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이 고려왕조에 충성하던 마음과 별개이다. 그러므로 최영을 죽인 조선의 건국 주체를 비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익은 자신의 시대인 조선의신하로서의 의리론과 사대질서의 명분론으로 최영을 평가했다. - P122
최영은 명나라 변방에 사건을 일으켜명나라황제의 분노를사게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렇게 해서 기획된 것이 요동 정벌이었다. 정벌 사령관으로 이성계를 임명하고, 나중에 그에게 책임을 전가해 제거하려 했다는 것이다. - P122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여 우리 영토를 잠식하려하자, 이에 반발하여 우왕과 최영이 주도하여 요동정벌을 단행한 것이라는 그동안 학계의 연구성과와 아주 다른 견해이다. - P123
이익의 주장에 따르면, 최영의 음모론은 1388년(창왕즉위년) 6월 최영의 체포와 12월 최영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익은 최영의 유배 이후에 이성계를 제거하려는 정치적 움직임도 최영 음모의 연장으로 간주하며 1388년 10월 이색(李穡)의 명나라 사행을 음모의 예로 들었다. - P124
이익은 최영의 죽음이후 1390 년(공양왕2) 5월 윤이(尹)와 이초(李初)사건도 최영 음모의 또 다른 연장으로 보았다. 윤이와 이초 등이 명나라황제에게 이성계가 왕씨가 아닌 자기인척인 공양왕을 왕위에 앉히고, 그에 반대한 이색 등의 고위관료들을 살해하거나 유배시키고 명나라를공격하려 한다고 무고한 사건이다. - P125
최영의 요동 정벌 음모론은 이익이 처음 제기한 것이 아니다. 조선 중기 심광세(沈光世, 1577~1624)가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익은 심광세의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심광세의 최영 음모론은 그의 문집 《휴옹집(休翁集)》에 실려 있다. - P126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요동정벌에 대한 사론을 작성하면서, 심층세의 이 글을 인용했다. 또한 그는 이익의 주장도 받아들여 《동사강독》에 반영했다. - P126
이익의 《성호사설》에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안정복은 이익의 요동 정벌 음모론을 받아들여 《동사강목》서술에 반영했다. - P127
이익은 조선사람으로서 조선 건국의필연성과 건국자 이성계 중심의 의리론 관점에서 최영의 요동 정벌을 평가했다. 또한 화이론(論)에 근거한 사대명분론의 관점에서 요동 정벌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등 자기 시대의 제약과 한계 속에서 최영을 평가했다. 시대의 제약을 뛰어넘는 역사 서술과 평가는 불가능한 것일까? - P128
당대의 제약과 한계를 직시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역사 서술과 평가를 시도하는 일이 도리어 역사학의 발전에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P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