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가 담덕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들 담덕의 키가 훌쩍 커서 왕후는 이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아야만 했다. "네가 올해 열한 살이 아니냐? 그런데 이렇게 컸다니! 이제어른이 다 되었구나. 일곱 살 때 국내성을 떠나 을두미 사부에게 갈 적엔 내가슴에도 차지 않았던 것 같은데. - P261
"대사님께선 조환이란 사람을 기억하시는지요?" 담덕은 문득 석정을 보자 장안에서 만난 조환을 떠올렸다. "아니, 왕자님께서 어찌 장안에서 행수 노릇 하는 자를 다아시는지요?" 석정이 놀라는 눈빛으로 물었다. - P264
담덕은 하가촌 도장에서 반란을 일으킨 해평의 무리들에게쫓겨 마동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후, 일 년여의 세월 동안 온갖 모험을 하며 경험한 세상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강남의 동진을 거쳐 대상단을 따라서역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조환을 만난 사연까지, 유랑생활을 하며 겪은 모험담을 왕후와 석정에게 들려주었다. - P264
석정은 해평 때문에 담덕이 그런 고통의 세월을 보냈지만, 그것이 결국 세상 공부를 하는 좋은 기회도 되었다며 매우 흔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조환이란 사람을 대사님께서는 어찌 보시는지요?" 담덕은 다시 석정에게 조환의 이름을 상기시켰다. "무사 출신이지만 거래를 할 줄 아는 자이옵니다 큰 장사꾼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헛, 참! 왕자님께서 장안을떠나실 때 금덩어리를 말 등에 실어주었다구요? 조환, 그자가금덩어릴 그냥 준 건 아닐 것이옵니다. 거래지요. 그자는 이미왕자님께 거래를 트자는 제의를 해온 겁니다." - P265
석정의 얼굴에는 미묘한 웃음이 물이랑처럼 일다 스러졌다. "길을 닦아줄 생각입니다." 담덕이 장안에서 국내성으로 들어오는 긴 여정을 거치며 생각해 왔던 바를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길이라구요?" 석정이 되물었고, 왕후는 매우 궁금한 표정으로 담덕을 바라보았다. "유랑 도중 우연한 기회에 말을 사러 서역까지 내왕하면서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 P266
중원과 우리 고구려 사이를 모용선비들이 가로막고 있어 교역이 쉽지 않습니다. 연나라를 물리쳐 저 장안과 통하고, 더불어 서역과 연결할 수 있는 길을 뚫어야 합니다. 그리하려면 조환을 통해야 할 것이고, 우리 고구려도 간접적으로나마 서역과거래를 틀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담덕의 말에 석정은 크게 머리를 끄덕거렸고, 왕후는 그저놀라워 벌어진 입을 얼른 손으로 가렸다. - P267
"허어? 조환에게 그 교역의 길을 개척해 주시겠다고요? 대단한 선물을 주려고 하십니다그려. 조환은 왕자님께 금덩어리를되로 주고, 교역의 길을 말로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래란 바로 그러한 것. 큰 장사꾼은 되와 말의 크기에 아주 민감하고, 셈수도 그만큼 빠르지요. 이번에 조환이 큰 거래를 텄습니다. 어헛 헐헐헐!" - P267
내실로 들어섰을 때 왕후는 담덕을 마주 바라보았다. 눈물까지 찔끔 솟았다. 이때만큼은 누가 지켜보는 사람도 없으니 왕후와 왕자의 격식을 차릴 것도 없이 그대로 자연스레 모자 사이로 돌아갔다. "우리 아들, 이 어미가 한번 안아보자꾸나." 사실 왕후는 국내성 서문 앞에서 오랜만에 대면을 하게 되었을 때, 더럭 담덕을 안고 싶었다. 그러나 왕후로서 보통 아낙네처럼 울고불고 수선을 떨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담덕은 실로 오랜만에 어머니의 향기를 맡는 기분이었다. - P268
‘추수 사범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일목장군이 가지고 있다는 그 단도가 증명하고 있질 않은가? 그렇다면 일목장군이혹시 추수 사범은 아닐까?‘ 왕후는 이렇게 마음속으로나마 만약에 살아 있을지도 모를추수에 대해 가느다란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었다. - P271
전진의 부견은 비수전투에서 동진에게 패한 후 나라가 어지러워지면서 정신적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패전 후 부견 휘하의 장수였던 모용수와 요장이 반역을 꾀해 후연과 후진을 세우더니, 반역의 물결이 마치 전염병처럼 번지기 시작하여모용황의 둘째 아들 모용준의 삼남 모용홍이 관중에서 선비족들을 규합하여 서연을 건국했다. - P272
