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즈음의 지중해 서쪽에서 로마제국은이름만 남아 있었다. 그 빈 공간으로 제국 경계 바깥에 살던 게르만족이홍수처럼 밀려 들어왔다. 이 침입자 또는 이주민 집단들은 현지인들과섞여 자연스레 크고 작은 국가들을 형성했다. 이제 그들은 외부인이 아니라 유럽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중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P367
로마제국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운 존재는 게르만족 말고도 또 있었다. 그리스도교다. 특히 고대 로마의 지적 유산과 제국 경영 노하우는 교회가계승하고 있었다. - P368
15~16세기 르네상스에서 시작되었다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사이에 있는 천 년은아무 의미도 없는 시간이었다. 기껏해야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혹은 근대)중간에 낀 과도기에 불과했다. 중세middle ages 라는 명칭에도 이런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엄밀히 말하면 ‘중세‘라는 시대 명칭과 구분 방식은 서유럽의 사정만을 반영하고 있다). - P369
유럽사에서 고대가 끝나고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476년엔 라벨나에 틀어박혀 있던 서로마제국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가 고트족의왕 오도아케르에게 쫓겨나는 일이 있었다. - P369
오도아케르는 허울마저도 우스꽝스러워진 황제라는 호칭을 쓰기가머쓱했는지 이탈리아 왕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그러고는 동로마제국의황제 아래에서 영주로서 이탈리아를 대리 통치하겠다고 허락을 구했다(오도아케르는 마지막 황제의 제관과 의복, 자줏빛 망토를 콘스탄티노플로 공손히보냈다. - P369
때로는 이미지가 텍스트보다 시대의 양상을 더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건축과 예술품의 자취를 살펴보면 이런 방식이 적어도 5백년 이상 더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세의 이런 흔적들을 후세인들(19세기 초의 학자들)은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이라고 이름 붙이게 된다. ‘로마풍‘이라는 뜻이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그 풍토는 수십 세대 동안 여전히로마였던 것이다. - P370
로마의 잔해가 서쪽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이어졌다면, 동쪽에서는 비잔틴 양식으로 이어졌다. - P371
두고 발전한 이런 양식을 비잔틴 양식이라고 한다. 로마 문명의 잔해에 그리스적이고 오리엔트적인 취향이 조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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