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백제의 대장군 목고구려군의 공격을 미리 예자는상하고 있었다는 듯 부대를 둘로 나누어, 될 수 있는 대로 접근전을 피하면서 후퇴를 거듭했다. - P14
새의 날개처럼 좌우로퍼져 나가면서 삼각 구도를 형성했다. 그 기세야말로 높은 하늘의 독수리가 먹이를 채기 위해 활짝 폈던 날개를 접으며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히는 듯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백제 본진은고구려 철갑기병의 말발굽에 밟히거나 창칼에 도륙이 났고, 가운데서부터 도끼날에 통나무가 쪼개지듯 좌우로 쫙 갈라져나갔다. - P14
그러나 목라자는 후퇴할 때 백제군의 사상자가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이미 해두고 있었다. 너무 빨리 군사를후퇴시킬 경우 고구려군이 작전을 눈치챈 것까지 감안하고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사상자는 고구려군으로 하여금 그런 의심을 갖지 않게 하는 데 큰 공훈을 세우고 있는 셈이기도 했다. 백제의 대장군 목라근자로선 군사를 잃는 아픔을 그런 마음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 P15
"태자전하! 지난 전투는 단발로 끝난 게 아닙니다. 그 작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 줄다리기 시합도 그 일환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 줄다리기 시합의 효용에 대해 발설하기가 곤란합니다. 때가 되면 아시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 P18
원래 줄다리기는 남도를 비롯하여 저바다 건너 유구국(일본 오키나와) 같은 곳에서 유행하던 것으로, 벼농사를 짓는 지역에서 농부들의 단합심을 기르기 위해명절 때마다 하는 민속놀이지요. 그 놀이가 변하여 남도의 어떤 지역에서는 고싸움으로 또 다른 어떤 지역에서는 동채싸움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 P20
동채싸움은 일명 차전놀이라고도 하지요. 적장목라근자도 아마 남도의 민속놀이를 군사훈련에 활용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 P20
분을 참지 못한 대왕의 조급증이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먼저튀어나왔다. ·철갑기병을 끌고 나가 싸우되 적들이 후퇴할 경우 절대 추격은 하지 말고 철수하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합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고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 P25
그러던 어느 날 백제군이 발석거로 쏘아 올린 돌덩이가 다경문의 문루로 날아들어 기와지붕이 박살나자, 대왕 사유의 고질병이 도졌다. 도무지 조급증이 일어나 제2차 원군이 오기만을 참고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문루에서 적정을 살피던 그의 머리 위로 돌덩이가 떨어질 뻔했던 것이다. - P28
추수는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그의 가슴에 꽂혔다. 그는 말 등에서 떨어지면서 그대로 절벽 아래 강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 P39
백제군은 고구려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모두 목라근자의 줄다리기 전략 덕분이었다. - P40
"장군이 군사들에게 줄다리기 시합을 시킬 때는 그저 협동심을 길러주기 위한 근력 훈련 정도로 알았습니다. 사실 전투력이 강한 고구려의 철갑기병은 근심거리 중 하나였는데, 장군께서 줄다리기 전략으로 일거에 제압을 해주셨습니다. 다만, - P40
백제 대왕구가 고구려 제2차 원군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고구려 서북방 요새에서 2만 병력을 모집해 태자 구부가 이끌고 온다고 했다. 고구려변방의 요새를 지키던 정예병들이라는 점도 그렇고, 태자 구부의 인물 됨됨이도 만만치 않다고 소문이 나 있었던 것이다. - P41
부왕인 사유와 달리 태자 구부는 진중하면서도 지혜를 가진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는 것을, 세작들의 입을 통해 익히 들은 바있었다. - P41
이렇게 말하고 나선 것은 목라자였다. "오오, 대장군께서 벌써 작전을 짜놓았다니 적이 안심이 되는구려!" 대왕구는 목근자를 바라보며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 P42
바로 그때였다. 평양성의 고구려군 동태를 살피러 갔던 초병이 급히 막사로 들어와 군례를 올리며 보고했다. "평양성 성문 꼭대기에 흰 깃발이 걸렸습니다. 성루를 지키는 병사들의 움직임으로 봐서 항복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고구려왕이 사망한 것 같사옵니다." - P42
독화살로 적을 죽이겠다는 것은 인륜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번전쟁에서 다 이겨놓은 것을 태자가 망쳤구나." 대왕 구는 화가 났지만 대놓고 태자 수를 나무랄 수도 없어서, 그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한탄만 거듭했다. - P43
그때 대왕구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일침을 놓았다. "흥분하지 말고 조용히들 하시오. 지금 전쟁을 논할 때가 아니란 말이오." - P43
"태자는 자중하라! 아무리 우리 백제와 고구려가 적대적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인륜에 어긋나는 일은 삼가야 하느니라. 만약 고구려왕의 훙거가 사실이라면, 태자 구부는 상제가된다. 상제에게는 예의를 다 갖춰야 하거늘, 그를 상대해 싸우겠다고 덤비는 패악을 저지를 수야 없지 않겠느냐? 그러고서어디 군자국이라 할수 있겠느냐?" - P44
