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서기 96년 9월 18일, 45세 생일을 한 달 앞둔젊은 나이에 살해되었다. 15년에 이르는 치세 뒤의 죽음이다. - P41
는 원로원 의원들한테는 미움을 받았지만, 로마사 연구의 획기적인 업적을 쌓은 19세기의 역사가 몸젠은 그를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다. - P41
황제가 살해된 날 밤에 이미 도미티아누스와 함께 공동 집정관을 지낸 적이 있는 네르바에게 연락이 가고, 이튿날 아침 일찍 소집된 원로원 회의는 일사천리로 네르바를 황제로 승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로원은 도미티아누스를 ‘기록말살형‘으로 단죄한다는 결의안까지 가결해버렸다. - P41
하지만 그 배후 인물이 누구인지는 끝내 알려지지 않았다. 원로원도 추적하지 않았다. 온후하고 비정치적인 네르바의 성격 때문에, 아무도그가 주모자일지 모른다는 의심조차 품지 않았다. 진상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겨졌다. - P41
첫째, 고지 게르마니아군 사령관 마르쿠스울피우스 트라야누스를양자로 맞이한다. 둘째, 트라야누스에게는 ‘호민관 특권‘ (Tribunicia potestas)과 ‘로마구 최고통수권‘ (Proconsulare maius)도 할양한다. 셋째, 트라야누스는 이듬해인 98년도 집정관에 황제 자신과 함께입후보한다. 요컨대 트라야누스를 후계자로 지명했을 뿐만 아니라 공동 황제로 지명한다고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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