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원왕은 다급함과 분함으로 기다리지 못해 번번히 백제에게 승리를 안겨주다 평양성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드디어 태자구부가 전면에 왕으로 나서면서 다시 평양성은 인내하며 자신을 통제하는 프로세서의 기운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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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승리의 기운를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고구려는 확실히 보여지는 다가올 패전을 위한 다급함 속에 졸전만 거듭한다.

아아!.담덕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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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근초고왕이 살아있는 전장에서의 백제는
카르타고의 한니발도
로마의 카이사르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2세도
그리고 이순신조차도 부럽지않는 승전의 전략이
차고도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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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백제의 대장군 목고구려군의 공격을 미리 예자는상하고 있었다는 듯 부대를 둘로 나누어, 될 수 있는 대로 접근전을 피하면서 후퇴를 거듭했다.  - P14

새의 날개처럼 좌우로퍼져 나가면서 삼각 구도를 형성했다. 그 기세야말로 높은 하늘의 독수리가 먹이를 채기 위해 활짝 폈던 날개를 접으며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히는 듯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백제 본진은고구려 철갑기병의 말발굽에 밟히거나 창칼에 도륙이 났고,
가운데서부터 도끼날에 통나무가 쪼개지듯 좌우로 쫙 갈라져나갔다. - P14

그러나 목라자는 후퇴할 때 백제군의 사상자가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이미 해두고 있었다. 너무 빨리 군사를후퇴시킬 경우 고구려군이 작전을 눈치챈 것까지 감안하고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사상자는 고구려군으로 하여금 그런 의심을 갖지 않게 하는 데 큰 공훈을 세우고 있는 셈이기도 했다. 백제의 대장군 목라근자로선 군사를 잃는 아픔을 그런 마음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 P15

"태자전하! 지난 전투는 단발로 끝난 게 아닙니다. 그 작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 줄다리기 시합도 그 일환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 줄다리기 시합의 효용에 대해 발설하기가 곤란합니다. 때가 되면 아시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 P18

원래 줄다리기는 남도를 비롯하여 저바다 건너 유구국(일본 오키나와) 같은 곳에서 유행하던 것으로, 벼농사를 짓는 지역에서 농부들의 단합심을 기르기 위해명절 때마다 하는 민속놀이지요. 그 놀이가 변하여 남도의 어떤 지역에서는 고싸움으로 또 다른 어떤 지역에서는 동채싸움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 P20

동채싸움은 일명 차전놀이라고도 하지요. 적장목라근자도 아마 남도의 민속놀이를 군사훈련에 활용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 P20

분을 참지 못한 대왕의 조급증이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먼저튀어나왔다.
·철갑기병을 끌고 나가 싸우되 적들이 후퇴할 경우 절대 추격은 하지 말고 철수하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합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고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 P25

그러던 어느 날 백제군이 발석거로 쏘아 올린 돌덩이가 다경문의 문루로 날아들어 기와지붕이 박살나자, 대왕 사유의 고질병이 도졌다. 도무지 조급증이 일어나 제2차 원군이 오기만을 참고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문루에서 적정을 살피던 그의 머리 위로 돌덩이가 떨어질 뻔했던 것이다. - P28

추수는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그의 가슴에 꽂혔다.
그는 말 등에서 떨어지면서 그대로 절벽 아래 강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 P39

백제군은 고구려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모두 목라근자의 줄다리기 전략 덕분이었다. - P40

"장군이 군사들에게 줄다리기 시합을 시킬 때는 그저 협동심을 길러주기 위한 근력 훈련 정도로 알았습니다. 사실 전투력이 강한 고구려의 철갑기병은 근심거리 중 하나였는데, 장군께서 줄다리기 전략으로 일거에 제압을 해주셨습니다. 다만, - P40

백제 대왕구가 고구려 제2차 원군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고구려 서북방 요새에서 2만 병력을 모집해 태자 구부가 이끌고 온다고 했다. 고구려변방의 요새를 지키던 정예병들이라는 점도 그렇고, 태자 구부의 인물 됨됨이도 만만치 않다고 소문이 나 있었던 것이다.  - P41

부왕인 사유와 달리 태자 구부는 진중하면서도 지혜를 가진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는 것을, 세작들의 입을 통해 익히 들은 바있었다. - P41

이렇게 말하고 나선 것은 목라자였다.
"오오, 대장군께서 벌써 작전을 짜놓았다니 적이 안심이 되는구려!"
대왕구는 목근자를 바라보며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 P42

