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복의 가슴에서도 스콜이 내리고 있었다. 남들에게 보일 수없는 후회의 눈물이 가슴 가득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돈을 잃고나면 꼭 뒤따르는 후회였다. 그때 기분으로는 앞으로는 절대로 화투를 만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도록 다시 도지는 그 이상야릇한 증상이 이제 두려웠다. - P78

그들은 방탄조끼에 철모를 쓰고 주차장으로 나갔다. 학교 운동장보다 서너 배는 넓은 터에 짐을 가득가득 실은 트럭들이 정연하게 줄 서 있었다. 그들은 헌병이 지키고 있는 무기고 앞에서 M16을지급받아 자기네 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운전수들이 방탄조끼 입는것보다 더 귀찮아하는 것이 총이었다. 총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일일이 지급받고 일을 끝내면서 반납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 P83

을가로질러 언제나 반쯤 열려 있는 판자대문을 빠져나갔다. 드나드는 여공들이 너무 많아 주인집에서는 문단속을 아예 포기해버렸다. 그런데도 도둑맞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도둑들도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여공들의 자취집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모양이었다. - P100

"아무리 딸라가 좋지만 그래도 우리 체면이란 게 있잖아. 술집에서 그 짓들 하는 그 기생관광인지 뭔지로 세상이 시끌시끌하잖아."
"참 웃기고 앉았어. 피 흘리고 죽어가면서 월남에서 딸라 벌어오는 건 괜찮고 여자들 기생관광으로 딸라 버는 건 왜 말썽이니? 알다가도 모르겠어." - P103

없는 목숨에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했는지 알어? 그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노동자 전부를 위해서 죽은 거야. 너,
이 말 무슨 말인지 아니? 자기만 위하는 사람은 그렇게 죽지 못해.
여기 앉아 있는 우리들처럼 제 목숨이 아까워서. 그런데 그 사람은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잘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뿐인 자기 목숨을 내던져 불타 죽은 거야, 주 예수가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처럼. 그러니까그 사람은 우리 노동자들의 예수라구, 노동자들의 예수!"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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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정하섭은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앞뒤를 분간하지 않는 아버지의 지나친치부욕 때문이었다. 해방이 되면서 어느 곳이나 다 그랬듯 벌교읍내도 일본인 재산을 서로 차지하려고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바로 그 선봉장이 된 것이다. - P153

비난하고 욕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뻔뻔스러울 만큼 당당한 태도로 양조장 사장 행세를 했다. 정하섭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학교를 가는 것마저 싫어졌다. 아버지의 더러운 치부욕에 환멸을 느꼈고, 그 뻔뻔스러운 태도가 증오스러웠다. 아버지는아무런 노력 없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전답 재산만으로도 읍내에서 꼽히는 부자 축에 들었다.  - P154

적의 반격은 의외로 신속했다. 23일 아침부터 중심가를 향해 무차별 비행기 폭격을 감행하는것으로 반격을 개시했다. 지상군에 앞서 비행기 폭격이 감행되고있는 것은 미군의 본격적인 출동을 의미했다. 무고한 읍민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읍내전투를 피해 병력을 외곽으로 분산시키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 P156

길을 걸어 선암사를 찾아다녔던 것이다. 조계산 자락에서 화전을일구어먹은 것도, 벌교땅에서 그나마뿌리내리고살게 된 것도 모두 선암사 부처님의 가피 덕이라는 것을 하대치에게 일깨웠다. 니기미, 부처님 가피를 받아서 그리 알량하게 사는구만. 씨펄눔의것, 고런 가피라면 떡 해놓고 빌어도 싫다. 점심도 쫄쫄 굶고 먼 길을 걷는 것만 싫어서 하대치는 속으로 상소리를 내질렀던 것이다. - P158