이때 부견은 10여 년 전 연나라를 쳤을 때 선비족 4만 호를볼모로 삼아 장안으로 끌고 왔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품안에모용씨라는 호랑이 새끼를 기른 격이었다. 바로 모용씨의 후예들인 모용홍과 모용충형제가 장안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선비족유민들을 끌어모아 군사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 P273
모용홍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이미 토벌군을 제압하면서 우리 군사들도 많이 지쳐 있습니다. 하루만이라도 쉬어서 군사들의 전열을 정비한 후 공격하는것이 좋을 것입니다." 고개도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네가 감히 내 명을 어기겠다는 것이냐? 내 명은 곧 군령이다. 군령을 어기는 자는 어찌 되는지 알겠지? 허나 직언을 했으므로 가상히 여겨 참하는 것만은 면해 주겠다." 모용홍은 그러나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다. 군령의 엄함을 휘하 군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본보기 삼아 고개에게 장형 서른대를 내렸다. - P275
그렇게 말하는 모용충의 얼굴은 어떤 수치스런 모욕감으로더욱 붉어졌다. 투구 속의 그 얼굴은 용맹한 장수라기보다는경극에 나오는 여장 남자처럼 미소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열두 살 때 전진의 군사들에 의해 장안으로 끌려온 그는 단번에 부견의 눈에 들었다. 부견은 남색을 즐겼다. 한눈에 보아도 미소년이었던 모용충을 부견은 가만두지 않았다. 가까이에 두고 밤마다 희롱했다. 참기 어려운 굴욕이었지만 모용충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언젠가는 모용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날, 그 스스로 부견의 목을 따리라고 다짐하고 또다짐을 했다. - P276
모용홍은 투구 속에서 빛나는 동생 모용충의 눈길에 시퍼런날이 선 것을 보고 더욱 의기가 솟구쳤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에 모용홍은 눈을 뜨지 못했다. 직언을하다가 군령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장형 서른 대를 맞고 앓아누웠던 고개가 앙심을 품었던 것이다. 그는 이른 새벽에 가슴으로밀며 땅바닥을 기어 모용홍의 막사로 숨어들었고, 품에서 단도를 꺼내 모용홍의 목을 그어 단숨에 명줄을 끊어놓았다. - P277
그러나 전진의 사신을 보내고 나서 모용충의 얼굴색은 표변했다. 방금 흘리던 눈물 자국이 지워지기도 전에 그의 눈에서는 시퍼런 불길이 번뜩였다. ‘부견, 이놈아! 두고 봐라! 내 기어코 네 멱을 따서 피를 받아마시리라!‘ 모용충은 아직도 미소년의 풍모가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았지만, 경극 배우처럼 마음먹은 대로 표정을 연출하는 능력을갖고 있었다. 불길이 이는 그의 눈은 벼린 칼날처럼 예리했다. - P279
간신히 북문을 빠져나온 부견은 말 머리를 서쪽으로 돌리고힘껏 박차를 가했다. 그는 두 해 전 서역 정벌에 나선 전진의 대장군 여광의 군대를 찾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겐 아직 여광의 군대가 있다. 충, 이놈이 감히 나를 배반하다니? 여관의 군대를 만나면 다시 장안을 쳐서 반드시 모용충의 머리를 벨 것이다.‘ - P281
비수전투에서 동진에게 패했을 때, 부견은 여광의 30만대군을 서역 정벌에 보낸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한 적이 있었다. 여광은 왕맹의 천거로 장군이 된 인물이었다. 전략전술이 뛰어난 여관으로 하여금 동진 출정을 맡도록 했다면 전투 양상은크게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부견은 생각했다. - P282
그런데 여광의 군대를 만나기 위해 서쪽으로 말을 달리면서,부견은 서역 정벌을 보낸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생각을 바꾸었다. 바로 그 여광의 30만 대군만 있으면 장안으로 쳐들어가 모용부의 군대를 섬멸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자, 다시금 그의 마음속에서새로운 야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도 젊은 장수들 못지않은 패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 P282
