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이지. 친일세력을 편들지 않은 백범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남보다 몇 배의 대중지지를 획득하고 있었잖은가." - P294

경력과 더불어 민족의 역사에서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된 것이네. 우남은 정적을 제거했다고 편안한 잠을 잘지 모르지만 오히려 정적을 역사 속의 영웅으로 만드는 일을 거들었고, 그와 반대로 자기자신은 역사 속의 죄인으로 만드는,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손해를보는 어리석고 아둔한 짓을 저지른 거야." - P295

우남은 정치를 현실 자체로만 파악하는 단견의 소유자고, 백범은 정치가 현실이면서 곧 역사라고 파악하는 거시적 안목의 소유자라는 차이를 가지고 있네.  - P296

그러니까 그 정책에도 현격한 차이가 나서, 우남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좇아 단정수립이다. 친일반역자들과 야합이다, 특위 습격명령이다. 백범 피살이다, 하고역사에서 비판받을 짓만 계속하는 거고, 백범은 그와 반대로 민족전체의 삶을 전제로 외세배격이다. 민족통일이다, 친일파 척결이다.
남북협상이다, 분단획책의 단선 거부다, 하고 객관적 명분의 길을걸은 게 아니겠나." - P296

"근데 말이네, 우남이란 존재가 아주 없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까? 그러니까 우남이 해방 전에 죽어버렸거나 해서 해방을 맞았다면 말야."
"역사 판단에서 가정은 금물이라는 걸 모르진 않겠지?" - P296

그렇게 되면 백범 · 모양. 박헌영 세 사람이 주도세력이 되는 셈인데, 그럼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네. 그게 뭔고 하면 말야, 미·쏘가 행사하려는 구속적 영향력에 구애받지 않고 전국적으로 토지개혁 단행과 친일반역자들을 척결하는 일대 사회혁명이 일어났을거라는 점이네.  - P297

강동식의 아내 외서댁과 강동기의 아내 남양댁은 목화밭의 김을 매고 있었다.  - P299

위에서는 불볕이 쏟아져내리고, 아래서는 흙먼지 섞인 훈김이 후끈후끈 솟아오르고,
쪼그려앉은 자세로 앉은걸음을 치며 일손은 계속 놀려야 하고,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 P300

그래서 목화밭 풀매기 한나절에 밑 파고든 훈김으로 새댁 거기 다 익어버린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농사일 중에서도 목화밭 김매기는 그만큼 고역스러워 논매기보다더 어렵게 쳤다.  - P300

그러나 논매기도, 볏잎은 눈을 찌르지, 거머리는 달라붙지, 허리는 부러지지, 다리는 부어오르지, 결코 수월한일이 아니었다.
"아이고메 성님, 숨잠쪼깐돌리고 합시다." - P300

도 찔기게 날로 달로 커나는구만…………. 그녀는 또 뱃속에 든 것을저주했다. 그런 외서댁의 힘겨워하는 몸놀림을 남양댁은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저런 꼴이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에 휩싸이면서.허출세놈에게 당한 것이 자그마치 여덟 차례였던 것이다.  - P301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장흥 이모집에 가 있는 동간 애를 떨어뜨려보려고 온갖 짓을 다했던 것이다. 먼저 밥을 적게 먹는 일부터 시작해서, 뒷담에서 뛰어내리기를 하다가 발목을삐어 며칠을 고생했고, 묵은 간장 두 사발을 마셨다가 토사곽란이일어나 까무러치는 소동을 벌였고, 쑥 연기를 거기다 쐬다가 땀띠같은 것이 돋아올라 차례로 곪아대는 바람에 혼쭐이 났다. 그래도애는 떨어지지 않았다. " - P302

밥을 굶지 않고 겨울을 나고, 부황기모르고 보릿고개를 넘긴 것은 시집오고 처음, 아니 태어나서 처음있었던 일이었다.  - P309

무신 일인지 다 알아묵고 있구만이라 그 일이 워찌 장헌지 다 알고,
원망이야 눈꼽째가리만치도 응원이 풀릴때꺼정 몸이나 성허씨요. 아그덜이야 지가 다 키워낼 것잉께라. 남편이 그리운 외로움으로 가슴에 밀려들 때마다 하는 속말이었다. 소화를 은밀하게 찾아다니기 시작한 이지숙에 의해 들몰댁 의식도 엄청나게 변하고있었다. - P310

