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첫 번째 칭호인 "처음이며 마지막"은 요한계시록 안에서 두차례 더 나타난다(초반부[1:17기와 후반부(22:13]), 이는 분명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자신의 언약 백성, 곧 이스라엘 앞에서 스스로를 계시하신 사건을 가리킨다. 이사야 41:4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자문자답하셨다.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사 41:4). (이사야서에서) - P118
그들은 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유대인들("사탄의 회당")로부터 박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칭호가 의도적으로 선택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빌라델비아 교회 설교 안에 있는 평행 본문을 통해 뒷받침된다. 그 평행 본문은 그리스도의 칭호 "거룩하신 분, 참되신 분" (계3:7)으로 시작되며, 서머나(설교)와 마찬가지로 빌라델비아에서 박해를 주도했던 유대 공동체 (이들 또한 "사탄의 회당"으로 지칭된다)를 논박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력히 주장한다. - P118
그리스도의 두 번째 칭호인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은 첫 번째 칭호를확장한 것이며, 서머나의 상황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연결된다. 그리스도의 주권은 살아 있는 자들이 경험하는 역사적 사건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은 죽음에까지 이른다. 모든 역사적사건에 대한 그의 궁극적인 권능은 절대적이어서, 죽임을 당했으나 생명을 되찾으셨고 - P119
서머나는 주전 600년에리디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300년 동안 버려진 상태로 있었다. 그리고주전 290년에 알렉산더대왕의 장군들, 안티고노스(Antigonus)와 리시마코스(Lysimachus)가 본래의 위치에서 남쪽으로 약 4~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도시를 재건했다(Strabo, Geography 14.1.37; 또한 Pausanias, Description of Greece 7.5.1-3을 보라), 서머나에 살았던 유명한 로마인 연설가 아엘리우스 아리스티데스(AeliusAristides, 주후 117-181년)는 서머나의 파괴와 재건된 모습을, 죽었다가 마법처럼되살아나는 전설의 불사조 피닉스(phoenix)에 견주었다(Orations 21). - P121
서머나 설교 역시 그리스도의 칭호에서 칭찬으로 전환할 때 예상대로 "내가 안다" 정형 문구를 사용한다. 예상과 다른 부분은 서머나 교회에 관해그리스도께서 아는 부분이다. 보통 그리스도는 각 교회의 "행위"를 안다고말씀하셨다(2:2, 19; 3:1, 8, 15; 그러나 버가모의 경우는 예외이다. 2:13을 보라). 하지만 여기서는 서머나의 "환난을 안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차이는 서머나 설교의 근본적인 주제를 드러낸다. 이는 이번 장의 제목에도 반영되어 있다. "서머나, 박해 속에서 인내하는 교회" - P123
"내가 네 환난, 즉 네 궁핍을 안다그리고 스스로를 유대인이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네가 받는 비방을 안다"(2:9). 일부 주석가들, 이를테면 토마스는 이렇게 말한다(Thomas 1992: 162). "이 세 단어들[명사들] 간에 관계 문제는첫 번째 단어("환난")가 일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고, 두 번째("궁핍")와 세 번째 단어("비방")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형태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 P123
그리스도는 먼저 서머나 교회가 박해를 견디는 모습을 칭찬하신다. "내가 네 환난(플립시스(thlipsis)을 안다." 틀립시스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위기나어려움을 겪는 동안 내면에서 일어나는 근심을 뜻한다(BDAG 457.2). - P124
이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신 분이 지상에서의 사역 가운데 그것을 분명하게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마 10:22). 사도 바울 역시 상당히 직설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이라는이유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벧전 4:12) - P124
히브리서 저자는 청중들에게 그들의 믿음 때문에 당한 사회적배척, 투옥, 재산 박탈 등의 고난을 상기시킨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틀립시스)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당한 것은 …" (히 10:32-34). 이 본문들을 포함한 신약성경의 여러 본문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환난이 따를 수 있음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진리를 믿음으로 감내하며 받아들였다. - P125
칭찬은 삽입어구로 보정된다. "그러나 실상은 네가 부유한 자다" (29) 이삽입어구는 강한 역접 접속사, "그러나" (그리스어 알라(alla)로 시작되며, 겉으로보이는 서머나 성도들의 궁핍을 강력한 어조로 뒤바꾸고 있다. 세상은 그들을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보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을 영적으로부유한 사람들로 보신다! 따라서 이러한 보정은 고난을 당하는 서머나 성도들로 하여금 비천한 처지 속에서도 인내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며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견딜 수 있게 하는 칭찬과도 같다. - P127
이처럼 로마와 오래되고 끈끈한 관계때문에 주후 26년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는 아시아의 다른 10개 도시를제쳐 두고 서머나를 선택해, 죽은 전임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와 그의아내 리비아(Livia), 원로원을 기리는 두 번째 황제 신전(첫 번째 신전은 버가모에 있었다)을 건설하고, 그 "신전의 수호자" (네오코로스[neökoros])가 되는 영예를 부여했다. 서머나가 로마에 충성했다는 견해의 또 다른 근거는 도시에서 주조된네로(Nero) 황제를 새긴 동전, 티투스(Titus)와 도미티아누스(Domitian) 황제에게 바쳐진 헌물, 도미티아누스와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조각등이다(Yamauchi 1980: 58). 로마는 서머나에게 "신전의 수호자" (네오코로스)라칭호를 두 차례 더 부여했는데, 이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통치 시기에, 그리고 이후에 카라칼라(Caracalla) 황제 통치 시기에 이루어졌다. - P133
