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되자 누구도 더 이상 대왕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는자가 없었다. 을두미조차도 그동안 백제에게 빼앗겼던 인삼 교역의 실리를 되찾아와야 한다는 대왕의 뜻만큼은 거스를 수가없었다. 부소갑의 인삼을 전진에 판매할 수만 있다면 흉년으로텅 빈 국고를 채우고, 그 여력으로 백성들을 구휼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 P67
평양성에 운집한 고구려 군사들은 곧 부소갑을 치기 위한준비에 착수했다. 군사 을두미가 이끌고 온 제1차 원군 1만과대왕 구부의 제2차 원군 1만 그리고 평양성에서 1만, 수곡성에서 5천의 병력을 동원하여 도합 3만 5천의 고구려군이 부소감출정에 나서게 되었다. - P67
"대장군 소장을 청목령 전투의 선봉에 서게 해주십시오. 백제군을 단숨에 무찌를 자신이 있습니다" 해평은 물러서지 않았다. "젊은 장수로서 그 용기가 가상하오. 허나 적과 싸워 이기는것도 중요하지만, 아군의 희생이 너무 크다면 이기고도 지는 것이나 다름없소. 아군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적을 크게 무찌를 수 있어야 훌륭한 장수라 할 것이오." - P70
군사 을두미가 훈계조로 나왔다. 그는 고국원왕이 전사할때 백제군에게 해평의 기병이 크게 당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적의 수를 읽지 못하고 무조건 용맹스럽게 쳐들어가는 것은 용기라기보다 만에 가까웠다. - P70
치고빠지는 전략을 잘 구사해서 적을 피로하게 만드시오. 적을 청목령에 묶어놓으라는 것이지, 성벽을 넘어 적을 공략하라는 얘기는 아니오. 이건 군령이오 명을 어겼을 땐 군법에 의하여 엄벌에 처할 것이니, 그 점을 명심할 수 있겠소?" "예, 이 해평의 이름을 걸고 명심하겠습니다." - P71
"먼저 떠난 선봉군이 1차로 청목령을 치다 빠지면 그때 후군이 2차로 공격을 감행토록 하시오. 그렇게 성을 점령하지는 말고 반드시 적들을 그곳에 묶어두도록 하시오. 적을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어, 부소갑으로 지원군을 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작전임을 명심하시오." 을두미가 대장군 고계에게 신신당부를 한 것은 자만심에 들뜬 해평이 경거망동하여 작전을 그르칠까 심히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 P71
그런데 고구려군이 부소감을 점령하고 군대를 정비할 때, 갑자기 뜻하지 않게 청목령으로부터 후퇴하던 백제군에게 기습공격을 받게 되었다. 원래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청목령의 백제군을 묶어두겠다는 것이 을두미의 전략이었다. 그런데 전공을세우겠다는 욕심이 강했던 해평은 곧바로 청목령을 들이쳐 성을 함락시키고, 쫓기는 백제군을 추격했던 것이다. - P72
뒤에서 해평의 군사들이 추격하는 데다 먼저 부소갑을 점령한 고구려 군사들이 앞을 가로막자, 청목령에서 후퇴하던 백제군은 졸지에 앞뒤로 적을 두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백제군은 사생결단으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고구려군을 공격한 것이었다. - P72
대왕 구부와 군사 을두미가 이끄는 고구려군은 부소감을 점령한 기쁨도 잠시, 목숨을 걸고 결사항전을 하는 백제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중과부적이었던 백제군은 고구려군에게 몰살당했지만, 고구려군 역시 피해가 클수밖에 없었다. - P72
뒤미처 해평의 군사들이 부소감에 당도했다. 그의 군사 역시무리하게 청목령을 공격하는 바람에 선봉군의 태반을 잃었다. 그러나 승전고를 울렸다고 기세가 둥둥해 달려온 해평은 대왕구부에게 군례를 올렸다. "폐하! 청목령을 단숨에 점령하고, 후퇴하는 적들을 몰아붙여 섬멸하였사옵니다." 해평의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대왕 옆에 있던 군사 을두미가 소리쳤다. - P73
"그걸 전과라고 보고하는가? 그대 때문에 우리 고구려군이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알기나 하는가?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청목령의 백제군을 묶어두라 일렀거늘 그대는 전공에만눈이 어두워 만용을 부렸다. 그대의 만용 때문에 우리 고구려의 많은 군사들이 희생당했다. 그대는 명을 어긴 죄를 달게 받겠는가?" - P73
"예? 그래도 난공불락의 요새인 청목령을 단숨에 정복하지않았습니까?" "너는 이제부터 장수도 아니다. 자신의 실수조차 모르는 자를 어찌 장수라 할 수 있단 말인가? 휘하 군사들을 죽음으로내몬 장수는 전투에 이겼어도 진정으로 이긴 것이 아니다. 너는 군령을 어겼으므로 그 죄를 받아야 한다. - P73