부견이 여관으로 하여금 서역 정벌에 나서게 한 것은 구자(쿠처)에 있는 승려 구마라습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는 여관에게 특별히 서역을 정벌하고 나서 구마라습을 정중히 모셔 오라고 일러두었던 것이다. - P282
구자는 천산산맥 남쪽에 있는 오아시스 국가였다. 동쪽에는토로번(투루판) 분지가 있고, 남쪽에 타클라마칸사막이 있는천산남로의 거점이 되는 교통의 요지였다. 위구르족이 주류를이루고 있는 구자는 그 나라 말로 ‘교차점‘이라는 뜻을 가지고있었다.분명 여관의 30만 대군은 서역 여러 나라를 점령하고, 귀로에 구자에서 구마라습을 대동하고 장안으로 돌아오고 있을 것이었다. 부견은 그것을 확신할 정도로 여관을 충직한 신하로믿고 있었다. - P283
"하늘의 뜻입니다. 저녁에 뜨는 별은 밤새 하늘에서 찬란하게 금빛을 냅니다. 한때 폐하도 뜨는 별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벽별은 그 빛을 잃고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한낮이 되면 햇빛에 가려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의이치가 그러한데, 어찌 그것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선 이제 새벽별처럼 지는 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윤위의 말을 들으면서 부견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니 그 말이 모두 옳았던 것이다. - P288
짐이 끝까지왕맹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이 순간 크게 후회될 뿐이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말을 끝낸 부견은 성큼성큼 걸어서 처소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들보에 끈을 매고 스스로 올가미에 목을 걸어 자결했다. 이때 그의 나이 48세였다. - P288
중원 화북지방을 호령하던 부견이 강족 출신의 요정에게 허무하게 무너지면서, 그 주변 세력들의 움직임 또한 심상치 않은 기류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선비족으로 농서(감숙성) 출신인 걸복국인 역시 부견 휘하 장수로 비수전투에 참여했었는데, 그 직후 전진이 패망의 길로 치달으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농서부중의 10만여 군사를 일으켰다. - P289
그러고는 서진을 세워 스스로대선우라 칭했다. 선비족의 한 부족이었던 탁발규 또한 전진의패망을 기회로 삼아 우천(내몽골 동쪽 지역)에서 전에 그의 조부 십익건이 이끌던 탁발부를 재건하고, 대왕의 지위에 올랐다. - P289
아들 진가모로부터 중원의 소식을 들은 내신좌평 진고도는무슨 깊은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눈을 가늘게 뜬 채 몇 번이고같은 소리만 중얼대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부견의 죽음‘은일종의 화두 같은 것이었다. - P289
"지금 한창 관중과 관동에서 모용부가 다시 준동하여 후연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지난여름 고구려가 그 후연의 허를 찔러요동과 현도를 함락시킨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후연은 멀지만, 고구려는 우리 백제와 가깝습니다. 고구려가 언제 어느 때 우리의 북변을 공략할지 모를 일이옵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지금 우리 백제의 대왕은 매우 허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같은 진가모의 말은, 근구수왕이 붕어하고 나서 태자 침류가 왕위에 올랐으나 성격이 우유부단하여 군주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 P292
근구수왕 시절 고구려의 평양성을 쳐들어갔다가 을두미의작전에 허를 찔려 대패했을 때, 대왕의 목숨을 구한 것이 바로목만치였다. 그 후 목만치는 백제의 왕실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장수로 인정을 받았고, 위사좌평으로 궁궐을 지키는 최고수장이면서 대왕의 호위무사를 겸하게 되었다. - P293