"일단 우리 백제군은 은인자중하는 자세로 이곳을 지키고고구려 제2차 원군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평양성으로 입성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오. 그런 연후 고구려군의 태도를 보고 다시 우리의 입장을 정리토록 합시다." 대왕구는 서둘러 제장들과의 회의를 마쳤다. - P44
대장군 고계가 대왕 구부 앞에 엎드려 피가 나도록 머리를찧었다. 실제로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어찌 그대들의 잘못이겠소? 일어나 고개를 드시오." 대왕 구부는 어느새 마음의 평정을 찾은 듯, 목소리가 낮게가라앉아 있었다. - P46
"장군이 참으시오. 지금은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오. 먼저 우리 자신을 이겨내야 적도 이길 수 있소." 대왕 구부는 고계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지만, 방금 한 말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 P47
대왕 구부는 서찰을 펼쳐 읽어보았다. ‘고구려 대왕의 훙거를 매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환난을자초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백제군에게 있습니다. 백배사죄하는 마음으로 철구합니다. 황망중이겠지만 장례를 잘 모시길바라는 바입니다. 백제 대왕 구의 서찰 내용은 간략했다. - P48
그날 밤부터 평양성에는 폭풍우가 치면서 먹구름이 몰려들었고, 성루 곳곳에 흰 깃발의 조기가 걸린 가운데 사흘을 내리흙비가 내렸다. 서북풍이 부는 봄철에 황사먼지와 함께 내리는흙비가 초겨울 하늘을 뒤덮는 것은 분명 이상 현상임에 틀림없었다. - P49
고구려 대왕 사유는 평양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국원에묻혔다. 그가 바로 고구려 제16대 고국원왕이었다. - P49
그의 왼쪽 팔소매안으로 쇠로 된 갈고리의 의수얼핏 내비쳤다. 가 - P51
누가 보더라도 삿갓 쓴 사내의 자세는 매우 어설펐다. 그도 그럴 것이, 지팡이는 색목인을 겨냥하지 않고 그저 땅을 향해 비스듬히 내려진 상태였다. 그러나 두 눈에서 나는 광채만은 상대의 눈을 꿰뚫을 듯 매우 강렬했다. - P52
"나는 고구려 유민인데 이곳 장안에서 서역인들을 상대로장사를 하는 손장무라 하오." "나는 조환이라 하오." 삿갓쓴 사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조환, 그는 바로 이름을 바꾼 동부욕살 하대곤의 호위무사 두충이었던 것이다. - P55
말이 통하는 고구려 땅에서는 그래도 숙식 해결에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요동을 지나 중원 땅으로 들어서면서부터말이 달라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되자, 거의 거지꼴로 구걸하지 않으면 숙식 해결이 쉽지 않았다. - P57
조환은 두 사람이 역모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기실 그가 대상으로 나서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때문이었다. 즉 그들이 역모에 성공하여 해평이 고구려 대왕이되면, 그때 자신이 대상으로서 재화를 모아 국가 재정에 큰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 P67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역모에 실패할 경우 자신을 살릴 수 있는 길은 그들로부터멀리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왼팔을 잃은 후책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석정을 찾아 장안으로 온 것도 내심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 P67
그 여인은 화전(허텐)의 귀족 집안 딸이었다. 이 지역은 우전국서쪽의 군사적 요충지이자 동서 교류의 중간 기착지로서 옥의산지로 유명하다고 했다. ‘우전‘은 바로 서장(티베트)의 말로 ‘옥이 많이 나는 곳‘이란 뜻이었다. 화전의 귀족 딸은 옥을 거래하는 상단을 이끌던 - P69
아버지의뒤를 이어 장삿길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외동딸이었는데,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그 상단을 이어받아 옥을 거래하는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장안의 옥공예전문점에 재료를공급하는 상단의 대인을 만나기 위해 첫 출행을 했다가 졸지에 검은 복면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것이다. - P69
화전이 타클라마칸사막 남쪽에 있는 옥의 산지라는 것을 알았다. 곤륜산맥에서 발원하는백옥하와 흑옥하가 동서로 흐르는데, 두 물줄기가 만나 녹옥하가 된다고 했다. - P71
강 이름에 구슬 옥자가 들어가 있는 것은, 그 강에서 옥이생산되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5~6월이면 강물이 크게 불어나각양각색의 옥돌이 물결에 휩쓸려 산 계곡에서 굴러내려 오는데, 그것들이 오랜 기간을 거쳐 하류까지 도달하면 아주 동글동글하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귀한옥으로 변한다고 했다. - P71
다주로 화전의 대상들은 한나라에서 비단을 구입해다가 대진국(로마)에 비싼 값에 파는 중계무역을 했다. - P72
공주는 남몰래 비단 짜는 법을 배우고 잠종과 뽕나무 씨를모자에 숨겨 가지고 화전 왕에게 시집을 갔다. 이렇게 하여 화전에서도 비로소 비단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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