바로 그때였다. 평양성의 고구려군 동태를 살피러 갔던 초병이 급히 막사로 들어와 군례를 올리며 보고했다.
"평양성 성문 꼭대기에 흰 깃발이 걸렸습니다. 성루를 지키는 병사들의 움직임으로 봐서 항복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고구려왕이 사망한 것 같사옵니다." - P42

독화살로 적을 죽이겠다는 것은 인륜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번전쟁에서 다 이겨놓은 것을 태자가 망쳤구나."
대왕 구는 화가 났지만 대놓고 태자 수를 나무랄 수도 없어서, 그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한탄만 거듭했다. - P43

그때 대왕구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일침을 놓았다.
"흥분하지 말고 조용히들 하시오. 지금 전쟁을 논할 때가 아니란 말이오." - P43

"태자는 자중하라! 아무리 우리 백제와 고구려가 적대적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인륜에 어긋나는 일은 삼가야 하느니라.
만약 고구려왕의 훙거가 사실이라면, 태자 구부는 상제가된다. 상제에게는 예의를 다 갖춰야 하거늘, 그를 상대해 싸우겠다고 덤비는 패악을 저지를 수야 없지 않겠느냐? 그러고서어디 군자국이라 할수 있겠느냐?" - P44

"일단 우리 백제군은 은인자중하는 자세로 이곳을 지키고고구려 제2차 원군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평양성으로 입성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오. 그런 연후 고구려군의 태도를 보고 다시 우리의 입장을 정리토록 합시다."
대왕구는 서둘러 제장들과의 회의를 마쳤다. - P44

대장군 고계가 대왕 구부 앞에 엎드려 피가 나도록 머리를찧었다. 실제로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어찌 그대들의 잘못이겠소? 일어나 고개를 드시오."
대왕 구부는 어느새 마음의 평정을 찾은 듯, 목소리가 낮게가라앉아 있었다. - P46

"장군이 참으시오. 지금은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오. 먼저 우리 자신을 이겨내야 적도 이길 수 있소."
대왕 구부는 고계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지만, 방금 한 말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 P47

대왕 구부는 서찰을 펼쳐 읽어보았다.
‘고구려 대왕의 훙거를 매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환난을자초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백제군에게 있습니다. 백배사죄하는 마음으로 철구합니다. 황망중이겠지만 장례를 잘 모시길바라는 바입니다.
백제 대왕 구의 서찰 내용은 간략했다. - P48

그날 밤부터 평양성에는 폭풍우가 치면서 먹구름이 몰려들었고, 성루 곳곳에 흰 깃발의 조기가 걸린 가운데 사흘을 내리흙비가 내렸다. 서북풍이 부는 봄철에 황사먼지와 함께 내리는흙비가 초겨울 하늘을 뒤덮는 것은 분명 이상 현상임에 틀림없었다.
- P49

고구려 대왕 사유는 평양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국원에묻혔다. 그가 바로 고구려 제16대 고국원왕이었다. - P49

 그의 왼쪽 팔소매안으로 쇠로 된 갈고리의 의수얼핏 내비쳤다.
- P51

누가 보더라도 삿갓 쓴 사내의 자세는 매우 어설펐다. 그도 그럴 것이, 지팡이는 색목인을 겨냥하지 않고 그저 땅을 향해 비스듬히 내려진 상태였다. 그러나 두 눈에서 나는 광채만은 상대의 눈을 꿰뚫을 듯 매우 강렬했다. - P52

"나는 고구려 유민인데 이곳 장안에서 서역인들을 상대로장사를 하는 손장무라 하오."
"나는 조환이라 하오."
삿갓쓴 사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조환, 그는 바로 이름을 바꾼 동부욕살 하대곤의 호위무사 두충이었던 것이다. - P55

말이 통하는 고구려 땅에서는 그래도 숙식 해결에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요동을 지나 중원 땅으로 들어서면서부터말이 달라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되자, 거의 거지꼴로 구걸하지 않으면 숙식 해결이 쉽지 않았다.  - P57

조환은 두 사람이 역모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기실 그가 대상으로 나서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때문이었다. 즉 그들이 역모에 성공하여 해평이 고구려 대왕이되면, 그때 자신이 대상으로서 재화를 모아 국가 재정에 큰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 P67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역모에 실패할 경우 자신을 살릴 수 있는 길은 그들로부터멀리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왼팔을 잃은 후책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석정을 찾아 장안으로 온 것도 내심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 P67