황홀한 빛의 기막힌 조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저 빛의찬란함으로, 저 빛의 황홀함으로 공산혁명의 아침이 열리는 줄 알았었다. 햇덩이 같은 뜨거운 열기로 혁명의 힘이 폭발해서 반동의세력을 일거에 재로 태워 없애고 혁명의 새 천지가 이룩되리라고 믿었었다. 남조선의 지하조직이 깃발을 올린 그 절호의 기회에 북조선의 주력은 정작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어둠을 이용한 후퇴,
그건 후퇴가 아니다. 야음을 틈탄 패주다. 굴욕스러운 패주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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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밥티스마)는 물에 몸을 담그는 예식이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으니 곧 ‘정결‘과 ‘죽음‘이다. 오늘날은 정결 곧 ‘죄씻음‘의 의미가 자주 강조되지만 본래 물에 들어가서 죽었다가다시 살아 나오는 중생의 의미가 강하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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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묘사하는 가운데, 5:6에 이르러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죽으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때에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라고 언급하고요. 5:8은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5:10에서는 "우리가 원수였을 때,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표현합니다. - P78

유대적인 배경에서, 누군가를 "경건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불가지론자, 무신론자 혹은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종교적인 (유대)관습들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은 곧 "의로운 사람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을 가리켰습니다(이를테면, 창 18:23, 25; 출 9:27; 시 1:6을 보세요).  - P79

이 편지의 청중들이 대체로 이방인이 맞는지, 혹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누어지는지에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P81

 만일 그들이 완전한 개종자(proselytes)가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과 결부되어 있었을 것이며, 유대교(Judaism)의 뚜렷한 도덕적 가르침 때문에 분명 유대교와도 연결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을 향해 (연약하고, 경건하지 못한 죄인들, 심지어 하나님의 원수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면, 아마도 당황스러움을 넘어 모욕적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 P81

지금 인간이 처한 상황은, 단순히 (일부) 인간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거나, 이방인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수 있게 되었다거나, 혹은 이스라엘이 압제로부터 해방되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실제 권세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죄와 죽음이 인간을 통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권세를 깨부수기 위하여 예수의 죽음과 부활 가운데 개입하셨지만("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에 죄 [Sin]를 정죄하사, 롬 8:3), 하나님과 권세들 사이의 싸움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 곧 피조 세계 전체의 구원 전까지 계속됩니다. - P89

이 질문을 다루는 한 가지 전통적인 방식은 곧 바울에게서 대리적(substitutionary) 희생제물) 개념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를 처리하는 희생 제물로서 인간을 대신하여죽으셨다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은 로마서 3:21-26에 상당히 의존하는데, 그곳에서 바울은 희생-하나님은 예수를 힐라스테리온(hilas-Serion) 혹은 "속죄소" (mercy seat)로 내주셨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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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은 시내에서 불과 15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1686년 합스부르크게국이 부다페스트를 점령한 이후 마리아 테레지아 집권기에 부다페스트는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고 대학을 설립했으며 지식산업과 정치의중심으로 떠올랐다. 1867 년 요제프 황제가 시씨와 함께 마차시 성당에서 헝가리왕 대관식을 했고 1872년 분리되어 있던 오부다. 부다페스트를 통합했다. - P128

그런 정책 덕분에 헝가리는 배급제도를 시행하지 않고도 소비재를 문제없이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그 시기에 왕궁지구뿐만 아니라부다페스트 시내 곳곳에 국제적 체인 호텔이 들어왔다. 그래서 ‘굴라쉬 공산주의 (goulash communism)‘라는 말이 생겼다. 굴라쉬 또는 구야슈(gulyas)는 대표적인 헝가리 전통음식이다. ‘돈 버는 일을 권장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일찍 도입한 덕분에 헝가리는 이웃 국가들보다 순조롭게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할 수 있었다.
‘굴라쉬 공산주의‘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었다. 그 정책을 집행했던 관리들의 미학적 문화적 수준이 문제였다.  - P131

 빈이 정장을 입고 반듯하게 걷는 신사라면 부다페스트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아무데나 앉아서 노는 청년 같았다. - P132

1953년 스탈린이 죽고 흐루쇼프가 집권하자 개혁파 정치인 너지 임레가 정권을 잡고 자주노선을 표방하며 서방과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소련 정부가개입해 정권을 교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부다페스트의 학생, 지식인, 예술가들은 공산당 독재를 비판하는 대중 운동을 시작했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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