근구수왕은 세상을 떠날 때 목만치에게 반드시 태자 침류의곁을 지켜 백제 왕실을 굳건하게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목만치가 대왕 침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야 하는 무거운 책무 때문이었다. - P294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남가라에서 목만치에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부친 목라근자가 집사 길수의 비수에 찔려 사경을헤매고 있다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칼이 급소를 약간 비껴나가 죽을 고비는 넘겼다고 했다. 비보를 들은 즉시 대왕에게사실을 고한 목만치는 곧바로 말을 타고 단신으로 남가라를 향해 달려갔다. - P296
그러고 나서 다음 날 아침, 대왕 침류는 아침 수라를 들다말고 피를 토한 채 쓰러졌다. 독약이 든 음식을 먹고 즉사한 것이었다. 내신좌평 진고도는 대왕 침류가 붕어했다는 사실을 만백성에게 알렸다. 그리고 대왕의 아들 아신이 있었으나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를 들어 강력하게 침류왕의 동생 진사를 다음 왕으로 추대했다. - P296
사실상 길수가 진가모의 비밀 계획에 깊숙하게 끌려든 것은백금에 눈이 어두워서가 아니었다. 그는 20여 년 전 목만치의어머니가 처녀였던 시절부터 남몰래 그녀를 연모해 왔었다. 그는 머슴의 아들이어서 엄연히 신분의 벽이 있었지만, 그보다두 살 연상인 주인집 아씨가 어느 사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 밤잠을 못 이루게 되었다. - P301
그렇게 몇 년을 보내던 차에 진가모가 사람을 보내 길수에게접근해 왔다. 목라자만 죽여준다면 백금은 물론 평생 먹고살수 있는 벼슬자리도 마련해 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목라근자 집안과 적지 않게 정이 들긴 했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연적으로20여 년 전 적개심을 품었던 그 감정의 응어리가 되살아나기시작했다. 이미 딱딱한 돌덩어리가 되어버린 줄 알았는데, 진가모의 유혹이 그 응어리를 녹여 옛날 감정을 되찾아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심야에 목자의 침소에 접근해 복부에 칼을 꽂고 도망쳤던 것이다. - P302
남가라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한성을 치려는것이 아니라, 적은 수의 인원으로 비밀리에 기습작전을 펴서 궁궐을 점령하려는 의도겠지요. 목판치는 전에 위사좌평으로 궁궐 수비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궁궐지리에 밝으므로, 칼잘 쓰는 1백여 명의 신검무사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계산하고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 P303
남가라뿐만이 아니었다. 비자벌(창녕)·탁국(경산) ·안라(함안)·다라(합천)·탁순(대구) · 가라 (고령) 등의 옛날 가야지역이 다 목근자의 지배권 아래 있었다. 그러므로 남가라를 친다는 것은 어불성설, 백제가 자칫 도탄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옛날 가야 세력이 백제에 등을 돌린다면, 그 파란을 감당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었다. 역시 길수의 말대로 목만치가 역도을 이끌고 한성으로 쳐들어올 때 일망타진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일 듯싶었다. - P304
문제는 정보였다. 누가 상대의 정보를 더 빨리 캐내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이었다. 진가는 휘하의 졸개들을 변장시켜남가라에서 한성에 이르는 길목 요소요소를 지키게 했다. 이상한 무리들이 10여명씩 떼를 지어 출몰하는 것을 보면 즉시파발마를 띄워 자신에게 알리도록 했던 것이다. - P304
그로부터 며칠 후, 약속한 날짜에 한수 나루 인근에 장사꾼과 풍물패 무리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목만치와 신검무사들이변장을 하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들은 강을 건너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는 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밤이 오기를 기다려일제히 한성을 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들은 진가모의 세력들에게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 P305