그 여인은 화전(허텐)의 귀족 집안 딸이었다. 이 지역은 우전국서쪽의 군사적 요충지이자 동서 교류의 중간 기착지로서 옥의산지로 유명하다고 했다. ‘우전‘은 바로 서장(티베트)의 말로 ‘옥이 많이 나는 곳‘이란 뜻이었다.
화전의 귀족 딸은 옥을 거래하는 상단을 이끌던  - P69

아버지의뒤를 이어 장삿길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외동딸이었는데,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그 상단을 이어받아 옥을 거래하는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장안의 옥공예전문점에 재료를공급하는 상단의 대인을 만나기 위해 첫 출행을 했다가 졸지에 검은 복면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것이다. - P69

화전이 타클라마칸사막 남쪽에 있는 옥의 산지라는 것을 알았다. 곤륜산맥에서 발원하는백옥하와 흑옥하가 동서로 흐르는데, 두 물줄기가 만나 녹옥하가 된다고 했다. - P71

강 이름에 구슬 옥자가 들어가 있는 것은, 그 강에서 옥이생산되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5~6월이면 강물이 크게 불어나각양각색의 옥돌이 물결에 휩쓸려 산 계곡에서 굴러내려 오는데, 그것들이 오랜 기간을 거쳐 하류까지 도달하면 아주 동글동글하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귀한옥으로 변한다고 했다. - P71

다주로 화전의 대상들은 한나라에서 비단을 구입해다가 대진국(로마)에 비싼 값에 파는 중계무역을 했다.  - P72

공주는 남몰래 비단 짜는 법을 배우고 잠종과 뽕나무 씨를모자에 숨겨 가지고 화전 왕에게 시집을 갔다. 이렇게 하여 화전에서도 비로소 비단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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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태자 수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대왕구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태자의 말이 옳다. 실기를 하면 안 된다. 이 말이렷다?
허면 동진에 곧 사신을 파견하고, 목근자에게 파발을 띄워 1만의 지원군을 요청토록 하라. 헌데 동진에 보낼 사신으로는 누가 적임자라 생각하는가?"
"막고해 장군을 보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 P310

"아니다. 이번에 이 아비도 출전할 것이다"
"그러면 한성은 누구에게 맡기려고 하시옵니까?"
"달솔 진고도가 있지 않느냐?" - P311

대왕 구는 이미 진고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진고도는 왕후의 친동생으로, 대왕 구가 즉위한 후 진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백성들의 원성을 사서 요서지역으로 쫓겨 간 후뒤늦게 권력의 실세로 등장한 인물이었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지만 진정이 강퍅한 성격의 강경파에 속한다면 진고도는 그 반대로 온건파였다. - P311

소신은 고구려의 하 대인보다 더 큰 대상이 되고 싶사옵니다.
그리하여 강남의 동진을 통해 서역으로 가서 명마를 수입해 오겠사옵니다. 그 명마들은 우리 백제의 기마대를 더욱 강력하게만들어줄 것이옵니다."
사기의 말을 듣고 난태자는 그 자리에서 그를 동진 사신단에 합류시켜 주기로 약속했다. - P313

"그대 야망이 마음에 든다. 내가 그대를 백제 최고의 대상으로 만들어주마."
태자 수는 밀정 역할을 하여 두 번이나 공을 세운 바 있는 사기가 더욱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다. - P313

그리고 민가에서는부락 단위로 돌팔매싸움·씨름·수박희·공차기·투호·윷놀이바둑·장기 등 각종 민속놀이를 즐겼다. 이렇게 부락 단위로 시합을 겨뤄 뽑힌 장정들이 압록강의 둔덕에 마련된 축제 현장에나와 본격적인 경연을 벌이게 되어 있었다. - P316

민속놀이에서 돌팔매싸움과 씨름이 그중 흥미로웠다. 돌팔매싸움은 부락끼리 단체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결승전에 올라오게 되어 있는데, 그 결승전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 P316

말을 타고 두 사람이 겨루는데, 돌팔매로 상대편을 먼저 말에서 떨어드리는 자가 장원을 하게 되어 있었다. 먼 거리 싸움에선 화살이 유리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선 역시 돌팔매처럼 정확하게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무기도 없었다. 장원을 한장정은 돌팔매로 백발백중 상대의 얼굴이나 몸통을 맞춰 말에서 떨어뜨리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 P316

