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은 시내에서 불과 15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1686년 합스부르크게국이 부다페스트를 점령한 이후 마리아 테레지아 집권기에 부다페스트는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고 대학을 설립했으며 지식산업과 정치의중심으로 떠올랐다. 1867 년 요제프 황제가 시씨와 함께 마차시 성당에서 헝가리왕 대관식을 했고 1872년 분리되어 있던 오부다. 부다페스트를 통합했다. - P128

그런 정책 덕분에 헝가리는 배급제도를 시행하지 않고도 소비재를 문제없이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그 시기에 왕궁지구뿐만 아니라부다페스트 시내 곳곳에 국제적 체인 호텔이 들어왔다. 그래서 ‘굴라쉬 공산주의 (goulash communism)‘라는 말이 생겼다. 굴라쉬 또는 구야슈(gulyas)는 대표적인 헝가리 전통음식이다. ‘돈 버는 일을 권장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일찍 도입한 덕분에 헝가리는 이웃 국가들보다 순조롭게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할 수 있었다.
‘굴라쉬 공산주의‘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었다. 그 정책을 집행했던 관리들의 미학적 문화적 수준이 문제였다.  - P131

 빈이 정장을 입고 반듯하게 걷는 신사라면 부다페스트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아무데나 앉아서 노는 청년 같았다. - P132

1953년 스탈린이 죽고 흐루쇼프가 집권하자 개혁파 정치인 너지 임레가 정권을 잡고 자주노선을 표방하며 서방과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소련 정부가개입해 정권을 교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부다페스트의 학생, 지식인, 예술가들은 공산당 독재를 비판하는 대중 운동을 시작했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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