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가끔씩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고, 돌발적인 질문들로 나를 깨우는 책을 만나게 된다.
일상에서 잊고 지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 그런데 정말 생각해보니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으로
나를 이끄는 책들. 이 책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란 책이 내게는 그랬다.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동기는 시이모부님을 뵙고 난 후, 노화와 요양, 간병 등과 관련된 키워드의 질문때문이었다.
벌써 5년 째 말을 잃고, 기억을 잃고, 건강했던 몸도 잃고, 음식을 씹을 이도 잃고, 먹은 음식을 흡수시킬 수 있는 장기마저 잃어버린채 하루의 반을 앉아서건, 누워있건 깜빡깜빡 졸다가, 묻는 말에 '허허~' 한 소리 내는가 하면, 가끔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며,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하루하루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요양병원에서, 또 때론 종합 병원의 병상의 이모부님의 모습이, 그리고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인 같은 병동의 노인 분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처음 그런 모습을 접할 땐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모부님을 뵙고 와서는 내 아버지, 내 어머니도 그렇게 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이 책은 소설가 이상운의 1254일간의 고령의 병든 아버지를 직접 집에서 돌보며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꼈던 이야기들이 담겨져있다. 노화와 죽음의 과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병원, 그리고 요양간병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남김으로서 과연 우리는 우리 부모님과 우리 자신의 죽음을 과연 어떻게 준비해야할 것인가 생각하고 준비하게 만드는 책이다.
소설가의 특성상 시간이 많은 작가는 88의 아버지의 간호를 직접 도맡아하기로 한다. 그 간 건강하셨던 분이 이유 없이 며칠째 계속되는 고열로 한 순간 푹 꺾여버린 꽃처럼 다시 일어나지는 못했고, 그런 아버지를 낯설고, 차가운 공간의 요양병원으로 내몰 수 없고, 늘 생활하던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버지를 위한 일이라 생각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 곁으로 내려온다.
나만 그런 것일까? 사실 노화와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것.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정작 그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노화된, 내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차츰 죽어가는 그 순간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본 일이 없다.
저자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도 매일 '여기가 쑤시고, 여기가 저리다' 갈 때마다 앓는 소리를 하셨지만 청소, 빨래, 심지어 작은 활자의 신문 읽기까지 쓰러지기 전 날에도 온전히 하셨으니까. 하지만 고령의 나이에 한 번 쓰러지고 나면 하루하루가 다르 듯 할머니는 병원에서 집으로 한 차례 돌아오셨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서는 결국 영구차에 실려 동네를 한바퀴 돌고 홀연히 떠나가셨다. 그 때 맞이했던 '죽음' '노화'라고 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 좀 더 특별하고,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 나에게도, 우리 부모에게도 다가올 일이라는 걸 확연히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치매와는 다른 '섬망'의 증세로 낮과 밤 구분 없이 잠시 잠깐씩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헛소리를 하는가 하면, 전립선 비대 증세로 요도 폐쇄가 와 결국 오줌주머니를 채웠다가 온전히 정신이 돌아 온 어느날 그 장치를 빼라고 그동안 숨었던 에너지를 다 하여 밀쳐내는 아버지의 모습. 그러다 그 흥분을 약으로 하루하루 가라앉히면서 동시에 죽음에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아버지. 병석에 누워있다보면 생기는 욕창과 변비 증세. 그 증세들을 해결하느라 관장을 하던 날들의 기록까지. 이 책은 죽음으로 가는 아버지의 행로를 곁에서 하나하나 세세히 그려내고 있다.
또한 나이가 들면 죽는게 맞다라고들 하지만 막상 죽음 앞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 그리고 더욱이 그러한 죽음의 길을 낯선 요양병원에서 한 평생 처음 보는 이들과 그 곳에 갖혀서 '위생적'이라는 포장으로 걸어가는 수 많은 사람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했다. 그리고 의료진들의 사무적, 의무적인 행동들. 특히 작가의 생각 중에 의대 실습 중에 요양간병인 활동도 포함이 되어야 그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느끼고, 그 고통을 없애는데 좀 더 환자의 입장에서 치료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란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게 됐다. 현재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요양시설과 우리나라의 뒤쳐진 복지제도를 알게 되면서 과연 나는 우리 부모의 죽음을 위해, 그리고 나의 죽음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간병인에 대한 생각들, 그들의 노고와 국가적 대처에도 나름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책 속의 아버지는 저자의 바람처럼 집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셨다. 늘 '죽는 것도 쉽지 않구나' 했던 아버지에게 그나마 저자와 같은 아들이 있었기에 편안한 죽음이 가능했으리라 생각도 해본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 갑자기 고꾸라져 병원에 실려가, 무릎 수술을 받으시다가 폐혈증으로 번져 중환자실을 오가다
겨우 정신을 차려 식구들과의 작별을 하고 하늘로 가셨던 할머니. 사실 그런 할머니를 중환자실에서 뵙고 나오는 나에겐
정말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병상에서 쓰일 기저귀를 주문하는 일이었고,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내가 주문했던 기저귀가 도착하기도 전 하늘로 가셨다. 그 때는 그저 슬픔의 나날이기만 했는데...
이젠 시간도 제법 흘렀고, 언젠가 우리 부모님에게도 그런 일이 닥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두려움이 살짝 몰려온다.
그렇기에 난 이 책 이야기를 우리 두 부모님에게 해볼까 한다. 그 분들이 원하는 건 무엇일지 진심으로 들여다보고,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안되겠으나, 인생이 뜻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기에 혹여나 그러한 어느 날을 맞이했을 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금씩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욕심이지만 이 책을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을 운운하는 그 분들이 꼭 한 번 읽어봤으면 한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떤 방향의 복지로 가야할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들여다 본다면 분명 좀 더 현실적인 방안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Mementomori! 언젠가 내게 무심히 닥칠 그 날들을 잊지 않고 생각하고, 생각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