동맹축제 때는 고구려 전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무사들이 참여했다. 여기서 장원을 하면 바로 장군의 지위에 해당하는 사자의 벼슬을 받아 일정 단계를 거치지 않고 젊은 나이에 곧바로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 P317

그 한 달 기간 동안 수백 명의 무사들이 무술 경연을 벌였는데, 최종으로 뽑힌 무사는 세 명이었다. 세 명의 무사는 모두 신분을 감추기 위해 얼굴에 호랑이·곰·용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 P317

불곰 무사는 월도를 들고 나왔고, 청룡 무사는 구겸창으로 응수했다. 월도나구겸창이나 자루가 길어서 서로 격투 공간을 넓게 쓰면서 겨루었다. 갈기를 세운 말과 말이 비껴나가면서 바람을 일으켰고,
창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다. - P318

"저 불곰 무사가 누군지 알겠어요."
왕자비 연화가 옆에 앉은 왕자 이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찌 저자를 안단 말이오?"
"말 타는 기술이나 월도 다루는 솜씨가 추수 사범이에요."
- P319

국혼을 치른 후에 추수는 이런 왕자의 무술사범으로 기용되었던 것이다. 물론 스승을두미의 추천서 덕분이었다. 거기에다왕자비의 적극적인 지지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었다. - P319

백호 무사는 환두대도를 불곰 무사는 먼젓번과 달리 쌍칼을 들고 나왔다. 환두대도는 베고 찌르는 데 유리했고, 쌍칼은베는 데 주로 쓰이나 두 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있었다. - P320

그러자 세 명의 무사는 얼굴에 썼던 가면을 벗었다.
왕자비가 예견한 대로 불곰 가면을 썼던 무사는 추수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마지막까지 결전을 벌였던 백호 무사는 예기치도 못했던 해평이었다.  - P323

동수는 연나라 모용황의 친동생 모용인 휘하의 장수였었다.
그런데 대왕 사유가 부왕 미천왕의 뒤를 이어 위에 오른 지 7년이 되던 해에 고구려로 귀화했다.
대왕은 동수에게 장하독의 벼슬을 내려늘 가까이 두고 지냈으며, 20여 년간 동고동락을 해온 사이였다.  - P324

장하독은 대왕의 신변을 책임지는 장수로, 그가 일찍 죽었을 때 친동기간을잃은 듯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청룡 무사가 바로 그 장하독 동수의 아들이라니 여간 반갑지 않았다.
"동수 장군의 아들이라! 장하도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고?"
"동관이라 하옵니다." - P324

당장 앞에 닥친 남쪽의 백제군도 문제지만, 다른 한편으로심히 걱정되는 것이 서북 변경이었다. 대왕은 연전에 연나라 태부모용평이 망명해 온 것을 오히려 포박해 전진의 부견에게 보낸 것을 백번 잘한 일이라고, 다시금 곱씹었다. - P329

석정의 말을 듣고 나서야 대왕 사유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장 막고해를 동진에 사신으로 보내는 한편 고구려의 동맹축제를 틈타 평양성을 급습하는 전략은 백제왕 구를 결코 만만한 상대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어쩌면 막고해를동진에 사신으로 파견한 것은 고구려를 속이기 위한 고도의 위장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 P334

대왕은 명림수부라면 국내성을 마음 놓고 맡길 수가 있었다.
태자 구부의 장인이므로 왕실을 보전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설인물이기 때문이었다.
- P335

간밤에 대왕이 걱정했던 것은 연나부였다. 만약 태제2차 원군을 이끌고 평양성으로 출전할 경우, 이번에 왕자비간택에 실패한 연나부 세력이 어떤 야심을 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딸을 왕자비로 내세웠던 대사자 우신을사신으로 보내면, 그에 대한 위로도 되고 한편으로는 근심도덜게 되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P335

우적은 전부터 어떻게 하면 하대곤과 해평을 떼어놓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는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그 자신만이 가슴 깊이 묻어두고 있는 비밀이었다. 따라서 그 해결방법은 해평을 국내성으로 보내 관직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번 동맹축제 무술대회에 내보내자고 적극 권유한 것도 바로 그 자신이었다. - P340

