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레이터는 에스더기 전체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핵심 주제를 소개해 준다. 에스더가 헤개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다."  - P71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이야기 안에임재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단서다.  - P72

에스더기가 알려 주는 한 가지는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계속해서순종했으며, 자기의 민족과 혈통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유다인들에 대한 심각한 반감이 있었다는 언급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에스더가 유다인의 정결 음식법을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는 뜻이 거의 확실하다. 유다인이 통제할 수 없는 지역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래서 전통적인 형식들을 따를 수 없다면, 에스더는 어떻게그와 같은 형식들이 의도하는 바에 충실하게 살 수 있을지 스스로 결정해야했다.  - P72

왜냐하면 에스더에 대해서 우리가 듣는 모든 것은 모르드개와 마찬가지로 에스더도 하나님을 자기의 최우선순위에 놓았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편 15:5은 그와 같은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 P74

그렇지만 헤로도토스가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이 기간은 아하수에로가 그리스인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패배한 시기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우 유명한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그는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후에 살라미스와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결정적인 참패를 당했다.  - P75

이전에 에스더가 모든 사람에게서 호의를 입은 것처럼, 아하수에로왕에게서도 은혜와 호의를 입는다. 이 내러티브는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돌보신다는 것이 그들이 고통과 고난을 피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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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무엘을 가볍게 꾸짖는 것으로 시작한다. "네가 그를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HA등도 15장 35절에 대한 해설에서는 "슬퍼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히트아벨‘ (hitabbel)이 죽은 사람을 위해 애곡한다는 의미임을 보았다.
사무엘의 슬픔은 망자에 대한 애도이다.  - P340

한편 하나님은 사울을 택하고 버림이 자신의 주권이었음을분명히 한 후 사무엘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신다. 기름을뿔에 채워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라고 지시하신다. 이새의 아들 중 하나를 하나님이 "보았기 "(라아, raah) 때문이다. 여기서 "보았다"는 의미는 ‘점찍다‘,
예선(選)해 두셨다‘는 의미이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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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이 더 노력하면 다윗의 마음이 바뀌었을가능성도 없어 보였다. 왜냐하면 이미 압살롬보다 20-30세 정도 어린솔로몬이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P453

압살롬의 반란이 초반 성공하게 된 데에는 다음의 두 가지 서로 연관된 이유가 있다. 첫째, 당시 다윗의 내치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 P453

 압살롬은 다윗의 실정의 결과일 수도 있고 혹은 제도적으로 불가피한 것일 수 있는 내치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을 반란의 동력으로 삼았다. 그는 오늘날 표를 구하는 정치인처럼 다소 과장된 공약을 내걸며 다윗의 표를 잠식해 간 것이다. - P454

나단의 저주가 반드시 압살롬을 통해 성취될 필요는 없었다. 탈무드에 따르면 나단의 저주가 아들이 아닌 자신에게 불만을 품은 종들중 하나에 의해 성취될 것이라 염려했던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 의해나단의 저주가 성취되는 것을 보고 안심하여,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찬양시에 해당하는 시편 3편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베라코트 7b).‘ - P455

다름 아닌 압살롬이 다윗에 대한 나단의 저주를 성취하게 된 것은예언의 숙명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그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마치 가룟 유다의 배반이 피할 수 없는 숙명 때문이 아니라 그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압살롬의 권력욕을 ‘허락‘하고 그것을 통해 다윗에 대한 나단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이다.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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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여기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나 인간의 대리석상이 엄청나게 많다. 터키가 오랜 세월 그리스 식민지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 P1014

에페소스의 로마 식민 시대의 유적도 잊을 수 없다. 그리스 본토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트로이아의 ‘황성옛터‘도 잊을 수 없다. 트로이아의 폐허에 서 있는 멋대가리 없이 크기만 하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목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 P1014

그리스 사람들은 바다를 여러 이름으로 불렀는데, 그중 ‘오케아노스‘
와 ‘에욱세이노스‘가 있다. 바다가 우호적으로 느껴질 때는 ‘오케아노스‘라고 부른다. ‘우호적인 바다‘라는 뜻이다.  - P1015