유대인일지 모르지만 결코 진정한 유대인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교회를 박해하는 자들의 행위는 곧 그들이 "사탄의 회당"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충격적인 구절은 이후 빌라델비아 설교에도 나타나는데(3:9), 성경의다른 곳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처럼 빌라델비아 설교는 서머나 설교와 몇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단 "사탄의 회당"과 "스스로를 유대인이라 칭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라는 식의 표현이 공통으로 사용된다. 또한 두 설교에는 모두 책망 단락이 빠져 있다. 그리고 서론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곱 설교의 교차대구 구조에서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놓여 있다. (두 번째 설교[B], 그리고 여섯 번째 설교[B‘]). " - P134
보통 성경 말씀은 각 구절이 말하는 내용이 중요하지만, 간혹 말하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책망이 완전히 생략되었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가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그리고 그들이 박해 가운데 인내하는 것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시는지를 말해준다. - P136
고난은 좀 더 강렬한 형태의 환난, 즉 순교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로마의 법률 제도는 범법자에게 징역형을 처벌로 내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범죄자들을 장기간 감옥에 가두는 일은 지나치게 많은 노력과 비용을 발생시켰기 때문이다(Ramsay 1994: 199; 또한 Hemer 1986: 68). 오운(Aune 1997: 166)은 고대 로마법에 관한 법률 서적 개요서, 다이제스트(Digest 48.8.9; 48.19.29; 48.19.35)에서 3가지 내용을 인용한다. 먼저 "감옥"은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예비적으로, 즉임시 단계로 머무르는 곳이었다. 처벌은 벌금형 혹은 유배형(로마 시민권자 혹은힘 있는 인물만이 유배형을 받을 자격이 되었다)에서부터 사형(가장 흔한 결과였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 P138
요한계시록은 여러 차례 다니엘의 예언을 암시하는데(Charles 1920: Ixviii-lxxxi에 따르면 27회), 이는 곧 요한은 자신의 청중들이 구약성경을 잘 알고있기때문에(Beale 1984; Moyise 1995: 45-63을 보라) 구약성경에대한 암시를 쉽게 알아차릴 것이라 생각했음을 의미한다. - P141
이구약성경의이야기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죄 - 그리스도가 다음 두 교회를 책망하시는 이유이다[버가모 2:14; 두아디라 2:20])를 두고 자신들의 믿음을 시험받고 있는 소아시아의 교회들에게 강력한 본보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비일과 캠벨은 "10일"이 다니엘 1장과 우상숭배에 대한 유혹 모두를 암시한다고 주장한다(Beale, Campbell 2015: 63). - P141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플리니우스의 서신을 보면,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은 충성(신실했기 때문에 이방 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로마 황제의 형상에 분향하고 술을 따르는 것,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것을 모두 거부하고 결국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 P143
이러한 운동 경기와 연관된 승리의 화관은 "로마 제국 내 아시아에서 "모든 성인과 대부분의 어린이에게 친숙한 상징"이었다(Keener 2000: 117). 그리고 그 상징이 그처럼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은 곧 서머나의 성도들이 승리의 화관의 은유와, 그것이 가리키는 영생의 약속을 곧바로 알아차렸음을의미한다. 한편, 에베소 설교와 평행을 이루는 부분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생명나무"가 에베소 성도들을 기다리고 있는 (생명의)종말론적 축복을 상징하는 것처럼, "생명의 관 또한 서머나 성도들에게 종말에 주어질 상을 가리키고 있다. - P145
구약성경 안에 정확하게 "둘째 사망"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그표현은 유대교(Judaism)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타르굼(targum, 히브리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한 것이다)에서도 언급된다. 신명기 33:6의 타르굼은 "둘째 사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뿐 아니라 몇 가지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르우벤이 이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며, 그가 ‘둘째 사망‘으로 죽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 죽는 악한 죽음이니" (타르굼 옹켈로스 신 33:6; 또한 타르굼사 22:14; 65:5-6, 15; 타르굼 네오피티 신 33:6; 타르굼 렘 51:39, 57을 보라). 요한계시록 2:116은 "둘째 사망"의 개념을 가리키며, 악인이 물리적인 죽음("첫째 사망")을 당한 후에 받는 영적인 처벌로 묘사한다. - P147
다시 말해, 서머나의 성도들은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빨리 "첫째 사망"과 같은 물리적인 고통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인 영적인 사망, 영원한 "둘째 사망"은 절대로 겪지않을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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