하대곤은 해평으로부터 대왕 사유가 제1차 원군을 이끌고평양성으로 먼저 가고, 나중에 태자 구부가 서북 변방에서 차출한 제2차 원군을 이끌고 평양성으로 출진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잠시 마음이 흔들렸었다. 대왕과 태자가 국내성을 비운다는 것은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해평이 기마대 5백기를 이끌고 출진하겠다고 했을 때 확답을 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 P342

왕자비가 추수를 바라보았는데, 문득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엇갈렸다. 이때 추수는 얼른 눈길을 거두며 이런 쪽을바라보았다. - P345

"처음 출전을 하시는 사부께 뭔가 드려야 할 터인데…………"
왕자비는 문득 일어서더니 문갑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단도를 한 자루 꺼내 왔다.
"......?"
갑작스러운 일이라 추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이 굳었다.
너무 긴장이 되어서 자세를 똑바로 한 채 상대를 쳐다보았다. - P347

얼굴을 살짝 붉히며 미소를 짓는 왕자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눈빛이 푸른 하늘을 담고 있는 호수처럼 맑았다. - P347

어쩌면 왕자비가 되기 이전부터 연화가 자신의 마음을 읽고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수는 생각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연화가 드러내서 말을 안 했다 뿐이지 여자의 감성이라면 충분이 느끼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추수는 그만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 P348

어서요. 사부의 마음 모르는 게 아니지만, 내가 연화로서 마지막으로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이네요."
왕자비는 그러면서 추수를 외면했다. - P348

옷 위로 드러난 왕자비의 어깨선이 고왔다. 추수는 그 어깨선에 눈길을 고정시킬 수가 없어 다시 방바닥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 P349

평양성 남쪽에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패수가 가로놓여 있었다. 또한 북서쪽에서 흘러내린 보통천의 지류가 패수와 만나큰 물줄기를 형성했다. 그래서 성은 서남 방면으로 강을 끼고있으면서 북동 방면은 모란봉을 비롯한 군소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였다. - P351

목라근자는 서두르지 않았다. 겨울이 닥쳐오기 전에 속전속결로 공격하자는 일부 장수들과 달리, 그는 매사 신중을 기하는 편이었다.
"그렇다면 대장군께선 고구려왕 사유가 이끄는 원군 1만을그대로 평양성에 입성시키자는 것입니까?" - P354

문득 놀란 듯, 목자는 황소 같은 눈을 더욱 크게 떴다.
"장군이 배수의 진을 치는 걸 보고 알았소. 적으로 하여금우리를 얕잡아보게 하자는 것 아니겠소?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보기보다 고구려 원군이 강해 우리 군사를 수장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그것이 두렵소." - P358

폐하! 바로 맞히셨사옵니다. 적은 지난 수곡성 전투에서 폐하가 산속에 매복시킨 우리 군에게 크게 당하지 않았사옵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고구려왕 사유가 좁은 산길로 군사를 몰아 칠성문으로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반드시 이곳 개활지를 지나 보통천을 건너 서쪽 성문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허허실실의 전법입니다만, 이번에는 고구려 원군에게 패한척 길을 터주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접전을 하는 척하다가 고구려 원군이 강하게 밀고 들어오면 좌우로 갈라져 가운데를 비워주는 것이 이번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 P358

태자 전하께, 또 올 여름에는 수곡성 전투에서 폐하께, 두 차례에 걸쳐 크게 당했습니다. 그 두 번의 실패 요인은 고구려왕의침착하지 못한 성격 탓이었사옵니다. 마음은 급하고 욕심이 많아, 당장 어떻게 해보겠다는 고구려왕 사유의 다급한 심리를소장은 맑은 물속 들여다보듯 읽고 있습니다.  - P359

우리 백제의 본진인 2만 군사가 고구려 원군 1만을 감당하지 못해 길을 터주었다고 하면, 고구려왕 사유는 기고만장할 것이옵니다. 평양성에 들어가 일단 군사를 정비한 후, 기회를 보아 성문을 열고 나와 우리 백제군을 공격하려고 들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때 우리 군은 적을 성 밖으로 유인하는 전략을 구사하여 꾀어낸 후,
기습작전으로 몰아쳐 평양성 안까지 짓쳐들어가야 합니다."
대장군 목라근자의 말을 듣고 나서야 대왕 구는 적이 안심이 되는 얼굴이었다. - P359

고구려 태자 구부는 아비처럼 덜렁대지 않고 매우 진중한 성격의소유자라 들었소. 만만하게 볼 인물이 아니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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