바다가 심술궂게 느껴질 때는 ‘에욱세이노스‘라고 부른다. ‘적대하는 바다‘라는 뜻이다.
신화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 흑해는 오케아노스가 아니었다. 에욱세이노스였다. 그들에게 흑해는 거의 죽음의 바다였다.  - P1016

쉼플레가데스는 ‘박치기하는 두 개의 바위섬‘이라는 뜻이다. 이 두개의 바위섬은 흑해를 항해하는 배들을 노리고 있다가 배가 두 바위섬사이로 들어오면 맹렬하게 다가가 배를 사이에다 두고 박치기를 했다.
배가 어떻게 되었겠는가? - P1016

그러나 흑해로 들어가려는 그리스 배들은 반드시 이 해협의 물살을 통과해야 했다. ‘흑해‘라는 이름이 암시하고 있듯이 이 바다는 다른 바다에 견주어 물이 조금 더 검어 보인다.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다른 바다의 물보다 소금기가 더 많아서 그렇단다. - P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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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죽음‘, 두 자만 볼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겁쟁이가되었다.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으며, 죽음만큼 인생을 고달프고 서럽게 만드는 것도 없다. 대학 시절, 마르크스에게 매료되었으면서도키르케고르, 도스토옙스키, 카뮈 같은 실존주의에 함빡 빠져들고, 지금도 그 언저리를 서성거리는 까닭은 ‘죽음‘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아예 인간을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죽음은 ‘공포와 전율‘이다. - P166

내가 예수를 믿게 된 자초지종을 이따금 성찰해 보면, 아비 없는자식에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 P166

황동규 시인의 연작 시편 「풍장(문학과지성사 펴냄)을 읽은 적이 있다.
‘풍장‘이란 사자(死者)의 시신을 볕이 잘 드는 나무나 바위에 올려놓고비바람과 함께, 세월과 함께 그렇게 소멸하여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장례법이다.  - P167

"삶의 유일한 목적은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과제는 무조건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생의 수레바퀴, 300쪽). 성장에는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다. 자기만큼 배우면 되고, 사랑하고사랑받으면 되는것뿐. - P169

그들에게 이야기할 공간을 열어 주고 들어줌으로써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도록 도왔다. 1967년 상반기부터 금요일마다 "죽음과 죽어 "이라는, 비공식적이지만 정기적인 세미나를 시작했다. 여기에 신학생은 물론이고 의대생, 말기 환자들까지 참여하였다. - P169

그리하여 정신과 의사인 퀴블러 로스는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죽음학(thanatology)의 대가, <타임>(Time)지에서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
‘상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 P169

저자가 정립한죽음의 다섯 단계일 것이다. 부정과 고립의 1단계부터 분노하는 2단계, 협상하는 3단계를 거쳐 우울함에 빠지는 4단계, 마침내 5단계에이르러서야 죽음을 수용하게 된다. 죽어 간다는 것은 저 과정을 거친다는 뜻이고, 죽음이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P170

부정하는 단계가 반드시나쁘거나 부정적인 현상은 아니다. 건전한 반응일 수 있으며 일종의
‘완충재 역할‘을 해서 자기 삶을 돌아보도록 돕는다. 주변 사람들이해주어야 할 일은 부정하려는 욕구를 존중하는 것이다. - P170

환자의 분노를 감정적으로 맞대응하면 비극이 시작된다. 반면, "적절한 존중과 이해를 받고, 관심과 시간을 누린 환자들은 곧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분풀이를 멈춘다"(87쪽). 분노에 대한 공감만이 수치심과 죄책감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290쪽). - P171

이것은 내 운명의 주관자요 주인인 그분과의 협상이다. 이것은 "죽음을 미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138쪽). 그렇다면 왜 이런 협상을 할까? 바로 죄책감 때문이다. "죄책감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의 동반자다"(262쪽). 잘 살아 내지못했다는 때늦은 후회 말이다. - P171

 이는 그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단계이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라‘와 같은, 용기를 주기 위한 말은 쏠데없다.
오히려 그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  - P171

최종적으로는 수용의 단계에 접어든다. 엘리자베스는 "이 수용의단계를 행복한 상태로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185쪽)고 주의를 환기한다.  - P172

저자는 이를 감정의 공백기"라고 표현한다.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의 유명한기도문처럼,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가 필요한 때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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