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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철학수업 -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 ㅣ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5
이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평점 :
삶을 이끌어 주는 ‘의미의 중력’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티브이 프로그램이나 잘 팔리는 책들의 목록을 보면 사람들도 필사적으로 힐링과 행복을 갈구하고 있다. 이 갈망은 스펙과 돈이 전부인 것 같은 세상을 사는 우리가 ‘막다른 벽에 부딪힌 것 같은’ 느낌에서 오는 실제적인 불안이고 고통이다.
들뢰즈는 인간은 언제 사유하는가, 라는 질문에 지각 불가능한 것과의 피할 수 없는 만남에서 온다, 고 철학자 이진경은 말한다. 그는 “자유를 통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막다른 벽에 부딪힌 듯한 느낌’은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어려운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사례를 통해 ‘삶을 위한 철학’이 가능하다고 힘을 준다.
그렇다면 삶을 사랑하고 싶은 자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여러 가지 그럴듯한 선택지의 유혹 앞에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능력이고, 이런저런 제약과 구속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속받지 않고 또 선택지가 많은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자유다. 우리는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또한 실패를 밥 먹듯이 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만족한 삶을 살 수 없다.
실패를 했지만 행복을 느끼는 “기적적인 삶”이 가능할까? 성공의 가능성이 사라진 평범한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의 고통과 무기력을 견디는 훈련이, 그 무게를 지고 일상에서 실현 가능한 삶을 찾아 일구어 가는 능력이 기적을 가져온다. 사실 “삶이란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기에, 삶 전체를 걸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다 함은 삶 자체와 대면함을 뜻하고 고통을 통해 삶에 물음을 던지며 고통을 스승으로 삼아 다른 방식으로 살기 위한 길을 찾고자 할 때” 고통은 삶의 지혜로운 안내자가 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과 만나고 대면하는 방식의 차이”가 삶을 결정한다. 스피노자의 최대의 관심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였다. 살아가는데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웃을 수 있는 능력은 “농담하는 재능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한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거리화의 능력”에서 나온다. 그것은 상황의 무게를 실제보다 훨씬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사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패와 고통이 아니라 실패의 고통에 갇혀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유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만약 어떤 상황에서,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고 화를 내는 것은 내 인생의 시간들을 타인에게 줘버리는 것과 같다. 처한 상황해서 벗어나려면 지성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은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포근한 햇빛, 시원한 바람 같은 자연의 선물이나 타인의 배려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주어도 받지 못하는 이가 있고 주지 않은 것을 받는 이”도 있다. 그러기에 선물은 “선물을 받는 나의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자유를 위해서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직접 해보며 찾아야” 하고, 어느 것이든 “어두운 터널을 하나 정도는 통과하지 않고선 알 수 없는 것”이다. 삶을 위한 진정한 긍정이 필요하다. “이중의 긍정”이다. “첫 번째 긍정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긍정은 그렇게 자신이 긍정하여 선택한 삶으로 인해 야기되는 어떤 결과도 긍정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영혼의 속도는 어떤지,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 찾고 알고 밀고 나아가야 한다. “때로 정지해서 세상과 자신에게 눈을 돌릴 줄 알 때, 우리는 자신의 속도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는 “삶에 던진 시선을 통해 길어 올린 다른 삶의 가능성, 아직 살아보지 않은 삶의 가능성을 향해 가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긍정하고 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낮출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나의 힘과 의지를 접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유를 향한 작은 용기이다 가능성이다.
‘작은 용기’라는 말은 '내가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용기', 라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 여기에서, 나부터 바꿔 나갈 때 세상을 제대로 보고 세상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너가 다르지 않고 나의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며 나와 너가 하나로 연결될 때 ‘새로운 의미의 중력’이 만들어진다. 이진경은 그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고, 작은 용기를 가져보라고 우리에게 독려한다.