"나도 나뭇짐 지는 심잉께 워디 덤벼바라. 니놈낯짝이고 가심이고 팍팍 찍어불팅께."
들몰댁의 말에 남자의 얼굴은 더 굳어졌다.낫날이 햇빛을 반짝되쏘았다. - P312

시아버지가 최소한의 자본만 남겨놓고도는 일이 성질에돌아가셨더라도 장사를 계속했을 것이다. 그녀는 남모르게 장사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을 가슴속에 감추고 있었다. - P315

죽은 자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관대하고, 죽음을 계기로 생전의 모든 잘못을 해결 지으려 하고, 죽은 자에 대한 비판을 죄악시하는 우리네의 소박하고도 단순한 인정주의적 윤리관과, 굿 좋아하고, 구경 좋아하고, 흥 좋아하는 우리네의 꾸밈없는 즉흥적 생활관을 굳이 끌어들여 그 많이 몰려든 사람들이 가진 조의의 순수도를 감점한다 하더라도 역시 백범은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얻고 있었던 인물임을 부인할 길이 없다고 손승호는 생각했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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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친원 세력의 입지는 점차 강화됐다. 특히 14세기후반에는 공녀 출신인 기씨가 원의 황후가 되면서 그를 중심으로 하는 친원세력의 권세가 국왕을 능가할 정도로 강성해졌다. 이들은 고려의 정치에 개입하고 사익을 추구했는데, 특히 충목왕 때 정치도감의 개혁 활동을 기황후가 직접 개입해 좌절시키기도 했다. - P259

하지만 개혁은 공민왕의 의도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공민왕에게도 즉위 전 원에서 시종했던 측근 세력이 있었는 데다 반원운동 이후 왕권이 회복되면서 측근 정치가 재현됐기 때문이었다. 정방이 재설치된 것이 단적인 예였다. 게다가 1359년부터는 홍건군의 침입으로 수도가 함락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개혁이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다. - P260

홍건군 14세기 중반, 중국 강남 지방의 농민을 중심으로 백련교를 내세운 반란군이 세력을 확장했다.
이들은 다양한 계통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모두 붉은 두건과 옷을 입었기 때문에 홍건군으로 불렀다.
명을 건국한 주원장도 홍건군의 한 계열이었다. - P260

성리학은 원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개인의 수양을 강조하고사회문제에 책임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수기치인(修己治人)).
- P261

신진사대부와 권문세족을 불문하고, 성리학자로서 과거에 급제한 문신 관료를신흥유신(新興儒臣)이라고 부른다.
- P261

이 시기에 조준(趙浚,
1346~1405), 정도전 등이 이성계와 손을 잡고 새로운 개혁을 모색했다. 신흥유신과 신흥무장의 결합이었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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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이 고려왕조에 충성하던 마음과 별개이다. 그러므로 최영을 죽인 조선의 건국 주체를 비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익은 자신의 시대인 조선의신하로서의 의리론과 사대질서의 명분론으로 최영을 평가했다. - P122

최영은 명나라 변방에 사건을 일으켜명나라황제의 분노를사게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렇게 해서 기획된 것이 요동 정벌이었다.
정벌 사령관으로 이성계를 임명하고, 나중에 그에게 책임을 전가해 제거하려 했다는 것이다.  - P122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여 우리 영토를 잠식하려하자, 이에 반발하여 우왕과 최영이 주도하여 요동정벌을 단행한 것이라는 그동안 학계의 연구성과와 아주 다른 견해이다.  - P123

이익의 주장에 따르면, 최영의 음모론은 1388년(창왕즉위년) 6월 최영의 체포와 12월 최영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익은 최영의 유배 이후에 이성계를 제거하려는 정치적 움직임도 최영 음모의 연장으로 간주하며 1388년 10월 이색(李穡)의 명나라 사행을 음모의 예로 들었다. - P124