"해평 장군은 잘들어라 폐하께서 그대 목숨을 구해 주셨으니 충성을 다하도록 하라." 을두미도 대왕의 칭만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해평의 목을 베라고 했지만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다. 분명히 대왕이 말릴 것을 알고 일부러 더 호통을 쳐서 경각심을 심어주려 했던 것이다. - P74
흉년에 원인 모를 유행성 질병이 겹치고 전쟁까지 겪게 된 고구려 백성들은 해를 넘기면서 전쟁보다 더한 가난과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아에 허덕이는 겨울은 몹시 춥고 길었다. - P77
겨우내 눈도 오지 않아 보리밭에 시퍼렇게 나온싹들이 그대로 얼어 죽었다. 한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리를 밟아주어야 했지만, 보리에게 이불 역할을 해주어야 할 눈마저 오지 않으니 그 수고 또한 부질없는 짓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마른번개만 요동쳐서 백성들의 가슴은 천벌이라도 내리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하게 타들어가기만 했다. - P77
대왕 구부가 왕위에 오른 지 8년이 되는 378년 재위 기간중 최대의 위기였다. 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그 후유증은 날로 심각한 상황으로 악화되어 갔다. - P77
백성들이 춘궁기를 어렵게 견뎌내 보리 수확기를 맞았으나, 평년에 비하면 반타작도 안 되는 수확량이었다. 전쟁을 치르느라 나라에도 국고가 비어 백성들에게 구휼미조차 나눠줄 수없었다. 이렇게 되자 여름으로 접어들면서부터 굶어 죽는 백성들이속출했고, 기아를 이기지 못한 농민들은 도끼와 작두, 쇠도리깨를 들고 산속으로 숨어들어 도둑떼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도둑떼들이 들끓기 시작했지만, 나라에서도 미처 손을 쓸 수 없었다. - P77
그러나 농촌이 흉년이면 산속에 사는 사냥꾼도 당연히 그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냥을 해서 얻은 초피를 팔아 식량을 구해야 하는데, 거듭되는 흉년이라 돈을 자루로 가져간들 먹을거리를 구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오래도록 개마고원지대에 뿌리내리고 살던 말갈족들도 산속으로 들어온 고구려 유민들로 인하여 날로 인심조차 사나워졌다. 먹고살기 힘들어지자 서로 약탈을 일삼는 도둑으로 변하였고, 심지어는 몰래 남의 어린아이를 훔쳐다 가마솥에 삶아먹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웃 간에도 서로 앙숙이되어 연일 싸움질을 하고, 집을 불태우고,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 P78
"애꾸눈? 눈 한쪽이 어때서? 두 눈으로 보는 것보다 어쩌면세상을 보는 데는 외눈이 더 정확할지도몰라 두 눈을 가지고있으면 한쪽 눈은 한눈을 팔기 십상이거든. 자네는 앞으로 무서운 일목장군이 될 게야.". "예? 일목장군이라니요?" "허허허! 눈 하나를 가졌으니 일목인 게지. 아니 그런가?" 을두미는 옆에 서 있는 탁보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추수 형님이야 옛날부터 알아주는 특급 무사 아닙니까? 사부님께서 제일로 아끼는 제자이도 하구요." - P84
전진의 부견은 불과 얼마 전에 남양까지 함락하여 동진을크게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전진의 세력은 남양 북동쪽의 산동까지 뻗어나가고 있어, 그 일대에서는 대대적인 건축 공사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꺼번에 공사가 벌어지면서 목재가 모자라, 사방 각지에서 벌목꾼들이 뗏목을 실어 나른다고 했다. 그 덕분에 산동지역에서는 목재상들이 제법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 P85
교역이 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전진과의 교역에서 내가 생각해 둔 우리 고구려의 물목은 세 가지다. 첫째는 작년에 우리 고구려가 탈환한 지역인 부소감에서 생산되는 인삼의 교역이고, 둘째는 태백산(백두산)의 적송들을 벌목하여 뗏목으로 산동반도까지 이송해 목재로 파는 일이다. 그리고 셋째는 너희들도잘 알다시피 예전부터 서역이나 중원과의 대표적인 교역품으로 알려진 초피를 이제부터 초원로가 아닌 해로를 통해 교역하려고 한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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