고구려가 요동과 현도를 공략하고 나서 국내성으로 귀환한이후, 후연에선 부여 출신의 장수 여암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모용수 밑에서 건절장군의 지위에 있었는데, 후연이 고구려에게 무참하게 당하는 것을 보고 무읍에서 부여 유민들을 규합해 독자적인 세력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 P307
모용놓은 여기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화 역시 여암과 마찬가지로 부여 유민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모용부에 들어와서도 우정이 돈독한 사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화로서는같은 부여 유민 출신이자 친구인 여암을 살려내고자 하는 마음이 클 것이었다. ‘그래, 일단 살려준다고 하자. 여암을 살리고 죽이는 건 내가아니라 폐하에게 달려 있질 않더냐?‘ 모용농은 이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일단 여암을 잡아 중산까지 끌고 가면 자신의 임무는 끝난다고 생각했다. - P310
"여암 장군!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오? 우리가비록 모용씨 밑에서 굴욕을 당하며 살아왔지만, 어찌 단 한순간인들 우리 부여를 잊은 적이 있겠소? 여암 장군이 부여 유민들을 규합해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너무 기뻐 눈물까지 흘렸소이다. - P311
지난 요하 전투에서 도강작전을 감행할 때 모용농 때문에 죽다 살아났지만, 나는 이제 모용부와 결별할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소. 그러던차에 여암 장군이 먼저 용기 있게 부여 유민들을 규합해 일어섰으니, 모용농 휘하에 있는 나로선 장군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소이다. 내가 이렇게 단신으로 여암 장군을 찾아온 것은 우리가 같이 대사를 도모하여 모용부를 쳐부수고 조국인부여로 당당하게 돌아가고자 함이오." - P311
성루에서는 여화와 여암이 성 아래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고있었다. 이때를 기다려 모용농은 졸개들을 시켜 부여 유민 출신들을 열 명씩 묶어 성문 가까이에 세우고, 멀찍이서 화살을쏘아 차례차례 공개처형을 했다. "장군님! 저희들을 살려주세요." 오라에 묶인 부여 유민 출신 군사들은 성루의 여화를 올려다보며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그러다가 연나라 대군의 새카맣게 날아오는 화살을 맞고 그 자리에 엎어져 죽었다. - P313
여화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을 달려 여암에게로 가까이다가갔다. 말 위에서 여암은 막 달려오는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여화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 그는 칼을 날려 단숨에 상대의 목을 끊어놓고 말았다. "모용농의 수족인 줄 모르고 너를 받아준 내가 잘못이지." 여암은 모용농이 성문을 열기 위해 여화와 짜고 벌인 연극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오늘 밤으로 요동을 점령하고, 내일 새벽밥은 성안에서 지어 먹는다." 모용농은 군사들을 모아놓고 일갈했다. 그런데 요동성의 고구려 군사들은 멀리서 달려온 연나라 대군이 곧바로 야습을 하리라곤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허를 찔러 모용농은 캄캄한 밤중에 요동성을 공격하여, 그의말처럼 정말 새벽이 되기 전에 성을 차지해 버렸다. 졸지에 연나라 군대에 성을 빼앗긴 고구려 군사들은 인근의 고구려 성으로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에 바빴다. - P317
그런데 새해가 밝고 나서 후연 북쪽에 흩어져 살던 탁발선비를 규합한 탁발규가 대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일단 성락(내몽골 카라코룸)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위로 고쳤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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