이익은 최영의 죽음이후 1390 년(공양왕2) 5월 윤이(尹)와 이초(李初)사건도 최영 음모의 또 다른 연장으로 보았다. 윤이와 이초 등이 명나라황제에게 이성계가 왕씨가 아닌 자기인척인 공양왕을 왕위에 앉히고,
그에 반대한 이색 등의 고위관료들을 살해하거나 유배시키고 명나라를공격하려 한다고 무고한 사건이다.  - P125

최영의 요동 정벌 음모론은 이익이 처음 제기한 것이 아니다. 조선 중기 심광세(沈光世, 1577~1624)가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익은 심광세의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심광세의 최영 음모론은 그의 문집 《휴옹집(休翁集)》에 실려 있다. - P126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요동정벌에 대한 사론을 작성하면서, 심층세의 이 글을 인용했다. 또한 그는 이익의 주장도 받아들여 《동사강독》에 반영했다.  - P126

이익의 《성호사설》에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안정복은 이익의 요동 정벌 음모론을 받아들여 《동사강목》서술에 반영했다. - P127

이익은 조선사람으로서 조선 건국의필연성과 건국자 이성계 중심의 의리론 관점에서 최영의 요동 정벌을 평가했다. 또한 화이론(論)에 근거한 사대명분론의 관점에서 요동 정벌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등 자기 시대의 제약과 한계 속에서 최영을 평가했다. 시대의 제약을 뛰어넘는 역사 서술과 평가는 불가능한 것일까? - P128

당대의 제약과 한계를 직시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역사 서술과 평가를 시도하는 일이 도리어 역사학의 발전에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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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혜종,
제 3대 정종,
제4대 광종이
모두 태조대왕의아들들이네.
- P165

어쨌거나 광종은 충주 호족인 외가와 황주호족인 처가를 지지 기반으로 삼아상대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 P166

그날 이후 광종은 항상 <정관정요》를읽고 또 읽었다.
정치학 교과서,
제왕학 교과서로딱이지. - P167

그리고 마침내 쌍기의의견을 받아들여 과거제를실시하기에 이른다. - P173

반면, 양민의 노비화는 나라에는 큰 손실이다.
우리 양민은농사짓고세금 내고부역하고군역까지담당하는나라의근본.
불법 노비를 양민으로되돌리는 것은나라를 튼튼히 하고왕권을 강화하는 일이며 - P170

호족이나 공신의 자식이 아니어도관리가 될 수 있게 된 현실은그만큼 호족의 힘이 약화되고왕권 강화되었다는의미이기도 하지. - P174

서필 홀로 사양했다.
경은 어째서받지 않으려하는가?
신은 재상의 자리에앉은 것만으로도이미 은덕이 넘치는데금그릇까지 내려주시면분수에 넘치는 일이라사료되옵니다. - P176

서필의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서필은하급관리에서 시작해 재상에까지 이른 인물. - P176

서필은 뒤에 만나볼강동 6주 개척자서희의 아비입니다. - P177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내구마가 죽자, 광종은 담당자에게벌을 내리려 했다.
아니되옵니다.
공자께서는마굿간에 불이 났을 때사람이 다쳤는가를 물었지말에 대해서 묻지않았나이다. - P177

서필은 광종 16년에 죽었는데 이 시기의광종에게 직언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배짱장난 아니네.
목숨 걸고직언하누만.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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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과 사무엘하는 본래 한 권의 책이었다. 사해문서에서 이 둘은하나의 두루마리에 담긴 채 발견되었다. 본래 한 권이던 사무엘서가 상하 두 권으로 나뉜 것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헬라어, 즉 고대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부터다.  - P17

[칠십인역(LXX)] 기독교인들에게 칠십인역이 중요한 이유는 신약성경의 저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칠십인역으로 구약을 읽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이 구약의 오경을 인용할 때, 자주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아닌칠십인역을 인용한다. 성경 원문의 복원을 목표로하는 본문비평학자들에게 칠십인역은 마소라 본문과 다른 본문 전통을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P18

사무엘서를 쓴 사람이 미상이라는 사실에 놀랄 필요는 없다.
저자 혹은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고대 근동 세계에서 정경적 문학 작품은 대개 오랜 세월의 전승 과정을 거치면서 수정, 첨가, 편집되어 최종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사무엘서를 포함한 일부 성경도 이 점에 있어서 예외일 이유는 없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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