이었다. - P221
"글쎄요, 그거야말로 동상이몽이 아닐까 싶으오. 미국이야 애초의 삼팔선 이남을 되찾았으니까 더 피흘려 싸울 필요를 느끼지않는 것이고, - P223
이승만은 자기가 국부라고 자처하는 것처럼 미국의힘을 빌려 한쪽만의 국부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국부가 되어보겠다는 엉뚱한 꿈을 꾸고 있는 것 아니겠소. 허나, 그건 작전권을넘겨버린 것과 똑같은 또 하나의노망일뿐이오. 작전권을 넘겨주들 말든지, - P223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 위기시의 작전권이란 게 뭔가요. 그건 모든 국민의 생존권과 재산권을지키기 위해 대통령에게 부여한 절대적이고 고유한 권한 아닌가요. 또, 모든 국민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합친 것은 뭡니까. 그게 국권아닙니까. 국가 위기시의 작전권은 곧 국권입니다. - P224
그런데 이승만은 그 엄청나고도 존귀한 권한을 하루아침에 미국에 넘기고 말았습니다. 그건 이승만이 작전권 없는 허깨비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국권을 상실해 버린 겁니다. 다시 말해, 작전권이양서라는 것은 이름만 다른 또 하나의 한일합방조인서인 것이고, - P224
작년 7월 12일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라는 걸 공인한 날입니다. - P224
친일반민족세력으로 이루어진 이승만 정권이야 절대로 옳을 수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공산주의를 지지할수도 없고,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한 묶음으로 정치적으로는중도파라고 부르는데, 그런 사람들은 결국 양쪽에서 다 환영받을수가 없지요. - P227
그런데 이번 전쟁을 계기로 그런 사람들도 많이 양쪽으로 갈라지게 되고, 전쟁 전에 있었던 중도파란 이제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봐야죠.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어느 편도 안 들었다고 해서 죄가 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얼마나 바른 생각을 가지고사느냐가 문제지요." - P227
"참말로 징헌 놈에 시상이구마이짝짝에서 날마동 떼과부는생기제, 생때겉은 자식덜 잃는 부모 늘어나제, 그럼스로 또 이리 판이 갈리니 살맛 떨어지는 인심 팍팍헌 시상이여." - P234
금융조합장 유주상도 얼굴을 내밀고 있었지만 염상구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말 한마디 못하고 염상구에게 논을 떼어먹힌 다음부터 일부러 그를 멀리해오고 있었다.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겨우 참아내며 염상구에게 보복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세무서장 최익도와 친교를 더욱 두텁게하는 것이었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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